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기대
30여 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아이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꼭 자기만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며, 전근대의 조혼 풍습이 아직 완전히 뿌리뽑히지 못한 이 무렵의 아주에서는 더 나아가 손주를 볼 수도 있을 시간이다. 그 30여 년이라는 세월을 범 아주 조약기구는 존재해왔다. 강산이 바뀌어도 3번은 바뀌었을 기나긴 시간이고, 세대가 하나 바뀌고도 남았을 기나긴 시간을 말이다. 이는 그동안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범 아주 조약기구가 없었던 시절에는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상상하지도 못하게 되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 새로이 태어나고 자라나 어엿하게 청년이 된 이들에게는 그들 조국을 향한 소속감 이외에도 또 하나의 새로운 소속감을 지니게 되었다. 바로, 아주라는 대륙 그 자체에 대한 소속감을 말이다.
"나는 흔히들 포르모사, 혹은 대만이라고 불리는 동녕 땅에서 객가인 아버지와 동녕 원주민 어머니를 두고 태어났으며, 학당에서는 조선인 국왕의 덕을 칭송하며 글을 배웠고, 장성하여 구주와 제국을 오가는 상선에서 일하다 그 나름대로 성실히 일하여 일본인 선주의 총애를 얻어 요동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사무 일을 돕다가 그곳에서 만주인 처와 혼인하여 사내아이를 얻고, 이제는 그 사내아이도 장성하여 지금은 평양의 헌병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는 비록 대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나 또한 대한의 국적을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내 처와 자식은 모두 대한인이며, 내가 사는 곳 또한 대한이다. 나는 비록 객가와 동녕 원주민의 피를 타고 태어났으나 막상 나는 더는 객가 말도 동녕 말도 기억하지 못하며, 되려 만주말과 구주 방언에 더욱 능숙하다.
그렇다면 내 조국은 어느 나라인가? 나를 낳고 길러준 동녕인가, 내 삶의 터전을 준 구주인가, 그도 아니면 내게 가정과 정착할 장소를 만들어준 대한인가?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이 아주 대륙에서 벗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우리 세대에게는 전쟁의 역사가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역사에서는 우리가 몽골이나 만주와 다투고, 조선과 다투고, 일본과 다투고, 그런 전쟁의 역사를 끝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서로 그렇게 피 흘려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를 않는다. 내게는 몽골인 친구도 있고, 만주인 스승도 있고, 조선인 아버지도 있고, 일본인 처도 있다.
만일 그와 같은 전쟁의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우리 가정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서로 증오하고, 헐뜯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역사서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쟁은 활자로 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던가?"
"나는 어엿한 성인 남성으로서 제국군에 징병 되어 대항 훈련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우리 부대는 이 대항 훈련에서 몽골과 겨루어 보았으며, 일본과도 겨루어 보았고, 동녕과 청, 제와 진, 전역 직전에는 월남까지. 이 아주 땅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겨루어 보기도 하였으며 또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우리 대한제국군과 겨루어 보기도 했다.
어떨 때는 패하였고, 또 어떨 때는 승리하였다. 험한 말이 오가지 않았던 적도 많았고, 훈련 중에 싸움이 격해져서 몸싸움이 벌어진 적도 많았다. 당연히 저들을 좋아해 본 적은 단언컨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저들을 죽이고자 한 적도 없었다. 딱히 나는 살인마도 아니고, 저들은 우리의 적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당연히 저들을 죽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저들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벗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깝다. 나는 어차피 이런 걸 결론지을만한 위치에 올라선 적이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뭐.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사촌 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일종의 탈민족주의, 범 대륙주의에 속하는 정체성이었다. 딱히 일부러 그렇게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막연하게 아주라고 하는 공통적인 정체성을 공유하는 처지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민족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서로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서로 전쟁을 벌이면서 사생결단을 낼 사이는 아니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를 맞이하면서 아주 대륙 전역에 걸쳐 더욱 확산해가고 있었다. 마침 세대교체와 겹치고 세기가 바뀌었다는 상징성이 겹치면서,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더욱 나이가 낮아질수록 보다 강해졌다.
