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이 터져 죽다 >
상은 두 곳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한 곳은 대한제국 한성이었고, 다른 한 곳은 미합중국 새크라멘토였다. 이하응의 육신은 한성에 묻혔고, 그가 생전에 쓰던 유품들은 새크라멘토에 묻혔다.
그가 생전에 지니고 있던 자산은 으뜸 교회에 상속되었고, 다시 으뜸 교회는 고야슬래, 일명 제로니모에게 상속되었다. 생전에 남긴 유훈에 따라 이후 으뜸 교회는 고야슬레를 필두로 한 장로들의 공동운영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는 으뜸 교회에 귀속되다시피 하였던 검계조직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상주는 대만에 있던 동명왕 이희가 맡았다. 이희가 장남이었으며, 이형은 보위에 오르면서 형식상 효명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국상을 치르면서, 이희는 소리 내 울었다. 물론 그것뿐이었다. 상을 치르는 이희에게서 눈물을 엿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고, 전하! 전하! 어찌 이렇게 가십니까!"
"우얄꼬, 우얄까. 우야면 좋나"
되려 진실한 눈물을 쏟았던 것은 새크라멘토의 교인들이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으뜸 교회의 장로들이야말로 진정한 상주였는지도 모른다. 시신조차 들지 않은 빈 관을 운구하며 상을 치렀음에도, 관이 오가는 동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서 울음소리가 멈추지를 않았다.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새크라멘토에는 20만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 빈 관을 따라 행진했다.
이 때문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주 방위군에 긴급대기 명령이 내려오고 연방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백인들이 우려하였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장래 기간에는 그간 소란을 피우던 검계 졸개들조차 풀이 죽어 추모에 나서면서 범죄율이 80% 이상 줄어들기도 했다.
생전 이하응과 엮일 일 없이 살았던 이들조차 무언가 엄청난 거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쉬이 알 수 있을 직접적인 변화였다.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영광 돌려보내세, 구주 오늘 나셨네! 크고 작은 나라들, 기뻐 화답하여라!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에 나신 주~♬"""
입관식이 있던 날,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헨리 마크햄이 참석하여 추모 문을 낭독하는 가운데 11만 명의 추모 인파는 비를 맞으면서 엄숙하게 찬송가를 합창하였다. 그마저도 비가 오는 바람에 줄어든 인파였다. 비가 흐르는 것인지,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붉게 상기된 양 볼을 타고 물줄기가 하염없이 내렸다.
그들 대부분은 이하응이 미국에 오기 전에 본디 어떤 인물이었는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다만 이하응이야말로, 아니 이하응만이 그들이 가장 고되고 힘겨울 적에 곁에서 함께 해주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위선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보신을 위한 도피였을까. 그런 세세한 동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침묵하는 선보다는 행동하는 위선이 제일이었기에.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그렇게 이하응은 미국 서부 민중들의 가슴 속에 묻혔다. 이날 입관식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은, 후일 이날 내린 여름비를 두고서 춥고 매서웠노라고 회상했다. 날이 선선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러했다.
아마도, 그가 떠나고 난 다음에도 계속하여 이 힘겨운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무거운 현실이 그만큼 차가웠던 것이리라.
"『동방의 성자, 주의 곁으로 돌아가다.』"
"『Father Sacramento, 영면에. 눈물에 잠긴 캘리포니아!』"
이러한 전무후무할 광경을 그냥 놓쳐 보낼 미국 기자들도 아니었기에, 이하응의 장례식은 그리 오래지 않아 세계적인 특종이 되었다. 누군가는 흐느끼는 인파에 공감하며 함께 탄식했고, 누군가는 또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하응의 인기에 새삼 놀라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아시아 대륙의 아시아인들이 이하응의 죽음을 상대적으로 덤덤하게 넘긴 데에 반하여, 서역-특히 미국에서는 이하응의 죽음을 더욱 무겁고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미국에서 종교활동에 몸담은 최초의 아시아계 왕족이었을 뿐 아니라, 꼭 아시아인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인, 아메리카 원주민, 히스패닉 등의 소수인종들에게 손을 내민 인물이었던 까닭이었다.
"프린스 흥선이 마침내 주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돌아갔다. 그는 우리에게 아시아의 형제들 또한 그저 주의 참된 가르침을 일찍이 전해 듣지 못하였을 뿐인 우리의 잊힌 형제자매임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의 은총 위에 동방선교의 새장을 열어젖힐 수 있었다. 바라건대, 주께서 그의 영혼을 곁에 두시어 그의 영혼에 안식이 깃들기를."
미국 개신교 사회에서는 그의 죽음을 두고서 동방선교의 샛별이 졌다고 표현했다. 이하응이 생전 으뜸 교회를 통해 미 서부의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던 것을 두고 이른 말이었다.
