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아전인수
일본의 내부적 혼란이 한국에 편의를 준 부분은 하나하나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외부적인 영향을 이야기하자면 단연 의견의 일치였다. 내부적 혼란에 더하여 주변 아시아 제후국들과의 크고 작은 충돌과 실농기구와의 분쟁으로 막상 아시아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의견을 펼칠 여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 망명 정부의 인도 정착에 대하여 한국 측에서 묵인이라는 선택지를 취한 시점에서, 범아시아 조약기구는 영국 망명 정부의 인도 정착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열국들은 대개 한국과 왕조를 공유하고 있는 반쯤 괴뢰국에 가까운 입지였던 만큼,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의견을 존중하고 있는 조약 내부 문제와는 달리 외부 문제에서는 한국과 거의 100% 일치한 의견을 표명할 수밖에 없던 까닭이다.
이런 와중 한국과 다른 왕조를 지니고 있으며, 괴뢰국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서마저 한국의 손을 들어줘 버리면 다른 나라들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던 것이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범 아시아 조약기구가 한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제기구이자 세력권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보여주게 된 셈이었다.
아무튼, 이로써 범 아시아 조약기구는 은근히 영국 망명 정부에 동맹을 권유하며 영국 정벌을 향한 야욕을 아낌없이 드러낸 프랑스, 영국 망명 정부보다는 영국 혁명정부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인 미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영제국의 분열을 용인했다. 그리고 이는 당장 세계를 겉으로나마 평화롭게 만들었으나 필연적으로 인도 아대륙을 혼란에 빠트렸다.
"이건 약속이 다르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 인도인들이 제국을 위하여 이바지한 대가로 독립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만일 이번 기회에 영국 왕실이 우리 인도 아대륙에 정착하게 된다면, 저들은 두 번 다시 우리 인도 아대륙을 손에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건 늑약이다! 우리 인도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우리 인도인들은 또 한 번 우리의 독립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독립 지연 결사반대!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영국 여왕이 우리 인도 아대륙에 도착하지 못한 지금 독립을 쟁취하자!"
인도인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격렬하게 반대하는 경우. 이들은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었거나 내심 지지하고 있었던 지식인 계층이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부모가 그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여 영국인 교사들에게서 질 좋은 교육을 받은 상인계급 출신들이었다. 달리 말해, 스스로 세계를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사고가 트인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단히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의 여론은 극소수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애당초 수억이 넘어가는 인도 제국의 인구 중 이와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이들이 다 합해서 100만은 넘겼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그야 물론 대다수의 인도인이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감을 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처럼 맹렬하게 지금 당장 독립을 요구할 만큼 그 감정이 격렬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들이 이야기하는 「인도 민족」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사용되는 언어의 숫자만 수백 수천 가지에 문자마저 수십 수백 가지, 종교마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새하얀 피부의 북서부 인도인과 칠흑 같은 피부의 남부 인도인처럼 피부색으로 인종을 분류하자면 인종조차 서로 다른 인도 아대륙이라고 하는 거대한 땅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영어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시점에서 「인도 민족」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국식 교육을 받아서 영어를 통해 사고할 수 있는 지식인들뿐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들 자신에게는 모욕적일지 몰라도, 인도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영국인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민족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간단한 예시로, 만일 영국이 한국과 중국 일본을 모조리 식민지로 삼고서 이를 통틀어서 「동아시아 제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나중에 이 동아시아 제국이 독립하게 되어서, 중국인들이 「동아시아 민족」을 위한 「동아시아 민족의 민족국가」인 「동아시아 공화국」의 건국을 주장한다고 생각해보자.
이에 대하여 가장 먼저 한국인, 일본인들이 보여줄 반응은 무엇일까?
"대영제국 만세! 여왕 폐하 만세!"
"휴우, 살았다! 정말이지 신이 도우셨어! 신이시여, 앞으로도 계속 영국인들이 통치하게 해주세요!"
"저 짐승만도 못한 힌두교 놈들 밑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힌두교도 놈들이랑 똑같이 영국 놈들 밑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암!"
이것이 두 번째 반응, 독립이 지연되었다는 사실에 환호하는 부류. 이들은 주로 인도 제국 내 소수민족이나 비주류 종교 신자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이들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인들이 이 인도를 버리고서 떠나는 순간 인도 내에서 그나마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과 힌디인들의 손에 자신들의 종교와 민족이 결딴날 판국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영국은 고의로 인도를 통치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도 소수민족들을 우대하고 그들에게 원망받기 쉬운 일들- 그러나 동시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그마한 권세를 나눠줬지만, 힌디인들이 그들을 일부러 배려해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오히려, 단일 민족에 의한 민족국가 건설과 민족의 생활권역 확대를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소수민족, 소수종교 탄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컸다.
