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64화 (464/530)

< 본심 >

다만 막상 국가론을 최초로 발표한 성균관에서는 이러한 해석 중 무엇이 바르다고 딱히 답해주지 않았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던가, 아니면 모두 그르고 이러한 해석이 옳다던가. 어느 쪽도 하지 않고서 그저 침묵을 지켰다.

대외적인 이유야 물론 이러했다.

"국가론은 결국 황제 폐하께서 품으신 원대한 뜻을 글로 풀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한데, 황제 폐하께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정해주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무슨 낯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있을까? 결국, 어떤 해석이 옳고 어떤 해석이 그를지는 오직 황제 폐하께서만 알고 있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성균관의 대답은 서구 학계에 국가론이 사상적 깊이는 전혀 없이 지나치게 국가 중심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담론만 늘어놓는 선동 서적이라고 힐난 받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당장 레닌이 성균관에서 저술한 국가론을 들먹이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와중에 막상 그걸 저술한 성균관에서 대답을 회피하면서 책임을 황제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황제라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당장 서구 학계의 추궁에 대한 황제의 대답부터가 이러했다.

"국가론은 분명 본인이 그간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느껴온 바를 글로써 풀어 정리한 바이기도 하나, 우리 성균관의 대학자들이 짐의 생각을 풀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짐의 이해를 벗어난 지 오래인지라 그와 같은 난해한 내용에 어찌 답하면 좋을지 본인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소."

한마디로 「나는 학자가 아니라서 그런 어려운 내용은 모르겠다」라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 올바른 해석인지를 두고서 당장 난장판이 나고 있는 와중에는 더없이 부적절한 미치고 환장할 대답이었던 것이다. 서구 학계에 환장할 사실은, 이 국가론 자체가 직접 어떠한 국가체제를 제시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국가론 그 자체는 국가는 어떤 존재여야 한다, 국민은 어떤 존재이다, 이와 같은 원론적인 담론에 지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져주는 복지국가를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 또한 간접적으로 이러한 나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발상의 유도였지 직접 이러한 나라를 만들자! 하는 주장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그 내용 자체는 한없이 원론적이고 담론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지라 어떤 진영에서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악용의 소지가 넘쳐나는 글이었던 것이다. 서구 학계에서 괜히 이를 선동 서적이라고 규정지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이를 악용해서 자신들의 이념을 지지하는 글로 오용하는 세력이 둘씩이나 나오지 않았던가.

가장 환장할 사실은 일단 어떤 식으로 오용하건 간에 「지금의 정부를 갈아엎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국가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참다운 국가의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당장 한국조차 그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자평하기는 어려웠다. 책에 나온 그대로 따르자면, 한국조차 파괴되어야 할 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정부를 뒤엎고자 하는 과격한 세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건 테러리스트들을 위한 성경이다! 국가적 테러를 종용하는 선동 서적이다! 한국인들이 유럽을 망치고자 독을 풀어놓은 거다!"

괜히 이런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온 게 아니었다. 국민이 국가를 뒤엎는 것도 당연하다는 위험한 주장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국가 중 대다수는 나라 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장 이 책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이 국가론의 진가였다.

국가론 그 자체는 어떠한 이념서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서적이었으나, 다른 극단적인 이념들이 그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 넣기에는 더없이 풍족한 이념적 백화점과도 같았다. 애초에 이를 처음 펼쳐낸 성균관에서도 어떤 해석이 옳다고 분명히 말해두지 않았으니 제삼자가 어떤 해석을 덧붙이건 상관이 없었다.

국가론은 처음 발매되었을 때의 무관심함이 무색하게도 나날이 판매량이 폭증하면서 전후 사회적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혹자는 이를 공산주의 서적이라고 평가했고, 혹자는 이를 또 다른 유토피아론이라 평가했으며 누군가는 이를 더 없이 민주주의적인 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들 모두가 올바른 해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가 있다면, 사실 이 무렵 이형을 대신해 국가론을 대필한 성균관에서조차 이 중 어떤 해석이 옳은가를 두고서 담론이 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 해석인가를 이형에게서 전해 듣지 못한 건 성균관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사실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구도 이형이 어떤 생각을 품고서 지금의 대한제국을 만들었는가를 진지하게 고찰해본 바가 없었다.

