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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91화 (491/530)

491화 만일 다시 태어나거든

이는 학생혁명이 일본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음을 의미했다. 한국에서 이를 고의로 지원했으며, 황제인 이형이 몸소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낸 덕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학생운동이 아주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회맹세대를 흥분시켰다. 좋은 의미를 들자면 이 일을 계기로 회맹세대는 작금의 천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으며, 나쁜 의미를 들자면 이형이 우려했던 대로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시대의 패배자로 낙인찍힌 한 사람이 역사의 뒤안길을 향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는군."

이토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투덜거렸다. 그는 독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살이 아닌 독방행 수감이 결정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원체 저명한 인물이었던 까닭에 섣불리 사형을 선고하거나 암살할 경우 순교자로 포장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토로서는 영 내키지 않는 일일 수 없었다. 차라리 죽었다면 모를까, 남은 생애를 독방에 갇혀 홀로 쓸쓸하게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탈옥할 가능성이라도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에게 배정된 독방은 동해 한복판에 있는 외딴 암초섬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형보다 더한 형벌이었던 셈이었다. 그런 불평을 담아, 이토는 물었다.

"어째서 조선에서 이런 위험한 운동을 지원한 건가? 이건 단순한 승리 경험이 아니야. 백성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바꿔봤다는 기억은 이제 결코 지워질 수 없을 테지. 아주를 통치하고 있는 조선에는 무엇 하나 이롭지 않을 일이 아닌가?"

이는 단지 심심풀이뿐 아니라 이토의 진심 어린 의문이기도 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를 않았다. 도대체 뭣 하러 혁명을 조장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가. 작금의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며, 또 황제 이형이 살아있는 와중에 현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할 어리석은 이들은 또 몇이나 되는가.

만일 이형이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개입하지 않았다면 초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끝났으리라. 나름대로 대의는 있었고 나름대로 인재들도 모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해버린 비극적인 사건 말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욱 커지면서 마침내는 온 아주를 뒤흔들고 있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가? 이토는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더군."

간수가 답했다.

"황제의 손을 빌어 귀족들을 치우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황제를 치우려 들 테고, 그조차도 실패하면 그다음에는 부자들을 치우려 들 테고, 그조차도 실패한다면 우리 대한은 세상에 뒤처질 거라고 말이야."

"···젠장."

이토는 나지막이 한마디 욕설을 내뱉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그랬다. 대한제국은 현재에 안주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이번 혁명을 통해 변혁 의지를 되살리고 점진적인 개혁으로 작금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획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어디 천년만년 해 먹어봐라."

이토는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쉬며 홀로 독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그리고 그제야 이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걸로 일단 반백 년은 벌었군."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이제 되었다던가, 천년왕국의 기틀이 완성되었다가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작해야 반백 년의 시간 벌이였다는 평가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냉소적인 평가이기도 했다. 그가 이룩한 대한제국조차 영원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서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형은 그 자신을 냉소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망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끝도 없이 더 높은 곳을 추구하며 과욕을 부리는 나라는 외란으로 파멸하는 법이고,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고서 정체하려는 나라는 내란으로 파멸하는 법이었다. 그는 자기 후손들이 언제까지고 그 사이에 있는 최고의 지름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 최선의 길을 걸었다고는 자부할 수 없는데 무슨 낯으로 후손들에게 그와 같은 길을 걷기를 기대한다는 말인가? 당장에 반백 년은 벌었을 거라 자평한 지금의 이 조치조차 시간이 흐르면 명백한 실책이라며 힐난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글쎄요, 백 년은 벌지 않았을까요."

그런 이형에게 나긋나긋한 어조로 반론을 제기하는 이가 있었다. 황후였다. 북경으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황후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이형을 가만히 마주 보고 있었다. 이형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뭉치를 슬쩍 자리에 내려놓고서 답했다.

"그건 하늘이 이 대한제국을 보살피실지, 모질게 내치실지에 따라 다르겠지."

"답지 않게 약한 말씀을 하시네요. 평소대로였다면 태자가 하는 것에 따라 다를 거라고 대답하셨을 텐데."

"물론 원철이, 그놈이 못하면 그보다 짧아질 수도 있고 그보다 늘어날 수도 있을 거요. 하나, 만일 이 나라가 앞으로 백 년을 더 이어간다면 그건 내 덕이 아니라 후대의 덕이라오."

"겸손하시군요."

