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48화 (448/530)

< 재회 >

되려 이 암살미수 사건에 동요한 것은 당사자인 이형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이원철이었다.

"지금이라도 호위병력을 증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원철의 우려는 정당했다. 안 그래도 만국박람회를 전후로 하여 한족 민족주의자 중에서도 특히나 강경한 역도들이 요즈음 대한제국에 숨어들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와 일정을 취소하기라도 하는 순간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더욱 이러한 폭력사태가 늘어날 우려가 있으니 차마 취소할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호위를 늘릴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형은 손사래를 쳤다.

"필요 없다. 젊을 적에는 이보다 더한 전장에서 이보다 더한 놈들과 더불어 검을 섞으며 말을 몰았던 놈이 이제 와서 이런 같잖은 애송이 놈들을 두려워해서야 되겠느냐? 내가 어련히 알아서 대처할 테니 너는 아무 걱정 말아라."

"하오나, 내부에서 분명 최선을 기했을 것임에도 이미 한차례 역도가 나서지 않았습니까. 촘촘한 채로 거르고 걸렀음에도 하나가 나왔다면, 실제로 아바마마를 해하려 한 역도들은 못해도 기백은 되었을 테지요. 그중에 또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첫째로 상제께서 이 아무개를 보우하실 것이며, 둘째로 짐의 백성이 짐을 지켜줄 것이고, 셋째로 이놈이 알아서 대처할 것이다. 피하건, 이번처럼 손을 꺾건, 뭐가 되었건 간에 말이다. 그런데도 죽어 버린다면, 그냥 그걸로 죽을 운명이었던 거겠지."

이형은 귓구녕을 후벼 파며 태연하게 답했다. 지나치게 자기 죽음을 가볍게 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대답이었으나, 사실 그보다는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기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에 더욱 가까웠다. 막말로, 약까지 하고서 말 타고 싸워도 보지 않았던가. 하늘이 이형을 침대가 아닌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 객사를 시킬 작정이었다면 그때야말로 제격이었으리라.

그러나 이형은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도 수차례는 직접 전장에 나서 말을 몰았는데도 살아남았다. 이번 같은 암살 시도도 한양을 떠날 때마다 일상처럼 일어났지만 그중에 이형의 몸에 흉터 하나 남긴 암살자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끔찍한 상처를 입었던 것도 옛 조러 전쟁 당시에 흉터이 끝이었다.

이 때문에, 이형은 자신이 침대에 누워 죽을 운명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형이라고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으나, 이렇게 저승사자가 보는 앞에서 날 데려갑쇼-하고 생쇼를 했는데도 살아남았으니 아무래도 명부에 적힌 팔자가 그게 아닌가 보다-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게 과연 병에 걸려서일지, 단순 노환일지, 암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간에 지금보다 한참 뒤에 나이를 먹을 대로 먹고 난 다음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이형이었다.

'그리고 괜히 병사들을 늘리면 내 뜻대로 이리저리 다니지도 못하고서 그놈들 눈치나 봐야 하잖아. 기껏 만국박람회랍시고 만들어 놓고서 막상 내가 구경하지도 못하면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물론, 이런 측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제약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언제나 끔찍하게 싫어하던 이형이었다. 옛날처럼 처지가 궁하고, 힘이 부족했던 때라면 모를까 출세할 만큼 출세해서 온 천하에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에 와서 그런 꼴을 당하는 건 결단코 이형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하오나···!"

이원철은 무엇인가 더 말하려고 하였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무언가 더 말해봐야 소용없으리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결국, 이원철은 이마를 짚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부에 일러 하다못해 사복경관들이라도 늘리라 해두겠습니다."

"음, 그래. 그렇게 해라. 그거라면 일부러 의식하면서 이동할 필요는 없겠지."

그것이 이원철이 양보할 수 있는 최후의 선이자, 현실적으로 황제라는 지위 안에서 구가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점이라는 걸 받아들인 이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자신은 하루에 암살모의가 두 번씩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령 암살모의가 있더라도 늘 그래 왔듯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서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그건 본인의 생각이지, 섬기는 처지에서는 또 다르지 않던가.

사실 이것도 이형으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어쩔 수 없다.-하고 수용할만했다. 제멋대로인 건 변함이 없어도, 나이를 먹고 나름대로 경륜이 쌓이면서 섬기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할 수 있게 된 이형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 만세!"""

이렇게 한바탕 태자와 황제가 다투는 동안, 마차는 전주 시가지를 지나 만국박람회 회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족히 수천, 아니 수만은 될 법한 인파가 좌우로 빼곡하게 늘어서 소리 높여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가 세찬 바람을 받아 있는 힘껏 펄럭거렸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회장으로 들어서는 마차를 기준으로 봤을 때 바로 정면에 있는 거대한 제단이었다.

