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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72화 (472/530)

472화 영국 망명정부

물론 빅토리아 멜레타라고 진심으로 제 가족 친지들이 떼 몰살을 당하라고 빈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못났으면 나라를 빼앗긴다는 말인가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네요. 인도로 가다가 태풍이나 만나서 머리부터 식히고 있으라지요!"

그저 죽지 않을 정도로만 호되게 고생해보라고 바랐을 뿐.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다르냐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설명은 그랬다. 아무튼, 죽지는 말고 죽기 직전까지 생고생하라는 그녀의 표현 자체가 지금 그녀가 그녀의 친정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으니, 이형으로서는 미리 의사를 물어본 보람은 있던 셈이었다.

황실 내부에서 어떻게든 영국을 돕자는 여론이 생길 가능성은 사라진 격이었으니 말이다. 이형으로서는 한결 자유롭게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하여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 나부터가 우선 언행을 조심해야 하나? 며느리까지 저래서야 나중에 손주들마저 이러는 거 아닐까 무섭군."

그것과는 별개로 이형으로서는 이 일을 계기로 새삼스럽게 자신의 행동거지를 돌아보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친정집이 객관적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지만, 그래도 시아버지 앞에서 제 친정집이 호되게 고생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평범한 며느리는 아니지 않던가. 이형으로서는 새삼스레 손주들의 교육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인제 와서 그걸 고민하기에는 다소 너무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말이다. 하여간에, 행실을 아예 고칠 생각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리라.

"그렇지만 이건 또 황당한 이야기구먼. 그 영국에서 혁명이라니. 이게 도대체 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둘째 며느리의 반응은 이형에게 그녀의 심사를 고려할 필요성을 줄여주기는 했으나 이형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하여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태는 이형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영국에서 군사반란이 일어났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천하회맹이 연기될 거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했을지언정 군사반란 그 자체는 금세 진압되리라 전망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는가? 그 정반대였다. 군사반란으로 런던이 점령당하고 국민이 내각의 무책임함과 무능함에 분노한 끝에 왕실이 영국 본토에서 내쫓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버린 것이다. 이형으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사태였다. 제아무리 이형이라도 이러한 사태까지 사전에 회의에 부치고 준비해뒀을 리는 없었다.

하필이면 영국 망명정부에서 인도로 행로를 정하면서 영국과 합의하였던 인도 독립안이 흔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고 인도로 항로를 정한 영국 망명정부를 거부해도 문제인 것이, 그럼 이제 영국 망명정부로서는 프랑스와 손잡고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영국 본토 상륙 작전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 영국 탈환이 실패한다면 몰라도, 성공한다면 대영제국이 통째로 프랑스의 수중에 떨어지는 건 문제였다.

그야말로 받아들여도 난처하고 거부해도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사태였다. 이 영국 사태가 장기화하면 장기화할수록 천하회맹 발족도 무기한 연기되는 건 덤이다. 이형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영국마저 이 꼴이면 이러다가 조만간에 유럽에서 전쟁이 한 번 더 터질지도 모르겠군."

이는 단지 괜한 걱정만은 아니었다. 영국이 유럽의 외교가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평화 유지였다. 백년전쟁 이래로 유럽 대륙 진출을 사실상 포기한 영국에 유럽 대륙에서의 전쟁은 언제나 열강 순위변동과 패자의 등장 가능성을 의미했기에, 영국은 유럽 바깥에서의 전쟁에 적극적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유럽 대륙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제 영국이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할지, 두 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건 단순히 영국이 약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이제 유럽 대륙은 위기의 순간 천연덕스럽게 두 앙숙 사이에 끼어들어 태연하게 중재를 제안하고 뻔뻔하게 제 몫을 챙겨서 물러날 참견쟁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즉, 위기가 발생하는 순간순간마다 그 위기에 연루된 두 앙숙을 제외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가 없어졌다.

상식적으로, 그 위기가 말로 어떻게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전쟁위기로 번질 리가 없다. 당연히, 두 나라를 억지로라도 중재해줄 참견쟁이가 없다면 이 두 앙숙은 전쟁으로 결판을 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파시즘이 차차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의 유럽에서는, 전쟁위기가 나날이 늘어날 수밖에는 없었다.

"이번에 또 유럽에서 대전이 터지면 이제 슬슬 세계대전이라고 불러줄 수도 없겠군. 끽해야 유럽 대전이려나. 그다음에 또 대전이 터진다면··· 그때는 대전이라고 불러줄 가치도 없는 그냥 전쟁이 될 테고."

