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과응보 >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선업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악업에는 반드시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말이다.
일전에는, 나 또한 으레 이러한 옛말들을 믿었다. 나보다 먼저, 그리고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살며 다양한 경험을 해왔던 선현들이 입 모아서 그 말이 옳다고 하였으니, 분명 무언가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어설프고, 순진하였던 생각이 깨지게 되었던 것은 내가 막 열아홉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척생(滌生) 증국번(曾國藩) 타계(他界).」
이 일곱 글자를 조간신문에서 읽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하였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고 또 읽기를 다섯 번. 이것이 나쁜 꿈인 건 아닐까 하여 내 볼을 때리기를 세 번. 그 얼얼한 통증에서 이것이 기분 나쁜 꿈이 아닌 기분 나쁜 현실이라는 걸 최후에 가서 자각한 다음에야, 나는 제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아니, 그날 울지 않았던 뜻있는 호걸들이 어디 있었을까. 이 나라의, 중화의 선비라 부끄럽게 자칭하는 이들 중 이날 눈물 한 방울 떨구어보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이 울었다. 타계하셨다는 소식에 울었고, 최후까지 오랑캐 황제에 맞서 그 절개를 다 하셨다는 소식에 울었다. 오랑캐 황제의 손에 목숨을 잃는 것조차 부끄러워하시며, 스스로 우마차에 몸을 던져 숨이 다하셨다고 들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듯하였다.
그날만큼 하늘을 원망했던 날이 있을까. 인과응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한 일은 선한 일로, 악업은 악업으로. 반드시 인과는 돌고 돌게 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세상은 이름 없는 백성을 위하여, 무너져 가는 나라를 위하여 자발적 토벌을 위해 그 한 몸 바치신 증국번 선생께 이토록 참혹한 결말을 내리셨다는 말이던가.
원망하지 않았던 날이 어디 있을까.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어디 있을까. 그날 이후로 매년 그달 그 일이면 소복을 입고서 집안에 조촐하게나마 제사상을 차려 제를 올리기를 단 한 해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그 앞에서 읍하고 또 읍하며, 부디 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줄 힘을 달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그토록 읍하고, 기도했거늘 그 성의를 어찌 하늘은 또 들은 체도 하지 않던지. 세상을 바로 잡을 영웅호걸은 나타날 기미조차 없는데, 세상은 그릇된 모습 그대로 굳어가려고만 하고 있었다. 중화 태조 광치제(曠治帝) 이홍장 이래로 인물이 없었다. 태조께서 오랑캐 놈들의 손에 세상을 등지신 이래로, 누구도 감히 오랑캐들에 맞서고자 일어서는 자들이 없었다.
의분하여 폭정에 맞서려 일어나는 이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으니, 오랑캐의 폭정 또한 멈추지를 않았다.
「전국칠웅(戰國七雄) 재분봉(再分封)」
증국번 선생이 타계하셨다고 하였을 때 눈물을 쏟았다면, 이 소식을 듣고서는 그저 실없이 웃었다. 우스워서 웃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고, 기어이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하여 웃었다. 이게 대관절 무슨 해괴한 천하란 말이던가. 돌아가려 친다면 요순일 것이지, 어찌하여 그 혼란스럽고 잔혹하던 춘추전국시대란 말이던가.
조선은 만주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었거늘, 진정 조선도 결국에는 전쟁을 즐기고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던가. 천하의 힘을 하나로 합쳐 양이들에게 맞서 싸워도 턱없이 부족할 작금의 천하에서, 천하가 조각조각 나 있던 시절로 억지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려 하는 까닭은 대관절 무엇이던가.
양이들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서 조선은 문명개화라고 하였던가. 참으로 중화를 능멸하는 오만방자한 말이오, 그간 조선이 쌓아왔을 문물을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비굴하기 그지없는 언행이라고 생각하였거늘. 그렇다면 어찌 우리 중화만 수천 년 전으로 돌리고서는 저들만 문명개화로 나아간다는 말이던가.
만주가 증오하고 경멸해 마땅할 귀신이었다면, 조선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행을 일삼는 도깨비 무리와 같았다. 대관절 이것이 무슨 목적이라는 말이던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거든 통치를 할 것이지, 어찌하여 온전히 제 것일 천하를 나누고 쪼개어 약하게 만든다는 말이던가. 저 오랑캐 천자에게는 천명이라는 것이 그저 제 뜻대로 망가트리기 위한 장난감일 뿐이라는 말이던가.