그나마 이슬람계는 그럭저럭 머릿수라도 되니까 아예 따로 독립국을 세우겠다며 떨어져 나갈 궁리라도 할 수 있지만, 숫자조차 부족한 시크교도들이나 불교도, 자이나 교도들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들은 차라리 영국이 계속 인도를 지배해주기를 내심 빌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최선은 그들만의 독립국을 세우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그나마 차선인 영국의 통치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반응은 상당히 낙천적이고 다소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이 무렵 인도인들 대다수의 반응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옳았다! 영국인들은 인도를 영국화 시키기는커녕, 인도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국은 우리 인도의 부속품으로서 계속하여 남으리라!"
"영국 여왕이 인도로 온다, 이거지··· 으흐흐! 그럼 우리 가문은 이제 변방의 시골 귀족 나부랭이가 아니라 대영제국의 중앙귀족이 되는 건가? 으하하! 이게 꿈이냐, 생시냐?"
"영국의 여왕이 인도로 온다고? 그럼 이제 우리 인도인들이 대영제국의 1등 신민이 되는 건가? 아니, 영국 여왕이 인도에서 지내는데 당연히 인도가 대영제국의 본국이지. 안 그래!"
"진짜로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그래,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일 테니 환영 축제 동안 어떤 장사를 할지나 고민해보자. 하는 김에 멀리서 얼굴이라도 구경할 수 있으려나? 뭐, 내게 그런 운이 따라줄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 무책임하면서도 낙관적인 반응이 주류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무렵 인도 총독부에서 이러한 여론을 고의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당장 영국 본국을 상실한 상황에서 인도 총독부라는 기구가 계속하여 존립하려면, 그리고 어떻게든 왕실과 내각을 마중할 준비를 하려면 최소한 여론을 거짓으로라도 호의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 총독부의 여론 조성에 인도의 라자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대적 국민주권론이나 민족주의보다는 여전히 봉건적인 질서에 익숙하던 그들에게 얼굴 볼일도 드물던 영국 여왕이 인도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건 곧 대영제국의 중심지가 인도로 넘어온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인도가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 게 아니라, 영국이 인도 그 자체가 된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꼭 이런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당장 군사력이라는 알기 쉬운 힘을 쥐고 있는 라자들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지금의 영국 망명 정부가 어떻게 될지는 구태여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영국 총독부는 라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교섭하는 기관이 아니라 라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관이 된 것이다. 그들이 자부하듯이, 대영제국 그 자체가 라자들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자들이 구태여 독립을 꿈꿀 이유가 없었다. 라자들의 판단으로는, 이제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영국이 인도에서 독립할 궁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독립의 주체가 뒤바뀐 것이다.
"영국 여왕이 인도로 온다면, 두 번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인도에서 살다가 인도에서 묻히게 될 것이고, 그 자손들 또한 그러하리라. 앞으로는 우리 인도 제국이야말로 대영제국의 심장이자 머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기대는 결과적으로 옳았다. 케이프타운을 빙 돌아서 인도에 다다른 영국 망명 정부는 인도 총독부에서 정리하여 올린 라자들의 요구를 거의 전부 수용해야만 했다. 그 요구들을 실제로 성실하게 이행할 생각이건, 그렇지 않으면 사정이 해결되는 대로 없던 일로 할 작정이건 말이다. 만일 이 요구들을 거부하면서 인도에서마저 내쫓긴다면 정말로 뒤가 없었다.
다만, 이는 이들의 요구가 영국 망명 정부로서는 꼭 수용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던 탓도 있었다. 만일 이들이 영국에 인도인들을 영국인들과 대등한 백성으로 인정하라거나, 선거구 편입 등을 본격적으로 요구했다면 당연히 영국 망명 정부에서도 난색을 보였겠지만 이들이 영국 망명 정부에게 요구한 건 그와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요구는 철저하게 특권층의 권리 확대에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한 줄로 줄여서 「인도의 귀족계급들에 영국 귀족들과 다를 바 없는 특권을 휘두를 수 있게 해달라」였던 것이다. 이것도 평소라면 난감한 요구였겠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었다. 이 정도는 인도인들의 애교라고 억지로라도 웃어넘겨야 하는 게 영국 망명 정부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로 인도를 놔주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만일 이대로 두 번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결국 늦어도 다음 세대에 우리는 인도 일부가 되고 말 것이고, 기적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두고두고 오늘의 이 늑약이 발목을 잡으리라.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건, 돌아가지 못하건 결국 인도를 손에서 놓아줄 수밖에는 없게 되었구나!"