이형은 냉소했다. 물론 이번 위기를 프랑스가 잘 수습해낸다면 그때에는 진정한 팍스 유로파가 달성되겠지만, 실패한다면? 아시아와 신대륙이 저마다 발전을 추구하는 와중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세계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유럽 대륙은 끝없는 전쟁에 황폐해지면서 세계의 변방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쯤 가면 이제 진짜로 한국이나 미국이 구 유럽 열강을 경제 식민지로 데려가 기르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보자면 유엔 위임통치령 이탈리아라던가 유럽 지역안정을 위한 평화유지군 파병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정말로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경우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요즈음 제대로 된 휴식은 없이 전쟁과 혼란만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유럽 대륙과 하나의 절대적 힘 아래 평화가 완성된 신대륙, 하나의 가치 위에 평화를 이룩한 아시아 대륙을 비교하면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형은 고민에 잠겼다.

"보자, 그렇게 최악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영국이 저 꼴이 된 이상에야 조만간 유럽에서 전쟁이 한 번 더 세게 터지긴 하겠지. 그 전쟁이 영국 본토 수복 전쟁이 될 것인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지금 영국 놈들이 인도에 정착하는 걸 눈감아주면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저놈들도 라자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반대로 내가 거절한다면 지금 당장에 전쟁이 터질 테고··· 으음."

이형으로서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일단 영국 망명정부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될 수 있는 대로 고르고 싶지 않았다. 꼭 영국 망명정부가 프랑스에 숙이지 않더라도, 뚜렷한 거점을 잃어버린 영국 망명정부가 자진해산 된다면 어쨌든 가장 이익을 보는 건 프랑스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 망명정부의 인도행을 인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에게 가장 큰 의문점은, 설령 영국 망명정부가 인도에 정착한다고 해도 몇 년이나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점이었다. 사실상 몸만 덜렁 온 그들에게 인도인들이 반발하기 시작하면 이를 억누를만한 힘이 없고, 그렇다고 인도인들을 영국인과 대등한 국민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냥 인도 정부지 영국 망명정부가 아니다.

만일 영국 망명정부가 인도에 정착하는 걸 묵인해주었다가 나중에 인도인들이 영국 망명정부를 내쫓아 버리게 되면 그때는 한국이 막을 수 있었으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며 원망을 듣게 될지도 몰랐다. 영국 망명정부가 인도에 정착하는 걸 묵인했다는 건 결국 한국에서 인도 독립이 기약 없이 연기되는 걸 묵인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결국, 고심하던 끝에 이형의 결론은 이러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오라고 해. 이렇게 된 거 그냥 인도 정부나 돼버리라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무굴제국이라던가, 그렇게 나쁠 것도 없잖아? 그냥 유럽에 돌아갈 생각은 포기하고 남은 평생 갠지스강에서 목욕도 좀 하고, 명상도 좀 하고 지내라지 뭐."

한마디로, 인도에 정착하는 건 막지 않겠지만 정 인도에 정착할 작정이거든 하다못해 인도인들을 그들의 백성으로서 대우하라는 이야기였다. 일개 식민지가 아니라 본국과 마찬가지로 대우하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요구를 과연 영국 망명정부에서 받아들일 것인가는 불분명했지만, 사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에도 방도는 있었다.

그냥 영국 망명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서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면 그만인 이야기였으니까. 하다못해 영국 본토에 남아있던 시절의 영국 정부라면 몰라도, 가진 거라고는 함대밖에 없는 영국 망명 정부에게 과연 한국이 인도를 억지로라도 독립시키려 나서면 그걸 막을 힘이 있기는 한가는 말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이는 결국 지금 당장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일단 정착에 대해서는 묵인하되 정착하고 난 다음 인도 통치에 관여해서는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대영제국을 상대로 내정간섭조차 불사하겠다는 대단히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으나, 이 무렵 이형에게는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바로 8년여에 걸친 신농유업 계획의 첫 장이 마무리되었던 것이었다.

"오, 오오! 드디어 나온다! 드디어 우리 진나라 땅에서도 화학비료가 나온다!"

"으하하! 이제 드디어 그 아니꼬운 제나라 놈들 얼굴 볼 일이 없어지겠군! 낄낄, 우리도 이제 더는 너희에게 손 빌릴 필요 없어졌다, 이거야!"

물론 이는 신농유업 사업 그 자체의 종료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이 신농유업 자체가 멀리 30년을 내다보는 사업이었으니 그리 금방 끝날 수는 없었다. 다만, 인부들을 수백 수천만씩 동원해야 하는 단계는 일단 지나쳤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첫 삽을 떴던 한국에서는 이미 전국적인 질소 비료 보급이 완료되어 주변 제후국에 수출할 수 있었으며, 제와 청 등에서도 보급률 50%를 넘기며 그 뒤를 이었다. 가장 보급률이 뒤처진 것은 신농유업 사업 진행 당시 가장 미적지근한 참가율을 보였던 일본으로, 지번마다 보급률이 16%에서 110%를 오가며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열국 중 가장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던 대한제국에서도 가장 질소 비료의 보급률이 낮았던 헤이룽강 근방이 97%, 가장 질소 비료의 보급률이 높았던 호남평야가 124%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도 유별난 경우였다. 꼭 한국의 예시를 들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내부적 문제점이 심각한 초 또한 가장 보급률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격차가 40%대를 넘기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내 귀국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능하다면 귀국의 내정에 간섭할 생각은 없었네만. 근래에는 정말로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군. 이럴 바에야 차라리 질소 비료의 보급도 식농기구에게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소?"