즉, 국가론은 성균관에 있어서도 그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서 이 나라 대한제국을 다스렸는가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이형의 마음속을 엿볼 기회이기도 했다. 당연히, 국가론은 국외에서 탐구되는 그 이상으로 국내에서 깊이 있게 탐구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론은 전통적인 주자학적 가치관을 현대적 가치관으로 풀어서 정리한 것이다. 국민에 의한 정부의 파괴와 재건을 명시한 부분은 맹자께서 주장하신 천명론을 풀어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국가가 국민을 가르치고 보살펴야 한다는 건 이제 와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유가의 근간에 가까운 주장이다.

황제 폐하께서는 나날이 신세대들에게 주자학이 잊히고 평가절하되어가는 사회적 세태를 안타까워하시며 오늘날 우리에게 유학의 본질을 다시 새겨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시려고 이와 같은 담론을 내려주신 것이다."

먼저 국가론을 현대적인 유교 경전이라고 정의한 해석. 이에 근거하자면 이형이 그리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상향은 전통적인 유교적 도원향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이 무렵 조선 유학계를 중심으로 사실 이형은 누구보다 유교에 심취한 유가적인 군왕이 아니었는가 하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중국을 쪼개놓은 것부터가 그러하다. 상식적으로 중원의 천명을 이었으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당연히 천자가 되는 것이지 옛 주나라 시절의 천하로 돌려놓는 게 어디 범인의 발상이던가. 이형 본인은 이를 두고서 시황제의 청탁을 받아서 그랬다고 했지만, 이를 진지하게 믿는 유학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형은 누구보다 유교적 세계관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이형이 스스로 천자가 되지 않고서 대신에 칸임을 자칭한 것은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에 진정 천자에 어울리는 참된 천자가 없기 때문이고, 덕으로서 백성이 스스로 통치해달라 간청하도록 하지 못하고 힘으로서 천하를 얻은 저 자신이 결국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탄이었다.

이형이 독재 권력을 거머쥐고서 조선의 사대부들을 탄압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었다. 장장 반천년에 걸친 조선이 선비들을 후대했음에도 오늘날 선비들은 백성을 올바르게 일깨우려 하지도, 놀라운 학문적 성취를 보이지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도 않고서 저가 공후백이나 되는 줄 알고 젠체하기 바쁘니 마땅히 왕 된 도리로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 왜 이형이 개항을 단행하고 서역의 문물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점이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이러했다.

"오랑캐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크게 셋이 있는데,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 첫째요, 신묘한 지략으로 다스리는 것이 둘이고, 힘으로써 다스리는 것이 셋째이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군왕의 그릇이 큰가, 작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오랑캐들이 얼마나 신의 있는 자들인가이다.

그들이 진정 신의 있는 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덕으로 품어 교화할 수 있다. 그들이 언제건 우리를 속이려 드는 간교한 자들이라면 우리도 마땅히 간교한 지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조차 없는 오랑캐라면 응당 힘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조선의 힘이라면 너끈히 저 오랑캐들을 다스릴 수 있었겠지만, 황상께서 역적을 주멸하실 적에 우리 조선은 이미 오랑캐들과 개항을 약속한 다음이었다.

아, 제아무리 역적의 농간이었다 하나 나라 간의 중대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이에게 어찌 덕이 있노라 할 수 있으리오! 황상께서는 별수 없이 분을 가라앉히고서 오랑캐들의 파렴치한 만행을 넘겨버리실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한마디로, 개항 자체가 이형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도가에서 멋대로 추진하였던 것을 차마 물릴 수도 없어서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라는 설명이었다. 혹은 더욱 직설적으로 오랑캐들의 침략이 두려워서 그러셨다, 오랑캐들의 문물이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셔서 그런 거다 등등 이에 관한 추측은 많고도 많았다.

