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99화 (499/530)

499화 제국의 도읍

북경에 거하던 이형은 이 무렵 제법 순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녀석들 성가셔···."

어디까지나 비교적 말이다. 이형은 골머리를 싸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힘들어서? 그렇지 않았다. 일이야 힘들 것도 없었다. 이미 군사 부문과 외교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실권은 모두 태자인 이원철에게 넘겼을뿐더러, 자금성에 머무는 그의 실질적인 역할은 황제로서 전제권력을 휘둘러 청을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국통합의 상징으로서의 토템 역할에 더욱 가까웠다.

이형이 공연히 전제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의회와 대립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 앞으로 하북을 온전히 통합하는 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꽃필 위험이 많았던 까닭이다. 앞으로 하북 땅이 온전히 한국에 통합되기 위해서라도, 그는 될 수 있으면 좋은 인상으로만 남아야 했다. 그리고 이 좋은 인상으로 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듣기 좋은 입에 바른말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자금성에서 이형이 개입할 경우는 혹여 이들이 실패할 때나 자문할 때만 종종 개입하는 정도가 이상적이었다. 모든 실권을 국민회의에 넘기되, 마찬가지로 모든 책임도 이들에게 넘겨 모든 미움도 그들이 사게 두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실권도 줄고 정치에 개입할 일도 줄었는데도 이형이 순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이 녀석들, 조만간 내가 천도할 작정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형은 수북이 쌓인 상소들을 집어던지면서 질렸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나마 이름 없는 개인이 쓴 상소들은 모두 거르게 시키고서,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인원이 공동 서명한 상소나 아니면 이름난 명사들의 상소만 모아오라고 했는데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하북의 신사층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쯤 알아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 상소였지만, 막상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형에 대한 불평도 찬사도 아닌 앞으로 대한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이형을 새롭게 천명을 거머쥔 천자라 인식하고서 제국을 반석에 오르게 할 책략이나 정책들을 마구 건의해대고 있던 것이다. 자신들이 제국의 일개 변경이 아닌 제국의 새로운 도읍이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 태도였다. 오죽하면 이형이 처음으로 자금성에서 주최한 국무회의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안건이 「동토에 주민이 부족해 개척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북은 조선보다 좁으나 사람은 조선보다 많으니 이주를 권장하자」였을 지경이었다.

인구가 곧 힘인 시대에 하북의 힘을 깎아서 변경 구석구석까지 중앙의 힘이 미치도록 하자며 제안한 것이다. 하북의 선비들에게는 천하의 변경이던 지난 30년간이 이상한 상태였고 천자가 몸소 거하는 제국의 수도로 돌아온 지금이야말로 정상적인 상태였으며, 천자의 권력과 권위가 반석에 올라 천하가 평정되었을 때에 비로소 제국의 도읍인 북경과 하북도 평안해질 수 있다고 믿던 까닭이다.

"좋은 일 아니겠어요. 저들도 이미 당신을 이 땅의 새로운 황제로 인정한 거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끄으응."

황후는 싱글싱글 웃었지만, 이형은 간신히 쓴웃음을 삼킬 따름이었다. 가까운 장래에 아시아 연방이 수립되기를 기대하는 연방주의자들이야 아무튼, 그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까지 이형을 황제로 지목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된 까닭이다. 다른 애신각라 왕족을 새 황제로 옹립하든 그들 한족 신사층 중에서 새 황제를 고르든 하북은 제국 일부가 아니라 일개 왕국에 지나지 않지만, 이형을 새 황제로 고른다면 그들은 제국 일부가 된다.

하북이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이들의 정체성은 혈연이나 민족, 문화 같은 것이 아니라 제국의 중심지라는 점에 있던 까닭이다. 사실, 이 점은 하북의 역사적인 지위와 직결된 점이었다. 원나라 이래로 장장 700여 년간 중화제국의 중심지를 도맡아 해오다 보니, 이들은 전통적으로 중앙의 천자를 도와 지방의 분리주의를 찍어누르는 위치였지 스스로 분리주의를 꾀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형을 자신들 손으로 추대한 천자라 인식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수도권으로서의 전통이 고스란히 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만주 귀족들이 쓸려나가면서 그간 만주 귀족들이 독점하던 고위관직들이 고루 분배되어 이형이 현지 관료들의 호의를 사게 된 점도 있었다. 본래부터 황제가 거하는 천하의 중심이라는 데에 정체성을 두고 있던 하북 땅에 황제가 거하면서 전조의 악습마저 청산해버리니 고 나니, 하북성의 선비들은 인제야 적법한 천자가 태산에 올라 새로운 천하가 열렸다며 앞다투어 조정에 출사하고자 했다.

'이쪽에서 안 받겠다는 걸 굳이 국민투표까지 치러가면서 황제로 추대할 때야 이것들이 뭔 짓거리인가, 했는데···.'

