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95화 (495/530)

495화 한국 위협론

그러나 논란이 가라앉았다는 게 위협론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말은 신용할 수 없다. 만일 한국 정부에 그와 같은 의향이 없다면, 어째서 한국은 아주 전역에서 혁명을 외치는 폭도들이 확산해가는 걸 그저 방관하고만 있었는가? 저 혁명을 외치는 시위대 그 자체가 한국 정부의 후원을 받던 어용 집단인 거 아닌가?"

"북경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심장부였다고 알고 있다. 아시아 통일이야 헛소리더라도, 북경이 한국의 손에 떨어졌는데 어찌 한국에 중국 합병의 야욕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파리와 런던을 손에 쥔 야심가가 프랑스, 영국을 거머쥐려고 하지 않을 거라 기대할 수 있던가?"

외교가에서야 아시아의 민족 구성에 대하여 대강이나마 이해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식민영토 확장이 아닌 본국 영토 확장을 시도할 경우 일어날 문제들에 대하여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으니 「문제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시위대의 여론이다」라는 잠정 결론을 낼 수 있었지만, 민간여론이나 정치가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발표를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헛소리」로 일축했다. 한국에서 아시아 통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무리 아시아에 대하여 무지한 서역에서라도 반쯤 헛소리로 치부되었지만, 한국에서 과거 다이칭 구룬의 영토들을 모조리 통합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지만, 북경이 한국의 손에 떨어진 까닭이다.

물론 그동안이라고 북경이 한국 손안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서역 국가들의 시선에도 꾸준히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초면 모를까, 아예 국방을 한국에 의존하고 있던 제나 만주 없는 만주 왕실인 청은 한국의 괴뢰국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조차 못 되었다. 그러나 괴뢰국과 합병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확장 행보가 범세계적으로 위험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904년 한국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통계에 따르자면,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인구는 4584만여 명이며 그들의 경제적 식민영토라 할 수 있는 아시아 대륙 각지에 흩어져있는 조선계 만주계 인구가 또한 210만여 명에 육박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대한제국은 프랑스를 웃돌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합병한 허베이성이 다시 3389만 명. 이 둘만 더해도 이미 7천만을 넘어 8천만에 육박한다.

그럼 국내총생산으로 넘어가 보자. 한국 정부에서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44,174원, 아메리칸 달러로 환산하면 2,406달러가량이며 전체 국내총생산은 1,130억 달러가량이다. 한국 정부에서 그간 자국의 정확한 경제적 규모와 삶의 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해온 것을 고려했을 때, 이 수치는 아마 다소의 오차는 있을지라도 정확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한국은 이미 프랑스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으며 우리 합중국에서도 얕볼 수 없는 경제 대국이다. 여기에, 한국이 과거 청의 영토였던 권역 전부를 통합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의 경제 규모는 단숨에 4,200억 달러로 4배 가까이 폭증하며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아시아 전역을 통합한다면 확실하게 합중국마저 따돌릴 수 있다.

이렇게 무리한 가정을 하지 않아도, 그동안 한국의 영향권이라 인식되던 황하강 이북 지역들만 온전히 통합해도 한국은 이미 2,000억 달러를 웃돌아 독일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이제 황화론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닌 현실적인 위협으로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 그러한 의향이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금의 국제사회는 한국이라고 하는 대국을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비좁다는 것이다.

필자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한국을 막고자 하지 않는다면, 20세기는 이제 저들의 세기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계기였을 뿐 언젠가는 찾아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애당초, 이 무렵 한국은 더는 거리와 세계적 혼란을 방패 삼아 대수롭지 않은 위협인양 멀찍이 뒤로 물러나 있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이미 청을 제외하고서도 1인당 소득은 이탈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총소득은 프랑스와 경쟁하고 있었다. 괜히 한국의 요망대로 천하회맹의 본부가 콜카타로 옮겨지고, 세계패권을 다투는 3대 열강에 한국이 포함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간 한국을 진지하게 견제하려는 시도가 드물었던 것은, 순전히 거리와 무지 덕택이었다. 쉽게 말하여, 외교관들이나 지식인들이라면 몰라도 일반인들은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에야 한국이 얼마나 되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후에도 여전히 민간사회에서는 한국을 육군만 비대한 준 문명국 또는 삼류 열강 즈음으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청이 자진해서 한국의 품에 안기고 나니 이제 민간인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언론에서 매일 같이 아시아 위협론, 한국 위협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제 더는 한국에 관심이 없어도 한국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지기 시작한 한국의 힘은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이제는 저 노랑 원숭이들이 신형 전함까지 개발한다고?"

"맙소사. 이제는 저놈들이 자동차까지 만들고 있었다니.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저 원숭이들에게 그런 위험한 기술을 가르쳐준 거야!"

"잠깐, 세계 10대 조선소 중 6곳이 한국 소유라니. 난 그런 거 못 들었어!"

