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66화 (466/530)

466화 이슬람 파시즘

영국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것이 사회주의 세력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무렵 영국 노동당이 영국 내 최대의 좌파정당이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당 강령에 사회주의는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분명 내부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고, 내부당론을 두고서 매일같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들이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굶주린 자들에게 빵을! 집마다 겨울을 날 따스한 석탄을! 병 든 자에게 의사를 만나 진찰받을 권리를! 집 없는 자들에게 따스한 스튜와 부드러운 담요를!"

문제는 그들이 복지 확대와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병술 보고서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와 같은 복지제도들을 영국에 도입하고자 시도했다. 물론 그들이 선거운동 중 유권자들에게 제시한 이러한 구호들이 지금 당장 영국에서 실현되기 어려우리라는 건 그들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고 영영 손 놓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전쟁이 끝난 지금이야말로 그 첫걸음을 내디딜 기회라고 영국 노동당은 확신했다. 영국의 무산계급이 전쟁 중 흘린 피를 생각하면, 이러한 보상은 응당 당연하다고 노동당은 생각했다.

"가난한 자의 목숨은 목숨조차 아니던가? 가난한 자의 애국은 애국이라고 존중받을 가치조차 없나? 기백만의 피가 흘렀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흐를 것이다. 우리는 조국에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우리의 조국이 애국자들이 흘린 피를 받기에 걸맞은 나라라는 걸 증명받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노동당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최소한의 협상 조건을 내걸었다. 이렇게 제시된 협상 조건들은 어찌 보면 기초적인 것들이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보장 장치들이었고, 이는 곧 추가적인 예산 지출을 의미했다. 새로운 지출이 발생했는데 새롭게 이익을 얻을 구석은 없으니, 결국 남은 건 증세뿐이다.

그러나 노동당이 그들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증세를 감행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애당초, 영국의 노동자들을 제아무리 쥐어짜 봐야 이러한 사회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재화를 마련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부유한 자들이다. 바로 귀족과 자본가들이다. 혜택을 볼 입장에서야 가진 것도 많으면서 뭘 그리 좀스럽게 구느냐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어떨까?

당연히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영국의 귀족들과 자본가들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런던이 잠시 함락되었을 때 가진 자산을 털어 런던 탈환을 위한 영광스러운 방위군을 구성하였던 우리에게 뭐하나 돌려주는 건 없이 세금이나 더 내라고?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나는 이번 전쟁에서 우리 연합왕국의 승산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알고서도 애국심 하나로 전쟁 국채를 사들였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나는 큰 손해를 봤지. 그런데 그 손해를 언제쯤 메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세금이나 더 내라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영국의 상류층은 자신들이 연합왕국을 위하여 충분한 헌신을 바쳐왔다고 자부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애국의 대가를 받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지, 더 많은 부담을 질 차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들이 애국의 대가를 받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던 건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영국이 계속 승리하던 동안에는 상관없었다. 그들은 패배한 나라들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 대가를 취하여 국내의 불만 세력들에게 나눠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패자였고, 모두가 만족하는 건 불가능했다. 남은 길은 두 가지였다. 서로서로 양보하여 원만하게 타협하거나, 아니면 그나마 타협할 수 있는 세력끼리 힘을 합쳐 가장 이질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목소리를 짓누르거나.

유감스럽게도 영국이 택한 건 후자였다. 자유당의 부르주아들은 증세를 피하고자, 보수당의 귀족들은 이 이상 정치 권력을 내주고 싶지 않아서 서로 손을 잡았다. 홀로 남은 노동당은 분개했다. 그들은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서도 자유당과 보수당의 연정으로 집권하지 못했다.

"개 같은 토리 놈들! 이럴 줄 알았지! 수상 자리를 훔쳐 가다니, 감히 우릴 배신해? 용서하지 않겠다!"

"훔쳐? 우리가 훔쳐 갔다고? 이 휘그 놈들은 양심도 없군! 우리가 좌석이 더 많은데 그럼 당연히 우리가 수상이 되어야지 좌석도 더 적은 너희 휘그 놈들이 가져가야겠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보수당과 자유당의 연정도 순조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당초 매일 같이 서로 다투고 헐뜯던 두 앙숙이 손을 잡았다고 갑자기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장 먼저 수상이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다퉜고, 그다음에는 내각 임명을 두고서 다퉜다.