진정 그렇다면 저 오랑캐 천자는 죽어 마땅할 악덕일 것이다. 유사 이래로 그 어떤 폭군도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 아방궁을 짓고,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마저 능멸하였을지언정 제가 통치해야 할 천하를 이유 없이 능멸한 자는 없었다. 진정으로 조선의 황제는 광인임이 분명하였다. 도술에 빠져, 괴력난신에 허우적거리느라 사려분별조차 되지 않는 천치임이 분명하였다.
「진국(秦國) 군국제(軍國制) 재건(再建)」
그리고 바야흐로 그 폭군의 폭정이 우리네 고장까지 미치게 되었다. 까마귀라도 되는 양 시꺼먼 옷차림에 병졸들이 고을마다 진을 치고서 농지를 조사하도록 하고,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경작하였던 농지와 일꾼들을 강제로 앗아갔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하여 보았지만, 어디 미친 폭정이 그런다고 피할 수 있던가. 되려 이 땅에 옛 양씨 왕조가 그러했듯이 군국주의를 재건하고자 한다는 미친 소리만 듣고서 내쫓겼을 따름이다. 이 땅의 선비들을 한순간에 제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렁뱅이로 만들어놓고서 그 변명이 고작해야 옛 시대의 악습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니!
이보다 기가 막힐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시종들은 멋쩍게 우리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떠나가고, 처는 땅을 치며 울부짖고 자식들이 배가 고프다며 앙앙 우는 와중에 그저 울지도 못하고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충격이 너무 크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더니, 바로 그 말대로였다.
내 그간 사서를 읽으면서 궁녀들을 모아둘 곳이 부족하여 궁을 새로 세우고자 한다, 재미 삼아 병사들을 모아 어디 벽지로 원정하러 간다고 하는 미친 황제들은 자주 보았어도 이런 미친 황제는 처음 보았다. 이 한 많은 세상에 태어나 머리에 털 난 이래로 그토록 사람이 미웠던 적이 없었다. 그저 밉고 증오스러웠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병졸들도, 이 땅을 다스리는 서출도 아니라 저 멀리 만 리 너머에 있는 황제가 밉고 또 증오스러웠다. 어찌 사람의 탈을 쓰고서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제 재미를 위해서, 제 광기를 위해서 천하를 수천 년 전으로 되돌리고, 그 악습들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미친 황제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이던가.
하여, 그저 빌고 또 빌었다.
'천벌을 받을 것이다! 꼭 천벌을 받을 것이야! 인과응보라 하였다. 네 살아서 한 사람이 모두 갚기에도 벅찬 악업을 쌓았으니, 네 어찌 죽어서 염라를 뵈려 하느냐? 네 악업도 언젠가 돌고 돌아 네 핏줄과 네 나라를 멸하고 말리라!'
인과응보(因果應報). 그 천하의 섭리에 기대어, 저주하고 또 저주하였다.
「진시황제(秦始皇帝) 능묘(陵墓) 발견(發見).」
보아라. 하늘에서도 내 저주에 귀 기울여 주시지 않았는가. 저 폭군도 죽을 때가 되어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 언덕이 수천 년 전 사라진 시황제의 무덤이라니, 이 세상에 이 무슨 해괴한 소리가 다 있다는 말인가. 꿈에서 시황제가 나와 세상을 제가 통일하기 전으로 돌려달라 간청하였다니, 이 얼마나 유치한 농담인가. 꼭 미친 것임이 분명했다.
혹은, 이 세상이 미친 것임이 틀림없다. 어찌 의심조차 하지 않고서 믿는다는 말이던가. 천하가 혼란스러워서인가. 속세가 힘들어서인가. 믿을 것이 필요했던 것인가. 아니면 제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서인가. 의연하게 일어나 맞서 싸우자고 하였을 적에는 그토록 야유하고 외면하였으면서, 어찌 이런 거짓부렁에는 이리도 쉽게 넘어간다는 말이던가.