물론 겉으로야 웃어넘기더라도 속으로마저 웃을 수는 없던 것이 이 무렵 이들의 심정이었지만 말이다. 인도의 라자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그들이라고 모를까. 그러나 어떻게 해서건 라자들에게서 협력을 끌어내 본국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육군 전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망명 정부였다. 결국, 혹시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기대가 당장 족쇄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예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현실과 타협하고서 마음 편히 인도에 적응하려고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차마 희망을 버릴 수가 없으니, 인도에 적응하면서도 혹시나 영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끝없이 이들의 양심을 자극했다.
지금 당장은 그런 양심조차 사치였지만 말이다. 인도의 라자들은 계속하여 영국 망명 정부에 더욱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그들을 인도에 완전히 옭아매려 들었고, 이 문제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던 인도인들도 차차 인도 총독부의 선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대영제국의 1등 신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된 것이다.
"원래 옛날부터 어떤 나라건 그 나라에서 제일 잘 나고, 돈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은 서울이었지. 그럼 이제 대영제국의 서울이 우리 인도 땅에 있으니까 대영제국에서는 우리가 제일 잘 나고 돈 많은 사람이 되는 거 아냐?"
"설마하니 그 배불뚝이들이 여왕을 모른 체하겠어? 조만간 영국 놈들이 돈다발들을 한 보따리씩 챙겨 들고서 우리 인도에··· 으흐흐!"
이는 인도 독립 지연에 반발하는 여론이 금세 사그라진 이유이기도 했다. 영국 여왕이 인도에 왔으니, 조만간 영국 금융계에서 여왕을 위해서라도 인도에 절대 적지 않은 투자를 퍼부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던 상인 계급들에 철없는 자식들의 민족주의 놀이는 뭣 모르는 어린애의 치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도인들의 기대는 영국 망명 정부가 일단 인도에 정착하게 된 다음 순조롭게 안정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영국 망명 정부를 인도 아대륙에 예속시켰다. 인도인들이 호의적인 건 이러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고, 이 기대가 배신당하는 순간 그 호의가 고스란히 적의로 변하게 되리라는 건 누가 봐도 자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인도에 예속되면 예속될수록, 영국 망명 정부의 인도 아대륙화 또한 나날이 가속되었다.
* * *
한편, 영국 망명 정부가 인도 아대륙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당장 위기를 넘기게 되자 세계는 그간 미뤄지고 있던 논의를 다시 꺼내 들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천하회맹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 화제는 당연히 천하회맹이었다. 본디 영국이 개최국이 되어 영국 런던에서 발족하기로 되어있었던 천하회맹이었으나, 그 영국이 이 모양 이 꼴이 난 마당에 런던을 중심으로 한 천하회맹 발족은 애당초 무리였다. 무엇보다, 혁명 이후 영국 혁명 정부는 천하회맹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동당의 경우에는 천하회맹 발족으로 안 그래도 빈곤한 정부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 우려했고, 파시스트 진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당사국이 아예 거부해버리니 천하회맹 논의도 자연히 붕 떴다. 그동안 논의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아예 없던 거로 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어느 나라를 주최국으로 삼을 것인가는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는 무난하게 스위스 제네바가 낫지 않겠습니까? 스위스는 이미 수백 년째 영구중립을 지켜오고 있으며 그들의 중립은 국제사회의 양해를 충분히 얻고 있습니다. 어떠한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점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고려해볼 법합니다."
프랑스의 제안은 스위스 제네바였다. 이럴 때는 영구중립국의 손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 스위스가 유럽에 붙어있으며, 영구중립국 이야기도 결국 유럽 국가들이 인정해준 것이라는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도 했다.
한편 미국의 제안은 또 달랐다.
"아무래도 이 천하회맹 논의는 시기상조였던 것 같습니다. 후일을 기약합시다."
미국은 어차피 영국도 런던도 나가리 된 김에 아예 천하회맹 논의 자체를 무르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스위스 제네바에 자리 잡고 또 유럽 대륙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판국이니,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아예 없던 이야기로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제안은 어떠했는가-하면··· 그야말로 색달랐다.
"아무튼, 천하회맹의 개최국은 영국이고, 우리 범 아시아 조약기구에서는 현재 인도에 있는 영국 망명 정부만이 영국의 유일 정통정부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하회맹 본부는 현 대영제국의 임시수도인 캘커타에 두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는지요?"
이는 결국 아시아 대륙을 세계정치의 중심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