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01화 (501/530)

501화 식민

아무튼, 이로써 겨우 한국의 고관들은 물론, 식민지 연합 대표단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록 여왕으로서 대관식만 치를 뿐 호주에 거하지는 않을 거라는 다소 굴욕적인 조건이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마냥 악재라고만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보아하니 전하께서 정권에 욕심이 있으신 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구려."

"누가 아니라오. 이걸로 일단 무역 봉쇄는 풀리게 될 테니 자유 무역당에서도 환영할 거요."

이들의 밀담에서 쉽게 눈치챌 수 있다시피, 이들에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아시아와의 무역을 정상화하는 것이었지 빅토리아를 여왕으로 세우는 게 아니었던 까닭이다. 무역 정상화 없이는 독립은커녕 당장 문명이 붕괴할 판국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당초 여왕으로서 재능을 뽐내거나 호주에 애착을 보인 적도 없는 그녀에게 진심 어린 충성을 다할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이들이 진짜로 두려워했던 건 빅토리아가 시댁 대한제국의 뒷배를 믿고서 신생 오스트레일리아 왕국에서 전제정치를 펼치고자 했을 경우였다. 그 경우에는 대항할 방법도 없었다. 돈줄도 군사력도 정통성도 모두 가지고 있는 국왕이 저 뜻대로 정치를 펼치겠다는데 그 누가 감히 맞선다는 말인가.

아시아와의 무역이 앞으로도 계속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살아있는 보증서가 한순간에 폭군으로 돌아서는 격이었다. 바로 이 점이 이들 대표단이 선뜻 빅토리아에게 「대관식만 마치고서 돌아가도 좋다」라는 다소 굴욕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원인이기도 했다. 내심 마음 한쪽으로는 대관식 이후 빅토리아의 행보를 두려워하고 있던 까닭이다.

여차하면 자치의회가 해산되거나 무력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일고 있던 판국에 빅토리아 본인이 왕권에 아무런 관심도 없음이 드러났으니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해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거 잘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잘 모르겠군. 전하께서 호주를 비우고 계시면 분명 우리 대한에서 힘을 쓰기 어려워질 텐데, 이 조건이 아니면 전하께서 호주에 가시지 않겠다고 하니 원···."

"뭐, 잘된 일이라고 치세나. 아닌 말로, 전하께서 순순히 호주에 머무신다고 한들 우리 말에 귀 기울여 주실 턱이 있던가? 괜히 고집을 부리실 바에야 그냥저냥 이렇게 타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네."

한편 이는 한국의 고관들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본래라면 호주를 완전히 한국의 지배적 영향력 아래에 두고서 반쯤 식민통치를 시도할 계획이 있었는데, 빅토리아 부부가 대관식만 치르고서 한국으로 곧장 돌아올 것이라고 공언해버리면서 그러한 계획들이 모두 흐지부지된 것이다. 당장 여왕 부부를 호위한다는 핑계로 파병을 건의해보려고 했던 것부터가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썩 나쁜 결과인 것도 아니었는데, 설령 호주에 빅토리아 부부가 머물게 되었다고 한들 빅토리아가 한국 정부의 의향에 과연 따라줄 것인지가 또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차라리 이름뿐인 여왕으로 남겠다고 공언한 지금이 한국에는 더 나은 결과일 수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였으니 진짜로 그렇게 되었을지는 의문이었다.

결국, 서로의 이해관계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지는 않았기에, 빅토리아가 한발 물러난 순간 곧장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식은 언제 즈음으로 생각하시고 계시는지요?"

"겨울만 아니면 돼요. 거긴 총독궁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난방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몇 시간씩 한겨울에 세워뒀다가는···."

