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사치스러운 고민
루이와 나폴레옹 4세가 일단 신사협정에 동의하면서, 프랑스의 외교적 패권주의는 일단 사그라지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는 국내 여론은 여전히 패권주의적 기조를 띄고 있었으나, 루이를 중심으로 패권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온건파가 결집하게 되면서 패권주의적 주장이 한 번씩 걸러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른 프랑스의 가장 큰 외교적 변화는 인도에 망명한 영국 망명정부를 대영제국의 정통 계승자로 인정하되, 영국 본토에 수립된 혁명 정부 또한 혁명 정부대로 영국 국민의 지지 위에 세워진 영국의 유일 정통정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즉, 영국 식민제국은 영국이라는 나라에 근간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이는 영국 망명정부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영국 혁명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당장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사라졌다. 불안하게나마 평화를 되찾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야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변화는 이형에게는 놀랍기도 하지만 시원섭섭하기도 한 것이었다.
"루이 녀석, 결국 끝내 대통령을 해볼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쯧,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황제도 해먹을 수 있었을 텐데."
이형은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언제 나폴레옹 4세에게 숙청될지 모르던 처지에서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굉장하긴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황제가 될 수도 있었을 인물이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기도 했다. 본인의 뜻이 그렇다면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형이 뭐라 참견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형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도 했다. 좌우지간, 프랑스가 천하회맹에서 양보를 해준 만큼 이제 프랑스가 양보해준 이 천하회맹을 이용해 무엇을 꾸며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아니 아시아에는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다.
"지금 인도가 우리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입할 조건을 충족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문득, 이형을 도와 정무를 보고 있던 태자 원철이 던진 한마디는 이 무렵 범 아주 조약기구가 직면하고 있던 난제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간단하게 줄여서 말하자면, 과연 지금의 인도를 영국 식민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상태라고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에 놓여있다고 간주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였다.
만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상황이라면 인도는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입할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좌우지간 인도 또한 아시아 대륙에 속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인도가 독립했는데 왕조는 여전히 영국인이라는 점이다. 이러면 아시아인들을 위한 모임이라는 범 아시아 조약기구의 존재 의의 자체가 흐려질 공산이 컸다.
만일 인도가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에 놓여있는 상태라고 간주한다면 그럼 이제 한국은 인도를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성이 생긴다. 당연히 이 경우 인도를 범 아주 조약기구에 초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예 인도 임시정부가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맹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글쎄다?"
이형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형도 뭐라 답해주기가 곤란했다. 독립했다고 하기에도 조금 모호하고, 그렇다고 식민지배 상태라고 하기에도 조금 모호했다. 이형이 보기에 지금 인도는 그야말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 자체였다. 식민지와 독립국이 동시에 하나의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하던 이형의 대답은 이러했다.
"일단 최대한 우리 대한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자면, 독립했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래야지 저놈들을 회맹에 끌어들이든 이래저래 참견하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제 와서 인도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기에는 저놈들도 사정이 썩 좋지 않게 되었고."
"그렇다면 우선 인도 독립 문제에는 영국에서 우리 대한을 위해 신의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 저놈들이라고 좋아서 저렇게 되었겠느냐? 그냥 어쩌다 보니까 저렇게 된 거지. 차라리··· 끄으응. 이거 복잡하구먼그래."
이형은 가볍게 가슴을 쿵쿵하고 두드렸다. 이원철도 차마 뭐라고 더 하지는 못하고서 펜촉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한 건 바르다고 생각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영국이 약속을 지켰다고 표현하기에는 또 뭣했다. 아무튼, 영국이 약속했던 인도의 독립방식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영국이 이미 약속을 지켰다고 하기보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둬야 나중에 이 약속을 빌미로 뭔가 한마디라도 더 간섭할 여지가 생기는 것도 있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어떻게 생각하건 인도의 정세가 급변하거나 하지도 않을 테고, 앞으로 두고두고 꼬투리를 잡기 위한 외교적 수사요, 국내 선전용 어휘 선택이기는 했지만- 바로 그렇기에 한국으로서는 더욱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원철이 먼저 화제를 틀었다.
