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국담론 >
크고 작은 총성은 1897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승자와 패자가 갈렸고, 이 이상의 전쟁을 막기 위한 천하회맹 논의가 본격적으로 열의를 띄기 시작했다. 세상은 드디어 역사에서 무언가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착각이었고 허울뿐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수백만의 죽음조차 그들과 무관계한 안전한 곳에 있던 이들에게는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병사들의 죽음은 그럴싸한 대의로 포장되어 누군가를 위한 공적이오, 명예가 되었다.
조국을 위해 한목숨 던져봐야 모두 부질없는 것. 죽은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한 무더기의 흙뿐이오, 명예도 부도 권세도 결국에는 모두 산 자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지옥도를 헤치고 살아 돌아온 산 자들조차 무엇하나 얻지 못한 건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차라리 전쟁 때가 나았지."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전쟁에 참여했던 나라들은 어느 나라나 끔찍한 재정고갈에 시달렸다. 이러한 재정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가장 쉬운 방법은 당연히 군비를 감축하는 것이었고, 군비를 감축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비싼 장비들을 폐기하는 것보다는 병사들을 줄이는 것이었으니까. 각국 정부는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군축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군축에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연금을 많이 삭감하는 문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보다 기준을 빡빡하게 하거나, 지급액을 줄이거나 하는 등 방법도 다양했으며 창의적이었다. 사지에 내몰 때는 죽은 다음까지 책임져줄 것처럼 지껄이던 기회주의자들이 쓸모가 다한 병사들을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에 내다 버린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이 당시 예산 삭감은 꼭 군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은 정부 수익과 정부 지출 모두 큰 폭으로 줄어드는 와중에 군비도 덩달아 삭감된 것에 더욱 가까웠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참전용사들을 포기하려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에 있을까. 결국, 그건 위에서 결정하는 자들의 변명일 뿐, 그걸 일방적으로 당해야 하는 이들의 사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이유야 어쨌건, 귀환병들은 정부에게서- 세상에서 버려졌다. 그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개 같은 세상. 그냥 다 망해버렸으면 좋을 텐데."
귀환병들이 염세주의에 빠져든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귀환병들에게 돌아갈 장소는 없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결국 사회 부적응자요, 실업자였고, 살인자일 뿐이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그 쓸모가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버려졌고, 외면되고, 소외되었다. 누구 하나 그들을 책임지려는 이들은 없었다.
귀환병들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혹자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서 마약을 비롯한 극단적인 여흥으로 자신의 몸과 자산을 탕진했고, 혹자는 세상에 분노하며 혁명을 위한 투쟁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그들을 돌아봐 주지 않았다. 그들의 쓸모가 다했기 때문이었다. 적을 향해 발사되지 못하고서 약실이 썩어들어간 여분의 탄약 따위는 악성 재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 악성 재고였다. 쓸모가 다한 악성 재고 말이다. 평화가 찾아온 순간부로, 병사들은 미처 다 쓰지 못하고서 남고만 악성 재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가들이라고 이들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전후 경제 재건과 세계 질서 건설이라는 너무나 장황하고 거대한 그림을 그리느라 바빠서 미처 이들 악성 재고의 불평 소리를 들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잔여 탄환의 약실이 그들을 향해 장전될 가능성까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국가론(The National)? 이게 다 뭐야?"
"한국의 황제가 직접 저술했다고? 하여간 꼴값을 하는군."
1898년 1월 국가론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서구의 반응은 딱 잘라 말해서 무관심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영문판과 불어판이 나왔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양이란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별종일 뿐이었다. 호기심에 찾아서 읽어보는 이들조차 극히 적었고, 혹여나 읽더라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은 더욱 적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그러한 서적을 발표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일부는 한국의 황제가 직접 저술했다는 데에 흥미를 느끼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고, 극히 일부만이 이를 탐독하고서 심도 있게 고찰했다. 다만 이러한 고찰도 대부분은 그저 고찰로 끝났을 뿐, 본격적인 성찰이나 정치적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몇은 달랐다. 가령, 혁명 이후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던 러시아에서 그러했다.
