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51화 (451/530)

< 실 없는 소리 >

연단에서 내려온 이형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하응이 몸을 뉘고 있던 병실이었다.

"못 보는 사이에 효자가 다 되셨구려."

"그걸 이제야 아셨소?"

"그렇소. 이 늙은이가 깨달음이 많이 부족하오. 황상께서는 이 부족한 늙은이를 용서치 마소서."

"거 이렇게 저 편할 때만 올림말 쓰는 법 있소?"

이하응의 실 없는 농에, 이형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하응은 뭐가 그리도 우스웠는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를 진찰한 의원의 말에 따르자면 이하응의 부상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심각해 보였던 손조차 부러지거나 관절이 빠진 것이 아니라 이형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느라 오른팔의 근육이 조금 늘어나 놀랐던 것뿐이었다.

오히려 진짜 큰 부상은 몸통 쪽이었다. 있는 힘껏 잡아당기다가 몸을 부딪치면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이 또한 두 사람 모두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걸 떠올리면 그리 대단한 부상도 아니었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연치유가 어렵고, 대단히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었을 따름이다.

"저기, 그··· 할바마마? 아바마마?"

이원철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도저히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언동에 당황했던 것이다. 그동안 이 두 사람을 만나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야 흔하디흔했지만, 이 두 사람과 동시에 한자리에 있던 것은 처음이었던 까닭이다.

이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 심려할 것 없다. 원래 이 양반이랑 나는 이렇게 지내왔으니까. 딱히 노한 것도 아니니 너도 신경 쓰지 마라."

"양반이라니 말씀이 심하시구려. 고작해야 양반이라니. 그래도 이 나라의 종친이거늘 말이오."

"시끄럽소. 또 미주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러시는 거요?"

"어이쿠, 이거야 원. 무서워서 말 한마디 할 수가 있나."

이형의 짜증 섞인 대꾸에도 이하응은 웃기만 했다. 이하응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온통 붕대로 몸을 칭칭 감고서 침대에 누워있는, 얼핏 우습고 불편한 몰골이었는데도 그러했다. 수십 년 만에 조선 땅으로 돌아와서 마음이 들떴던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이하응은 아픈 기색도 없이 헤실헤실 웃고만 있었다.

"거 대낮부터 약주라도 하셨나. 뭘 또 그렇게 신나셔서는···."

이형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하응은 신이 나서 웃는데, 이형은 도통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가 웃을 때마다 되려 더 불편해지는 듯하였다. 무언가 시원하게 말이라도 한번 쏟아내 보려 해도, 듣는 귀들이 많다 보니 그 또한 마땅치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서 한숨을 푹 내쉬자니, 이하응이 대뜸 물었다.

"참, 그래서 연설은 잘 마치셨소? 사건이 사건이었으니, 분명 난장판이 되었을 듯한데."

"뭐, 그럭저럭 이라 해둡시다. 생각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망치지는 않았소. 그만하면 된 거지, 뭘 또 바라봐야 과욕 아니겠나."

"그거 듣던 중 다행이구려. 실로 하늘이 도우신 모양이오. 그래서, 어떤 내용이었소?"

"세계평화가 어쩌고, 천하회맹이 어쩌고. 낯 간지러운 소리만 잔뜩 하다가 내려왔지."

이형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자신이 직접 연설한 바였으면서, 막상 그 자신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연설을 늘어놓았다는 자각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 물론, 애당초 이형이 장광설을 늘어놓은 이유부터가 그가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긴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전쟁이란 일종의 사다리이기도 했다. 뒤처지고 못나던 나라들이 단시간에 앞서가고 잘난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다리 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지금 그가 다스리고 있는 대한제국이 그 누구보다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 반백 년 전만 하여도 변방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소국이었던 조선이 연이은 승전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중심축 중 하나로 우뚝 서지 않았던가.

자. 이렇게 전쟁을 사다리라고 간주한다면, 세계평화란 무엇일까? 생명의 고귀함이나 인권 같은 개인 차원의 이야기를 쳐내고서 국가 차원의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사다리 걷어차기다. 후진국, 중진국들이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지름길을 세계평화라는 명분 아래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수천 년의 인류사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이웃 나라를 침략해온 열강은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로 재탄생하고, 열강의 반열에 오르려는 신흥국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 된다. 단지 지금의 열강들보다 늦게 기회를 잡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원래 제 밥그릇은 제가 챙기는 거고, 정치는 명분 싸움인 거지. 싫으면 열강하시던가. 그리고 이유야 아무튼, 세계평화는 좋은 거 맞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물론 이형이 이에 관하여 도의적인 문제나 양심의 가책을 의식하고 있는가 하면- 당연하게도 전혀 아니었다. 이형은 애당초 이러한 사고방식이 문제가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막말로, 이렇게 열강들에 떨어지는 게 있어야 세계평화라는 게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아무리 바른말 해봐야 그 바른말로 얻는 게 없으면 언제나 공허한 말로서 끝나는 일들투성이인 게 인간 세상이었다.