서역 민간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한국의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이었다. 양적 성장이야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쓸데없이 많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라는 편견도 있다 보니 놀라울 것도 없었으나, 질적 성장은 이야기가 달랐다. 황화론이 단지 음모가들과 표팔이들의 선동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대륙은 지금도 여전히 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전문가 대다수는 최대한 아시아에 비관적으로 전망하여도 앞으로 10년간은 고속성장 시대가 계속될 거라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고속성장을 토대로 한국은 빠르게 공업기술력을 축적해 나가고 있고, 다소 질은 뒤떨어질지라도 이미 석유화학 공업 부문을 제외한 대다수의 공업 부문에서 더는 우리 유럽의 공업기술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유럽이 아시아 대륙에서 어떠한 경제적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머지않아 아시아는 더는 유럽에서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우리 유럽이 아시아로부터 그들의 선진적인 공업제품들을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조선업 부문에서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필자는 한 사람의 독일인으로서 작금의 아시아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과장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국가 간의 통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우리 독일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으로 아시아 통일을 꾀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어차피 상관없다. 이미 아시아는 한국을 주도로 한 새로운 경제블록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경제블록을 외부적 충격으로 흔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체적인 시장이 있고, 노동력이 있고, 자원이 있으며, 이제는 기술과 공장도 있다. 저들이 스스로 이 경제블록을 허물려고 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경제적 통합은 중장기적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럴수록 우리 유럽은 아시아와의 산업경쟁에 밀려 나날이 추락하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유럽의 공장들이 대거 아시아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유럽의 탈산업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결코 그럴 일은 없다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러한 탈산업화는 가까운 미래에 찾아올 필연적 현상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부르주아들에게 애국심을 기대하지 마라. 더욱 값싼 프롤레타리아, 더욱 값싼 인텔리들을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는데 그 돈의 망자들에게 그까짓 애국심이 대수랴?』

프로이센 공산당의 정당지에서 빈정거리는 어조로 제시한 탈산업화론은 이러한 여론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막상 이 사설에서 저격하고 있던 건 「무익한 전쟁으로 유럽을 파괴하고서 책임을 질 생각은 없이 아시아로 도망칠 궁리만 하는 부르주아들의 부도덕함」이었지만, 이 사설의 독자들이 주목한 건 「유럽의 쇠락과 아시아의 대두」였다.

무엇보다 이들을 동요시켰다는 건 유럽의 쇠락 자체는 이미 부정할 여지 없는 현실이었다는 점이었다. 2차 아편전쟁이 마무리되던 적에만 해도 유럽 대륙의 공업력은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20세기 초엽에 접어든 지금은 유럽 대륙을 모두 합해도 미국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한국까지 아시아를 앞세워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던 것이다.

이미 미국에 따라잡힌 마당에 한국에 뒤쫓기는 게 대수냐고 빈정거릴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은 신대륙 촌놈이니 뭐니 비웃어도 같은 백인 국가였고 소위 기독교 문명이라는 대범주를 공유하는 형제(?)들이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차례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제 더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저 동방의 사악한 용과의 숙명적인 대결이 임박했도다! 이 위대한 기독교 문명의 발상지 유럽과 진실한 기독교 신앙을 지킬 용감한 기사들이여, 모여라! 우리의 위대한 문명을 지켜내기 위한 신성한 백인 십자군의 날이 밝았도다!"

"저 간악한 족속들과의 최종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유럽이여, 단결하라! 저 야만적인 이교도들에 맞서 우리의 영광을 지켜내자!"

이런 와중 때마침 유럽에 확산하고 있던 파시즘 세력은 일제히 아시아 황인종들과의 숙명적인 최종전쟁을 예견했다. 이는 프랑스가 세계패권을 잠정 포기하고서 유럽 패권을 우선시하면서 유럽의 정세가 일시 진정되어 파시즘 세력의 집권도 덩달아 어려워지자 인종주의로 새로운 활로를 뚫어보려 한 것이었다.

문제는 대한과 대청의 통합을 계기로 한국을 달리 보게 된 민중들이 이러한 파시스트들의 주장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못해도 10년을 우려먹을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잡았다며 좋다고 하고서 마구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던 황색언론들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유럽인들은 점차 야만적이고(?) 덜 떨어졌으며(?) 폭력적이고(?) 비겁한(?) 아시아인들이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고자 암약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모든 유럽인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러한 신념을 지닌 이들은 점차 불어났으면 불어났지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끝없는 정치적 혼란과 불경기는 이들의 양분이 되었다.

이는 마찬가지로 인종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던 미국에서는 황화론이 상대적으로 기승을 부리지 못했던 데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유럽보다 경제도 호황이었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보니 황화론이 기승을 부리지 못했다. 일반 대중들조차 쇠락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에서 피폐해져 가고 있었기에 되려 황화론이 기승을 부릴 수 있던 것이다.

물론 쉽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네. 지금도 저 간악한 족속들이 야금야금 우리의 서부 영토를 갉아먹고 있지 않던가? 저 노란 원숭이들의 팽창주의는 오히려 유럽보다도 우리 합중국에 더 위협적일세. 지금 당장에라도 저들을 뿌리 뽑아야 하네!"

