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예술위원회 >
이 무렵 한국 전주에서 착착 준비되어가고 있던 제12회 만국박람회가 그동안의 만국박람회들과 비교하여 바로 유럽 주요 열강들이 이름만 올려놓은 수준의 저조한 참가의욕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사태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은 전쟁 중이었다. 전쟁이 바쁜 와중에 어느 누가 한가하게 만국박람회나 준비할까? 한국에서 만국박람회 개막식까지 100일 남았다며 한창 홍보할 무렵에 유럽에서는 러시아 내전에서 발을 뺀 신성로마제국이 프라하를 재탈환하면서 전쟁이 더욱 길어질 기미만 보일 따름이었다.
이런 와중 미대륙은 미대륙대로 주브라질 미국 공사관에 주둔 중이던 미 해병대가 브라질의 군사쿠데타를 저지하면서 미대륙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고,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되찾아간 오스만 튀르크와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영국 외무성이 양국을 중재하려 나서는 등 전란의 시대는 조금도 진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런 와중 한국에서 준비되는 만국박람회는 아무래도 세계인들의 관심 바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상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아시아 대륙을 제외하자면, 사실상 12회 만국박람회는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유럽이 빠진 만국박람회가 언제부터 만국박람회였던가? 저건 그냥 미국인들이 투자하여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아시아 박람회지 만국박람회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무엇보다 유럽국가들 대부분이 불참하였거나, 이름만 올려놓은 수준의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다는 것도 문제시되었다. 그간 만국박람회는 보통은 유럽, 드물게 북미와 오세아니아에서 개최되었으나 이런 경우들 모두 메인이 되는 건 유럽 열강들이었지 다른 대륙의 소국들이 아니었다. 그나마 미국 정도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발판삼아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을 따름이다.
따라서, 사실상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입한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 그리고 그나마 성의는 보인 프랑스와 최소한의 체면만 차린 영국 정도를 제외하자면 이렇다 할 참가국들도 없고,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관광객들이 오가기 어려운 12회 만국박람회는 본격적인 시작도 전부터 많은 우려를 받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우려는, 다름 아닌 흥행실패였다.
"이번 만국박람회는 다름이 아니라 조선조 건국 500년 주년을 기념하는 것인 동시에 황상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30년이 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함이니, 결코 준비에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백성을 징발해서라도 회장을 가득 채우고, 어떻게든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한다!"
"만국박람회 기간 목포행 배편을 일부분 한국 정부에서 부담하겠다고 해라! 아직 가난한 아주인들이 이 머나먼 전주까지 찾아오려면 하다못해 교통이라도 편리해야 한다!"
"공사 인부들도 행사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휴가를 줘서 전주에서 보내라 하도록! 원한다면 가족들도 데려오라 하고! 여비는 우리 쪽에서 부담할 거라 하면 즐길 것이 마땅치 않은 막노동꾼들이니 좋다고 할 거다!"
이 흥행실패는 이 무렵 한국 정부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사태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만국박람회가 유럽에서 전쟁이 났다고 하여 미룰 수 있는 행사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단 10년도 전부터 황제가 직접 즉위 30주년을 기념하여 만국박람회를 열 것이라고 언급했을뿐더러, 이 만국박람회에는 다소 늦어지긴 했으나 조선 건국 5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
당연히 한국 정부로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는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럽의 돈 많은 부자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없게 되면서 만국박람회 그 자체의 흥행성패와는 별개로 터무니없는 적자로 끝나게 될 전망이 커졌으나, 그건 한국 정부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무튼 간에 일단 최대한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수익이 얼마나 나느냐가 아니라 관람객들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곧 흥행의 지표가 될 것이고, 이 만국박람회가 얼마나 흥행하느냐가 곧 한국의 위신상승으로 이어질 까닭이었다. 또,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원을 모아야 입소문을 타서 장차 아시아 대륙에서도 만국박람회 전통이 뿌리내릴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다만 이러한 흥행성패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무슨 신문만 펼치면 매일매일 어디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다, 어느 나라 외교부에서 또 얼마나 위협적인 언사를 날렸다. 뭐 이런 소식밖에는 없으니···후유! 이제 지긋지긋해. 하다못해 이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이라도 당분간 자리를 피하든가 해야지···."
"아시아는 평화로운 모양이구먼. 그래, 온 세상이 전쟁만 하고 있으면 쓰나. 어딘가는 평화로워야지. 암. 아무튼, 평화는 평화고, 그럼 슬슬 더 늦기 전에 계좌를 옮겨보실까?"
"요즈음 영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게 당분간 몸을 피하고 있어야 할 텐데···그렇다고 또 식민지나 별장에 몸을 피하는 건 너무 속보이고. ···으음. 뭔가 적당한 명분거리가 없나? 전쟁을 피해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애국하려고 그런 거라고 변명할 수 있을만한 사업이···."