"그러고 보면, 저 영국- 아니 천축인들이 우리 회맹에 가입하고자 하겠습니까? 소자가 도성을 어슬렁거리면서 엿듣자니, 요즈음 대학가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인 것처럼 떠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가입하고자 하지 않겠지. 그렇지만 한 번 권하는 정도는 나쁘지도 않을 거다. 승인하거든 당연히 이래저래 간섭할 여지가 늘어나니 좋고, 거부하면 거부하는 대로 우리 대한이 베푸는 호의를 거절했다고 트집을 잡으면 되는 거고. 뭐, 내 생각에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실리 때문에 거절하지도 못하고 에둘러서 시간을 벌려고 들겠다만."
"시간을 벌려고 한다면, 저들이 언젠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왜 아니겠느냐? 나 같아도 그럴 텐데. 인도의 회맹 가입 문제는 그때까지 미뤄두자고 할 테지. 그렇다고 해도 나 때는 글렀고, 네가 마저 처리하거라. 내 생전에는 저것들이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을 테니까."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또 늘었군요."
이원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이원철을 이형은 슬쩍 돌아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형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는 걸 눈치챈 이원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시황제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려는 차다."
"진시황제 말씀이십니까? 저기, 그게 도대체 무슨···."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것뿐이니까. 빌어먹을, 이래서 다들 잘난 체해도 막상 때가 오거든 그놈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악을 썼구먼. 저 일들을 다 내가 해야 했는데. 네게 미루는 게 아니라 내가 다 해야 했는데. 내가 앞으로 50년만 더 살 수 있었더라도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텐데! 정말이지 세월이 원망스러워!"
"아바마마, 너무하십니다. 아바마마께서 앞으로 50년을 더 하시거든 저는 평생 태자로 살다 졸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걱정은 말아라. 내가 백 살까지 살 거든 내 피를 이은 너도 아흔 살은 살지 않겠느냐? 정말이지, 언젠가 이 나라가 진정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왜 이리도 두려운지."
원철의 농담에도 이형은 차마 웃지 못했다. 그 대신 이형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의 탁상 위에 펼쳐져 있던 한 뭉치의 서류들을 치웠다. 서류들을 치워버리고서, 아무 말도 없이 이원철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물려받을 적에 조선과, 지금의 대한제국은 분명히 다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그럼 말해 보아라. 네가 생각하기에, 우리 대한이 장래에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일 거라 생각하느냐?"
"그건 아마도 오랑캐들이 또다시 우리 대한을 넘보려 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틀렸다. 그건 소국의 위기다. 대국은 고작해야 외세의 침략 따위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원철아, 내가 너에게 물려줄 이 대한제국은 대국이다. 너는 이 대한만의 황제가 아니라 온 아주 대륙의 지존이기도 하다. 네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것이다. 이 대한의 국민을, 이 아주의 동맹들을 실망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저번에는 대한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 이야기하셨고, 오늘은 내가 짊어져야 할 짐에 관하여 이야기하시는구나. 다음에는 또 무엇을 두고 훈계를 하려 하실까?'
이원철은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겉으로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형이 이원철에게 이렇게 훈계하는 것도 요즈음 들어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던 까닭이다. 이원철에게는 다소 의아하게도, 이형은 1901년 1월 1일, 그러니까 정확하게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그 날부터 이따금 그의 사후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그 나름대로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서구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던 이원철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기가 바뀌는 것 정도가 뭐가 그리 대수라는 말인가? 세기가 바뀐다고 옛 동아시아에서 그랬듯이 연호가 넘어가면 황제가 바뀐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세기는 그저 시간을 세는 단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형에게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이형이 속마음을 툭 털어놓을 필요도 없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원철은 그가 20세기를 19세기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 이질적이고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자꾸만 이원철과 함께 있을 때면 20세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훈계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아바마마. 이제 저도 토끼 같은 자식들이 둘이고, 나이도 약관을 넘긴 지가 어언 10여 년 차입니다. 아바마마께서 그리 심려하지 않으셔도, 소자는 아바마마께서 가르치신 바를 매일 같이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형의 심리를 눈치채는 건 눈치채는 것이고,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라. 이원철은 일부러 가슴을 가볍게 쿵쿵 두드리며 이형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이형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이제 머리가 굵을 만큼 굵었으니 이만 믿어달라는 항변이었다.
"널 못 믿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을 믿지 못하니까 이러는 거지."
하지만 이형의 대답은 썩 시원치 않았다. 좋게 말해도 나쁘게 말해도 이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만 이는 이원철이 섭섭해하는 것처럼 그의 재능에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형은 이원철의 사교성을 그의 뒤를 이을 왕자로서 나름 높이 평가하고 있기도 했다. 입헌군주국의 군주에게 필요한 건 빛나는 통찰력이 아니라 사교성이나 친화력이었으니까.
