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56화 (456/530)

< 미래인 >

다만 이것이 딱히 영국의 몰락을 의도하여 진행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게 나름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까?

이 무렵 이형이 예정을 바꾸어 이순신급 전함의 건조를 보다 앞당기기로 한 건, 그가 딱히 유럽에서 황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거나 영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 직접적이고, 진실한 이유는 알래스카에서의 대장정을 마치고서 돌아온 카네기에게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카네기가 이형에게 그간 이순신급 전함 사업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소재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발견한 광맥에서 얻을 이익을 전부 다 내게 주겠다···라는 말이오?"

"예, 바로 그렇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이형이 기대하였고 생각하였던 것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형은 도대체 이 욕심쟁이가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이러는 건가,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이게도, 알래스카에서 돌아온 카네기는 탐욕스럽기는커녕 사뭇 경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형을 향해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듯이 소리쳤다.

"폐하를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전히 믿지 못하였던 이 어리석은 놈을 벌하여 주십시오!"

"아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괜히 부담스럽게 그러지 말고 냉큼 일어나기나 하쇼. 그리고 왜 갑자기 주접을 떨고 그러시오?"

"있는 그대로 사실을 고하겠습니다. 알래스카에 가서 광맥을 찾는 동안,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내가 속은 것은 아닐까? 아무리 폐하께서 신기가 있으시다고 해도 가보지도 않은 곳에 광맥이 있다는 걸 알아맞히시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폐하께서는 제게 거짓을 고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불신자에게 오늘 다시금 그 권능을 보이셨습니다!

오늘날,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폐하께서 안배해주신 덕분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카네기는 이렇게 외치면서 이형을 향해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에게 있어서 알래스카에서의 나날은 그야말로 신앙을 재확인하는 영적 체험 그 자체였다. 사실 이형이 처음에 광맥을 짚어주었을 무렵에는 그간 이형이 보여준 행적들로 보아 이번에도 옳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판단 속에 자신이 직접 알래스카까지 가서 광맥을 찾아다녔던 것이었지만, 문제는 이형이 이즈음에 있을 것이라 짚어준 영역이 너무나 광범위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카네기가 직접 알래스카까지 가서 진두지휘해도, 성과가 곧장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광맥이 있다고 지목된 지역이 너무나 광범위하였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있는 대로 수천 명씩 동원할 수도 없던 것이, 알래스카는 너무나 춥고 험한 오지였다. 수천 명씩 되는 인원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를 헤매다가는 보급이 부족해져서 다 같이 굶어 죽기 딱 좋았다.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땡잡았다는 생각에 돈이고 사람이고 있는 대로 퍼부어서 광맥을 찾아 나섰던 카네기도 점차 이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지역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의 이야기만 믿고서 광맥을 파러 가본다는 것 자체가 집시 점쟁이의 점만 믿고서 맨땅에 삽질하는 꼴과 다를 게 뭐란 말이던가.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속았거나, 아니면 이형이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결론을 내리고서 알래스카에서 손을 떼려고 할 무렵, 그제야 뒤늦게 광맥들이 하나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사실 광범위하다고는 하지만 알래스카 전역을 샅샅이 뒤지라는 명령도 아니었으니 다소 시간은 걸려도 언젠가는 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이것이 카네기에게는 달리 보였던 것이다.

'내가 그분의 권능을 의심하니까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이 거짓된 것이 아니라고 다시금 증명하신 거구나!'

당연하게도 오해였지만, 카네기에게는 이것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간 모르는 것이 당연한 미래를 몇 차례고 예견하던 이형이 아니던가. 잘은 몰라도 이형에게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카네기에게는 이것이 꼭 멀리 떨어져 있는 카네기가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이형이 눈치채고서 요술을 부린 듯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카네기가 느낀 것은 경이로움 이상의 두려움이었다. 만일 진정으로 이형이 자신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것이라면, 돌아가는 즉시 자신의 충성심을 이형에게 재증명하지 않거든 무언가 보복이 따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카네기가 생각해낸 충성을 재증명할 방법이 바로 이 오체투지였다. 경영권을 넘긴다고 냉큼 받아 챙기고서 이제 와 이형이 자신을 내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간 이형의 행적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형이 자신에게 바랄 건 경영권 같은 금전적 대가가 아니라 자신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형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증표일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아예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면 진짜로 강하게 나갈 수는 없겠지-라는 판단이었던 셈이다. 흔히 패장이 왕에게 죽여주시라고 말하는 게 진짜로 죽여달라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였다.