이형은 오늘 있었던 국무회의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화폐 통합 이야기가 나오던 것이다. 이형을 칸으로 섬기면서도 은근히 흡수 통합될까 두려워하며 거리를 두려고 하는 만주나 몽골과는 달리 하북은 어서 빨리 통합하자면서 몸이 달아오른 모양새였다. 어서 아주가 한 나라가 되어야 다시금 천자를 보위하며 제국의 중심이 될 수 있던 까닭이다.

거기에 만주 귀족들에 대한 반감과는 별개로, 오랜 만주의 통치로 문화적으로 만주와 흡사하다는 점도 이들이 통합에 적극적인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옛 명나라의 복식과 전통문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온존하고 있는 조선에 대해 친밀감을 표하는 하북 선비들도 있었다. 만주 귀족들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한족 선비들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하북에서 이러한 호의적인 여론은 분명 이형에게도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모든 달콤한 제안에는 으레 함정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이었고- 이번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는 점이었다.

'이러다가 역으로 잡아먹힐 위험이 없지 않다는 게 제일 큰 문제지.'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이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저들이 이형을 황제로 옹립한 가장 큰 이유가 다시금 제국의 도읍으로서 황실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하북 신사 층의 심리 기저에는 제국의 권력 주도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다는 건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문제는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과도하게 힘을 가지게 된다면 이형의 우려대로 대한제국은 그대로 북경에 도읍한 무수한 이민족 왕조 중 하나가 될 것이고, 반대로 이들에게 아무런 힘도 주지 않는다면 그때야말로 이들은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고 들 게 뻔했다. 대한제국과 다시 분리하려 해도 마찬가지다. 기껏 초가 진정되자마자 새로운 중화 통일운동의 심장부가 태어날지도 몰랐다.

이 경우 가장 이상적인 방책은 역시 이중수도안이 되리라. 최소한 정부 기관 일부는 북경에 이전해야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다시금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할 터였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자발적인 충성심을 끌어내고 나면, 그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그들의 진정한 힘은 제국의 중심지일 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까닭이다.

"솔직한 말로, 조금 부담스럽구려."

"황상께서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일이 있으셨군요."

"그야 그 천하의 북경이 냉큼 나를 잡숴줍쇼-하고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있겠소?"

이형은 입을 비죽 내밀고서 투덜거렸다. 어차피 이형 또한 언젠가는 통합할 예정이었으니 이러한 움직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는 점은 이형에게도 조금 꺼려졌다. 저들이 원하는 건 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못해도 제2의 수도가 되는 것이라는 점도 그러했다. 북경의 도시 규모를 생각하면 내주지 않을 수도 없는 지위였지만 말이다.

황후는 말없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형이 곤란해하는 모습이 퍽 우스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선조의 모습과 이형을 비추어 봐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형은 말없이 한참을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사실, 화낼 힘도 없었다. 어디까지가 적당할 선일까를 고심하느라 간만에 머리에서 쥐가 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이형이 조금 불만스러웠는지, 황후는 웃음을 뚝 그치고서 슬쩍 이형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아 참, 그러고 보면 그 이야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 왜, 호주 쪽 이야기 있잖아요."

"글쎄. 거부할 이유가 있나?"

이형의 대답은 사뭇 긍정적이었다. 이형이 생각하기에도 나쁠 건 없었을뿐더러, 이 문제에 관해서 인도 제국과 갈등이 일어날 이유도 적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 또한 인제 와서 식민지들을 지키고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그럼 하다못해 자국 왕실의 왕족을 왕으로 내세워 독립하도록 두는 게 최선일 수밖에는 없다.

이때 저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미국과 한국의 의향이 될 텐데, 이때 빅토리아 말레타를 지목한다면 미국은 차치하고서 한국은 확실하게 우호적으로 둘 수 있다. 인도 제국으로서는 영향력을 한국과 나눠 가지는 대신에 어떻게든 호주를 지켜낼 수 있으니 싸게 먹히는 격이고, 이러면 미국도 한국과 충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좋게좋게 마무리할 수밖에는 없다.

프랑스나 그 외 유럽 열강들은 여기에서 고려할 필요가 없다. 태평양은 그들의 이권 지대가 아니니까. 그럼 당사자인 인도, 한국, 미국의 타협점이라 할 수 있는 호주 왕국 계획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이던가.

"나는 좋소. 물론, 그 아이의 의향은 들어봐야겠지만 말이오."

"그 아이가 과연 좋다고 따를까요?"

"글쎄, 따르라 강요할 생각은 없소만. 그리고 좋아하지 않겠소? 여왕으로 섬기겠다는데 말이오."

이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예로부터 감투 싫다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왕이라는 자리는 더더욱 그렇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지만, 기껏 왕족으로 태어나도 왕 한번 못해보고 죽어가는 이들이 좀 많던가? 하물며, 호주 국왕 자리는 구 영국 식민지국들의 특성상 실권은 있되, 관습적으로 그 실권을 발휘하지 않는 식으로 입헌군주정이 이뤄질 공산이 컸다.