이형은 단지 그가 말한 그대로, 이원철이 맞이하게 될 세상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제아무리 철저히 준비했더라도, 준비가 부족할지도 모르는 것이 20세기라는 시대의 광풍이었으니까.
"끝없이 타협하고 양보하거라. 네가 앉아있는 옥좌와 네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 두 가지만 지킨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된다. 명심하거라. 국민국가에서 황제란 국론을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 하느니라."
"예, 알겠습니다."
이형의 신신당부에 이원철은 그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을 따름이다. 그것이 못내 불안하긴 했지만, 계속해봐야 이원철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거나 하지도 않을 게 뻔한지라 이형은 우선, 이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기도 했다.
"그럼 인도가 과연 회맹에 가입하게 될지 아닐지 하는 문제는 일단 미뤄두고, 문제는 이 천하회맹인데···."
"우선 우리 대한에서 가져가겠다 하였던 것이 식량농업기구였었지요?"
"그래. 그런데 아마 독점은 어림도 없을 테고 주도권을 쥐기도 쉽지는 않을 거다. 미국이고 프랑스고 하나같이 농업에서는 그 나름대로 알아주는 놈들이니까."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프랑스나 미국과 이런저런 국제기구들의 주도권을 두고서 경쟁하게 된 것이 곤란한 게 아니었다. 애당초 한국 혼자서 이런 국제기구들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고 주도권을 경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거기에 한국은 범 아주 조약기구를 운영하면서 비결을 쌓기도 했으니 쉽게 실무에서 두각을 보여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에게 곤란한 것은 프랑스가 한국에 양보하고, 미국도 두 나라의 결정에 따르면서 일단 형식상, 이 천하회맹을 한국에서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좌우지간, 천하회맹의 본부가 아시아 대륙에 놓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는 곧 한국에서 천하회맹에 영향력을 투사하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도 되었지만, 만일 천하회맹이 엉망이 된다면 그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도 한국이 되었다는 뜻도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형이 애초 예정하였던 천하회맹을 다음 국제기구 발족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한다는 구상은 애당초 불가능해졌다. 지금 천하회맹이 금세 발판으로 소모되면서 사라진다면,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운영을 엉터리로 했길래 이런 꼴이 났느냐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으니까.
"이거 진짜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발 벗고 뛰어봐야 할 판국인가?"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잊거라. 그냥 해본 소리니까.”
이형은 다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천하회맹이 앞으로도 계속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이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진짜 세계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지는 않더라도, 하다못해 그런 시늉은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이야 아시아에서 만든 걸 아시아에서 다 소모하기에도 부족한 판국이지만, 이제 화학비료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농업생산량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작물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 돌아서 어떻게든 국외에 수출하든 태워버리든 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럼 아깝게 태워버릴 바에야 비교적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들에 구호물자라는 핑계로 넘겨주는 게 여론조성에도 시장장악력 확대에도 좋고말고.
그렇게 유니세프 같은 기관을 우리 한국에서 선점해 남아도는 작물들을 빈국 원조에 사용하고, 산업화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남아도는 공산품들도 다 빈국 원조로 돌리기 시작하면 일단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몰라도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이런저런 물자들을 기부해주는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이 박힐 테니, 겸사겸사 이런 구호 활동으로 천하회맹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면···.'
이 경우 현실적으로 한국이 세계 평화를 실현할 방법은 없더라도, 최소한 한국과 천하회맹이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라들이 현실에 수두룩한데에 비해, 힘이 부족해도 노력 정도는 하는 한국은 당연히 세계인들에게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는 없을 터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터였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게 좋은 일은 맞아도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역시 고개를 갸웃하게 되니까. 그러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도는 있었다. 이형은 문득 원철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 원철아."
"말씀하세요, 아바마마."
"건함경쟁으로 저것들을 서로 물고 뜯게 하여 이이제이를 유도하는 것이랑 우리가 가장 먼저 이순신급 전함을 양껏 확보한 다음 해군 군축조약을 제시해 내숭을 떠는 것, 두 가지 중 어느 게 더 우리 대한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느냐?"
"으음···."
이원철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정말이지 아버지의 머릿속에서는 매일 어떤 주옥같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