'···권능? 신기? 아니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갑자기 뭐라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러한 카네기의 언행은 이형에게 당혹감 밖에는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애당초 권능이니 신기니 말하는 것부터가 이형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행동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 또한 따지고 보면 신기이고 권능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형에게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다름 아닌 카네기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서태후나 민자영을 위시하여 원 역사에서도 미신에 심취한 인물들이었다면 모를까, 카네기는 그와 같은 경력이 있다는 걸 전에 들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간 보여준 행적도 미신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간 이형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형의 관점에서는 믿을 수 있는 거래 상대 내지는 왕과 신하 사이의 신뢰 같은 것이었지 이런 미신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속된 말로, 이형 입장에서는 카네기가 약이라도 했나 싶었던 것이다. 본인이 약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었다.

자연스럽게, 잠시 간 고민하던 이형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이러할 수밖에 없었다.

"아편이라도 빨다 오셨소? 오늘은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태가 아닌 모양이니 이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합시다. 거 중독 치료라는 게 원래 시작이 가장 힘든 거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니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드시오."

"···예?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라!"

"뭣들하고 있느냐? 모셔다드려라. 거 품에 아편 같은 걸 숨기지는 않았나 잘 살펴보고. 그래도 이 나라를 위해 이래저래 힘을 써준 고마운 놈인데 아편 따위에 허무하게 잃어서야 쓰나."

뒤늦게 카네기가 무언가 수습을 해보려 나섰지만, 이미 이형의 마음은 굳어진 다음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그리고 본격적인 담소는 그다음 날에 다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짐이 요술이라도 부린 줄 알았다,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역시 아편 같은 걸 잘못 사용한 것은 아니고?"

"절대로 아닙니다. 단언컨대 제 평생에 걸쳐 아편 같은 건 가까이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 참."

뒤늦은 카네기의 해명에 이형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카네기가 단순한 우연한 산물을 가지고서 이런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인 발상을 떠올렸다는 것도 웃겼지만, 따지고 보면 카네기의 생각대로 이형이라고 하는 인물 그 자체가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더욱 우스웠다. 결국, 카네기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형의 권능(?)을 과대평가하고, 그가 어떤 존재인가를 잘못 판단한 것 외에는 없던 셈이다.

이형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권능이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고생할 필요도 없었겠지. 구태여 그대와 손을 잡을 필요가 무엇이 있었겠소? 그냥 여기 저잣거리의 어중이떠중이 하나를 잡아다가 천하를 호령할 거상으로 만들어서 쓰면 그만이었을 것을.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소?"

"하, 하하···."

카네기는 멋쩍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이형이 지적한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형에게 그런 권능이 있었다면 애초에 미국인 사업가와 손을 잡을 필요가 무엇이 있던가.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무엇보다 카네기가 일부러 이형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아예 만날 수도 없는 관계였는데 말이다. 이형과 카네기가 만나는 것이 처음부터 예지 되어있던 운명이었다면 또 모를까.

'하기야, 그렇지. 결국, 그간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예지력은 순수하게 탁월한 통찰력에서 나왔다는 건가?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놀랍군.'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카네기는 내심 감탄했다. 생각해보면, 진짜로 예지력이 있는 것보다 통찰력만으로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예견하였던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신기나 다름없는 재주였다.

그다음 순간 이형이 부정하는 바람에 그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리고 짐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100년 후 미래에서 알고 있는 일들뿐이오.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지."

"···예?"

카네기는 순간 제가 잘못 들은 가하여 눈을 멍하니 껌뻑거렸다. 바로 앞에서 그런 권능은 없다고 했으면서 100년 후 미래를 읽는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하지만 이형은 대수롭지 않은 듯 덧붙였다.

"짐은 미래에서 온 미래인이요."

카네기는 답하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입을 다물 수 없기 때문이다. 일국의 황제가 자신이 미래인이라고 주장하는 이 초현실적인 광경이 충격적이었다기 보다, 왜 자신이 그 생각은 못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말이다. 바로 이 점이 카네기가 이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뭐가 되었건, 아무튼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바깥의 존재일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형은 마치 당장에라도 유레카라고 외칠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그런 카네기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오, 농담.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시오? 괜히 사람 무안하게시리."

"···아, 아하하! 그, 그렇군요. 농담이지요. 예. 제가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눈치가 없어진 모양입니다."

"녹이라도 슨 거요? 껄껄껄! 그 천하의 철강왕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구려!"

"하, 하하···."

