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68화 (468/530)

468화 리옹 회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이들 3개국의 만남은 고성이 오갔어야 할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우선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현대전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지난 두 차례의 전쟁에서 이미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그와 같은 인명과 재화의 낭비를 반복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물론 없겠지요. 아니,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필코 없어야 하겠지요. 만일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은 비극만을 낳을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는 전 인류가 알 때도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만남이 특히나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3개의 대륙에서 모인 우리 3개국이 뜻을 하나로 모았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전 인류가 평화를 갈망하게 되었다는 걸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자리가 계속하여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평화를 깨트릴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3대 대륙 간의 공조가 끊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 모두 평화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결코 순수한 뜻에서 평화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한·미·불 3개국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 했지 새로운 열강이 등장하거나 어느 한쪽이 완전히 추락해서 정상을 두고서 전면전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말하자면 사다리 걷어차기를 위한 독과점이었던 셈이다. 거기에 지금 당장은 이들 3개국의 핵심이권 영역이 겹치지 않는 것도 주요했다. 미국은 최저한으로 아메리카 대륙만 온존하면 되었고, 한국은 최저한으로 동북아시아만 온존하면 되었으며, 프랑스는 최저한으로 유럽 대륙만 온존하면 되었다.

어느 한쪽이 대양에서 특별히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혹은 설령 욕심부리더라도 반대쪽에서 양보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계속 공존할 수 있는 구도였던 것이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경쟁하거나 할 수는 있어도,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아예 배제하려고 하기에는 그럴만한 원한도, 동기도 없었다. 서로 그 방향성은 달라도 계몽주의라는 이념적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3개국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들의 공존이 깨지는 순간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배제하려고 드는 순간이 아니라, 어느 한 나라가 대내외적인 이유로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순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서로 간의 견해 차이도 확인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선 대영제국 해체를 논한다면 요즈음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아일랜드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아일랜드인들은 연합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그들만의 민족국가를 건설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연합왕국의 아일랜드 통치는 야만과 폭력과 악의의 극치입니다.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에서 문명인의 의무를 다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재미를 위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수탈하고 있으며 또한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학살하고 있습니다."

"잠시만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 직간접적인 학살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겁니까?"

"그야 물론 직접적인 학살은 총과 칼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학살이고, 간접적인 학살은 고의로 조장된 기근을 통한 학살이지요. 그리고 어느 쪽이나 끔찍하고 야만적이라는 사실만큼은 같습니다. 영국인들은 반드시 이 일의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맨손으로 아일랜드에서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제가 익히 알기로, 본래 영국 민족과 아일랜드 민족은 분명히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민족이 다르고, 종교도 다르며, 사는 땅도 다른데 어찌 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아일랜드는 독립해야 마땅합니다."

"좋습니다. 우리 프랑스는 본디 골 족의 후예로, 대분류로서는 아일랜드인들과 같은 켈트인입니다. 어찌 동포들의 비극을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아일랜드는 독립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었던 아일랜드 문제는 3개국의 적극적인 찬성 속에서 통과되었다. 물론 이들이 겉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일랜드인들의 비극에 공감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아일랜드를 독립시키는 것이 그들의 국익과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자국 내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후원하고 있는 아일랜드를 독립시켜 앞으로 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 했고, 프랑스는 영국의 예비용 곡창인 아일랜드를 독립시킴으로써 영국이 지금 이상으로 프랑스산 농산물 수입에 의존하게 하고자 했으며, 한국은 그냥 지금 이상으로 영국이 조각나면 아시아에서는 영국이란 나라의 얼굴을 더는 볼 일이 없어질 테니 동의했다.

그렇게 첫 의제였던 아일랜드 독립 문제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당사자의 의견과는 무관계하게 말이다. 영국으로서는 설마하니 본인들이 그들의 특기에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겠지만 말이다.

"첫 의제부터 만장일치라니 기분이 좋군요.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세를 이어서 곧장 다음 의제로 넘어가 봅시다. 아일랜드 이외의 왕국, 그러니 아일랜드를 제외한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각자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으음, 글쎄요. 제가 알기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분명 잉글랜드와는 다른 민족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그들이 독립을 요구하고 있거나 한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일랜드와 달리 본국 정치에 접근할 권한도 충분히 제공되어 있고 말이지요. 우리 대한으로서는 가능하다면 현상 유지가 최선이 아닐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그들의 의견인지 아니면 잉글랜드인들이 강요한 목소리인지는 이제부터 살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우선 저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진짜 목소리라 하심은?"