다만 한 가지에서만큼은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이들은 제아무리 어질고 선한 왕이라도 한낮 백성에 불과했던 요순시절과 비교하여 나날이 백성과 군왕의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음을 한탄해서 군왕을 재차 백성의 위치로 돌려놓고자 이형이 갖은 행패와 망나니 놀음을 벌였던 것이라 설명했다. 한마디로, 그러한 망나니 놀음은 이형의 본질이 아니었고 단지 군왕 또한 한 사람의 백성임을 보이고자 일부러 그런 망나니 놀음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아니면 애초에 이형이 유교적 세계관에 심취한 인물이라는 해석부터가 성립하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러한 유교적 세계관에 근간한 해석만 있던 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현세에 존재하는 국가가 이 국가론에서 말하고 있는 국가적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싶다. 일단 모든 국민이 만족하는 정부라는 것부터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만족해도 누군가는 불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다. 중요한 건, 이 정부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점이 아니라 이 정부에 만족하는 이들이 더욱 많은가 불만족한 이들이 더 많은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불만족한 이들을 만족하게 하는가이고, 이 국가론은 결국 이 불만족한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 서적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인들도 이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고, 또 고치려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달래주기 위한 글이다. 직접 어떤 정부 체제가 이상향인지 명시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황제 폐하께서는 교활하신 분이다. 공자와 로크보다는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흠모할 군주시다. 따라서 이 글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고 헛된 담론에 불과하다. 황제 폐하께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이상향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신 분이시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황제 폐하께서 현명하신 분이라고 황제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신 다음에도 이 나라를 다스릴 위정자들이 누구나 현명할 거라 생각할 수는 없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황제 폐하께서 누구보다 현명하시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이와 같은 담론을 남기신 거라 생각한다. 후세의 위정자들을 일깨우고, 백성을 보살피는 데에 더욱 특히 신경 쓰도록 하시고자 경각심을 주려 하신 것이다. 이 책은 아직 폐하께서 살아계시는 당대보다도, 폐하께서 세상을 등지신 다음에 더욱 빛을 볼 교육서이다."

"이 국가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가란 국민의 합의 위에 만들어진 사회조직이다는 부분과 정부 또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대변자에 불과하다는 부분 두 가지다. 다시 말해 황제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국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재차 일깨워주러 한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향은 무엇일까. 이 또한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국민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여론조사다. 이 여론조사가 힘을 가지게 한다면 그것이 곧 투표될 것이고, 이를 보다 세련되게 고친 것이 곧 선거요, 이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의회야말로 참된 정부이다.

다시 말해, 황제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민주주의적 이상향을 꿈꾸시던 분이다. 난 이 책이 어떠한 이상향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선명하게 오직 하나의 이상향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날 우리 대한이 그 이상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긍심을 느낀다."

물론 이 중에서 무엇이 진정 옳다-하고 추앙받는 추측은 없었다. 애당초 이형이 이를 두고서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결국에는 공허한 추측 밖에는 남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 중에 정답의 실마리에 도착한 인물은 있었다.

"황상께서는 사실 미래를 훔쳐보는 재주를 지니신 것 아니오?"

1898년 초여름의 어느 날 밤.

창가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이하응은 문득 물었다. 진지한 물음은 아니었다. 농담조로, 지나가는 말로 툭 하고 한마디 던진 것에 가까웠다.

자연히, 이에 대응하는 이형의 태도도 농담조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오?"

"역시나, 하고 웃어넘기리다."

이하응은 히히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바람이 새는 듯 실없는 웃음소리였다. 더는 그에게 조선이 낳은 호걸다운 호탕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하응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항상 의문이었지. 내가 저 아이를 분명 어렸을 적부터 봐왔을 텐데. 젖을 먹이고, 걸음마를 하고, 옹알이하는 걸 곁에서 보면서 길렀을 텐데. 내가 저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없을 텐데- 왜 저 아이가 이리도 낯설게 변한 걸까, 하고."

"궁에 들어오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심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소. 혹은, 왕좌에 앉고서 헛바람이 들었다던가."

"그래, 그랬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소. 어차피 왜 변하셨는가는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내게 무엇보다도 의문이었던 건 왜 변하셨는가, 하는 게 아니었소. 왜 이 늙은 놈도 모르는 걸 저 조막만 한 아이가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

이하응은 흘끗 이형을 돌아보았다. 침대맡에 이형도 이하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하응은 담담하게 물었다.

"더 늦기 전에 이만 비결을 가르쳐주시겠소?"

이형은 답했다.

"사실은 내가 미래에서 온 귀신이라오."

이하응은 침묵했다.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답했다.

"그럴 줄 알았지."

이하응은 피식하고 웃었다. 피식하고 숨을 내쉬고서-다시 들이쉬면서 눈을 감았다. 이형은 조용히 이하응의 손을 마주 잡았다.

굳세고, 단단한 손이었다.

그날, 조선의 효웅은 여름 하늘의 별이 되었다.

< 본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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