이 제단은 이형이 천하를 갈기갈기 찢어 제후들에게 분봉하던 무렵 사용하였던 제단을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었다. 그날 제단에 오르면서 이형이 아시아의 황제가 되었듯이, 이번에는 세계만방에 우뚝 서는 대한제국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이기 위하여 상징적인 의미에서 또 한 번 제단을 오르도록 설계되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상징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애당초 평화를 내세운 전주 만국박람회에 세계만방에 우뚝 서는 대한제국이라는 패권주의적 이상은 어울리지 않았다. 대내외적으로 이 제단은 「평화의 제단」이라고 선전되었다. 이형을 비롯하여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이 함께 제단에 올라 하늘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뜻깊은 행사라고 선전한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진정으로 대한제국이 세계 패권을 주도하게 되면 대한제국의 힘 아래 세계평화가 이루어질 테니 이러한 선전도 아주 거짓부렁은 아니었다. 다만 온전히 사실만을 말한 건 아니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저 계단을 또 올라야 한다니. 귀찮아 죽겠구만."

이형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늘어진 입꼬리가 그의 심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웃음이 나오지 않기도 어려웠다. 이형은 이미 머릿속으로는 저 제단에 오르고 있었다. 그 과정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한차례 지나쳐왔던 과정이었다. 저 제단을 오르던 것 자체가 영광스러웠던 추억이 아니던가.

물론 아주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날 이형을 향해 만세를 외치던 건 대한제국의 병졸들이었지만, 이날 이형을 향해 만세를 외치고 있는 건 만국박람회를 관람하기 위하여 모여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었다. 그날은 저 수평선 너머까지 온통 사방이 태극기로 빼곡하게 가득 차있었지만, 이날은 저 수평선 너머까지 만국기가 빼곡하게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 이 제단 또한 모든 점에서 그날의 제단과 흡사하였으나 딱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하였다. 바로 그 꼭대기에 있는 것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제사상 같은 게 아니라 반지름만 10m에 달하는 초대형 혼천의였다는 것이다. 이 혼천의보다 한국의 과학 전통과 기술진보와 합리적인 사고를 향한 굳건한 믿음을 보이기 좋은 것이 또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이 행사가 '만국'박람회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지구본을 장식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지구본을 겸하였던 만큼, 그 중심축의 지구의는 아주 연구기금의 지리학자들이 총동원되어 지표상에 존재하는 산맥의 높낮이 하나하나까지 정밀히 재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각 나라의 영토를 그들 나라의 국기로 채색되었다.

그뿐 아니라, 외곽의 월운환은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한 월면의 울퉁불퉁함을 최대한 살리도록 만들어졌다. 거기에 이 지구의와 월운환은 제단 지하에 설치된 증기기관의 출력에 따라 회전하고 있어서, 마치 실제 지구와 달의 운행을 전지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이형이 그날 차렸던 제사상과 비교하여 더하면 더했지, 부족할 건 없던 셈이다. 애당초 이 혼천의는 단지 개막식에 사용하고서 끝낼 게 아니라 행사가 끝나는 즉시 제단과 함께 관광목적으로 민간에 공개될 예정이었던 만큼, 한번 쓰고 말 제사상과 비교하면 곤란했다.

"""상제는 황제를 보우하소서!"""

'쩝, 아쉽구먼. 이마에 구멍 날 걱정만 아니었어도 옳다구나-하고서 소리라도 한번 질러줬을 텐데.'

결국, 이형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서 낄낄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암살 기도만 없었더라도 당장에 창 바깥으로 몸을 빼고서 손을 흔들었을 터였다. 혹시나 암살기도가 있을까 봐 사복경찰도 늘리겠다는 판국에 호위대상이라는 양반이 위기를 자초할 수도 없어 끝내 참았지만 말이다.

참으로 도움도 안 되는 놈들이라고 이형은 내심 혀를 찼다. 하기야, 애당초 이형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글터 자랑으로 여기는 족속들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형은 어차피 그를 저격하기에는 마땅한 장소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고개를 내밀어 볼까, 아니면 괜한 짓 하지 말까 하며 갈등하고 또 갈등했다.

"저기 할바마마께서 계십니다."

그런 이형의 상념을 깨운 것은 이원철의 한마디였다. 이원철의 목소리에서는 반가움과 감격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제단이 위치한 광장에 모여있는 각국 대표단 중에 이하응이 끼어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하응이 조선 대표가 아니라 미국 대표단 자격으로 참가한 광경은 이형으로서도 낯설기만 했다.

"···그래, 그렇구만."

이형은 이하응을 발견한 순간 한껏 들떴던 기분이 착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딱히 이하응을 증오하거나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애당초 이하응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이형이 이하응을 바라보는 애증이라는 감정에서 애와 증 중 어느 쪽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이형은 기꺼이 애라고 답할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하응은 여전히 이형에게 그리 기꺼운 상대는 못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터였다. 이제 와 이하응을 반기기에는, 그간 함께 지내면서 서로 주고받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무엇보다, 이형은 이하응을 양친 즈음이면 모를까 친부로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이형에게 있어서 이하응은 자신이 내친 정적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못 보는 사이에 양키가 다 되셨군그래."