그들이야말로 「아주는 하나다」라고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였기에 그러했으며, 또 꼭 그런 가르침을 제하고서도 그들이 지켜보면서 자라난 아주는 언제나 하나였기에 그러했다. 이들에게는 아주가 언젠가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미래보다, 아주가 서로 다투고 증오하던 시절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다. 본래 아주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본래 하나였기에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과 본래 하나가 아니었으나 모두의 성원과 노력으로 기적적으로 하나가 된 것. 어느 쪽이 더욱 위대하고 영광스러운가? 나는 단연 후자라고 확신한다.
아주 회맹은 어떠한 역사적 필연도 아니었다. 아주는 아주 만민의 선택과 노력 끝에 오늘 이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노력의 앞에는 그 누구 보다 앞장서서 하나 된 아주를 위하여 노력하였던, 오로지 아주 만국민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아주 만민의 황제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아주가 하나가 된 것은 어느 누군가의 강요도 아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분명히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린 아주의 선지자가 아주의 황색 깃발을 하늘 높이 올렸기에 아주 만민이 가슴 벅차하며 그 뒤를 쫓았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오늘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더는 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이미 선지자가 가르쳤던 무지개의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날에도 아주의 선지자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을까? 이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라는 말인가! 아주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나로 남아있을 것이다. 말이 다르고, 문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며, 민족도 다르지만,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당당히 외칠 것이다.
「아주는 하나다!」 황제가 우리에게 하나 된 아주를 선물해주었다!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 된 아주를 지켜나갈 것이다!"
"혁명은 언제 타락하는가? 바로 혁명을 외치던 자들이 더는 혁명을 쫓지 않고서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순간 혁명은 타락한다. 때문에, 대한에서 시작된 아주의 위대한 혁명은 아직도 타락하지 않은 채 찬란히 빛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은 거짓과 기만으로 아주인들을 속일 수도 있었다. 아주의 재화와 인력을 마음껏 빨아먹은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구인들이 그러했듯이 아주를 식민통치하고자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한은 스스로 옥좌에서 내려와 아주의 우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했다. 그들은 그들이 받았던 그대로 다른 아주의 제후국들에 베풀며 그들의 산업화를 성심성의껏 도왔다. 또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며 아직도 식민통치에 신음하고 있던 다른 아주인들을 돕고자 했다.
분명 대한의 혁명은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대한은 이전처럼 극적으로 변화하지도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한 혁명적 이상은 오늘도 찬란히 빛나며 아주 만국을 가슴 벅차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 밑 배경에는 젊은 세대 특유의 우상을 향한 동경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더욱 연로하고, 하나가 되기 이전의 아주를 기억하고 있던 세대가 이형을 위대한 정복 군주이자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크게 앞당긴 철권황제라고 인식했다면 이들은 하나 된 아주를 거의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살아있는 상징이자 우상으로서 숭상했다.
이는 그동안의 숭상과는 또 다른 방식의 찬사였다. 그동안 황제를 향한 찬사가 주로 대한에 집중되어있었고, 찬사를 하는 이유도 대한제국을 강성하게 만들어서였다면 범 아주 조약기구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통칭 「회맹 세대」는 황제가 아시아를 하나로 만들었기에, 아시아를 위대하게 만들었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사실, 이는 진실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형이라는 개인이 없었다면 우선 오늘날의 범 아주 조약기구는 없었을 것이며, 설령 대한제국이 근대화를 달성했다고 해도 이웃 나라들을 지금처럼 후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민족자결주의를 외치거나 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이형이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은 이형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설령 언젠가 범 아주 조약기구가 붕괴하더라도, 범 아주 조약기구가 존재하였으며 그 아래에서 아시아인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는 역사적 사실은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이형 본인에게 그런 자각은 없었으며 딱히 그렇게 유도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는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더없이 충분한 역사적 위업이었다.
설령 그의 업적을 부정하더라도 말이다.