"그럼 지금 당장 출항할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나 본데. 지금이 바로 그 겨울이잖아요. 겨울만 아니면 된다고 한 제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낸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 다만 저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남반구에 있는 까닭에 이곳 북반구와는 계절의 흐름이 정반대라서, 한국에서는 11월이 곧 초여름이요, 도착할 즈음이면 늦여름이나 초가을이 될 테니 되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반년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 뒤로는 순탄대로였다. 애당초, 빅토리아를 제외하면 처가인 인도제국을 포함하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거래였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이 무렵 이미 한국, 인도 양국은 호주 식민지 대표단과는 별개로 만나 앞으로 아시아의 호주 진출을 용인하는 대신 기존 토착 영국인 지배계층을 존중하는 조건으로 앞으로 호주의 처우에 관하여 원만한 타협을 이룬 다음이었다.

미국과의 협상 또한 상당 부분 진행 중이었고, 이미 호주를 한국의 영향권으로, 하와이를 미국의 영향권으로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태평양 분계선을 보다 남쪽까지 확대하되 관세 등의 경제적 장벽은 더욱 허무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대표단에서 조바심을 내려고 해도 빅토리아의 변덕을 제외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던 것이다.

"신뢰하기 어려운 이야기네요. 제가 직접 확인해봐야겠어요. 만일 절 속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이번 교섭은 없었던 일로 할 테니 그렇게 알아요!"

"허허, 이것 참. 여기까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을 줄이야···."

물론 그렇다고 빅토리아가 이를 계기로 더욱 협조적으로 변했다던가, 보다 호의적으로 변했다든가 하면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들 대표단은 저들의 사정으로 한국에서 병약한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지내고 있던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려는 이기적인 족속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한국의 고관들 또한 그에 입 맞추어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 장사치들이었다.

빅토리아는 결국 대표단의 설명을 믿지 못하고서 직접 성균관 대학교를 찾아가 교수진들에 대표단의 설명이 진정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이들 교수진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빅토리아에게 대표단의 설명이 옳다는 걸 확인해주었고, 그걸로 끝-이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같은 땅덩어리 위에 있을 텐데 계절이 정반대라는 거죠? 저 성균관의 교수들도 제게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해요!"

빅토리아가 그래도 못 믿겠다고 끝까지 버틴 것이다. 그녀의 본심은 대표단의 설명을 못 믿겠다기보다는 가고 싶지 않다였던 까닭이다. 다만 이번에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대표단의 설명을 못 믿겠다며 악을 쓴 바로 그다음 날 빅토리아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자기 뜻을 뒤집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강이 욱신거리는 등을 문지르며 어기적거린 건 물론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들 부부를 향한 시선은 묘해졌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애당초, 이들 두 사람 모두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온 인간상도 아니었다.

"으하하! 나는 세상의 왕이다-!"

"촌스러워요! 부탁이니까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제발 그러지 좀 마요!"

그렇게 이강 인생의 첫 출항이 시작되었다. 항해 내내 이강은 준비된 여객선도 마다하고서 호위를 위하여 동원된 이순신급 전함 2번 함 율곡 이이함에서 지냈다. 잔뜩 신이 나서는 시도 때도 없이 돛대에 올라가려 한 건 덤이었다. 돛대에 올라가기에는 본인의 힘도 부족했을뿐더러 그때마다 빅토리아가 억지로라도 끌고 내려온 덕택에 실제로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덕택에 빅토리아는 첫 항해 때의 폐소공포증이나 멀미 같은 건 추억할 새도 없었다. 첫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포탑에서부터 주거 구역, 함미에서부터 함수까지 그야말로 날마다 전함 곳곳을 쏘다니는 통에 이강이 어디 가고 있는지 계속 파악하는 것만으로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 병약한 몸으로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뻘뻘 거리는 이강을 보고 있자면 그가 대한의 황자인지 아니면 전함을 염탐하러 온 첩자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녀에게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그렇게 매일 같이 바닷바람을 쐬고 다니면서도 이강이 큰 병치레는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큰 병치레만 없었다뿐이지 이틀 거르고 하루꼴로 몸살감기를 앓거나 소화불량으로 변소를 들락거리거나 했지만, 그 정도야 큰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육지에서도 일상이라고 할만한 일이었다.

"으하하! 바닷바람 죽인다, 진짜!"