우선 가장 먼저, 유럽 부자 관광객들의 불참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유럽이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중산층 관광객들이라면 모를까, 전쟁 중이라고 재산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돈 많은 부자가 지구 반대편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린다고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만국박람회는 전쟁을 피할 피난처로 받아들여졌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전선에서의 참혹한 소식에 질린 이들은 끝없는 살육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질색하여 전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고, 누군가는 전쟁통의 투자 불안을 피하여 아시아로 분산투자를 시도했고, 누군가는 아시아에 조국의 문물을 알린다는 핑계로 몸을 피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돈 많은 상류층이 전쟁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볼멘소리가 나올 때마다 이들은 변명했다.
"전쟁은 전쟁이고, 만국박람회는 만국박람회다. 예기치 않게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만국박람회가 취소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던가? 전쟁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면, 만국박람회는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조국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비록 목숨을 다하여 싸우는 것보다야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또한 애국이 아니겠는가?"
이렇다보니 전주 만국박람회는 여타 만국박람회들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본격적인 개막 이전부터 무수한 민간 참가자들이 넘쳐 흘렀다. 보통은 각 나라의 정부에서 주도하여 전시관을 채우는 여타 만국박람회와는 다르게 민간 차원의 참가자들이 각 전시관을 채워나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간참가자들에게 전시관을 채우기 위한 전시물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전쟁을 피해 안전과 안정을 얻기 위하여 지급하는 일종의 보호비 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만국박람회에서 조국의 문물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라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용 비용이기도 했음은 물론이었다.
전쟁을 피하고 싶은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어느 사람에게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 군대 가기 싫다! 진짜로 싫다, 싫어! 평소라도 가기 싫었을 군대를 이제는 전쟁에 끌려가 개처럼 죽기 위해서 가야 한다니, 으으으! 이 빌어먹을 놈의 군대만 피할 수 있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기꺼이 가주겠어!"
"정말이지 동감이야. 조국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무슨 얼어 죽을. 그 말에 속아서 끌려가 봐야 진흙탕에서 기관총이랑 뒹굴기밖에 더하나?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도망치자고.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가 전쟁에 끌려가서 죽기라도 하면 그때는 늦는다고!"
"그래, 도망치자. 아무리 징병관들이 지독해도 설마 지구 반대편까지 쫓아오지는 않을 거야! ···그렇겠지?"
전쟁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공통적이라면, 군대에 가고 싶어하지 않은 것 또한 그러했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이 무렵, 유럽에서는 한창 병역기피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향한 로망은 한참 전에 깨진 지 오래였고 참호전의 참혹함은 언론을 통하여 더욱 과장되어 적령기 청년들의 공포를 더욱 자극하였다.
군대에 끌려가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제는 군대에 끌려가서 승리를 위한 국가의 탄환으로서 소비되라니, 그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전장의 명예 따위 변태들이나 쫓는 허상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어떻게든 병역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수한 방법을 쥐어짜 냈고, 개중에는 고의적으로 신체 일부를 훼손하여 영구적인 장애를 얻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도 흔하디흔했다.
그리고 만국박람회 참관은 그 무수한 병역기피법 중의 하나였다. 아예 징병을 피하여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치려 한 것이다. 어쨌건 간에 제아무리 징병관들이 날고 기어도 지구 반대편 아시아 대륙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테니, 이들의 선택은 일견 합리적이기도 했다.
"멈추시오! 정선! 정선명령이오! 이 배에 병역기피자들이 숨어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제기랄, 저 지긋지긋한 놈들! 저 지독한 놈들이 하다 하다 경비선까지 끌고 와서는 날 잡아가려 하고 있어!"
물론, 배가 출항하여 항구를 벗어날 때까지 무사히 숨을 죽이는 데 성공했을 경우에만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배가 출항하기도 전에 적발되어 즉석에서 훈련소까지 끌려가거나, 드물게 배가 출항하고 난 다음에도 항구를 벗어나기 직전에 정선명령에 붙잡혀 그대로 훈련소까지 연행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만국박람회를 핑계로 배에 몸을 싣는 청년들의 숫자는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배가 출항하여 항구를 벗어나는 데까지 숨는 데에만 성공하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징병관들이라도 국외까지 쫓아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은 비슷하게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피난처로서 애용된 미국행 유람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미국행과 전주행에 차이가 있다면, 미국행은 가까운 대신에 드물게 정말로 미국까지 쫓아온 징병관들에게 붙들고 가는 경우가 있었던 반면 전주행은 먼 대신에 그만큼 징병관들에게 끌려갈 걱정은 없었다는 점이다.
제복만 벗고 머리만 좀 기르면 시민 사이에 숨어들 수 있는 미국과는 다르게, 인종 자체가 다른 한국에서는 도저히 잠복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세간에서는 이번 12회 만국박람회를 두고서 아시아 박람회라고 말한다. 그래, 그렇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애당초, 1회 만국박람회에는 우리 아주인들이 초대되었던가? 온통 유럽 국가들만 모여서는 저들끼리의 잔치를 열고서 만국박람회라고 지칭했던 게 끝이 아닌가. 그럼 아시아 국가들만 모여서 아시아만의 잔치를 연다고 그게 만국박람회라고 불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이번 전주 만국박람회는 다가올 다음 세기는 바야흐로 우리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임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축제가 될 것이다! 마음껏 즐기자! 저 구주인들이 전란에 신음하며 하루하루 고여만 가는 피와 눈물 속에 허구적 거릴 때, 우리 아주인들은 전리품 마냥 전시되던 신세에서 벗어나, 우리 아주인들이 주체적으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고, 운영하고, 즐기자!"
