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노코노시마 해전
치쿠슈 지번에서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이 일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겠소?"
"어찌하고 나발이고 끝났소. 이제 다 끝난 거요! 도쿠가와는 이미 우리 치쿠슈를 버리기로 작정했고, 우리는 에도 조정을 무시하고서 제멋대로 협상을 꾀한 역적이 되었지. 우린 이제 다 죽은 목숨이요!"
"아니,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오! 오자도 말하지 않았소?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자고 하면 살 것이라고. 이렇게 된 바에야, 죽기를 각오하고서 맞선다면 어떻게든 살길이 보일 것이오!"
"미쳤소? 지금 전쟁이라도 일으키자는 거요? 그리고 설령 일으킨다고 해봐야 우리 치쿠슈만 조선과에도 양측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서 끝장 아니요!"
"그렇지 않소. 만일 지금 우리가 저들을 공격한다면, 꼭 도쿠가와 또한 조선에 그 저의를 의심받게 될 것이오. 하여간 예도에서 우리 치쿠슈에 아무런 정보도 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지 않소? 조선이 에도의 저의를 의심하게 되면 에도 또한 섣불리 나설 수 없을 것이고, 그럴 때 우리 치쿠슈가 인근 지번들을 설득하여 항조(抗朝)의 뜻을 모은다면 어쩔 수 없이 에도 또한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일이 이렇게 된 이상에야 일조 전쟁만이 우리 치쿠슈의 살길이다, 이 말이오!"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한마디로 가만히 앉아서 죽어줄 바에야 일을 키워서 미약하게나마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조정을 무시하고서 독단으로 외세와 협상을 꾀한 역모혐의를 한일전쟁이라는 국난으로 틀어막겠다는 발상이었다. 만일 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일본은 망할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에도 조정이 이들을 반란군이라 규정하고서 한일전쟁 대신에 일본 내전을 각오한다면 지번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고 보았다.
이들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국력이 대등하거나, 일본이 더욱 강대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상황이라면 또 승패를 가늠해 봐야겠지만 한국이 일본을 침공하는 구도가 된다면 일본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 일단 치쿠슈에서 한국군을 공격한다면 요시노부도 무사할 수 없다.
아무튼 지방 지번들에 한국군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 저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한국에서 의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이 경우 요시노부는 한국을 설득해야 하는 건 둘째치고서 무언가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만 할 터였다. 그리고 이 경우 가장 설득력 높은 전개는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물러나 은거하는 것.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요시노부, 그 너구리에게 남은 길은 조선에 숙여 권좌에서 내쫓기거나 조선과 전쟁을 각오하여 권좌를 보존하거나 두 가지 길뿐이다. 그리고 그 너구리가 순순히 권좌에서 쫓겨날 리가 없지!"
결국, 이들의 가장 큰 패착은 정보 부족이었다. 기본적인 대전제인 「일본은 한국과 비등하거나 더욱 강대한 강대국이다」라는 전제가 잘못되어 있었다. 보니 뒤늦게라도 고개를 숙이고서 자비를 구걸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된 이상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서 더욱 작은 잘못을 묻는다-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자신들이 한국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여기듯이, 요시노부 또한 내심 그렇게 생각할 거라 여긴 까닭이다.
이들은 진심으로 일이 여기까지 커지면 요시노부도 전쟁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이 경우 설령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일본은 회맹에서 추방당해 외교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고립되겠지만, 이들은 그러한 상태를 이상적으로 여겼다. 지난 200년간 그러했듯이 쇄국을 지키면서 동방의 고요한 섬나라로 돌아가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시대는 진보하였고 문명은 발달하였으나 막상 그 문명을 다룰 인간들이 모든 면에서 흑선내항 때보다 열화되어버린 격이었다. 우수하고 사고가 트인 인재들은 모두 에도로 향하거나, 식농기구에서 일하게 된 탓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오! 치쿠슈 하나 살자고 전 일본을 위험에 빠트리겠다니! 지금 당신들이 제정신이오?"