"지금 미쳤나? 아시아인 민병대가 캘리포니아를 점거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뭐야? 반백 년 전과는 다르네, 이 친구야. 이제는 저 노랑이들도 총을 들고 있다고!"

"내버려 두게.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수립이 장래의 목표인가 보지. 아니면 로키산맥에서만 우리 미국군인 한 만 명쯤 얼어 죽는 꼴을 보고 싶던가."

이하응이 죽은 이후에도 검계 조직들이 다소 느슨해졌을지언정 여전히 하나의 조직을 유지하고 있던 까닭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 연방 정부는 민간차원의 황화론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탓에 백인종이 주류인 동부에서 불평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의 심장부는 동부라도, 미국의 영토가 동부뿐인 건 아닌 까닭이다.

무엇보다 만에 하나라도 이러한 인종주의가 계기가 되어 황백 충돌이 본격화된다면, 높은 확률로 태평양 무역에 의존하는 서부는 연방 정부에서 이탈하고자 할 공산이 컸다. 안 그래도 황인종이 백인종에 이은 제2의 주류인종으로 떠오른 캘리포니아주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이들에게는 이미 검계라는 이름의 준군사조직마저 있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공식인정을 받은 관영 민병대인 판국에 정말로 동서 내전이 발발한다면 이들 검계는 고스란히 캘리포니아 공화국 예비군으로 재편될 게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방 정부에 마냥 고분고분하지는 않은 캘리포니아였다. 좋건 싫건, 연방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인종주의를 진정시켜 검계 같은 자경단은 더는 필요 없다며 어르고 달랠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저 노란 원숭이들에게 오염되었다! 오로지 우리 유럽만이 신성한 기독교 문명이 태초부터 지켜온 문명의 정수를 온존하고 있느니라!"

물론 이러한 미국의 외면이 유럽에서 인종주의의 대두를 약화했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유럽에는 이하응의 유산이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인가 백인종 기독교 문명과 황인종 불교 문명(?)의 숙명적인 최종전쟁(?)은 비단 파시스트들만의 주장이 아닌, 기독교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유럽 보수진영의 공통적인 주장이 되었다.

자유주의자인가, 권위주의자인가, 봉건주의자인가는 상관없었다.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을 진리로 떠받들고 있는 유럽 보수층이라면 누구나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다고 공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 여론과 그에 호응한 정가의 광기와는 달리, 막상 더 없이 보수적이어야 할 군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래, 아시아와의 세계대전이 임박했다고 치자. 저 선동가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우리는 이미 수세에 몰렸으니, 우리는 필시 방자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미 이겼다. 아시아에 천만 대군이 있어 봐야 유럽까지 오려면 저 시베리아를 넘어야 하니 실제로 투사 가능한 병력은 기껏해야 백만 명이 한계일 것이고, 이 정도면 유럽 통합군까지 필요 없이 독일 단독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

바다로 온다고 치면 저들은 중동에 상륙하여 수에즈 운하를 뚫고서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프리카에 상륙해서 북진하던가. 그리고 어느 쪽이건 오는 도중에 모두 사막의 열기에 탈수 증세로 죽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저들을 공격하는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건, 먼저 공격하면 패배한다. 따라서 우리는 저들과의 전쟁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저들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건 얼간이나 할 짓이며, 방어할 준비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요란법석을 떨던 민간여론과 달리, 막상 군부는 한국과의 전쟁은 가능성이 없거나 불가능하다고 봤다. 서로 공격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반발 탓에 한국이 점차 러시아에서 군을 철군시키고 있다 보니 더욱 그랬다. 이렇다 보니 유럽의 군인들은 대개 미국을 위험시하거나, 아니면 프랑스나 러시아 등을 보다 위험시했다.

그러나 군인 또한 부서의 예산을 타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무원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시아와의 세계대전이 아닌, 지역 패권을 겨루는 식민지 전쟁을 위시한 국지전은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아시아인들은 식민지 해방을 명분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 손을 뻗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이번에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이순신급 전함은 중대한 안보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껏 한국을 제외한 그 어떠한 나라도 보유한 적 없는 이 가공할 신병기는, 지금까지의 해양질서를 완전히 파괴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장래 있을지 모르는 한국과의 국지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더욱 단단하고, 더욱 거대하며, 더욱 많은 전함이 필요하다!"

유럽의 군인들은 한국 위협론에 떠는 민간여론에 올라타 「혹시나 모를 전쟁에 대비한」 예산증강을 요청했다. 민간여론은 이에 박수갈채로 응답했고, 국민의 여론을 살펴야 했던 각국 정부는 군부-보다 정확히는 해군의 예산증강 요청을 받아들였다.

본격적인 건함경쟁이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으며, 그간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었던 유럽 주요 열강들의 재정 상황이 일제히 끔찍한 적자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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