그러니 이런 터무니 없는 괴력난신 따위를 핑계로 혹세무민을 일삼는 도사 무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시황릉에서 가져온 흙이라면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물에 타 바가지째 들이키는 환자를 보고서는 현기증이 나는 듯하였다. 하물며 그것이 내 막내딸이라니. 맙소사. 의원을 불렀더니 어찌 이런 요술쟁이가 왔다는 말이던가. 그 요술쟁이를 신농이 되살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믿던 반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도 없었다.
결국, 막내딸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서 세상을 등졌다. 후일 도시에서 왔다는 양의사가 잠시 맥을 짚고서 말하기를 수은 중독이라고 하였다. 장이 뒤틀려 죽을 둥 살 둥 하던 막내딸이 장이 꼬여서가 아니라 수은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였다. 내 막내딸이 선술을 갈고 닦은 것도 아닐진대, 어찌 수은 중독이라는 말인가.
그 아이가 대관절 무슨 놈의 수은을 마실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 시황릉에서 퍼왔다는 흙 탓인가? 그 흙에 수은이 들어 있었다는 말이던가? 그제야 나는 그것이 거짓부렁이 아니라 진실로 시황릉이라는 걸 알았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진실로 시황릉에서 퍼왔다는 흙인 줄 깨달았다. 그러나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
맨손으로 수은이 가득 들어간 흙을 또 정제하여 만든 고운 약재를 만지작거리던 의원은 진정으로 미쳐서 포졸들에게 붙들려 병동에 갇혔고, 제가 막내딸을 죽인 줄 알게 된 반려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 물에 퉁퉁 불어 고통으로 일그러진 반려의 얼굴은 정녕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배 속에 아이는 물에 불어터진 살덩어리가 되어, 이것이 원래 사내아이였을지 계집아이였을지조차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와 아들뿐이 남았다. 이 끔찍한 세상에, 폭군이 폭정을 일삼고 수천 년 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미친 세상 속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이 아들만이라도 번듯하게 키워 가문의 대를 이어보겠다고 아득바득 버텼다. 그 조막만 하던 아이가 장가를 들고, 아이를 가지고, 가장이 되었다.
「신농유업(神農遺業) 계획(計劃) 실시(實施)」
그리고 그 애들마저 노역에 징용되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오랑캐 황제를 위하여 삽과 괭이를 들게 되었다. 이 길 말고는 달리 돈을 벌 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조차 아니라면 총을 들어야 했는데, 저기 북서쪽 노서아에서 내란이 일어 이 나라에서 병졸을 보낸다고 하였다. 대관절 어째서 노서아의 내란에 병졸을 보내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노서아의 내란에 끌려가거든 아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죽어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자식이 악업을 쌓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자식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해를 당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 이것이 최선이었다. 곡괭이질을 하는 것.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제가 어릴 적에 오랑캐 병졸들에게 당했던 수모는 까마득히 잊고서는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며 웃으며 떠나갔다.
그렇게 떠나간 아들은 다리가 하나 없는 채로 돌아왔다. 제나라 땅에서 산맥 한가운데에 기차가 다닐 길을 뚫으려 폭발물을 다루다가 폭탄이 예정했던 것보다 먼저 터져 다리가 잘렸다고 하였다. 간신히 다리 하나만 남아 절룩거리며 집안에 기어들어 온 아들의 모습에 며느리는 그날로 게거품을 물고서 졸도하였고, 나는 울면서 등을 두들기고, 오로지 아무것도 모르는 손주만 아버지가 일찍 집에 돌아왔다며 좋다고 했다.
그날은 날이 새도록 아들과 부둥켜안고서 한참을 눈물을 쏟고 독한 술로 한풀이했다. 가슴 속에 쌓인 한을 토해내며 원숭이가 울듯이 울부짖던 아들이 먼저 졸도하여 술상에 엎어지고서, 나는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롱불을 빤히 들여다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대관절 내 삶은 왜 이리도 기구할까. 왜 이리도 한이 쌓이고 쌓이기만 할 뿐 풀어지지는 않을까. 인과응보라 하였거늘, 지금껏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크게 폐를 끼친 적도, 해를 가한 적도 없는데 왜 나에게만 이리도 악업이 돌아온다는 말인가. 전생에 내가 대관절 무슨 그리도 큰 죄를 지었기에. 내가 정녕 지난 생에 나라를 팔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이 천하에 폭정에 고통을 받는 백성이 어디 한둘이라는 말이던가. 그들 모두가 지난 생에 지은 죄 탓에 이리도 끔찍한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는 못해도 수백, 수천만 개의 나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죄로 고통받고 있다. 그저 태어난 죄로, 그저 지배받고 있다는 죄로,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 죄로. 고통받고, 또 고통받고 있다.