"시끄럽다! 네놈, 보아하니 조선의 첩자로구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옳거니, 그러고 보니 네놈. 조선에 유학을 다녀왔겠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감히 대일본국의 항복을 논하는 패배주의자 놈들을 모조리 옥에 가두어라!"
"얼간이 놈들! 온통 얼간이 놈들뿐이로구나! 이 우물 안 개구리 놈들 때문에 우리 일본은 망할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이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구보 치하루를 위시한 치쿠슈의 몇몇 식자들은 이러한 가로들의 결정에 결사반대했다. 문제는 그들이 어디까지나 소수파였다는 점과 대개 한국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아시아 연구기금이라는 이름의 한국계 자본에 혜택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에 매수된 첩자라고 편견을 쓰고 보기에 아주 좋았다.
당연히 이들이 한국과의 전쟁이 무모하다고 항변해도 치쿠슈의 가로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 포섭되었기에 일부러 일본을 깎아내리고 한국을 크게 높이고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대한제국 해군 제1함대가 후쿠오카 앞바다에서 진을 치고 있는 동안에 첩자 혐의로 체포되어 옥에 갇히거나, 스스로 침묵을 택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온한 움직임은 대한제국 1함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왜놈들이 전쟁을 꾸미고 있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소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우리 정보원들에게서 들어온 정보에 따르자면 약 12시간 전부터 우리 대한에 호의적이거나, 협상, 항복 등을 요구한 인사들과 하나둘씩 소식이 끊기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라···."
"···흐으음. 그렇다면 경계할 필요 정도는 있겠군. 육지와 거리를 조금 벌리세나. 주포들도 일단 육지를 향해 겨눠두도록 하지."
"넷!"
이 시점부터 대한제국군의 방침은 무력시위에서 준전시 태세로 바뀌었다. 다만, 이때까지도 한국군은 전쟁을 결심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48시간 내 영해에서 철수를 요구받았다고 하나 중앙정부로부터의 정식적인 외교적 요청도 아니고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스스로 칭하여 멋대로 요구한 것인데 그 48시간 내 철수에 불응했다고 전투가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때까지도 한국군이 상정하고 있었던 최악의 가능성은 상호 간의 경고사격을 통한 기 싸움과 이 기 싸움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 들다가 끝내는 실사격으로 이어지는 우발적인 무력분쟁 가능성이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선제공격을 통한 교전 상황 따위 진지하게 고려된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나쁜 방향으로 말이다.
***
사태는 48시간을 조금 채우지 못한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저 가증스러운 조선 놈들에게 우리 대일본국은 신의 나라라는 걸 가르쳐주자! 모두 방포! 목표는 저 얼간이처럼 거대하기만 한 적 전함이다!"
""대일본국 만세! 조선은 물러가라-!""
퍼퍼펑-!
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이른 새벽녘이었는가, 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차피 현실적으로 치쿠슈의 해안포대와 순시선들만으로는 한국 함대를 이길 수 없어질 게 분명하니, 하다못해 새벽을 틈탄 기습공격을 통해 강렬한 정신적인 충격을 주어 다른 지번들이 전쟁을 결심할 동안 한국군이 섣불리 치쿠슈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말하자면, 1:1 싸움이 된다면 패배할 수밖에는 없겠지만, 결코 순순히 항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인식을 한국군에 새겨주고 동시에 시작부터 이런 맹렬한 저항에 부딪힌다면 상륙과 점령에는 또 얼마나 많은 피를 봐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일견 성공적으로 보였다.
첫 기습을 위해서 해안포대 32문에서 발사된 포탄 중 11발이 지근탄에 5발이 무력시위를 위해서 전면에 나서있던 이순신함에 명중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이순신함이 후쿠오카 항에 근접해 있었고, 또 1만 8천 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덩치 탓에 상대적으로 맞추기 쉬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첫 일제 사에 절반의 포탄이 지근탄 내지 명중이라는 건 엄청난 대성과임에는 분명했다.
