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박람회 >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만국박람회의 모든 전시관이 이들과 같은 자유로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선보이기 위하여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대부분의 전시관은 각국의 정부에서 주도하여 설계되었고, 또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들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시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은 당연히 그들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무관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니면 무엇하러 그토록 많은 시간과 자산을 들여 완성한다는 말인가?
당장 한국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설계한 한국 전시관 또한 그러했다. 아니, 더 나아가 만국박람회 부지 전체가 그러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결코 이번 만국박람회를 세계인들이 즐기기 위한 축제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만국박람회를 세계인들에게 한국에서 원하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한 기회로 보았다.
이 무렵 만국박람회 전시와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서 내려진 지령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한국적인 것을 전시하는 것도 좋다.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것은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 대한이 만국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하고 실력 있는 열강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번 박람회에서 우리는 저들이 신비함을 느끼도록 하지 말고, 경외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전쟁 무기들은 일체 전시하지 마라. 이순신급 전함의 모형도 어쩔 수 없지만, 이번에는 전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에 과시해야 할 것은 평화다. 우리 대한이 아시아를 평정한 이래, 아시아는 이리도 평화롭게 번영에 번영을 거듭하고 있음을 과시하는 거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우리 대한이 아시아를 통치하는 것이 올바르며, 아시아 하면 우리 대한이 가장 먼저 생각나도록 하라."
이 지령은 전쟁 무기들을 전시하지 말라는 지령 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다소 모호했으나, 다름 아닌 황제의 뜻이기도 했던 만큼 준비위원회에서는 어떻게든 위의 지시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준비위원회에서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만국박람회의 주제는, 다름 아닌 「평화」였다.
당장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평화를 주제로 한 만국박람회를 연다는 건 다소 역설적이게 느껴졌으나, 준비위원회에서는 바로 그렇기에 「평화」를 주제로 골라야만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세계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날이야말로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만국박람회 개최가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더불어서 현시점에서 한국에서 세계를 향해 가슴을 펴고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점이 아시아 대륙의 평화이기도 하다는 점도 주제 선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한족 주의자들의 테러 등의 위협이 남아있기는 했으나, 전쟁이나 쿠데타가 아니라 고작 해봤자 테러라는 점에서 이는 오히려 아시아 대륙의 평화로움을 더욱 부각하면 시켰지 결코 퇴색시키지 못했다.
"평화! 평화라···그거 좋지. 그래,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니 뭐니 하고 죽고 죽이는 와중에 우리가 평화 엑스포니 뭐니 하면서 열불을 질러줘야 저것들도 좋다고 하고서 펄쩍펄쩍 뛰지 않겠나? 어디 한번 코쟁이들 가슴에 박박 손톱자국을 내보게."
이러한 준비위원회의 계획안을 황제가 껄껄 웃으면서 선뜻 승인을 내주면서 만국박람회의 준비는 한결 손쉬워졌다. 일단 「평화」라는 주제가 정해지고 나니,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이 「평화」라는 주제를 잘 나타내야 할지에 대해서만 논의하면 그만이었다. 아예 방향성조차 없던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크나큰 발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다.
"평화라고 하면 아무래도 순한 인상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 작금의 시대에 우리 대한에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은 평화겠지만, 아무래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가령 「산업」을 상징했던 에펠탑을 생각해 보십시오. 설령 에펠탑을 흉물이라고 싫어하던 사람들도 그 모습을 한번 보고 나면 절대로 그 모습을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지 않았습니까?
평화라는 주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인가-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길게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설교하는 인상을 주고 말겠지요. 우리가 평화라는 주제를 선정한 이상,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아, 이건 평화를 나타낸 거구나!』하고 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누가 봐도 한눈에 평화라고 알 수 있게 하는 상징을 고안해내는 것. 저는 가장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세계에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평화의 상징 흰색 비둘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이 무렵에는 월계수 가지를 문 흰색 비둘기라는 상징 그 자체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평화의 기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도 같았다. ☮라는 기호 자체가 반핵운동을 계기로 등장한 만큼, 핵이 없는 이상 ☮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주 만국박람회 준비위원회에서는 뜻하지 않게도 세계 최초로 평화의 상징을 고안해내야 한다는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 이는 상당히 골치 아픈 작업이었다. 이들 또한 「평화」가 좋은 것이라는 건 알고 있어도 「평화」라고 했을 때 딱 머리에서 떠오르는 상징과도 같은 무언가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 주제를 바꾸기에는 이미 황제의 허락마저 얻어낸 마당이었으니, 결국에는 머리를 맞대고서 쥐어짜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무렵 준비위원회에서는 무수한 제시 되었다.
"그래, 괭이는 어떤가? 전쟁 중에는 무기를 들던 사람들도 전쟁이 끝나고 나면 모두 밭으로 돌아가 괭이를 들고 밭을 갈지 않는가. 시대가 조금 너무 바뀌었다 싶으면 공장에서 쓰는 망치 같은 걸 추가해도 괜찮겠군. 아니면 아예 괭이와 망치를 겹치던가 말이야. 어때, 괜찮지 않나?"