"미국은 그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저 힘 없는 약자들을 짓밟고 욕보이며 제 보잘것없는 허영심을 채우는 데에 급급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자유의 나라 또한 결국 또 다른 압제자일 뿐임을 보이며 우리 주를 실망하게 했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합중국은 진정한 자유의 나라로 남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가 남긴 자유의 나라를 앞으로도 지켜나가는 것이다."
한편 마크 트웨인을 위시한 미국의 식자층은 그의 죽음을 두고서 댐이 허물어졌노라고 표현했다. 미 서부의 소수인종들을 끝까지 지켜낸 이하응을 향한 찬사인 동시에, 이제 누가 그를 대신할 것인가에 대한 한탄이었다.
그리고 워싱턴 정가의 누군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휴우···! 정말이지 주께서 도우셨구먼그래. 정말이지 하늘이 도우셨어!"
여러모로 이하응의 득을 크게 본 공화당도, 으뜸 교회와 반목하던 민주당도 이러한 감상에서는 뜻을 함께했다. 이하응이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던 힘과 권위 탓이었다. 혹여나, 이하응이 미 서부를 기반으로 그만의 독립된 왕국을 세우려 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워싱턴의 배불뚝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하응이 세상을 떠나면서 으뜸 교회와 검계도 구심점을 잃고 약해질 테니, 그들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그것도 딱히 뭔가 인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명이라는 하늘의 도움 덕택에 말이다. 물론 이러한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는 멍청이들은 없었다. 그런 멍청이라면 애당초 배가 부르기 전에 워싱턴에서 내쫓기기 마련이니까.
속으로야 어쨌건 간에, 그들은 겉으로는 끝없이 거짓된 눈물을 흘렸다. 갖은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미국에서는 그의 노고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온종일 지껄여댔다.
이에 대한 이형의 평은 짧고 간단했다.
"다들 같잖은 소리나 늘어놓고 있구먼"
묘비 앞에 주저앉아, 이형은 투덜거렸다. 눈매는 게슴츠레했고, 눈가는 붉었다. 머리도 대충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서, 이형은 툭 한마디 던졌다.
"정말이지 욕보셨수다."
그리 말하며 이형은 고량주 병을 한 병 꺼내 들었다. 그가 마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형은 정중히 술을 잔에 따라 이하응의 묘비에 바쳤다.
바치고서는, 무언가 끊어진 듯이 실없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거 참. 뭐가 그럴 줄 알았다는 거요. 아비 된 도리로서 자식 생각은 들지도 않더이까?"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이형이 미래에서 온 귀신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럼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을 제 자식, 이명복은 어떻게 된 건지에 대해서 되묻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온 귀신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내가 끝내 못 이겼던 거라고 비로소 이해하고서 세상을 떠나는 게 어디 범인의 사고방식인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하응이 물었다고 또 순순히 답해준 이형은 제정신이던가.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사실 나는 당신 아들이 아니라 미래에서 온 귀신이오-라고 말해주는 것도 범상한 정신머리로 할 짓은 아니었다. 사실 당신 아들은 진즉 죽었고 난 당신 아들 흉내를 내고 있던 귀신이라고 말해줬을 때 범상한 인간의 반응은 무엇일까? 헛소리라고 웃어넘기거나 단번에 눈이 까뒤집혀서 멱살이라도 잡으려 드는 것이 보통일 거다.
그러나 이하응은 되려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것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이형은 이형대로, 이하응은 이하응대로 이명복의 행방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세간 사람들이 이 부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좋은 소리는 십중팔구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긴, 그것도 이제 와서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형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어디에 있을까? 윤회전생 하였을까, 그처럼 누군가에 귀신이 들리기라도 했을까, 그도 아니면 저승으로 갔을까.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이형이었기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아무튼, 그가 이 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영혼이 실존한다는 걸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어쩌면 다시 그의 일생에 시작점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시 시작한 이하응이 만들 조선은 또 어떠할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지만, 그건 분명 이형이 지금 만든 대한제국보다는 더욱 세련되고 견실하며 강건한 나라가 되리라.
언제나 그렇듯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야 누군가가 생각한 것을 엿보고서 따라 하는 것이 쉬운 법이니까.
"김좌근도 갔고, 허계도 갔고, 박규수도 갔고, 이하응도 갔고, 바둑이는 이제 제자리에서 서기도 힘들어하고··· 다들 떠나가는구나."
이형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이하응까지 떠나가고 나니 회한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멀리도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생각하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멀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달리고, 또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서 죽겠다 했었지."