"만세! 신불께서 우리를 도우시는구나!"
"모두 장전을 서둘러라! 조선군이 반격에 나서기 전에 적 전함 1척은 확실하게 이 해역에서 이탈시켜야 한다!"
"뭣들하고 있나! 우리도 발포한다! 적 함대가 접근하도록 두면 안 된다!"
5발의 해안포대에 명중 당해 곳곳에서 화염이 일고 있는 이순신함의 모습은 치쿠슈군을 크게 고무시켰다. 애초에 그들의 전략목표는 이 이순신함을 가라앉히거나 최소한 이탈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이순신함의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후쿠오카의 해안포대들 전부를 합해도 이순신함 1척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설령 해안포대와 순시선을 비롯한 치쿠슈군이 전멸당하더라도 이 첫 기습공격에서 이순신함을 격침, 내지 대파시킨다면 그것만으로 치쿠슈군의 승리라는 것이 이들의 잠정결론이었다. 첫 전투에서부터 자랑하던 결전병기를 잃어버린 한국군은 몸을 사리게 될 수밖에는 없을 테고, 그럼 다른 지번들이 지원군을 보낼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이를 위해 치쿠슈군은 나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모두 48문의 해안포대 중 32문은 모두 이순신함을 겨눴지만, 나머지 16문은 이순신함을 공격하는 대신에 이순신함을 구원하기 위해 접근할 나머지 한국 함대를 견제하는데 동원되었다. 이들은 구태여 명중을 노릴 필요도 없었다. 지근탄 정도만 꾸준히 내도 충분했다.
"순시선들은 모두 방포하라! 두려워 말라! 신불께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
"맞출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그냥 들이받아 버려라! 어차피 여긴 우리 치쿠슈의 바다다! 충돌하기 전에 바다에 몸을 던지면 충분히 우군에게 구조받을 수 있다!"
"다른 적함들에는 시선도 주지 마라! 저 전함 1척만 어떻게든 가라앉힌다고 생각해라! 제군들의 죽음은 우리 대일본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초석이 되리라!"
작전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이순신함은 진화에 바쁜지 아니면 사태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도 아니면 운 좋게도 지휘체계가 붕괴했는지 침묵하고 있었고, 나머지 함대들은 이순신함을 구원하기 위하여 접근하려다가 해안포대들의 견제사격에 막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확실하게 기선제압이 되었다고 여긴 치쿠슈군은 순시선 함대를 일제히 출격시켰다.
이들은 일제히 이순신함을 향해 돌격했다. 회피기동도 없었다. 장비된 기관총이나 단장포는 애초에 유효타를 기대할 수 없는 눈가림용 보조 무장에 불과했다. 이들의 진짜 무기는 순시선 선수에 가득 쌓아둔 폭약이었다. 즉, 순시선 그 자체가 초대형 어뢰였던 셈이다. 자살돌격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충돌 직전에 탈출할 것이 전제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뢰라도 있었으면 이들의 전략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으나, 본래는 해상경찰용 경비선에 불과한 순시선에 어뢰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폭뢰도 마찬가지였다. 치쿠슈군 나름대로는 지혜를 쥐어짜 낸 필승전략이었던 셈이다.
콰콰쾅!
"! 적함이 반격한다!"
"모두 엎드려라-!"