"아주는 모두 형제다! 다투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든 아주인은 형제다! 이번 제12회 만국박람회는 우리 아주인들 간의 형제애를 더욱 돈독히 하고, 아주는 언제나 하나임을 보여줄 것이다!"
유럽측의 참가자들과 관광객들이 전쟁과 징병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면, 아시아 측의 참가자들과 관광객들은 만국박람회의 본분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그간 한국에서 줄기차게 선전하고, 또한 교육해온 아시아주의 씨앗이 발아하고 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유럽 국가들의 불참은 그리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 무렵 각국의 아시아주의자는 유럽국가들이 전쟁에 바빠 불참하게 된 사실 그 자체를 반가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혹자들이 전주 만국박람회를 두고서 아시아 박람회라고 부르는 것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전주 만국박람회는 곧 아시아 박람회라고 긍정하기도 했다.
이들 아시아주의자에게 전주 만주박람회가 아시아 국가들의 잔치가 된 것은 곧 세상의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받아들여졌다. 처음 유럽인들이 만국박람회를 열 적에 유럽국가들만 모였음에도 만국박람회로서 이름을 날렸듯이, 이제는 아시아 국가들만 모여있다고 하여도 충분히 만국박람회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는 당연히 한국 정부를 위시한 개최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개최 측으로서는 유럽 국가들이 전쟁 탓에 힘을 쓰지 못한 것을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 아시아주의자의 목소리는 사그라질 줄을 몰랐는데, 이는 엉뚱한 곳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우리 아주를 찾아온 이들에게 우리 아주를 널리 알립시다! 여러분, 모두 아주예술위원회와 함께 해주십시오! 우리 아주 또한 결코 구주에 뒤지지 않을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전통들이 있음을 알려봅시다!"
"각국의 전통을 알리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이미 각국 정부에서 어련히 알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비단 우리가 아니더라도 자국의 전통을 알리고자 정부정책에 힘을 보탠 시민운동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 힘을 보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니라면 전하기 어려운 아주다움을 전하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유학도 좋다. 불교도 좋다. 도가도 빼놓을 수 없을 테고, 서예나 바둑, 장기 같은 것들도 좋다. 우리 조약기구에 가맹한 나라라면 어느 나라나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다운지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소소한 전통문화들을 알리러 가자!"
이들 아시아주의자는 아주예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전주 만국박람회에 자신들만의 전시관을 가져갔다. 특이한 점은, 이번만큼은 딱히 한국 정부에서 의도하였거나 사전에 유도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시작되고, 일본의 호응을 받아 상해에서 결성되어 한국 정부의 후원을 받게 된 이 아주예술위원회라는 민간조직은 이 무렵 아주에 존재하던 무수한 민간조직 중 가장 거대하고, 가장 국제적인 인적구성과 성향이 있는 민간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여타 민간조직들이 자국의 문물을 다른 나라들에 전하는 데에 집중했지만, 이들은 아주 대륙의 문화적 공통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애당초 아시아주의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탄생한 국제 민간조직이었던 만큼 필연적인 일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 그들 나라의 문물을 전하고자 노력할 때, 이들은 아시아는 모두 형제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들 모두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여들어, 서로 다른 나라의 후원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으며, 조선말로 소통하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아주는 어떠했는가가 아니다. 그건 역사가들의 문제지, 우리 같은 예술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고, 창조해내야 할 것은 앞으로의 아주다!"
"일단 그려라! 무엇이든 조각하고, 무엇이든 노래하고, 무엇이든 적어 내려가자! 우리의 물감은 우리의 영광스러웠던 과거요, 우리의 붓과 도화지는 열정과 꿈으로 가득한 지금이며, 우리의 그림은 다가올 우리의 찬란한 미래일지라!"
그런가하면, 이들은 그 누구보다 열성적인 미래주의자들이기도 하였다. 현실적으로, 아주 대륙의 문화적 공통점만으로 그들에게 배분된 전시관을 가득 채우기에는 1,000평에 달하는 전시부지는 너무나 거대했다. 그리고 이 무렵, 아시아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것은 비단 지식인들만이 아니라 예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예술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열성적인 아시아주의자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손으로 다가올 20세기의 아시아 문화를 창조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찍이 예견 되었던 대로, 아시아 전시관에 모여든 무수한 예술인들은 조선 문화라는 밑그림 위에 미래의 아주 문화라는 그림을 창조해갔다.
< 아주예술위원회 > 끝
ⓒ 리첼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