이형이 생각하기에, 사다리 걷어차기를 위한 세계평화 정도면 굉장히 양심적인 거래였다. 고작 해봐야 신흥국 몇 곳이 열강이 되지 못하고서 중진국으로서 끝나는 대가로 수십, 수백, 수천만의 인명을 살릴 수 있다면 인류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이득이 아니던가? 적어도 이형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전쟁도 평화도 모두 국운을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그 자신이 조선을 단기간에 열강의 반열까지 끌어올리기 위하여 전쟁이라는 지름길을 사용하였던 이형이었기에 가능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소."

이하응은 쓰게 웃었다. 길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형의 얼굴만 보고서도 무슨 의도로 어떤 말을 했을지 뻔히 알겠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 그러하리라. 이형은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이하응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서, 슬쩍 이원철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막내들 곁으로 가다오. 그 아이들이 오늘 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그 소리는 들었을 것이니 분명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을 테지. 원래는 내가 가야겠지만, 난 이 양반이랑 할 이야기들이 있다. 가서 네 어머니 일 좀 돕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이원철은 선선히 이형의 지시에 따랐다. 이미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걸 구경하면서 설령 자신이 이 자리에 남아있다고 한들 방해만 될 뿐이라는 걸 직감하였던 까닭이다. 그렇게 이원철이 떠나고, 그가 떠나면서 간호사나 의원들도 자리를 비키도록 하니, 이제는 이형과 이하응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제야 이형은 가슴을 쿵쿵 두드리고서는 소리를 질렀다.

"아, 정말이지 이제야 좀 살겠네! 이 미련한 양반아!"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소? 내가 요즈음 들어 귀가 먹어가고 있는데도 쩌렁쩌렁하게 들리니, 이거야 원. 자리를 피하게 한 보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구려."

"거 시끄럽소. 야 이 우라질 양반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였던 거요? 다 죽어가는 노인네가 하여간에 힘만 좋아서는! 그러다가 잘못했으면 댁이 먼저 염라국 구경하러 갈 판국이었던 걸 알고는 계시오?"

"그야 물론 모를 턱이 있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

"그걸 알고 있는 양반이 그런 짓을 벌여! 아이고, 진짜 울화통이 다 터지네!"

이형은 씩씩거리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쿵쿵, 하는 힘껏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이 이대로 가면 갈비뼈라도 으스러트릴 기세였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답답함을 표출하는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지나 않는 게 다행이지 싶었다. 이하응은 그런 이형의 모습에 뭐라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쓰게 웃었다.

그 뒤로도 이형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숨을 골랐다. 한참을 숨을 고르다가, 그러다가 한참이 더 지나고서야 이형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라앉히고서, 그제야 이형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어 조용히 되물었다.

"왜 그러셨소?"

짧은 물음이었다.

"글쎄, 모르겠구려."

그에 대한 이하응의 대답 또한 짧았다. 그러고서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이형은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봤고, 이하응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쪽이고 서로 향하지 않는, 전혀 엉뚱한 시선 처리였다. 낯부끄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직도 서로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무언가 달리 이유가 있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두 사람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서, 오래도록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중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하응이었다.

"이 조선 땅도 못 보는 사이에 많이도 바뀌었더구려. 아직 한양도 보지 못하였지만, 이 전주 땅은 내가 있던 새크라멘토와 비교하여도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소. 참으로 대단하시구려. 만일 진정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황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는가 싶소."

"···."

이형은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니 이하응의 말만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이거 하나만 여쭙겠소."

"무엇을 말이오?"

"어디까지가 처음부터 계획하였던 일이고, 어디까지가 우연히 이루었던 일이오?"

이하응은 흘깃 이형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형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답하였다.

"···시답잖은 걸 여쭈시는구려. 전부 다 계획한 거였다고 답하면 어찌할 거고, 전부 다 우연히 이루었던 것이라면 어찌할 거요?."

"이 모든 걸 처음부터 그린 것이었다면 그 지략은 하늘에서 내린 것일 테니 역시나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었던 게고, 이 모든 게 우연이었다면 그 천운은 하늘에서 내린 것일 테니 역시나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었던 것이겠지."

"결국, 결론은 내가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라는 거구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오. 그러면 댁의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하는 거요?"

"글쎄. 그럼 역시나 이놈은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랑 감히 겨루려고 한 미련한 놈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리다."