"발상은 나쁘지 않은데, 괭이와 망치라니 공산주의자들의 상징이 아닌가. 괭이와 망치야 딱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우리 대한이 사용하기에도 조금 그렇고 세계인들에게도 괜한 오해를 사게 될지도 모르겠군. 다른 발상은 없나?"
"젠장, 그러고 보면 빨갱이 놈들이 있었지. 선수를 빼앗기다니···쯧. 그럼 누런 황소는 어떤가? 말과는 달리 소는 전쟁에 끌려나가는 일도 드물고, 특히 우리 조선의 누런 한우는 성격도 순하고 푸근하게 생긴 것이 자세히 보면 귀엽기까지 하지. 이 황소를 상징으로 삼는 건 어떤가?"
"괜찮긴 한데, 한우가 순한 거야 조선에서나 아는 거지 어느 누가 안다는 말인가. 그리고 소라는 게 원래 힘 잘 쓰고 억센 인상이 있지 않나. 황소는 보통 평화라기보다는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무쌍한 남성성을 상징하지 않나? 아니면 부귀영화라던가."
"허, 참.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거 트집 잡는 거 하나는 천하제일일세. 그럼 자네가 한번 안을 내보시게.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는 거 보면 뭔가 생각이 있을 것 아닌가."
"으음, 글쎄. 그래, 이건 어떤가? 거 왜, 적십자사라고 붉은 십자가를 쓰면서 다친 병사들을 간호하고 다니는 구호단체가 있지 않나. 그들에게 협력을 구해서 우리도 붉은 십자가를 평화의 상징으로 써보는 건 어떻겠나?"
"평화와 붉은색이 바르다고 생각하나? 누가 봐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적십자라는 것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 곳이 어디든 가. 전쟁터가 아닌가. 적십자는 평화라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듯싶네만."
"···음, 이게 이런 기분이었구먼. 미안허이."
"괜찮네. 미안할 것까지야 있나? 자,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결국 석 달에 걸친 논쟁 끝에 최종적으로 수렴된 안은 크게 3가지였다. 하나는 오곡 풍성한 수확기의 황금빛 논밭이었고, 하나는 매화였으며, 하나는 강강술래였다.
첫째, 황금빛 논밭이 제시된 것은 그것이 이 무렵 한국인들에게 가장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언제냐?하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봄과 여름의 우여곡절을 헤쳐나온 끝에 마침내 풍년이 찾아와 논밭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과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미 산업화가 상당히 진척된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의 국민적 정서에서 논밭과 농사는 때려야 땔 수 없는 존재였던 까닭이다.
둘째, 매화가 제시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매화가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는 혹독하고 사나웠던 겨울을 견뎌내고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그러니까 추위가 채가시기도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므로 평화의 상징이라고 부를 법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선택에 이전부터 매난국죽이라 하여 매화를 아꼈던 정서가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강강술래가 선정된 까닭은, 여러 사람이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둥글게 모여 빙글빙글 돌면서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계인의 화합을 나타내는 데에 이보다 더 알기 쉬운 상징이 있느냐는 것이다. 함께 얼싸안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보다 서로 증오하고 다투는 전쟁에 대비되는 것도 없다는 보충설명은 덤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안을 모두 전해 들은 황제의 화답은 이러했다.
"꼭 하나만 고를 필요가 있나? 모두 고르면 되는 거 아닌가. 쓸 수 있는 건 모두 써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보게. 괜히 탁상물림으로 하나에 집중하였다가 그 하나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야 세가지 모두 써보고서 그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걸로 집중하는 게 낫지 않나?"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준비위원회는 결국 석 달에 걸쳐 다툰 보람도 없이 이 3가지 상징을 모두 동원하여 만국박람회를 설계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무를 떠맡았다.
이들 중 매화는 상징으로 사용하기에 매우 편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대한제국에서 으레 황실의 상징인 자두 꽃을 이곳저곳에 새겨넣듯이 매화꽃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념주화나 옷 무늬 같은 곳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화 꽃이 피는 시기가 개최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단점이야, 조화를 사용하거나 식물원에 전시하거나 하는 식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매화가 꽃이라는 점도 큰 이점이었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목적을 제하고서라도, 한눈에 봐도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외양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덕분에라도, 매화는 자연스럽게 전주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화가 열매를 맺으면 매실이 된다는 것도 분명한 이점이었다. 제호탕이라던가 매실주 등을 세계인들에게 대접하면서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 측면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예 매실 시식 관이 따로 만들어져서 매실 장아찌를 비롯하여 매실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음식류와 주류를 권하기도 하면서 평화의 상징으로서 매화는 쉽게 이용될 수 있었다.