"차르의 전제정은 인민의 생업을 보장하지도 못하였고,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가까이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종교에 의하여 사유 되었으며 또한 개인에 의하여 사적으로 사유 되었다. 국가가 국가로서의 도의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이를 인민의 손으로 갈아엎는 것 또한 당연한 것.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인민의 손에 의하여 완성된 인민의 지엄한 심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이 무렵에는 개명하여 블라디미르 레닌이라 불리는 사내가 그 대표 격이었다. 원세개가 익히 알아봤듯이, 그는 러시아에 있는 그 어떤 혁명가보다 권력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이념 서적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즉시 가장 먼저 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빠져들어 러시아에 가능한 한 널리 전하고자 하였고,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그 이념을 전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이 국가론이 담고 있는 내용은 마르크스주의에 딱히 상반되는 내용도 아니었다. 당장 이 국가를 공산당이라는 단어로, 국민을 인민으로 대체해도 조금도 해석에 지장이 오지 않았다. 공산당이란 인민의 합의 위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사회조직이다. 공산당은 종교에 의해 사유 되어서는 안 된다. 공산당은 인민의 생업을 책임져야만 한다. 정부가 그 도의를 다하지 못한다면, 인민의 손으로 이를 파괴하는 것 또한 인민의 책임이자 도의다.
마르크스가 생전에 읽었어도 무릎을 탁 칠만큼 당연하고 기본적인 내용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이렇게 왜곡해서 읽지 않아도, 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내용을 준수하고 있는 국가들이 세상에 몇이나 되던가. 일단 국가란 국민의 합의 위에 존재하는 사회조직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고서 왕권은 신이 내린 것이라 믿는 이들이 아직도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고, 국가란 국민의 합의 위에 존재한다는 걸 긍정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생업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나라들이 대다수다.
즉, 이 국가론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세상에는 온통 국민의 손으로 파괴되어야만 할 그릇되고 무능한 정부들투성이이므로 세계 만민이 힘을 합쳐 이를 바로잡아야 하며, 곧 공산 혁명의 당위성을 보증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국가의 도의를 다하지 못하는 그릇되고 무능한 정부들과 맞서 싸워나갈 것이며, 그들은 머리로는 우리 러시아의 심판을, 가까이에서는 인민의 지엄한 심판을 두려워해야만 할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논리를 펼치며 국가론을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보충 논리로 사용하였다. 때마침 나로드니키 정권이 대외확장을 멈추고서 러시아 국내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세계혁명을 정당화하는 레닌의 이러한 논리는 유럽 극좌 진영 곳곳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는 오래가기 힘든 논리라는 걸 레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국가론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국가란 국민에게 이렇게 봉사해야 한다-하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국가론에서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이상적인 국가상은 공산당이 모든 걸 이끌어가는 공산 독재 국가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복지국가였다. 그건 레닌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이러한 사실은 고의로 무시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세상에서 이와 같은 복지국가가 가능한 나라는 단언컨대 없다. 부르주아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고, 정부에게는 그럴 재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은 너무나 단조롭고 원론적이어서 마치 그와 같은 복지국가 건설이 너무나 간단한데 지배자들의 나태로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이 책이 힘을 얻을수록 인민들은 지배자들의 나태에 분노하게 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는 국가론에 적혀있는 이상적인 국가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치를 설정해 놓고서 그 목표치에 미달한다고 힐난하는 꼴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서 국가론에서 주장하는 복지국가 건설은 결과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지점인 공산국가 건국을 위한 공산주의 혁명으로 대체될 수밖에는 없다고 확신했다.
물론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으나, 그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아시아에는 천하의 모든 토지는 곧 국가의 것이며 모든 인민은 이를 빌려 쓰는 것뿐이라 생각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토지란 무엇인가? 근대적 자본주의 공업경제에 진입하지 못한 중세적 농업사회에 있어서는 부 그 자체와도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인들은 최근까지도 모든 부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다. 이는 곧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모든 사회적 부를 독점하는 원시 공산주의 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에는 이러한 원시 공산주의 전통이 있기에 국가론과 같은 원시 공산주의적 이념서가 나올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말하였듯이, 그들에게는 공간은 있었으되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들은 유럽이 자본주의자들의 타락으로 더럽혀지는 와중에도 오늘날까지 원시 공산주의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속하여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유럽과 아시아는 별개다'라는 것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는 별개의 발전과정을 거쳐왔기에 이러한 담론이 가능한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반영하여, 이후 러시아어로 발매된 국가론은 더욱 과격하게 '망국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기도 했다. 국가론의 사상적 배경이 이 기준에 미달하는 나라들은 모두 망해버려야 한다-라고 해석했던 까닭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레닌의 해석은 국가론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레닌이 명명한 '망국 담론'이라는 이름부터가 인상적이었다. 국가론이라는 흔하디흔한 이름보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나라는 망해버려야 한다는 망국 담론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쉽게 각인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나로드니키 정권 또한 레닌의 성장을 위협적으로 여겼을지언정 레닌의 해석 방향과 주장은 그대로 수용하면서, 레닌의 해석은 그리 머지않아 유럽 극좌 진영의 정설이 되었다.