"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이형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들이 북경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간밤에 혁흔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연배도 연배였던 만큼, 이번에 혁흔이 몸져누운 건 그대로 혁흔의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들은 결국 이형에게는 장인어른이오, 황후에게는 친부였던 혁흔이 떠나는 길을 마중하고자 북경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에는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형이 촉발하고, 고무시킨 학생혁명의 여파가 아주 대륙 방방곡곡까지 미치고 있는 와중에 혼란스러운 청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할 혁흔이 쓰러지면 청은 학생혁명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서 무너지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뇌사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이형이 직접 북경으로 옮겨가 전면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동안 한국을 비워두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미 태자가 장성하여 이형이 한양을 비운 사이에 섭정을 맡기에는 부족함이 없고, 설령 태자가 무력화되더라도 의회와 내각이 있다. 이렇게 빈자리를 메워줄 태자와 내각이 있는 데다가 당분간 한국에서 무언가 큰일이 있을 예정도 아니었으니 이형 또한 부담 없이 자리를 비워둘 수 있던 것이다.

"장장 몇십 년을 곁에서 보아왔는데도 아직도 황상의 심모원려는 헤아릴 도리가 없네요."

황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섭섭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빈말로라도 이형이 제 말에 동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형은 내심 뜨끔해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했다.

"이것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어쩌겠소?"

"황상께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었군요."

"그야 물론, 나 또한 사람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소. 고작해야 인간. 반백 년, 백 년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법인데 말이오."

"또 사람들이 코웃음 칠 말씀을."

황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차 한쪽에서 작은 동물이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황실 전용칸에 다람쥐나 들개 같은 게 숨어들었을 리도 없을 테니, 두 사람의 손주들이 재롱을 떨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형은 비죽 입술을 내밀며 물었다.

"도대체 어째서 내가 사람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할 말이라는 말이오?"

"저도 제가 신선을 모시고 살았는지 사람을 모시고 살았는지 확신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이 세상에 이런 방탕한 신선이 어디 있다는 말이오."

"그러니 인세에 떨어진 것 아니겠어요."

황후의 대답은 담담했다. 추궁하는 것 같기도 한 한마디였다. 이형은 그 대답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서 침묵했다. 기가 막혀서라던가,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해서 웃느라 대답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 정말로 그런가?'

오히려, 진지하게 그런 가능성도 고려해봄 직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아무튼, 빙의였는지 환생이었는지 몰라도 실제로 지금 그는 이형으로서의 제2의 삶을 살고 있지 않던가. 다른 이들은 비웃거나 가볍게 웃어넘길 미신이라도, 이형은 그 미신의 산증인이었으니 말이다.

선뜻 답하지 못하고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형의 모습에 황후는 헛웃음을 지었다.

"보아요. 또 이렇게 답을 고민하시니 제가 어떻게 황상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매번 선뜻 답하지 못하시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는데, 분명 무언가 숨기고 계시다고 여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끄응."

이형은 신음을 삼켰다. 어쩌면 일부러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처음 말을 건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쳤다. 그동안의 행적에 미루어 생각해보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또 한 방 먹었군.'

이형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형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일 정말로 내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하겠소?"

스스로 내뱉고서도 후회가 되는 한마디였다. 과대망상이 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이 자아가 비대한 돈키호테라고 비웃음 받기 쉬울 한마디였다. 그러나 황후는 놀라는 기색이나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이 답했다.

"역시나, 하고 웃겠습니다."

되려 말을 꺼낸 이형이 어안이 벙벙해질 만큼 담백한 대답이었다. 이형은 뭐라 더 말을 잇지도 못하고서 잠시 넋을 놓다가, 조심스레 뒷말을 덧붙였다.

"···그게 끝이요?"

"그럼 제가 이제 와서 요괴라며 겁에 질리거나, 절 속였다며 화내거나, 무슨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시느냐며 비웃어야 할까요?"

황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친부의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티 없이 맑은 웃음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반평생을 함께 해왔으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거야말로 제 지난 생은 헛된 것이었다며 한탄해야 할 일이겠지요."

"흠, 꽤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구려. 무언가 증거라도 있는 모양이요? 아니면, 가령 내게 후광 같은 게 뿜어져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던가."

"어머. 그건 조금 보고 싶네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신묘한 경험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거요?"

"글쎄요. 황상께서는 언제나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고는 했지요. 가령, 왕실조차 백성일 뿐이라던가. 왕이라는 직함조차 직업의 하나일 뿐 이시라던가. 나중에서야 그 모든 말씀이 서역의 일부 과격한 선비들이 주장하였던 글이라고 알았을 때는 또 얼마나 놀랐는지. 서역 역도들의 글을 추종하는 황제라니,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요."