"오곡 풍성한 논밭. 거 듣기에야 좋지만···제기랄, 이걸 어떻게 준비하지? 일단 벼를 심는 것도 일이지만, 수확할 것도 아니면서 벼를 심고서 관상용으로 삼는 것도 꼴이 이상하지 않나. 관상용으로 쓸 거면 차라리 수확해서 한 사람이라도 배를 채우는 게 낫지!"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일단 오곡 풍성한 황금빛 논밭이 문제가 되었다. 거름냄새 지독하게 풍기는 논밭을 전시회장 한복판에 만들었다가는 대참사가 일어날 테고, 설령 거름냄새를 풍기지 않는 논밭을 조성한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벼를 수확해서 밥을 지어 먹는 게 아니라 관상용으로 쓴다는 것 자체를 한국 관료들이 견디기 어려워하던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벼를 관상용으로 쓸 바에야 그걸로 밥을 지어서 배 곪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먹여 살리는 게 백배 천배는 더 나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밥을 지어 먹여버리면 세계인들이 와서 그 풍요와 평화로움에 감탄해야 할 오곡 풍성한 황금빛 논밭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벼를 모두 수확하고서 남은 텅 빈 밭을 보여줄 게 아니라면, 이는 아무래도 무리수가 많았다.
거기에, 서리 걱정도 문제였다. 그야 당연히 감시는 언제나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박람회 기간 매일 수천 수만 명이 논밭을 들락거릴 텐데 서리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하겠는가. 거름문제, 식량낭비, 서리문제. 이 세 가지가 겹치자 황금빛 논밭 안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여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갈대를 쓰는 건 어떤가? 가까이에서 보면 그야 당연히 티가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황금빛인데다가 멀리에서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얼핏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않는가. 또 갈대는 누가 훔쳐갈 걱정도 없을 테니, 벼 대신에 갈대로 황금빛 논밭을 연출해보세."
그리하여 결국 결론은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벼 대신에 갈대를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오곡 풍성한 황금빛 논밭과는 거리가 생긴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벼나 보리 등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대신에, 준비위원회에서는 이 갈대밭을 될 수 있는 대로 논밭처럼 보이게 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한가운데에 허수아비를 설치해두거나, 논밭처럼 물길을 내거나, 농기구 같은 것들을 근처에 장식해두거나, 갈대를 일부러 다듬어서 벼처럼 보이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위해 아예 일부러 벼를 수확하듯이 갈대들을 잘라다가 눕혀 놓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이 갈대밭 옆에 시식 관을 설치하여 전주비빔밥을 비롯한 쌀밥 요리들을 시식하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외국인들이 이를 보고서 바로 옆에 논밭(?)에서 수확한 신선한 벼를 가지고서 요리를 해 대접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러나 워낙에 무리가 많았던 기획이었던 만큼, 이미 이를 준비한 준비위원회마저 아무튼 황제에게 허락까지 맡은 사업이었으니 온 힘을 다했다-정도로 여겼을 뿐 이것이 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반면에 강강술래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만국박람회 때마다 주최국에서는 커다란 조형물을 건설하여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고는 했다. 우리 대한도 이번에 만국박람회를 준비하게 되었으니 무언가 하나쯤 상징이 될만한 거대한 조형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가령, 동상을 세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강강술래를 하는 소녀들의 동상을 세우자. 함께 웃으며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만큼 이번 전주 만국박람회의 주제인 「평화」를 잘 드러내는 모습이 또 어디에 있을까?"
강강술래는 처음에 제시 되었을 적부터, 마침 전주 만국박람회의 상징이 될만한 거대한 조형물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동상으로 만들어지도록 계획되었다. 이 초안에 따르자면 이 동상의 이름은 「평화의 소녀상」이 될 예정이었고, 이 동상은 전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들이 지구본을 가운데에 두고서 강강술래를 추며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연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반박이 제기되었다.
"이는 분명 「세계는 하나다」와 같은 주제를 나타내기에는 적절하지만 「평화」를 나타내기에는 부적절한 것 같다. 무엇보다, 전쟁에서 희생되고 있을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지구 반대편 구주에서는 전쟁이 한창인 작금의 정세를 고려했을 때, 이는 꼭 청년들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라 비추어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동상은 한차례의 격변을 겪었다. 지구본을 가운데에 두고서 각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들이 강강술래를 추고 있는 것은 같지만, 소녀들 사이 사이로 잘 맞지도 않는 각국의 군복을 차려입고 있는 소년들의 모습을 끼워 넣은 것이다. 그들의 발치에는 본래 그들이 짊어져야 했을 무거운 군장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동상의 이름 또한 「우리의 염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직접 평화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본래 무기를 들고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할 병사들마저 무기를 내려놓고서 함께 춤추고 있는 걸 묘사함으로써 평화를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부단한 노력 끝에야 비로소, 전주 만국박람회는 평화 박람회라는 별칭을 따낼 수 있었다.
< 평화 박람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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