그리고 그때부터 이순신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제야 치쿠슈군은 적함이 무력화된 것이 아니라 판단이 안 서고 있었던 것뿐이었다는걸 눈치챘다. 당연했다. 해안포대의 일제사격이 이순신함을 명중한 것까지는 경고사격이 운 나쁘게도 명중한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으나, 그다음에 건보트 십수 척이 돌격하는 건 누가 봐도 적대행위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치쿠슈군 중 전황을 비관하는 이는 없었다. 이순신함은 일단 선상에 화재가 일어난 상황이었고, 호위함대는 다른 해안포대의 견제사격으로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일 이순신함이 맞서려고 하는 대신에 철수한다면 지금 출진한 순시선들은 개죽음을 당하겠지만, 고작 해안포대와 건보트 따위에 전함이 후퇴하는 것부터가 한국군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터였다.
전술적 패배는 당연하지만, 어떻게 진행되어도 전략적 승리밖에는 없다. 그렇게 확신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콰앙-!
이순신함이 해안포대를 겨누고서 일제히 발사한 10문의 주포 중 정확하게 해안포대를 맞춘 건 2발뿐이었다. 4발은 지근탄이었고, 나머지 1발은 바다에, 또 3발은 후쿠오카 항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2발의 명중탄은 모두 48문의 해안포대가 설치된 6채의 진채 중 2채의 진채를 증발시키고서 나머지 3채의 진채를 진흙더미에 파묻어 버렸다. 생존한 마지막 진채 1채마저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4발의 지근탄은 폭발을 피할 요량으로 구덩이에 숨어든 치쿠슈군을 갈가리 찢었다. 사람의 살점이 100미터 상공까지 솟구쳤다가 핏빛 비가 되어 다시 지상에 내렸고, 그도 아니면 땅속 깊숙이 파묻혔다. 그러고 나니 비명을 지를 사람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모두 송장이거나, 비명을 지를 힘도 남지 않은 폐인이거나,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힌, 그런 산송장들뿐이었다.
3발의 불발탄은 후쿠오카 항을 지옥도로 만들었다. 본디 경고사격을 위해 준비된 고폭탄은 시가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3층의 목조건물조차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고폭탄은 현세에 강림한 염라의 지옥불 같았다. 곳곳에서 화염 기둥이 치솟고, 시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시, 신불이 노하셨다!"
"으악, 내 팔! 뜨거워, 참을 수 없이 뜨거워!"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 시점에서 승패는 사실상 판가름 났다. 해안포대는 모두 무력화되거나 병사들이 진영에서 멋대로 이탈해 도망쳤고, 이순신함을 향해 돌격하던 순시선들은 해안포대의 견제사격이 멈추면서 뒤늦게나마 도착한 호위함대에 의해 단 한 척도 이순신함에 충돌하지 못하고서 개죽음을 당했다.
이제 남은 건 잿더미가 된 해안요새와 텅 빈 항구, 불타고 있는 후쿠오카 항과 눈이 뒤집힌 대한제국 해군 제1함대뿐이었다.
그리고 한국군은 상륙에 앞서 치쿠슈 지번 정부에게 최후의 항복권고를 전했다.
"우리 대한제국은 황공하옵게도 대한제국 만국민의 황제이시자 대조선국의 국왕이시며 만주의 칸이시자 예케 몽골 울루스의 카간이시며 아주 전 대륙의 적법한 통치자이신 황제 폐하의 인도 아래 이 아주 전 대륙에 평화와 질서를 바로 세우고 아주 만민을 계몽시키고자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 태산같이 높고 대해처럼 너른 황은에 감사할 줄 모르는 몇몇 배은망덕한 도적들이 아직도 우리 대한에 맞서고자 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72시간을 주겠다. 이는 우리 대한이 귀국에 베풀 수 있는 최후의 자비임을 알라. 72시간 이내에 이번 공격의 저의를 해명하고, 정식적인 사죄와 이와 같은 사태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귀국은 화를 면치 못하리라!"
그제야 치쿠슈 지번 정부는 항복을 결의했다. 개전을 결심한 지 불과 16시간 만에 일이었다.
***
그리고 이 소식은 뒤늦게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이 덜떨어진 놈들이···!"
당연하게도, 이 소식에 가장 기함한 인물은 에도의 요시노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