이형은 새삼스럽게 되새겼다. 그의 시작점과도 같은 맹세였다. 그리고 그의 심장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그럼 이제 앞으로 해야 할까? 그 대답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잘 보고 계슈. 이 망나니 놈이 어디까지 가고서 심장이 터져 죽는지는 보셔야 할 거 아뇨."
이형은 묘비를 등지고 섰다. 이하응의 한이 고작해야 비결을 들려주었다고 풀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하응 귀신이라면, 반드시 이형이 어디까지 다다르고서 죽는지까지 모두 본 다음에야 속이 시원하다며 성불할 거라는 확신이 이형에게는 있었다.
그가 만일 정반대의 처지였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했을 테니까.
* * *
1900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의미 깊은 해였다. 우선 19세기의 마지막 해였고, 역사상 최대의 국제기구인 천하회맹(天下會盟, League of Nation)이 기나긴 담론 끝에 마침내 각국에 의해 최종적인 승인을 얻어 본격적인 부지 확보에 들어간 해였으며, 케임브리지에서 영국 파시스트 선언이 발표된 해이기도 했다.
"원시적인 상태의 동물과도 같은 인간과 문명화된 상태의 고귀한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정신적 고귀함이라 할 수 있다. 짐승은 배가 고프면 먹고, 잠을 자고 싶으면 잔다. 짐승은 당장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 급급해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알고자 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정신적 가치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오로지 고귀한 인간만이 그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가치의 진귀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신적 가치는 무엇인가. 신앙인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적 진리조차 영원하지 않다. 지난날 우리가 상업을 그릇된 것이라 여겼으나 오늘날 우리가 추앙하듯이, 모든 건 상대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면 고귀한 인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도시에서 살던 도시인과 농촌에서 살던 농민의 가치관은 분명히 다르고, 혹한지에서 온 인물과 열대에서 온 인물의 가치관은 다르다. 진실한 인간상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에 있다. 사회가, 환경이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를 결정한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같은 사회와 환경 속에서는 대개 엇비슷한 인간상이 완성된다.
고귀한 인간이 진정 추구해야 하는 건 정신적인 가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만드는 것은 사회이다. 따라서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인간 개인에게 있어서 그 가치를 완성하고 또 재단하는 사회란 유일무이한 절대 가치일 수밖에는 없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존재할 때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으며, 공동체에 이바지하려고 할 경우에만 그의 인생은 가치 있을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공동체에 부여된 과업을 완수할 때 우리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진정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들의 공동체를 부수고 해체하려 하고 있다. 민족도, 국가도, 모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허상에 불과하므로 이를 깨고 나와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다. 이는 곧 고귀한 인간을 사리사욕을 채우기에도 급급한 짐승으로 돌려놓으려는 범죄행위이며, 하와를 꽤 내려는 뱀의 이간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우리의 언어! 우리의 문화! 우리의 민족! 우리의 조국!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어떠한 행위도 우리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민중이여, 깨어나라! 국민이여, 단결하라! 우리의 이 두 주먹으로, 저 간교한 뱀을 때려눕히자!"
다른 무엇보다 세계주의에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천하회맹이 발족하던 시기에 맞추어 일부러 이와 같은 선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 무렵 영국의 내적 갈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내각에서 다가올 세계 속에서 영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를 고찰하고 있을 때, 또 한쪽에서는 세계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천하회맹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규정하는 선언문이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바로 이 천하회맹을 처음 제창한 한국이 레닌이 칭찬한 원시 공산주의적 전통을 간직한 공산국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꼭 레닌의 주장을 믿지 않더라도, 지난 러시아 내전에서 한국이 러시아 혁명의 성공을 도왔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천하회맹 가맹 결사반대!"
"위대한 고립이여, 영원하여라! 룰 브리타니아 만세!"
이는 영국 전역에 걸친 가맹 반대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그렇다고 이제 와 현 내각에서 이들의 반대 의사를 반영할 리도 만무했다. 그들이 이 천하회맹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이 천하회맹의 이사국으로 추대됨으로써 어떤 이익이 있을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더 이상 명예로운 고립은 아무런 의미도 없소! 명예로운 고립을 버리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란 말이오!"
이러한 기존 내각과 파시즘 진영의 갈등은 오래갈 듯 보였다. 처음에는 앞장서서 극좌 진영을 탄압하여 질서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내각의 결정에도 거스르니 이용가치가 다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 힘의 대결에서 당연하게도 우위를 쥔 것은 기존 내각이었다. 인맥에서도, 명분에서도, 재력에서도, 정치력에서도. 모든 면에서 기존 내각이 이들을 막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1900년 하원 총선에서 노동당이 제1당을 차지하고 자유당-보수당 연정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이들 파시스트는 그리 오래지 않아 영국, 더 나아가 유럽에서 자취를 감추었을지도 몰랐다.
< 심장이 터져 죽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