이하응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어딘가 마음이 편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그를 괴롭혀오던 오만가지 마음의 집을 덜어낸 듯한 얼굴 같기도 하였다.

"거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기는."

이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하응이 왜 이런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딘가 짐작이 가기도 하였다.

이하응은 한참을 웃다가, 돌연 웃음을 그치더니 말했다.

"난 이 조선을 바꾸고 싶었소. 조선의 두 다리가 썩어 문드러져 두 번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기 전에 펄쩍대고 뛰어라도 보고 싶었단 말이오."

회한으로 가득한 한마디였다. 이형이 뭐라 답하지 못하고서 침묵하고 있자니, 이하응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 어렸을 적부터 이 나라를 바꾸겠다는 뜻있는 젊은이들을 참 많이도 보았소. 다들 다양했지. 누구는 경솔하게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 지껄였고, 또 누구는 내가 망나니 노릇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아보고서 은밀히 찾아와 이 나라를 바꿔 보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속삭였소. 하지만 결국 그들 모두가 실패하고 말았지.

누군가는 변절하였고, 또 누구는 소식이 끊겼고, 또 누구는 꺾여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소. 나는 그 누구와도 손잡지 않았소. 왜 그랬겠소?"

"···당신만큼은 특별하다고,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이 나라를 바꿀 실력도, 의지도, 지위도. 모두를 갖춘 것은, 아니면 갖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한 몸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러니,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소? 그 안동 김씨 놈들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는 그 구더기들을 긁어내기 위해서라도 권력이 필요했소.

그놈들을 치워버리려면, 그놈들보다 더욱 커다란 권력을 손에 넣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데··· 도대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권력을 위하여 안동 김씨 놈들을 쳐내야 하는지, 안동 김씨를 쳐내기 위하여 권력이 고픈 건지 분간이 되지를 않더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 빌어먹을 권력이라는 놈을 위해서 안동 김씨 놈들을 물고 늘어졌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과욕을 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요?"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소. 결국, 나도 그놈들과 딱히 나을 것 없는 놈이었다는 것 아니겠소? 그놈의 권력을 탐하느라 바빠 제품에서 봉황이 자라고 있는 줄도 몰랐으니, 정말이지 세상천지에 어찌 이런 천치가 다 있는지 원."

이하응은 쓰게 웃었다. 이형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답했다.

"···아니, 그렇지만도 않소."

"그렇다면야 이제 더 바랄 것도 없지."

이하응은 베개에 머리를 묻고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안식을 찾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두 사람이 서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침묵을 깬 것은 이하응이라는 것만은 똑같았다.

"무슨 바람이 드셨길래 이 미련한 놈을 다시 조선 땅에 불러주실 생각이 드셨소?"

"글쎄···."

이형은 선뜻 답하지 않고서 말을 끌었다. 아니, 더욱 엄밀하게 말하자면 답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심하여도, 그래 이거다! 싶은 대답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이형의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은 참으로 실없는 것이었다.

"그냥, 더 늦기 전에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더이다. 괜히 이러다가 아비가 죽어가는데 얼굴 한번 안 비추었다느니, 불효자식 놈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느니.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말이오."

"참으로 기대하였던 그대로의 대답이구려."

이하응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것이 어쩐지 눈에 거슬려서 이형은 되물었다.

"그럼 댁은 무슨 바람이 드셨길래 이 포악한 놈을 다 구하려는 생각이 드셨소?"

"그거야 물론, 그냥 더 늦기 전에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지. 괜히 이러다가 자식이 죽어가는데 제 늙은 몸 살리기에나 급급했다느니, 불효자식 놈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느니.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말이오."

"거 남이 먼저 한 말을 이렇게 양심도 없이 주워 먹는 법이 어디 있소?"

"그게 싫으셨으면 미리 저작권이라도 등록해 두셨어야지. 이따위 농담 따먹기로 통과될 수 있다면 말이오만."

"아무렴 통과될 수 있고말고. 이 몸이 이 나라의 황제라는 걸 벌써 잊어버린 거요?"

"어이쿠, 그거 무섭구먼그래."

이하응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이형뿐이었다.

이형은 실없이 웃고 있는 이하응을 한참을 노려다 보다가, 이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래, 증손주 구경은 언제쯤 가실 생각이요?"

"그야 물론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그럼 얼른 회복부터 하시오. 그 어린것에게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괴물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아무렴 여부가 있을까."

이하응은 빙긋 웃었다. 이형은 그런 이하응을 한참을 노려다 보다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를 나섰다.

왜인지, 오늘따라 다리가 가벼웠다.

< 실 없는 소리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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