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32화 (432/530)

< 대륙중화론 >

다만, 이것을 단지 헛된 희망이라고만 표현하기에도 그랬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일견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무렵 분열주의자, 내지는 한족 민족주의자라고 불리는 진영은 또 한차례의 분열을 겪고 있었다.

"「분명하게 말하여, 한국의 황제가 중화 대륙과 우리 민족의 분열을 획책하였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과연 이것이 그가 의도한 바인지, 아니면 우연하게도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저 황제가 중화의 천자로서 부족한 면이 있던가?

이유야 어쨌건 간에, 옛 청국이 그러했듯이 변발과 호복을 강요한 것도 아니오, 천하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폭정을 일삼아 백성을 수탈한 것도 아니며, 천하를 호시탐탐 노리던 서역 오랑캐들을 크게 물리쳤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개인재산을 털어 농업을 장려하며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부정할 여지 없이 바람직한 중화 천자 그 자체가 아니던가.

오늘날 혹자들은 중화를 대표할 나라가 천하에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이는 그릇된 발상이다. 중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광활한 아주가 곧 중화가 된 것이다. 우리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늘 그래 왔듯이 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크게 앞서고 있는 우리 한족은 언젠가 이 광활한 아주 대륙을 우리의 색채로 물들일 것이고, 이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범 아주 조약기구는 우리 민족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자 창문이라 할 수 있다. 다가올 다음 세기에는 아주가 곧 중화요, 중화가 곧 아주가 될지니. 우리는 우리 민족이 번영하기 위한 또 한차례의 기회를 안겨다 준 한국의 황제를 칭송해 마땅하다.」"

위는 이 무렵 명망을 얻고 있던 초의 대표적인 한족주의자 당소의(唐紹儀)가 그의 저서 「대륙중화론(大陸中華論)」에서 주장한 바였다. 이 저서에 따르자면, 현재 중화 대륙에는 한족들을 위한 국민국가가 부재한 것이 아니라 범 아주 조약기구 그 자체가 언젠가는 중화의 민족국가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한국의 의도가 어쨌건 간에 딱히 한국이 중화를 더럽히거나 핍박하는 것도 아니며 결과적으로 범 아주 조약기구는 한족들이 아시아 곳곳으로 진출할 실마리를 제공해주었고, 역사적으로 중화 대륙을 점거한 다른 오랑캐들이 그러했듯이 끝내는 눈부신 중화 문명에 감화되어 스스로 중화가 되고자 노력할 테니 결국 아주의 인민 모두가 한족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연히 위의 주장에 따르자면 범 아주 조약기구는 부서지거나, 흔들려서는 아니 되었다. 머지않아 수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크게 앞서는 한족들이 범 아주 조약기구를 통하여 아주를 경영하며 아주 대륙 그 자체가 한족 민족국가가 될 것이므로, 오히려 범 아주 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질서는 더욱 강화되어야 했고 공고해져야만 했다.

한국의 황제는 정당한 아주의 황제로 남아야 했고, 이 새로운 중화 민족국가의 도읍이 그간 중화제국의 전통적 도읍들이 아닌 한성이 된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국, 조선인들 또한 중화의 앞선 문물에 감화되어 스스로 한족이 되려 할 테니 말이다.

말하자면, 당소의는 한족 민족주의자였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범 아주 조약기구와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한 아주 통일국가를 주창한 것이다. 한족의, 더욱 정확히는 중화 문명의 찬란함과 선진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소의는 한간(漢奸) 이다! 저 작자는 한국의 사주를 받아 달콤한 거짓말로 우리를 속여 민족해방운동을 더욱 분열시키고 약화하려는 매국노에 불과하다! 결국, 돌고 돌아서 한국의 황제를 섬기고 한국의 통치에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던가! 이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

청을 떠올려 보라. 장장 200여 년간 이 대륙을 통치해온 그들을 말이다. 그들이 진정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였던가? 그들이 스스로 의지로 한족이 되고자 하였던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았다. 저들은 그저 우리 민족을 배신할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무당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당소의 선생의 말이 옳다! 모두 현실을 직시하자. 작금의 이 아주에서 우리 한족이 아닌 인구가 과연 몇 할이나 되던가? 과반수의 인구가 우리 한족으로 채워진 작금의 아주는 우리 민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운영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대업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우리의 눈치를 볼 것이고, 그다음에는 우리를 기이하게 여기며 더욱 알고자 할 것이며, 알고 난 다음에는 흠모하게 될 것이고, 흠모하고 난 다음에는 곧 동경하여 스스로 중화인이 되고자 할 것이다. 장차 아주가 중화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은 예언이 아닌 필연이다!"