"물론 국민투표가 되겠지요. 영국인들은 그들의 운명을 그들의 손으로 결정지을 권리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 문제는 연합왕국 전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이 두 지역에 있어서만 한정되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잉글랜드인들에게 저들의 독립을 묻는다면 당연히 반대 몰표 밖에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 정도면 이해할 만 하군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 안건은 그대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두 번째 안건, 연합왕국의 존속 문제에는 의견이 갈렸다. 우선 한국에서 현상 유지를 이야기하면서 직접 반대의견을 표출한 것이다. 이는 이 무렵 대한제국 또한 영국과 마찬가지로 동군연합 체제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아일랜드만 떼어내도 아시아에서 영국을 만나게 될 일이 없을 텐데 구태여 불필요하게 욕심을 부렸다가 제국 해체를 외치는 불손한 세력들에게 빌미를 줄 필요는 없었다.

미국에서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일단 국민투표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영국에서 공정하게 치러질까 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노동당이 총선에서 이기고서도 정권을 잡지 못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반체제 분자들을 파시스트 돌격대가 때려잡고 다니는 것이 지금의 영국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진행해봐야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거나, 때에 따라서는 아예 시작되지도 않을 게 뻔했다.

가장 이 문제에 적극적이어야 했을 프랑스 또한 미국의 의사를 존중하는체하며 진행에 집중하였을 뿐 따로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영국을 완전히 공중분해 시켜야 할지, 아니면 굴종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영국에서 순순히 무릎을 꿇는다면, 영국을 일부러 공중분해시키는 건 프랑스가 손에 넣을 지분을 제 손으로 줄이는 격이었다.

때문에, 연합왕국 문제는 우선 국민투표를 제의해보자- 정도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봅시다. 이건··· 어이쿠, 조금 이야기가 거칠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자유로이 의견을 주고받아 봅시다."

"그 건에 관해서는 일전에 영국에서 약속하였던 대로 되어야겠지요. 인도는 독립하여야 할 것이고, 해협식민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밖의 식민지들에 대해서는··· 으음, 원칙대로 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해두지요. 좌우지간, 그들은 약속을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으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모든 식민지의 독립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해석해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물론 언젠가는 모든 식민지가 독립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만, 지금 당장 이들 나라가 자립하도록 요구하는 건 그들에게도 다소 갑작스러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시아에 새로이 독립한 나라들이라면 우리 대한에서 책임지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도울 수 있겠지만,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은··· 글쎄요. 저희가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한 이야기지요. 우리 미국만 해도 옛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을 쟁취하고, 오늘날까지 오는 데에 얼마나 많은 행운과 고난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갑작스럽고 무책임한 독립은 식민지인들에게도 결코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자립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난 다음, 순리에 따라 독립하게 되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도,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적절하겠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껏 영국에서 약속한 대로 캐나다 자치령, 인도 제국, 해협식민지를 독립시키고, 추후 새로이 독립하게 되는 식민지에 대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3개국 중 해당 국가와 연이 있거나, 해당 대륙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에서 해당 식민지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책임지고서 후원하도록 합시다. 어떻습니까?"

그 반면 세 번째, 식민지 안건에서 프랑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끌어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식민지 문제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본제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측의 질문에 대한 한국 측의 답변은 그동안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고, 미국 측에서도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대륙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라는 표현도 그러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자신이 사는 나라를 제외하고서 다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야 당연히 다른 나라를 뻔질나게 여행하고 다녔어야 할 것이다. 이를 국가에 대입하여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교역이 되었든지 침략이 되었든지 간에 다른 대륙을 뻔질나게 들쑤시고 다닌 것이다.

한국은 이제 열강이 된 지 30년도 안 된 신생 열강이니 당연히 여기에서 빠질 수밖에 없고, 미국도 그간 먼로 독트린 등으로 고립주의 원칙을 지켜왔으니 당연히 빠진다. 결국, 남는 건 전통적인 열강으로서 그야말로 오대양과 육대주를 들쑤시고 다닌 프랑스 밖에는 남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는 미국과 한국이 앞마당 관리를 할 동안 프랑스는 세상을 관리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 가만히 듣고만 있을 한국과 미국도 아니었다.