이런 와중 노동당은 하원을 도둑맞았다며 노조들과 함께 원외투쟁에 나서고, 아일랜드에서는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연일 이어졌다.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지원이 나날이 늘어나며 처음에는 산발적인 테러에 지나지 않던 아일랜드 사태는 점차 지하 점조직들이 활성화되고 본격적인 민병대가 조직되면서 내전에 따르는 규모로 화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삼당이 서로 헐뜯고 다투며, 런던에서는 노조와 경찰의 충돌이 날로 격화되는 와중, 아일랜드에서는 영국군과 아일랜드 독립군이 내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내각은 이제 대영제국이 문제가 아니라, 연합왕국 그 자체가 파괴될 위기에 빠졌다는 걸 눈치챘다.

"찰스 워렌을 불러들여라!"

그리하여 찰스 워렌의 영국 파시스트 연맹은 공적인 지위를 얻었다. 본격적인 정당 활동이 아니라, 정치 깡패에 가까운 지위였지만 말이다. 그의 영국선봉대는 본토에서는 노조와 싸우고,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독립군과 싸우며 맹활약했다. 그리고 선봉대가 활약해야 하는 곳이 늘어날수록, 영국의 파시스트들은 빠르게 그 규모를 키워갔다.

이러한 선봉대의 활약은 그와 같은 처지의 다른 유럽 국가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이 공산주의를 부정하는 만큼이나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의회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부는 유럽에서 한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 한 손에 꼽던 나라들도 이제는 더욱 줄어가는 추세에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 파시스트가 누구보다 적극 공산주의자들을 막으려 하며, 또한 이들이 민족주의를 무엇보다 강조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이는 특히 민족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라들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고귀한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건 사리사욕 따위가 아닌 정신적 가치이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인간은 짐승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은 온통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짐승들 소굴이다! 세상이 온통 짐승으로 가득 찬 와중에, 오직 우리 튀르크만이 인간성을 간직하고 있다!"

오스만 튀르크가 그 대표 격이었다. 술탄 압뒬하미트 2세의 반민족주의, 범이슬람주의 정치에 진저리를 내고 있던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은 영국의 파시스트 선언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파시즘은 그야말로 터키를 위하여 만들어진 이념인 것만 같았다. 물질적 가치를 배격하고서 정신적 가치를 숭상하는 파시즘은 이슬람 신정에 익숙하던 터키인들에게 딱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이는 술탄 압뒬하미트 2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범이슬람주의를 내세워 허물어져 가는 제국을 유지하려던 술탄은 파시즘이 강조하는 정신적인 가치를 이슬람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통치 사상으로서 내세웠다. 파시즘에서 모든 건 상대적 가치에 불과하니 불변의 진리 따위는 없다며 종교적 진리를 부정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거야 적당히 고치면 그만이 아니던가?

파시즘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대적 이념이었고, 이는 근대화와 전근대의 틈에서 신음하던 압뒬하미트 2세에게 마치 제국을 위하여 준비된 이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제국의 이맘들에게 명하여 제국을 하나로 묶을 새로운 이념을 창시할 것을 명했다.

"인간은 이슬람 공동체 속에서 존재할 때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으며, 꾸란에 순종하고자 할 경우에만 그 인생은 가치 있을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슬람 공동체 속에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선지자 무함마드께서 이슬람 공동체에 부여하신 종교적 과업을 완수할 때, 우리가 진정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술탄의 명령에 따라 오스만 튀르크의 이맘들이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을 제시하니, 곧 이슬람 파시즘의 탄생이었다. 술탄은 메카의 칼리파인 자신을 이슬람 파시즘에서 추종해야 할 초인이자 어떠한 오점도 없는 영도자로 설정했고, 그의 통치가 미치는 범위를 무슬림이 존재하는 지구 위의 모든 영역이라 규정했다.

당연하게도 이는 청년 튀르크당을 위시한 제국 내 세속주의 세력에게 맹렬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제국 내 보수주의 세력에게는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거부하던 그들에게 이슬람적 가치를 내세운 이슬람 파시즘의 등장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부족했던 점을 채워주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술탄의 독재 권력은 이슬람 파시즘에 근거하여 정당화되었다. 술탄은 이슬람 파시즘에 근거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 그가 폐지하였던 미드하트 헌법을 「낡고 터키에 부적절했던 것」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스만 튀르크의 공용어를 터키어에서 아랍어로 바꾸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제국은 술탄의 사유물이 아니다! 오늘날의 튀르크 제국은 마땅히 튀르크 민중의 것이다! 설령 파디샤라고 하여도 튀르크 민족을 파괴하려는 어떠한 행동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을 자극했다. 그렇게 제국은 둘로 갈라섰다. 술탄과 전통적인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이슬람 파시즘과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터키 파시즘의 두 가지였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파시즘은 오스만 튀르크를 지배하는 지배이념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슬람이냐, 터키냐를 논할 뿐 파시즘을 그들을 위한 그들의 사상으로서 받아들였다.