"뭣도 모르는 자들이 아시아의 황제라며 조선의 황제를 추앙하고, 그가 오늘날 한 일을 아시아 전체를 위한 일이었다느니 뭐라느니 지껄이는 걸 듣고 있자면 구역질이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오늘날 한 일을 혁명이라고 하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우린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마도, 아주 대륙 전체가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좋건 싫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방향을 트는 것 정도이다.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정할 수는 있어도 뒤로 갈 수는 없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우린 이제 표적에 꽂혀 멈추게 되는 순간까지 황제가 바라던 대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해서, 대한제국이라는 명칭조차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황제가 이룩한 것은 결국 조선 제국이다. 황제는 자신을 일컬어 만주인의 황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오늘날 그가 이룩한 제국이 과연 만주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조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가? 결국, 모두의 눈을 속이려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말장난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대한제국은, 아니 조선 제국은 아주 제국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저 철없는 철부지들은 그것이 어떤 결말을 낳을지도 알지 못하면서 황제의 위업을 찬양하고, 그가 이룩한 제국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한탄스럽다. 이제는 모두 늦고 말았다.
이제 저 철없는 철부지들이 더 나이를 먹어 우리와 같은 또래가 된다면 이제 진정으로 이 중원에는 중화민족을 위하고자 하는 이는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안타까워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다."
이는 흥선왕 암살미수사건을 끝으로 아시아 대륙에서 무장투쟁파가 완전히 사라진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내부 장관 김가진이 사퇴하는 등, 이 뭐라 변명의 여지도 없는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내무부에서 각국의 수사기관과 협조하여 거국적인 소탕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내부에서 한차례 소탕 작전을 펼친 이후로 두 번 다시는 불꽃이 살아나지 못한 건 더는 젊은 세대가 이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이 든 세대들은 드물게나마 이들의 활동에 공감하여 무상의 지원을 더 해주거나 했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들의 존재 그 자체를 위험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중화주의자들을 황제의 영도 아래 하나 된 위대한 아주를 깨려고 하는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렇다 보니 그나마 드물게 이들에게 공감하던 소수의 반골과 불량청소년들이 모조리 체포되거나 특수한 감시를 받게 되고 나니, 더는 아무런 민간호응을 얻을 수가 없어졌다.
나이 든 세대들이 재물을 지원하고, 숨을 곳을 지원하면 무엇 하는가. 젊은 세대의 외면으로 활동 인원은 계속 줄어갈 뿐이고 막상 거칠고 험한 현장에서 활동할 인원이 씨가 말라버렸는데 말이다. 수뇌부도 더는 투쟁을 지속할 동력을 잃어버리고 있던 차에 병사들까지 씨가 마르니 도저히 그들만의 전쟁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거의 조선과 오늘날의 대한을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국외로 나가는 조선인들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대한이 옛 조선과 비교하여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증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설령 대한을 벗어나도 그렇게까지 불편을 느낄 일이 없다는 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대한을 벗어나도 우리 대한에서 발행한 원화는 아주 어느 곳을 가나 통용된다. 이제 어지간한 도시 번화가의 상인들이라면 다소 어눌할지언정 조선말이 통하고, 조금 외진 곳으로 들어가도 나름의 식자라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조선말 한두 마디 정도는 통하기 마련이다. 꼭 조선말이 통하지 않아도 한문 필담 정도는 통하기 마련이고, 요즈음에는 제를 비롯하여 언문을 도입하는 나라도 적지 않으니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글이 안 통할 걱정은 적다.
이는 아주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더 나아가 미주로 가더라도, 옛 흥선왕 전하께서 임하셨던 서부 해안가라면 아주만큼은 아니라도 그리 드물지 않게 조선말을 쓸 줄 아는 화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조선말을 쓸 줄 아는 조선어 화자들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대한이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서력 20세기가 과연 어떤 시대가 될지는 아직 모두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필자는 20세기는 곧 우리 조선을 위한 조선의 시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20세기를 맞이하였을 무렵, 대한제국 정부는 더는 아주는 하나라며 목소리를 키우지 않게 되었다. 일부러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구태여 한국에 한정하지 않아도 아주의 나이 든 세대들은 현실에 순응하기 시작했으며, 젊은 세대들은 황제가 이룩한 위업을 동경하고 선망하며 하나 된 아주의 찬란함을 칭송했다.
황제의 영도 아래 더욱 위대해질 다음 세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