「전주(全州) 만국박람회(萬國博覽會) 개막(開幕).」
하늘은 악업을 벌하지 않는다. 하늘은 사람을 보살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악업을 주벌하는 것은 사람의 업이다. 가슴 속에 담긴 한을 쏟아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되, 악업을 주벌하기 위하여 한을 쏟아내는 것은 오로지 이 세상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나는 그날에야 비로소 그 진리를 깨닫고 말았다.
이 세상은 미쳐있다. 누구나 그것이 저 미친 황제 탓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내가 아직 열아홉의 젊은 청년이었던 그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에는 아직 천하만민을 위하여 제 한 목숨마저 기꺼이 던지는 의인이, 영웅호걸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가 저 미친 황제의 눈치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오랑캐의 기세는 나날이 흥하고, 중화의 기운은 날로 쇠하고 있는 까닭이다. 만주는 단지 강성하였을 뿐이었으나, 조선은 강성할 뿐 아니라 간교하며 괴이하다. 그러니 무지렁이 백성은 이것이 폭정인지도 모르고서 당하고만 있고, 뜻있는 선비들은 그것이 그릇된 줄 알아도 그 누구도 그들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젊었을 적에는 저 미친 세상을 바로 잡아줄 영웅호걸을 바랬다. 영웅호걸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 만민이 그 뒤를 쫓는, 그런 영웅설화와도 같은 한 장면을 꿈꿨다. 그러나 작금에야 깨달았다. 그러한 영웅호걸들 또한 계기가 있어야지만 나설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알기 쉬운 계기란, 언제나 폭군의 죽음이리라.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 귀국(歸國)」
폭군은 틈만 나면 시황제를 들먹였다. 제가 시황제의 뜻을 받들어 천하를 다시 쪼개 놓은 것이라고, 제가 시황제의 혼령에게 큰 빚을 받았노라고, 저는 곧 시황제의 참된 후계라고, 갖은 거짓부렁을 일삼아 왔다.
그렇다면 마땅히 형가의 후계 또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로 나는 결심했다. 중화의 의기를 보이자고. 성공한다면 마침내 폭군이 쓰러지고 천하가 바로 설 것이며, 실패한다고 한들 내 이름 석 자는 역사에 남을 것이오, 쇠한 줄 알았던 중화의 의기가 활화산처럼 다시 들끓기 시작하리라.
가장 먼저 품에 숨기기 쉬운 총기를 사들였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이었다. 그다음에는 혈육들에게조차 비밀로 하고서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리하여 조선에 막 도착한 날, 절로 가슴이 덜컥했다.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시꺼먼 옷을 차려입은 병졸들이 입국자들의 짐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몸을 피해 보려고 하여도, 도저히 저들을 지나치지 않고서는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는지라.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진국에서 오셨다고? 야, 멀리서도 오셨네. 방문목적은?"
"과, 관광일세."
"통과!"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병사들은 내 짐을 살피지도 않고서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갖은 고생으로 삭을 대로 삭은 노인이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던 것인지, 아니면 어수선한 초국이 아니라 기강이 바로잡힌 진국에서 왔다고 하여 그랬는지. 하여튼, 이는 실로 하늘의 도움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토록 무심하던 하늘도, 마지막에 와서는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열아홉 살 이래로 처음으로, 하늘에 감사의 뜻을 담아 절을 올렸다. 행사장에서도 이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다른 중화인에게는 그토록 엄격하던 포졸들이, 내게만 오면 그보다 허술하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생에 단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총기를 품 안에 숨긴 체 회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바람 쓸쓸하고 역수 강물 차도다(風蕭蕭兮易水寒). 장사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壯士一去兮不復還).」
이제는 성공하는 것도 요행이오, 실패하는 것 또한 천명이리라.
그저 마지막까지 천운이 따르기를 바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인과응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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