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52화 (452/530)

< 그다음 >

이형과 이하응, 이 닮고도 닮지 않은 두 부자가 비로소 기나긴 대립을 끝내고서 극적인 화해를 이룩하였을 무렵.

"우리가 왜 이 명분 없는 전쟁에 끌려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동포들과 피 흘리며 다투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전쟁 반대! 이제는 전쟁도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당장 오늘 주린 배를 채울 빵을 원한다!"

"인민이여, 깨어나라! 세계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도 앞서간 러시아의 동지들을 뒤쫓아 어서 빨리 혁명의 과업을 완수하자!"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는 극좌 혁명주의 운동과 반전운동이 뒤섞여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원흉은 첫째로는 당연히 전쟁이겠지만, 러시아 내전의 종전은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다만 그 원흉을 러시아 민주 공화국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따랐다.

러시아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고 나로드니키 정권이 완성되었지만, 앞서 설명하였듯이 이들은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메우느라 한참 시간을 허비하는 와중이었다. 물론 이들이 유럽의 혁명동지들을 전혀 돕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유럽의 혁명동지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건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던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 내전이 마무리되면서 유럽에 끼친 직접적인 영향은, 러시아 내전에 참전하였던 극좌 의용병들이 대거 귀국하였다가 다시 전쟁을 위해 징병 되었던 것이다.

"세계혁명의 아침이 밝았다! 적위대여, 전진하라! 만민이 지켜볼 수 있도록 붉은 깃발을 있는 힘껏 하늘 높이 휘둘러라! 형제자매들이여, 기뻐하시게! 마침내 우리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위한 새 아침이 밝았다네!"

"병사들이여, 분노하라! 편안하고 아늑한 후방에서 그대들의 죽음을 종용하는 저 간악한 장교들에게 분노하라! 병사들이여, 단결하라! 반란을 일으키자! 세상을 바꾸어 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뒤처져 있던 러시아조차 해냈다! 우리라고 해내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도 해보자. 모두 단결하라!"

이들 극좌 의용병들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강력한 병사들이었다. 좋은 의미에서는 후방의 얼치기 신병들보다야 백배는 더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었을 뿐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무쌍한 병사였고, 나쁜 의미에서는 그 풍부한 실전경험과 인생 경험을 살려 전우들에게 파업과 반란을 선동하고 다니는 문제 병사였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당장 전장에 내보낼 병사들이 부족하던 여러 나라에 이들은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징병하지 않기에는 한창때의 징병 적령기 남성을, 그것도 참전경험자를 이렇게 허비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고, 그렇다고 징병하기에는 그들이 병영에서 무슨 소란을 피울지 뻔히 예상되었으니 문제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들은 다시 무기를 들고서 전장에 내보내 졌다. 그들이 병영에서 일으킬 소란과 당장 질 좋은 병사들을 대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저울질했을 때, 당장 일선에 내보낼 병사들이 부족하던 유럽 각각의 국가들은 후자가 더 그나마 낫다고 판단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돌아왔다고? 허, 잘도 살아 돌아오셨구먼그래. 거기서 확 그냥 죽어 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쯧. 아무튼, 잘 오셨소. 아마 곧장 다시 열차 타야 할 테니까 짐 같은 거 풀지 말고 저쪽 줄에 서면 되오."

"빨갱이 새끼가 주제에 그럴싸한 흉터까지 만들고서 돌아오셨군.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위대하신 황제 폐하와 영광스러운 우리 프랑스 제국은 너희 같은 역적들을 더는 프랑스의 애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으니 어서 너희 러시아로 꺼지던가, 아니면 프랑스의 애국 시민으로서 애국심을 입증해봐라."

물론 영국처럼 당장 국토가 전화에 휩쓸리지 않았던 나라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아예 이런 문제 병사들을 따로 모아서 관리하거나, 아예 무기를 배급받지 않는 후방 비전투병과에 배치하면서 이러한 극좌 의용병들을 관리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는 군기교육대에 보내곤 하면 그만이었다.

프랑스처럼 직접 참전하지 않고서 후방에서 간을 보고 있던 경우에는 아예 이런 극좌 의용병들을 징병하지 않는 것으로 해결했다. 더 나아가 프랑스 제국은 아예 이들 극좌 의용병들이 프랑스 땅을 다시 밟지 못하도록 입국 거부와 시민권 박탈을 선언했다. 다시 프랑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향서를 쓰고 국내의 혁명동지들을 밀고해야만 했다.

문제는 독일처럼 직접 국토가 전화에 휩쓸린 나라들의 경우였다.