"저들이 우리의 생업을 책임져주었는가? 저들이 평화를 위하여 노력했는가? 저들이 진정 우리의 합의 위에 만들어진 우리의 정부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저들은 오로지 가진 자들만을 위하는, 가진 자들이 그들의 밀실 속에서 그들의 이기심과 허영을 채우기 위하여 멋대로 입을 맞춘 베일 속에 감추어진 합의 위에 만들어진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밀실의 정권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파괴하자! 저 자신의 허영과 이기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저 더러운 돼지들을 끌어내리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만세! 만만세!"
이들은 책에서 명시된 '일견 당연해 보이는' 기준들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금의 정부들은 국민의 손으로 파괴되어 마땅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심판방식으로 공산 혁명을 내세웠다. 이들의 등장은 전후 안정되는 듯하였던 유럽에 끓는 기름을 부어놓은 꼴이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에 잊히고 있던 귀환병들이 이에 정열적인 호응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딱히 공산주의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이렇게 된 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들을 책임져주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라는 국가론의 주장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런 순수한 이유로 기뻐하는 이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운동이 어느 사회에서 급속도로 힘을 얻는다면 반드시 그 기저에 사익을 위한 계산이 깔린 법이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이렇게 혼란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전쟁에 나가서 살인기술을 익혀온 자신들을 요구하는 단체나 정부조직이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기적인 계산도 분명히 그 기저에는 깔렸었다. 이들 귀환병에게는 혼란이 필요했다. 세상이 그들을 필요로 해줄 또 한차례의 전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이러한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선 또 하나의 주장이었다.
"나는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이 오히려 이 책, 국가론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정확히 역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공산주의의 확산은 무엇을 뜻하는가? 곧 혼돈의 확산이다. 그들은 파업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키며, 국가의 해체를 주장하여 평화로운 사회와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 국가론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곧 질서이다. 국가가 어째서 국민의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가? 생업을 가지지 못한 국민은 필연적으로 폭도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째서 평화를 목표로 해야 하는가? 전쟁은 필연적으로 국가 간 질서의 파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째서 노조와 재계의 타협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 간의 다툼이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에 의한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건 결국 국가에 의한 질서다. 국가의 권위 아래 안정된 사회 속에서야말로 개인은 비로소 안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는 축소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처럼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주장만을 앞세운다면, 도대체 어떻게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으며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회적 복지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반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영국의 찰스 워렌이었다. 본래 런던 경찰총장이었으며, 세계대전 중 런던 함락으로 왕실과 내각이 모두 런던에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런던에 남아 성공적으로 퇴각전을 지휘한 공로로 전후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던 찰스 워렌의 주장은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었다.
상륙 당시 런던 방위 총책임자였으면서 상륙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던가, 당일에도 사령부에서 포커나 치다가 왕실에서 런던을 떠난 다음에야 부리나케 도망칠 준비를 하느라 마지막까지 런던에 남아있게 되었다든가 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누구도 이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영웅이었고, 런던이 함락되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유일하게 제 할 일을 다 한 존경을 받아 마땅한 군인이어야 했으니까.
이 무렵 영국에서 귀환병들을 중심으로 한 극좌 불법 무장 단체들이 성행하고 있었던 것도 찰스 워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극좌 테러 조직들이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든가, 아편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면서 런던 뒷골목에서는 마약조직 간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든가 하는 흉흉한 소식이 성행하는 가운데 우선 질서를 바로잡자는 찰스 워렌의 주장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본디 런던 경찰총장이었다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디 경찰이었으며, 전쟁영웅이기도 한 인물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자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주목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구절은 국가란 국민의 합의 위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사회조직이라는 구절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 국가 이상의 사회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의 국제당이니 뭐니 하는 조직들은 결국 건전한 국가를 약화하고자 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불과하다.
국가 속에 존재하려 할 경우에만 개인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으며, 국가가 책임과 도의를 다하지 못하였을 때 개인이 이를 파괴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개인이 공동체를 위한 그 책임과 도의를 다하지 못하였을 때 국가가 공동체를 대표하여 개인을 파괴하는 것 또한 당연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혼란이 가속될수록, 찰스 워렌의 주장은 더욱 격정적이고 과격하게 변했다.
국가론을 저술한 당사자였던 한국 성균관에서는 이러한 해석을 펼치는 그에게 '파시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최초의 파시스트는 자랑스럽게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 망국담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