"제 몸도 못 가누고 있는 사람이 헛소리는! 됐으니까 이만 선실로 돌아가요. 자꾸 이러면 제 허락 없이는 선실에서 못 나오게 할 줄 알아요!"

그런데도 말로만 선실에 잡아 가둘 거라고 엄포를 놓을 뿐 차마 진짜로 가두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은, 이강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육지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던 까닭이다. 이강이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이번 왕복 항해가 그의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항해가 될 것이라는 점도 빅토리아를 모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고, 몇 번이고 휘청이다가 사고가 날 뻔했던 순간에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가도 또 막상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평생에 한 번뿐일 항해인데 이 정도는 풀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번번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빅토리아의 자비도 있고 하여, 이강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한 달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꿈만 같았던 항해가 끝나고, 육지에 오르고 난 다음이었다.

"콜록, 콜록, 콜록!"

"그러게, 조심 좀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정말 내가 못살아요!"

장장 한 달간을 첫눈 내리는 날 강아지처럼 날뛴 업보였을까. 호주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이강은 몸져눕고야 말았다.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은 아니었고, 대관식을 치르던 당일에도 잠깐 얼굴만 비추고 들어가긴 했지만, 아무튼 참석까지는 문제없이 맞힐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문제는 돌아가는 날까지도 그 몸살감기가 떨어지지를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호주에 도착한 빅토리아의 행보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빨리 끝내고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뿜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날에 육지에 올라 환영을 받고, 둘째 날 대관식에 앞서 자치의회와 본국에서 파견된 도독과 성공회 주교를 만나고, 셋째 날 대관식을 치르고서 넷째 날 피로연을 한 다음 다섯째 날에 벌써 돌아갈 채비를 했던 것이다. 이 중에 이강이 빠졌던 행사는 둘째 날 하루뿐이었다.

물론 이 점은 이미 사전에 합의된 사항들이기도 했으니 꼭 빅토리아가 조바심을 냈다고만 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 점이 이강에게 문제가 된 것은, 이대로 가면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회복을 위해서라도 항해 내내 선실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 할 가능성이 컸다는 점이다.

'아, 씨. 어쩌지.'

이강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꾀병을 부려서 병이 나을 때까지 출항을 미루는 방법이었고, 또 하나는 기왕에 호주에 온 김에 구경이나 더하고 가자면서 시간을 끌어 회복할 시간을 버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꾀병은 들킬 위험이 너무 컸을뿐더러, 뒷감당도 무시무시했다. 그가 감당해야 할 뒷감당이 무시무시한 게 아니었다.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라고 눈이 뒤집힐 빅토리아가 쏟아낼 분노와 그 뒷감당이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몇 대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혼자서 뒷감당이 되는 일이라면 모를까, 이건 자칫하면 그가 성사시킨 일을 그 자신의 손으로 망치는 수가 있었다.

결국, 그가 택한 건 후자, 관광을 핑계로 시간을 끌어보는 것이었다.

"저기,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시간도 남았겠다가 이곳 호주의 옥토 강산을 관광해보는 건-."

"꿈도 꾸지 말아요."

물론 그 또한 잘 되지는 못했다. 차라리 엄살이라면 속아주는 시늉이라도 하지, 당장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사람이 호주의 미개척지를 탐험하자고 하는데 속아 넘어가 줄 만큼 빅토리아는 녹록하지 않았다.

결국, 이강은 빅토리아의 대관식을 끝으로 그녀와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항해 내내 선실에 갇힌 체, 그야말로 피눈물을 머금고서 말이다.

* * *

호주를 떠나던 날, 빅토리아는 당부했다.

"전, 이곳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할뿐더러, 왕이 되기에 앞서 배워야 할 교육도 미처 받지 못하였고 국왕으로서 정사를 돌볼 재능을 갖추고서 태어나지 못하였을뿐더러 저 자신이 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실한 백성의 모범이 될 만한 선인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어찌 이 나라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총독과 섭정 의회의 재능있고 경험 있는 고관들뿐이니, 부족한 면이 많은 저를 대신하여 이 나라와 백성을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총독의 뜻이 곧 저의 뜻이 될 것이며, 섭정 의회의 뜻이 곧 백성의 뜻이 될 것이니. 당신들이 뜻을 모은다면 그것이 곧 국론일진대, 이는 곧 하나뿐이신 우리 주의 신성한 통치가 마침내 이곳 오스트레일리아에 미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신의 가호가 저와 오스트레일리아 왕국의 백성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입니다."