"독일이여, 저주하는 조국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내가 돌아왔도다! 세계혁명의 과업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마르크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우리는 돌아왔도다!"

"왜 피를 나눈 형제들이 서로 무기를 겨누고서 다퉈야만 하는가? 우리는 모두 같은 독일인이 아니던가. 프로이센이니, 오스트리아니 같은 구분은 저들 봉건 영주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독일인이다! 우리는 모두 독일인이다! 그 누구도 이 지상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가자! 무기를 들자, 형제들이여! 저 봉건영주들의 목을 자르러 가자! 혁명을 완수하러 가자! 우리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싸움을 종용하는 저 모독적인 봉건영주들의 목을 자르고 독일 인민을 위한, 독일 인민에 의한, 독일 인민의 혁명적인 공화국을 건국하러 가자!"

특히나 프로이센은 문제가 심각했다. 전쟁 초기에 신성로마제국에서 준비하였던 참호선을 돌파하여 잠시나마 보헤미아를 점령하였던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시점에서 병사가 바닥나 버리면서 김나지움을 다니던 소년들조차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하고서 전장에 끌려나가던 판국이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에서 돌아온 극좌 의용병들은 프로이센군에게 있어서 극심한 숙련병 고갈을 해갈할 가뭄의 단비이기도 했으나, 프로이센군을 내부에서부터 갉아 먹어가는 독 사과기도 했다. 인생 경험도, 참전경험도 부족한 이들 신병에게 러시아 내전에서 살아 돌아온 극좌 의용병들의 무용담은 그들을 이 지옥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줄 신탁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연령대가 어릴수록 이러한 문제는 심각해졌다. 그나마 연배가 있는 스무 줄 넘은 청년들은 모를까, 그보다 아래에 청소년들은 극좌 의용병들의 선동을 어떠한 거름망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를 고쳐줘야 할 훈련 교관들마저 교도사단 등으로 징병 되어 전장에 나서는 판국이었으니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서 나날이 악화하기만 했다.

오스트리아를 위시한 신성로마제국은 이렇게 병사를 가리지 않고서 뽑아야 할 만큼 병사들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분리주의 운동과 결합한 총파업과 폭동 등에 시달렸다.

"우리 헝가리인들이 그날 대타협에 동의하였던 것은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처우를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오스트리아는 독일을 얻었고, 그날로 우리 헝가리인들은 헌신짝처럼 내버려 졌다!"

"왜 우리 헝가리가 독일인들의 압제에 짓눌려 있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헝가리는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성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독일인들의 압제뿐이다!"

"헝가리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지금이야말로 독일인들의 압제를 끝내고서 우리 헝가리인들을 위한, 우리 헝가리인들만의 새로운 헝가리를 건설하자!"

신성로마제국의 극좌 혁명주의 운동을 주도한 것은 헝가리였다. 결국,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을 위시한 북독일 일대를 다시 무릎 꿇리고서 독일을 재통일하건 말건 헝가리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탈리아와의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직접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도 아닌 헝가리에 설령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눈에 띄는 보상이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더는 헝가리가 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만 하여도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제국을 이끌어 가던 입장이었던 헝가리가 신성로마제국 재건 이래로 제국을 구성하는 무수한 제후국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되면서 불만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서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독립이었고, 독립운동을 이끌어가는 세력 중 가장 목소리를 키우고 있던 진영이 극좌 혁명주의 운동이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유럽 각지의 극좌 혁명주의 운동과 연계하여 함께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들은 여타 유럽의 혁명주의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분류되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사슬뿐이오, 얻을 것은 이 세상이다!"

아나코-생디칼리슴이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건, 기독교 사회주의건, 구체적인 사상적 스펙트럼이 어디건 간에.

이들 극좌 혁명주의자들에게 러시아 민주 공화국 건국은 세계혁명을 위한 첫걸음이자 신호탄이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여긴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행동뿐이었다. 명분도, 시대적 조건도, 모두 마련되었으니 이제 그들이 앞장서 붉은 깃발을 휘두르면서 시민을 선동해 혁명을 이끄는 것만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민주 공화국 건국을 전후로 하여 유럽 각지에서는 폭동과 총파업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나라가 전쟁 와중인 것은 이들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세계혁명이 이루어진다면 국경은 허물어지고 이 지구 위에는 오로지 하나뿐인 사회주의 조국이 존재하게 될 테니 지금의 조국이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 패배를 통하여 국민이 부패하고 무능한 기득권 부르주아들에게 분노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거야말로 반길 일이었다. 패배는 새로운 사회주의 조국이 도래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 적극적인 태업을 통하여 패배를 앞당기는 것은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더 큰 선을 위한 잠깐의 일탈이라고 그들은 여겼다.