그 이야기는 관습에 따른다면 그냥저냥 실무를 돌볼 필요도 없이 조용히 떠받음만 받으면 그만인 데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호주 여왕은 한국이라는 뒷배가 따를 수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그의 며늘아기가 진짜 왕이 되고 싶은지 아니면 그냥 국가의 상징으로 남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제안을 거절할 리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이형의 솔직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과연 어떨까요."

그에 대한 황후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그녀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꼭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던 이형은 다만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황후는 그럴수록 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던 이형이었다.

* * *

다시 한국, 한성.

"싫어요!"

빅토리아 멜레타의 대답은 과연 황후가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이는 북경으로부터의 답변에 한껏 들떠있던 한성의 고관들을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들 또한 으레 이형이 그렇게 지레짐작했듯이 그녀가 기뻐하거나 아니면 부담스러워하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명백한 거절 의사를 보여줄 거라는 예상 못 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 점은 이원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동생 부부의 의향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기는 했지만, 내심 마음속 한쪽으로는 그들도 기뻐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태에 가장 당혹한 건 국왕직을 제의하고자 찾아왔던 여섯 식민지 연합의 대표단이었다. 기껏 타협점을 찾았다고 안도하던 차에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끔찍했던 점은, 이건 어떻게 말로 설득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 전하. 혹시, 소신들이 뭔가 심기를 거스를 만한 일을 했었는지요···?"

"소신이라고 자칭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왜 제 신하란 말인가요! 그리고 심기를 거스를 말이라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았지만, 당신들은 저에 대하여 기본적인 것도 조사해오지 않으신 모양이로군요."

"조사라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뭐냐고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제 남편은 병약하다는 말이에요! 혹여, 바다를 건너던 도중에 병이 악화하기라도 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건가요?"

빅토리아 멜레타의 히스테리 섞인 고함을 듣고서야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점을 떠올린 이들 대표단은 한순간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실, 엄밀하게는 고려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더욱 정확히는, 정략혼으로 맺어진 부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겉으로만 사이좋은 부부인 체할 뿐 뒤에서는 따로 살림을 차릴 거라 생각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들을 더욱 난처하게 한 것은 한국의 인정을 얻고 한편으로는 인도 제국에 자신들이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멜레타 이상의 후보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왕으로 세울 수 있는 후보는 여럿 있었으되, 한국과 영국 두 나라의 인정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후보는 그녀 한 사람뿐이던 것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들 대표단은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새로운 타협안들을 제시해야만 했다.

"여, 염려 마십시오. 전하. 부군께서 심려되신다면, 부군께서는 한국에 남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는데, 당신들은 저에게 제 영혼과 육신을 대양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누라 하시는군요. 저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 그렇다면 전하께서 저희 오스트레일리아에 거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다못해 대관식만 치러주십시오! 그 뒤에는 전하께서 다시 이곳 한국 땅에 돌아가셔서 부군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어도 조금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싫습니다! 제게 그 지옥 같은 뱃생활을 두 번이나 하라고요? 싫어요. 절대로 싫습니다. 전 두 번 다시 배에 오르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

'그럼 우리보고 뭐 어쩌라는 말이야?'

빅토리아 멜레타의 완강한 반대는 이들 대표단을 지치게 했다.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비장의 패라고 할 수 있었을 「대관식만 치르고서 한국 귀국」안조차 막히니 더 제시할 패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빅토리아 멜레타의 자식들을 꼬드기기에는 자식들 모두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그 자식들에게 보위를 권하는 것도 무리였다.

한국 정부 또한 이에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의 옹고집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이럴 때 문제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까닭이다. 특히나 이제 호주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 희희낙락하던 패권주의자들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온건파든, 과격파든 말이다.

"마마,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이 나라의 장래가 걸린 일입니다! 저들도 대관식만 온전히 치르고 나면 이 대한으로 다시 돌아가도 좋다고 양보하지 않았습니까. 부탁합니다. 부디 한 번만 다녀와 주십시오!"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대답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경들도 그리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러니 이만 제 눈에 띄지 말아 주실래요?"

그리고 대표단의 설득이 결국 실패로 끝났듯이, 이들의 설득 또한 실패로 끝났다. 사실 빅토리아 멜레타의 고집도 고집이었지만, 한국의 고관대작이라고 해봐야 일개 관료인 이상 황제의 둘째 며느리인 그녀에게 이 이상 압력을 행사하거나 치근덕거릴 수도 없었다.

결국, 모두가 실패함으로써, 이제 남은 건 이강 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설득해야 했던 또 한 사람 말이다. 그리고, 이강의 반응은 그녀와 정반대였다.

"흠,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에는 제독이 되어 세상을 누벼 보고 싶었지···."

"당신 정말 이럴 거예요?"

"내가 뭘?"

곧 호주 왕위가 걸린 장대한 부부싸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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