이 당소의 대륙중화론이 한족 민족주의 진영에서 가장 큰 근심이 된 것은, 이를 주장하는 자들이 다름 아닌 한족 민족주의자들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간 노선 분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그 시점부터 더는 민족주의자가 아니게 되었으니 그저 배척하고 귀를 닫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이 대륙중화론에 따르자면, 더는 애써 투쟁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난에 시달려가면서 투쟁할 필요 없이 더욱 적극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는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투쟁에 지쳤던 이들에게 투쟁을 멈출 더없이 적절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간 이들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어갈 내적인 동력이 사실상 메마른 다음에도 계속 투쟁을 이어갔던 이유는 그런데도 차마 일신의 편의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최후의 양심 때문이었다. 투쟁을 멈추고서 사회적 성공을 좇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는 대륙중화론이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던 까닭이다.

"「더는 못하겠다. 이제 지쳤다. 솔직히, 언젠가 아주 전체가 중화가 될 거라는 헛소리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그간 핍박받는 우리 민족을 위하여, 우리 한족의 황제를 찾으며 반평생을 보냈으나 오늘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서 조선의 통치를 칭송하는 순진한 동포들과 우리 동포들을 배불리 먹이고자 노력하는 어리석은 정복자들뿐이도다.

나도 이제 그만 보통 사람들처럼 나의 부귀영화를 쫓으며 살고 싶다. 내가 당소의, 그자에게서 얻은 것은 이런 내 바람이 결코 민족을 배신하는 일이 아니라는 마음의 위안뿐이다.」"

대표적인 이 무렵의 한족 민족주의자 중 한 사람이자, 정신적 거두였던 강유위(康有爲)가 당소의 대륙중화론을 공개 지지하면서 남긴 일기에는 이 무렵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정신적 피로와 바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신농유업 사업은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결정타를 안겨다 주었다.

그간 한국에서 아주의 근대화를 돕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열강들이 그러하듯이 수탈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 신농유업 사업의 목적은 누가 봐도 아주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사업을 증오해 마땅할 정복자인 한국이 자국민의 혈세를 퍼부어가며 밀어붙이고 있다는 현실은 이들에게 그동안의 세계관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대륙중화론은 그런 자들을 위한 핑계이자 도피처였다. 이에 따라 불과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활동가 대다수가 신농유업 사업을 전후로 하여 투쟁노선을 포기하고서 사회적 진출을 쫓게 되었고 이 무렵 한족 민족주의자 진영은 사실상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신들은 결코 전향한 것이 아니라, 당소의 노선을 쫓아 새로운 투쟁법을 찾은 것뿐이라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청년 운동가들은 진정으로 당소의 대륙중화론을 읽고서 크게 감명을 받아 노선을 바꾼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그러나 고령층일수록 투쟁을 그만둘 핑계로 당소의를 내세웠다.

"「장차 아주가 곧 중화가 될 것이라는 저 몽상에 가까운 관측이야 우스울 따름이지만, 장차 아주인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 그 자체에는 분명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나는 그 정체성은 온전하게는 아닐지 몰라도, 조선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만주, 몽골을 포괄하는 대한이 아니라, 조선 반도에 뿌리를 둔 조선의 문화가 장차 아주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줄 것이다.

작금의 아주에서 누구나 타의가 아닌 스스로 조선말을 배우고,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가게 되어도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이 조선말이며, 오늘날 한어(漢語)를 보조하기 위하여 도입되고 있는 것이 조선의 언문이다. 또한, 오늘날 학술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아주에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조선이다.

아마 다음 세기에도 아주가 하나의 나라가 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대륙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밖에는 없는 우리는 결코 가족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감히 예측건대, 우리 조선의 깃발 아래 좋은 이웃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 확신하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물론이오, 중원의 여타 제후국들은 대륙중화론이 널리 읽히는 것을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유야 어쨌건 그 기저에 깔린 주장은 한국에 맞서지 말고 순종하자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당소의 대륙중화론을 읽고서 양기탁이 남긴 위의 담소와 같이 그 기저에 내포된 것은 다소 한족을 중심으로 재해석 되기는 했으나 아시아주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불온서적으로 분류될 여지가 없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중화의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고 한족 국민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거슬리기는 했어도, 도중에 논리적 비약이 너무 커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우스갯거리 즈음으로 받아들여지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검열부서의 방관 속에서 대륙중화론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인지 불과 2년이 안 되어 16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단지 중화 각지에 유통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다 건너 미국이나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에게도 널리 읽혔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대륙중화론이 널리 팔릴수록 투쟁노선은 빠르게 힘을 잃어갔다.