"""여왕 폐하 만세!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만세!"""

빙빙 돌려서 말하였지만, 「난 국왕 노릇 할 생각 없으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이 말을 끝으로 빅토리아는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자신이 한 말을 있는 그대로 지킨 셈이 되었다. 이로써 신생 오스트레일리아 왕국은 국왕 없는 왕국이 되었다. 엄밀하게는 국왕은 있지만, 1년 중 국왕이 왕궁에 머무는 날이 단 하루도 없으니 실상 국왕 없는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다 보니 빅토리아가 임명-엄밀하게는 그냥 자칭이었던 걸 공인으로 바꿔준 것뿐이었지만-하고서 떠난 에드먼드 바튼 총독은 실상 대통령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섭정 의회는 그대로 공화정의 의회나 다름없이 되었다. 빅토리아가 변덕을 부리면서 뜻하지 않게 겉으로는 왕국이라는 형식을 취해도 실질적인 내부정치는 공화국이나 다름없는 기묘한 정치체제가 만들어져버린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당시 극과 극을 달리던 공화파와 왕당파 사이의 타협점이 되었다. 물론, 모두가 만족스러워할 그럴듯한 타협점이라기보다는 모두가 다소 불만은 있어도 억지로 수긍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타협점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로써 간신히 여섯 식민지 연합은 「대 오스트레일리아 연합왕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 신생 오스트레일리아 연합왕국이 내각 결성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정책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반백 년 간의 놀라운 인구 성장에도, 여전히 우리 오스트레일리아 아대륙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들과 문명의 이기가 닿지 못하는 미개척지로 가득하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오스트레일리아 연합왕국이 국제사회에 어엿한 자주독립국으로서 인정받기 위하여 가장 절실한 건 역시 자립하기에 충분한 인구의 확보일 것이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인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작금의 이민 제한 정책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우리 섭정 의회는 이와 같은 판단에 근거하여, 한국에 대한 전면적인 이민 규제 폐기를 결단하는 바이다."

이는 호주 국내의 현실주의자들 및 자본가들과 인종주의자들 및 현지 노동자 간의 타협안이기도 했다. 그간 일자리 축소 문제와 인종갈등 탓에 터부시되고 법적으로 금지하고자 했던 황인종 이민을 한국에 한하여 풀어줌으로써 어떻게든 한국의 분노를 피하고자 한 것이다. 다른 아시아인들과는 달리 한국인은 명예 백인이라는 변명은 덤이었다.

물론 여기서 진정 주목해야 할 점은 시답잖은 명예 백인 운운이 아니었다. 애당초 식민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백성(民)을 심는다(植)는 뜻이다. 곧 사전적인 의미의 식민지는 국외영토에 자국의 백성을 이주시킴으로써 완성된다. 그렇다면 한국에 한정된 황인종 이주허용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다. 특히나, 호주처럼 아직 인구도 적고 개척 와중에 있는 식민지는 더더욱 그랬다.

호주의 한국인 이민자 허용은, 호주는 한국의 지배적 영향력 아래에 놓였으며 이제 한국은 원한다면 언제건 서태평양 전역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했다.

"우리 말라야 연방은 귀국의 군사적 동반자가 되리라 맹세합니다."

"브루나이 술탄국은 범 아주 조약기구에 정식 가맹을 요청합니다."

"우리 인도네시아 합중국은 범 아주 조약기구에 정식 가맹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라왁 왕국은 범 아주 조약기구와의 경제협력 확대를 기대합니다."

이는 그간 미뤄지고 있던 남아시아 국가들의 회맹 가입을 이 이상 미룰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간의 참관국 지위에서 탈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폭발적인 영향권 확장은, 이들 회맹을 달리 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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