물론, 양장에 외눈 안경까지 끼고 있는 이하응의 모습이 낯설었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형에게는 낯설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한 모양새였다. 제아무리 이하응이 미국에서 지낸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간다지만, 설마하니 이하응이 양장에 외눈 안경이라는 전형적인 서구식 복장을 하고 있다니. 이형은 겉으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내심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했다.

그 척화비의 흥선대원군이 머리도 정갈히 자르고 정장에 외눈안경, 중절모를 쓰고 있다니. 이형에게는 발레를 추는 최익현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노환이 악화 되어 이번 항해도 제법 버거우셨다고 들었는데, 무사히 도착하신 듯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에 반해 이원철은 진심으로 반기는 모습이었다. 여러모로 이하응이 한국에 왔다고 마냥 환영하기에는 이래저래 저지른 일도, 겪은 일도 많았던 이형과는 다르게 이원철에게 있어서 이하응이란 그저 안까타운 사정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던 할아버지일 뿐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원철에게는 되려 양장 차림새가 아닌 이하응은 본적도 없었으니 충격받을 이유도 없었다.

때 마침 마차가 멈추었다.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문이 열리고, 느릿한 걸음걸이로 마차에서 내리는 이형을 마중하는 각국 대표단 중 가장 앞 열에 선 것은 이하응이었다. 그가 이번 만국박람회에서 한국 다음으로 많은 돈을 투자한 미국의 대표였던 까닭이다. 물론, 그가 이형의 친부라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흠."

"험."

이형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마차에서 내려 이하응을 마주 보았다. 이하응은 성큼 한걸음 내디뎌 이형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를 잠시간 빤히 들여다보았다. 참으로 수십 년 만에 만난 아들과 아버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서로 향한 반가움이라고는 온 데 간대도 없이, 서로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탐색부터 시작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이하응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허."

이하응은 이형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몸짓이었다. 이 또한 이형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이하응이 악수를, 그것도 자신보다 먼저 청하였던 것이다. 놀랍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감상보다도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진정 그 이하응이 맞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혹시, 그와 닮은 다른 사람을 데려와 이하응이라고 사칭하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하응으로 속이고 있는 가짜라고 해도, 진상규명은 행사가 끝나고 난 다음이 되어야지 관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하고 있는 행사 도중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이형은 이하응이 내민 손을 선뜻 마주 잡으면서도, 작게 투덜거렸다.

"거 도대체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길래 아주 양키가 다 되어서 오셨소? 아니, 그보다 흥선헌의대원왕 맞으시오? 보아하니 내가 아는 양반은 아니신듯한데."

"그래, 이게 똥구녕인지 입구녕인지 분간도 안 되는 주댕이는 여전하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다. 자식새끼라는 놈들이 이 늙은 몸을 미주 땅에 처박아 놓고서 얼굴 한번 보러 오지 않았으니 강산이 2번은 바뀌는 동안 이 늙은 몸이 어찌 바뀌었는지 알지도 못하였던 것뿐이지."

"허, 혓바닥 굴리는 꼬락서니 보니 내가 아는 그 양반이 맞기는 낮으신가 보구려."

"시끄럽다. 시답잖은 소리나 할 시간에 만리타향에 친부를 처박아 놓고서 얼굴 한번 보러오지 않은 네 불효막심함을 반성해 보는 건 어떠하겠느냐."

"일없소. 반성한다면 댁부터 어쩌다가 자식들 모두에게 그런 꼴을 당했는지 먼저 반성하셔야 하지 않겠소."

두 사람은 환히 웃으면서도 거침없이 서로에게 험담을 퍼부었다. 차마 관중이 보는 앞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는 없다 보니, 웃으면서 험담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험담을 주고받고서야 두 사람은 내심 안도했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으나, 결국 사람의 근간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재확인했던 것이다.

이형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 어떻게 그간 밥은 먹고 지내셨소? 조선땅이 그립지는 않으셨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그립지 않을 턱이 없지. 그러는 폐하께서는 또 어떤 심경변화가 있었기에 이 늙은 놈을 다시 불러주셨습니까?"

"소름 돋으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마오. 그리고 뭐 심경변화라고 할만한 게 있었겠소? 별것 없소. 그냥 슬슬 돌아가실 때가 다 되신 듯하여 불러보았소."

"죽을 날, 이라···."

이하응은 선뜻 반박하지 못하고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피로와 세월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는 이형도 차마 뭐라 더 험담을 퍼붓지 못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함부로 입에 올리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였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이 늙은 놈의 눈치를 봐주시는 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되셨구려. 사람이 되셨어. 그 개망나니께서 못 보는 사이에 사람이 다 되셨구먼 그래."

이하응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어딘가 피로한, 그러나 기쁨으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이형은 선뜻 뭐라 답하지 못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되받아치면 좋을지 이형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놈, 이형아! 내 하늘을 대신해서 널 벌하러 왔노라-!"

철컥, 하는 쇳소리와 함께 치파오 차림의 노인이 뛰쳐나왔던 것이다

< 재회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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