"잠깐,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가령, 해당 식민지가 자립하기 위한 도움을 주는 데에 둘 이상의 나라가 나섰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흐음, 그 경우에는 물론 두 나라가 함께 힘을 합쳐야겠지요. 아시아에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을수록 좋다. 그 말대로입니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량한 도움의 손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야 물론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일부러 이 자리를 빌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함께 돕는다고 하여도, 우선은 그 전에 두 나라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할 테니까요. 혹, 귀국 프랑스에서 스페인과의 중재를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리핀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건···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군요. 지금은 대영제국의 처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까?"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하고자 하는 모임이기도 했지요. 우리 대한에서도 스페인 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필리핀 또한 언젠가 독립할 것이고, 그 전에 이에 관하여 세세한 역할분담을 정해두지 않는다면 후일 막상 일이 닥쳐오고 난 다음에야 논하게 되는 불상사가 있지는 않을까 하여 부탁하는 것입니다."

"으음, 글쎄요.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잘 모르겠군요. 이미 스페인에서는 우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들의 압제에 반발한 현지 주민의 손에 식민지 통치의 실패를 맛본 바 있지 않습니까? 스페인의 식민지배는 영국의 식민통치와는 또 다릅니다. 그들의 식민통치는 일체의 지연 없이 지금 당장 종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필리핀의 독립을 두고서 스페인과 논의하는 건 경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지나친 발언이시군요. 이 자리는 스페인을 성토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스페인 왕국은 우리 프랑스 제국의 충성스러운 우방이기도 합니다. 그 이상의 모욕은 가만히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다소 흥분한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이건 말해야겠습니다. 어느 식민지가 독립하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독립을 후원할 나라는 둘 이상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작게는 열국 간의 경쟁을 초래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다다익선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이럴 때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책임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매번 어떤 나라가 해당 식민지의 독립을 후원할 것인지를 정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글쎄요, 그건 다소 번거롭지 않을까 우려스럽군요. 저희가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럴 바에야 열국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후원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 경쟁에 무력이 동반되지 않기를 바라야겠군요."

막상 이야기의 물꼬를 튼 건 한국이었음에도, 본격적인 설전은 미국 측과 프랑스 측의 주도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에게는 필리핀 독립은 그냥 한 번 이야기를 꺼내 봤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흐지부지되어도 되는 수준의 이야기였지만, 미국에는 쿠바 독립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사업이라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목에 칼을 겨눠진 쪽이 더욱 설전에 적극적일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는 경쟁으로 정하자는 프랑스의 제안이 미국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그러했다. 그런 조그마한 후퇴조차 양보할 수 없을 만큼 미국에 쿠바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천하회맹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이건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한국에서도 미루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 식민지 안건은 「영국이 약속을 지키게 한다」만 결정된 채로 흐지부지되었다. 이는 프랑스에는 남 좋은 일만 시켜준 실망스러운 결과였고, 미국에는 프랑스와의 견해 차이를 확인한 찝찝한 결과였으며, 한국에는 원했던 것을 전부 얻고서 치고 빠진 대성과였다.

그리고 이날의 회담은 얼마 안 가 세간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자세한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말이다. 최소한, 이들 3개국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이 개자식들이 기어이 우리 대영제국을···!"

당연히 이 소식에 가장 질겁한 것은 영국 외교부였다. 이들은 그들의 외교 회선을 통해 대강 이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아차렸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영국으로서는 당장 한 달여 뒤에 있을 천하회맹 발족을 앞두고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물론 길은 있었다. 이들 3개국 중 하나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 마땅치 않았다. 프랑스는 영국이 그들의 속국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공중분해 되는 결말을 바랐고, 미국은 영국이 대서양의 알프스가 되기를 바랐으며, 한국은 아예 영국이 어떻게 되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와 손을 잡기에는 다들 제 앞가림하기 바빴다. 그럼 영국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한국의 환심을 사는 것이 최선, 인가···!"

최악 같은 최선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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