이형은 웃어넘기라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카네기는 차마 따라 웃지 못했다. 이미 카네기에게 이형이 한 뒷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이형이 자신을 일컬어 미래인이라고 설명한 것을 농담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이형이 일부러 농담하는 척 진실을 말했다고 확신했다.

'도저히 농담하는 눈이 아니었어. 내가 지난 육십 평생을 헛살았던 게 아닌 이상에야 내 눈은 못 속이지. 그리고 설령 농담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좌우지간 조금 전 그 말은 저 통찰력이, 혹은 예지력이 닿는 범위는 앞으로 100년간이라고 자백한 거나 다름없지. 그렇다는 이야기는···.'

황제에게 더욱 기대면 앞으로 100년간은 제일 나은 선택만 하거나, 최소한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황제와 함께하면 최소한 앞으로 100년간은 자신과 자신의 회사가 번창할 것이라는 확증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무엇보다 황제의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앞으로 100년간 이 나라는 계속하여 번성할 것이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황제가 보여준 모습에 미루어 판단하건대 그럴 확률이 낮아도 80% 이상이다. 80%. 그래, 내 모든 걸 걸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숫자지.'

이 순간, 카네기는 생각을 고쳤다. 그동안 미국과 한국에 동시에 발을 걸쳐왔던 어중간한 위치에서 벗어나기로 말이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 기업이나 국가도, 언제나 제일 나은 선택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성장곡선은 언제나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 100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나 제일 나은 선택만 하거나, 하다못해 최악의 선택만은 반드시 피할 것이라는 보증이 있는 국가나 기업이 있다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멍청한 판단이다. 그 기업, 혹은 국가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배 이상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례에서 이는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이 보여온 성장세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이 그와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보증이 달린다고 생각해보자. 100년 후 한국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대영제국마저 뛰어넘는 대국이 되겠지.'

결국 카네기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자신이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카네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요즈음 나이를 먹기는 한 모양이더군요. 이제는 저도 슬슬 그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노후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답지 않은 말씀이시구려. 뭘 벌써 약한 소리를 하시오? 일흔이 다 되도록 저잣거리 주먹패들 두목 노릇을 하던 양반도 있는데, 나이도 더 젊고 정정한 사람이 약한 소리 마오."

"하하하, 저도 당장에 물러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선에서 물러난 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미리 구상해놨지요."

"호오, 노후대비라. 그거 흥미롭구려. 구체적으로는 어쩔 생각이오?"

"그렇군요. 본디 제가 이 땅에서 번 돈이니, 떠날 때는 마땅히 이 땅의 주인께 돌려드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희 카네기 제철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경영지분을 전부 황상께 드릴까 합니다."

이번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서 침묵한 것은 이형이었다. 이형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카네기를 흘겨보며 되물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대답이구려. 그리고 짐이 함부로 다루기에도 곤란할 과분한 선물이고 말이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혹 말해줄 수 있겠소?"

"어차피 제게는 회사를 물려줄 아들도 없습니다. 제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나면 회사는 이사진이 이끌어가게 되겠지요. 그들이 영 못 미더워서 그렇습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못 미더운 거로는 짐이 더할 거요. 짐은 회사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도 모르고, 또 그럴 시간도 없소. 내 장담하건대 회사를 짐에게 떠넘기거든 1년 안에 부도가 날것이오."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폐하께서 직접 회사를 경영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 믿을 수 있고, 유능한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허, 참."

이형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형은 틀림없이 그렇게 행동할 터였다.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는 것이 그의 주된 방침이었으니까.

그리고 애당초 이형은 슬슬 카네기 제철을 손봐둘 생각이었다. 산업화 초기에야 당장 카네기 제철을 제외하자면 아시아에서 철강을 생산할 곳이 없다 보니 카네기 제철이 사실상 철강산업을 독점하고 있어도 큰 티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형은 산업의 쌀이라 할 수 있는 철강업을 국영기업도 아닌, 반쯤 외래자본이 언제까지 독점하도록 둘 생각이 없었다.

반독점법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아무튼 명분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조각조각 내놓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구태여 조각조각 내놓을 필요까지는 사라지는 셈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카네기 제철이 공기업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예지력은 내가 아니라 이 녀석에게 있는 것 같은데.'

이형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알겠소. 뭐, 그대의 뜻이 정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두리다. 그렇지만, 혹 실패해서 부도가 나도 나중에 원망하기 없기요."

이에 카네기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폐하께서는 미래인이시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이형도 그에 맞추어 껄껄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서 그렇게 한참을 웃어댔다.

< 미래인 > 끝

ⓒ 리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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