"그게 끝이오? 내가 서역 역도들의 글을 추종하고 있다는 것?"

"설마, 그럴 리가요. 그랬다면 단지 서역의 선비들에게 매혹된 다소 기이한 분이실 뿐이었겠지요. 그런데 황상께서 도저히 그 선비들에게 반하실만한 연결점을 찾지 못하겠답니다. 또, 막상 그런 서역 선비들의 책이 규장각에 들어오고, 다시 번역되어 온 나라에 퍼지고 있는데도 그 선비들이 집필하신 책 한 번 읽지 않으셨지요. 그렇다고 따로 책을 지니고 계신 것도 아니었고, 뜻을 함께하는 학자들과 언쟁을 주고받으신 적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황후는 한 번 말을 끊고서, 이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침묵하는 가운데,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만 은은히 울려 퍼졌다. 가만히 이형을 바라보던 황후는, 조용히 웃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결국, 두 가지 중 하나 아니겠어요? 처음부터 그러한 서역 선비들의 주장을 그 누구의 도움도, 그 어떤 서적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셨을 만큼 머리가 비상하신 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가 알 수 없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서역 선비들의 글을 읽고 그 뜻을 익히셨거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몇 번 찔러보니 내가 알아서 실토했다, 이 말이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지요."

황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속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이형은 답했다.

"기대를 배신하게 되어서 유감이구려. 신선은 아니라오.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서 다시 태어난 것뿐이지. 아니, 그조차 사실 확신하기는 어렵소만."

"상관없어요. 이건 이것대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대답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이형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면 좋을지 헤아리기 어려와서였다. 그러자 다시 황후가 물었다.

"그렇다면 황상께서는 죽은 다음의 일도 모두 기억하고 계시겠네요. 가령, 49일간의 재판이라던가."

"글쎄, 그걸 잘 모르겠소."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기억나지를 않는다는 거요. 분명 전생의 기억은 있는데, 죽은 다음에 어떤 경위를 거쳐서 다시 살아났는지 전혀 기억나지를 않소. 그러니 내가 진정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뿐인 건지, 아니면 뭔가 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소."

"어머, 세상에나."

장난스러운 대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놀란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황후는 그 후로 한동안 선뜻 이형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이형을 딱히 어려워하는 기색이라기보다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이내 차분하게 물었다.

"그럼 전생의 기억이 사실이라는 건 확신하시는 거군요."

"그야 그 기억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명군 노릇을 하지도 못했겠지."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정확한 경위는 황상께서도 알지 못하시지만, 적어도 제 아버지와 저, 그리고 황상께서 이제 또 죽는다고 해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글쎄, 그렇다면 적어도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한두 사람은 더 있겠지."

이형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황후의 말을 온전히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과 같은 인물이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그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미 선례가 남은 이상, 두 번이라고 없으라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황상께서 지니신 전생의 기억이라는 건 결국 거짓부렁이 되겠네요."

황후는 그 점을 지적했다. 이형 또한 여기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로 물증이 없는 이상 뚜렷한 승패가 나오기 곤란한 논쟁이었으니까. 다시 이형이 입을 다물자, 다시 황후가 입을 열었다.

"그럼 화제를 조금 바꿔볼까요. 황상께서는 만일 이번에 또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태어나고 싶으신가요?"

"다음 생에도 그대와 함께하리다."

"안 어울려요."

"···낭만이 부족하구먼."

이형은 작게 혀를 찼다. 황후는 나지막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런 황후를 잠시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이형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놓치고 있던 가능성이기도 했다. 요컨대, 특별한 건 그 한 사람뿐이었다는 가능성 말이다. 이 경우 가까운 미래에라도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 환생자가 이 세계를 방문할 걱정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 그가 환생하여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더라도 그가 기억하고 있는 건 미래가 아닌 과거일 테니까.

그럼 그는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준비만 해놓으면 그만이다. 그 상식적인 준비조차 적지 않은 심력을 소모하는 게 20세기라는 격동의 시대에 특징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죽고서도 또 이 세계에 돌아오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이형은 가만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삶이군. 첫 번째는 망쳤고, 두 번째는 나라에 바쳤으니, 세 번째 삶은 그냥 내 좋을 대로 살아보고 싶구려."

"가장 어려운 바람이네요."

황후의 촌평은 짧았다. 그러나 가장 깊고 복잡한 한마디였다. 가령, 지금 생은 그럼 좋을 대로 살아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라던가 말이다.

"누가 아니라오."

이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기차가 멈춰 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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