각각 러시아,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폴란드와 헝가리 두 공화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폴란드 민족이여! 윙드 후사르의 후예들이여, 일어나라! 마침내 우리의 시간이 왔다! 야만적인 루스인들에 맞서 유럽 기독교 문명을 수호할 새로운 아침이 밝았도다!"

"마자르 민족이여, 깨어나라! 우리의 적들에게 우리의 말발굽 소리를 기억나게 해주자! 우리의 군홧발 소리로 유럽을 전율케 하자! 우리 마자르인이야말로 다뉴브의 진정한 패자임을 보이러 가자!"

전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주요 열강들이 침묵하는 동안, 이들은 그야말로 미친개처럼 사방팔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취약한 발칸 소국들과 패전한 오스트리아와 내전과 혁명의 여파로 기진맥진하던 러시아는 좋은 표적이 되었다. 파시즘 정당이 집권한 헝가리 공화국과 달리 폴란드는 딱히 파시즘 정당이 집권한 것도 아니었지만, 강경함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헝가리는 이탈리아와 손잡고서 공공연히 발칸 패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를 분노케 했고, 폴란드는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에 접근하여 러시아 혁명 정부를 발작하게 하였다. 프로이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폴란드는 동프로이센과 그단스크 또한 요구했다.

유럽 패권 완성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평화로운 정세를 추구하던 프랑스의 개입으로 인해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들의 폭주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불만을 폭발시켰다.

"도대체 저깟 놈들이 뭐라고 우리가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자연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민족주의 강경파가 득세하였다. 가장 먼저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보위에 오르면서 독일 민족주의계 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식 국호를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에서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으로 고쳤다.

이는 패전으로 헝가리와 갈리치아-로도메리아 등 비독일계 민족이 주류가 되는 영토를 상실하면서 독일 단일 민족국가에 가까워졌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민본주의에 근간한 민족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워 전통적인 귀족 권력을 깎아내릴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했다. 자연히 신생 독일 제국은 건국과 동시에 독일계 제후들과의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그 반면 러시아에서는 혁명기에 전멸한듯하였던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부활하며 혁명 정부의 권위가 위협받게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가 약해진 것은 나약한 좌익 진영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더욱 강한 정부! 더욱 강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군! 대 러시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이들은 원세개를 위시한 아주 합동군에게도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 러시아 민족주의 진영은 러시아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섭정왕으로 천년만년 군림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원세개에게는 당연히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저 파란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랑 우리가 대신에 싸워주기라도 해야 하나? 저놈들만 없었어도 당분간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젠장!"

물론 이형을 위시한 한국 정부에서 폴란드가 침공해오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선제침공으로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걸 허락해줄 리도 없었기에, 원세개로서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따름이었다.

이렇듯 전후 유럽은 평화로워지기는커녕 전쟁 이전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진 듯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나라들이 대다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중 힘으로 찍어누르고 있던 노조 운동이 사방팔방에서 터져 나오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된 지 오래였고, 프로이센에서는 군내 극좌 세력에 의한 적색 쿠데타가 발발하여 공산화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었다. 네덜란드처럼 아예 본국에서 쫓겨나 동인도 식민정부에 사정사정하는 처지가 된 나라는 아예 논외였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런 나라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령 전쟁 중 저지대를 확보한 프랑스나, 지브롤터를 탈환하면서 위신을 한껏 드높인 스페인 등이 그러했다. 이처럼 안정적인 국내정치야말로 이들이 진정한 승전국이라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그 안정적인 국내정치를 과시하고 있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대답은 간단했다. 그들과 같은 승전국과 함께 전후 세상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가령 한국, 미국 같은 나라들과 말이다. 영국 외교부에서 예측한 바와 같이, 세계는 이미 프랑스, 미국, 한국 3개 열강에 의한 공동통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1901년 1월 1일. 천하회맹 발족까지 1달여를 남겨두고서 한자리에 마주 앉은 3대 열강의 외교 실무진들이 처음으로 꺼내 든 안건은 이러했다.

"그럼, 우선 대영제국을 어떻게 해체할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그건 곧, 지금까지의 세계를 어떻게 파괴할지에 대하여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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