물론 이와 같은 태도가 그들의 세계혁명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를 이야기한다면-당연히 후자였다.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당장 지금 전쟁에서 지네 마네가 걸린 중요한 시기에 뭐, 반란을 일으켜? 하여간에 빨갱이들에게는 부모도 조국도 없다더니!"

"빨갱이들에게 속지 마시게, 병사들이여! 저 작자들은 젊은이들의 시산혈해를 디딤돌 삼아 정권을 찬탈할 생각뿐이니! 저 이리 같은 작자들에게 속아서는 안 되네!"

특히나 전쟁에서 지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있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했다.

이 무렵 이탈리아에 있어서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은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사활이 달린 문제였다. 만에 하나라도 신성로마제국이 승리하는 순간 이탈리아는 통일 전쟁 이전의 갈기갈기 찢어져 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터였고, 그건 이탈리아 국민이 절대 바라지 않는 결말이었다.

이런 와중 새로운 사회주의 조국이 어떻다느니 지껄이면서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사회주의 혁명만 완수되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서는 극좌 혁명가들이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하면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저 오스트리아 놈들보다도 이놈의 빨갱이들이 문제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탈리아를 떠나겠지만, 이 조국도 부모도 없는 빨갱이 매국노 놈들이 두고두고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이탈리아를 뼛속부터 갉아먹을 것이다! 이 빨갱이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들은 매국노로서 몰매를 맞았다. 여론의 몰매 같은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매일 같이 거리 한복판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토마토 따위를 배불리 두들겨 맞았다. 총력전이 한창인지라 토마토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날에는 그냥 길에서 주운 돌멩이들을 두들겨 맞았다.

프로이센조차 설령 전쟁에서 패한다고 해봐야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제후국 중 하나가 되는 것뿐이었지만, 이탈리아는 당장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가 글자 그대로 망할 판국이었으니만큼 이러한 극좌 혁명주의 운동에 국민 전체가 과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탓에 다른 유럽 나라에서는 그럭저럭 큰 반향을 얻었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운동도 동시기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탈리아에서는 좌익인사일수록 더더욱 전쟁에 적극적이고 앞장서서 무기를 들고 참전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국노라는 낙인을 피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탈리아 같은 예외를 제외하자면,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는 세계혁명 노선이 매국노라는 낙인과 당국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한풀 꺾인 다음에도 평화주의 운동은 계속하여 그 목소리를 키워갔다.

"전쟁에 나가지 맙시다! 징병을 거부합시다! 우리가 왜 저 귀하신 양반들을 위하여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왜 저 늙은이들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대신 죽어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형제들을, 우리의 귀한 자식들을 귀하신 분들을 위한 총알 한 발로 낭비하도록 보고만 있을 겁니까! 그토록 전쟁이 좋다면, 저들끼리 모여서 결판을 지으라고 합시다!"

"모든 것을 끝낼 전쟁이라는 표현조차도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왜 모든 것을 끝낼 전쟁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인가?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은 진정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모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지성을 갖춘 교양인들이 아니었던가. 전쟁은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할 건 모든 걸 끝낼 전쟁 따위가 아니라 모든 걸 끝낼 대화이고 곧 담판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만국박람회를 즐기는 와중에 왜 우리만 피 흘려 싸우고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먼저 시작한 행사였고, 우리가 먼저 시작한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의 문화를 잊어만 가고 있다는 말입니까? 기억합시다! 평화를 기억해냅시다! 사해동포를 아우르는 사랑을, 아가페를 기억해냅시다! 더는 이 가나안 땅에 동포들의 피가 흐르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과격함 탓에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외면당하고, 탄압당했던 극좌 혁명주의 운동과 다르게 이들 평화주의 운동은 손쉽게 대중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으며 세력을 확산해갔다.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자고 말하는 이들도 아무 조건 없이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흔해도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서 전쟁에서 패배하자-고 말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같은 좌익 운동이라도 이 점이 혁명과 평화주의 운동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자는 말과 전쟁에서 이기건 지건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말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대중적인 지지에도 단순한 시민운동 이상의 힘을 얻기 어려운 결함이 한 가지 있었다.

"지금 당장 전쟁을 끝내자, 말은 좋다. 그렇지만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는 결국 또 한차례의 대전쟁을 위한 시간 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다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다음'을 제시한 것은 지구 반대편에 이번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나라였던 것이다.

< 그다음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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