"이건 기회다! 마침내 조선인들이 좌지우지하던 작금의 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나 이 중화 대륙은 조선과 같은 소국이 끌어가기에는 너무나도 광활하고 거대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바깥으로는 신농유업 사업으로 압제자 한국이라는 구도가 무너지고, 안으로는 대륙중화론으로 시달리던 전통적인 한족 민족주의자 세력들이 북해도 위기에 쾌재를 부르며 일제히 뛰쳐나와야 했던 이유였다. 말하자면, 지금 당장에 무언가 성과를 보이거나 하다못해 희망을 보여주지 않으면 조직원들이 이탈하면서 자멸할 위기에 처해있던 것이다.

그러나 쾌재를 부르던 이들은, 동시에 더는 자신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을 일으키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에 좌절해야만 했다. 이미 진시황릉의 발견을 계기로 하여 한족 민족주의 세력이 씨가 마른 진이야 어쩔 수 없었어도, 그간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주된 활동지이자 뿌리라 할 수 있던 초에서 하필이면 대륙중화론이 시작된 것이 가장 컸다.

"아직도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는 저 어리석은 놈들이 대사를 망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저들이 시류를 읽지 못하고서 혼자 뒤처지는 거야 저들의 자유지만, 섣부르게 일을 터뜨려 중화의 체면에 먹칠한다면 우리 민족 모두의 낭패다. 마땅히 사력을 다하여 막아야만 한다."

투쟁노선을 접고서 대륙중화론을 추종하게 된 과거의 동지들은 이들이 괜한 사고를 치는 걸 절대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것이 진정으로 한국 주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근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안정시켜야만 했다. 이들은 아직도 투쟁노선을 잡고 있는 이들을 철저히 감시하였고, 경찰에 밀고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때 누구보다 열성적인 투사들이었던 만큼 옛 동지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 누구보다 잘 꿰고 있었다. 이들의 열렬한 밀고 속에서 곳곳에 숨어있던 지하 비밀조직과 은신처가 현지 치안조직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혁명을 더더욱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조직적인 행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니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따로 감시가 붙지 않았을 만큼 지금껏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준 적이 없는 신인들만이 남게 되었다. 청년층 모두가 대륙중화론에 감화되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젊은 혈기야말로 화근이 되었다.

"그래, 네 부모의 등골을 빨아 오랑캐 놈들의 학교에 다녔다지? 이놈아 그토록 출세하고 싶었더냐! 하지만 이제 너희 시대는 끝났다! 그걸 이 몸이 오늘 손수 이 두 주먹으로 교육해주마!"

"이 한간 놈! 듣자니 네가 한국의 섬유를 들여와 팔았다지? 민족자본을 팔아치워 오랑캐 놈들의 경제침략에 앞장서다니! 천벌을 받아라!"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수위를 조절하는 방법도 자신들의 행동에 정치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법도 몰랐다는 것이다. 자신도 지긋지긋해져서 그만둘 이유를 찾을 만큼 기나긴 세월을 투쟁해온 원로층과는 다르게, 이들 청년 투사들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열정에 넘치기는 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자신들의 폭력을 노려야 할 과녁에 모으지 못하고서 주변을 상처 입혔다.

대표적으로는 단지 한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한국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게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이들의 이러한 일방적인 폭력은 이들 한간(?)을 반성하게 하기는커녕, 되려 악감정을 품게 하며 그들을 혐오하게 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동이 실상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목적도, 목표도 가지지 못하고서 전방위로 휘둘러지는 치기 어린 폭력은 각지의 치안조직들의 공권력 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을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는 항한 투사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싶어 했으나, 그들의 무분별한 폭력에 시달리던 시민은 그들을 단지 불량청소년 무리 즈음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런 청년층의 폭주를 제어해야 할 원로층은 한때 동지였던 자들의 견제 탓에 움직이지 못하니, 폭력 사태는 연일 계속되었고 공권력과의 충돌도 잦아졌다. 이러한 혼란은 특히 초에 집중되어, 상해는 권총 따위의 소화기로 무장한 청년들이 양산박의 이름을 빌려 민족을 핑계로 상습적인 은행 강도 노릇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안 된다. 다들 활동이라고 해봐야 초에서만 왁자지껄하고 있는 것으로만 그치고 있지 않은가! 천하가 우리의 고결한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땅에서 우리끼리 다툴 것이 아니라 적진에서 적을 노려서 쏘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폭주 중에는, 한국과 범 아주 조약기구의 주요 각료들을 향한 암살시도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있었다.

< 대륙중화론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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