"황상께서 이런 동방의 소국에조차 마음을 써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나이다. 하나 어찌 괜스레 상국을 번거롭게 하여 황상께 잘못을 하리오리까. 소인은 다만 각골난망하여 황상께서 내리신 큰 덕에 보은할 생각뿐임을 알아주소서."

"허, 참."

끝내는 보다 못한 이형이 하다 하다 아예 보급까지 식농기구에서 전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할 지경이었다. 질소 비료 생산과 배급은 각국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대놓고 일본에서는 배급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한 격이었다. 물론, 요시노부가 정중히 거절하면서 흐지부지되었지만 말이다.

다만 요시노부로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일본 혼자서만 식농기구의 주도 속에 보급을 진행한다는 것도 꼴이 우스웠지만, 이 무렵 일본인들- 보다 정확히는 각 번의 지번사들에게 식농기구가 그만큼 달갑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저 외인(外人)들이 이래라저래라하는 꼴을 가만히 참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에도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 일본인가, 조선인가? 국적을 밝혀라!"

"은근슬쩍 조선의 지시를 빙자하여 예도에서 각 지번을 약화해 최종적으로는 폐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북해도에서 독자적으로 식농기구의 간섭을 용인하며 독립적인 외교적 지위를 얻으려 시도한 이래로, 일본의 각 번과 중앙정부의 갈등은 나날이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들은 겉으로는 「식농기구는 조선의 앞잡이이며 이를 받아들이려는 자들은 모두 매국노」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실상은 그저 식농기구를 핑계로 갈수록 줄어가는 각 번의 권한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평소라면 그걸로 타협하고 물러났겠지만, 문제는 중앙정부라고 함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에 이 문제로 나라가 조각조각 날 뻔했으면서 이에 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건 그냥 국정에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았다. 2차 에조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각 번을 완전히 무릎 꿇리고서 진정으로 하나 된 일본을 완성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인제 와서 정부 주도의 개혁을 밀어붙이기에는 개혁 지지파도 돌아섰을뿐더러 백성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개혁동력이 부족했고, 요시노부에게 이형 같은 절대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손을 벌린다면 매국노라며 불평하는 지번사들에게 명분을 주는 격이었다.

결국,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서 대치가 계속될 수밖에는 없는 까닭이었다.

"뭐, 저들이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데 구태여 한 손 거들어줄 필요가 있나. 정 삽질하다가 더는 못 해 먹겠다 싶거든 제가 알아서 싹싹 빌면서 찾아오겠지."

하지만 과연 이러한 일본의 사태가 전체 범 아주 조약기구나 이형의 구상에 방해가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일본의 사례는 다른 주변의 제후국들에는 일종의 반면교사처럼 받아들여졌을뿐더러, 이형으로서는 일본이 여차하면 배신하거나 범 아주 조약기구에서 이탈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던 차에 일본이 정치개혁의 미진함 탓에 제풀에 주저앉는 꼴을 보여주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형으로서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중앙정부와 지번의 갈등이 육군에까지 미치게 되면서, 안 그래도 해군에 중점을 두던 일본에서 그나마 중앙정부에서 독점하고 있는 유일한 전력인 해군력 증강에 더욱 몰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사분오열된 판국에 해군력을 통한 국외 국력 투사가 뜻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당장에 해군력만 있는 영국 망명정부가 지금 어떤 꼴인가를 생각해도 그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식농기구에 일본인들을 중히 써볼까?"

따라서 이형이 생각한 것은 일종의 이이제이 전략이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식농기구에서 일본계 관료들을 요직에 임명하여 친 식농기구 파벌과 반 식농기구 파벌이 서로 미워하고 다투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게 딱히 일본에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국제기구에서 일본인을 후대하면서 국제적 위신을 드높여 주는 격이었으니 이에 반발할 수도 없을 터였다.

식농기구에서 일본인이 후대 받는다는 게 딱히 일본에 못 할 짓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식농기구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 유학을 왔거나, 한국식 교육을 받았다는 걸 의미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결국 이형의 생각대로 되었다.

"저 매국노 자식! 입만 열었다 하면 조선은 어떻고 저렇고 지껄이는 명예 조선인 놈!"

"못된 수구 적폐! 일본이 날기는커녕 달릴 수도 없게 발을 잡는 족쇄 같은 놈들!"

일본은 극단적인 국론 분열을 겪고 있었다. 이대로 일본만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범 아주 조약기구에서 제시한 범용적인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두고서 말이다. 이는 결국 일본은 내부적 문제로도 바빠서 국외의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음을 의미했다.

일본이 침묵을 지키게 된 것이 한국에 얼마나 너른 운신의 폭을 제공해주었는가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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