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화 절대강자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우선 대부분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위협론의 심화였다.
"맙소사, 저 가엾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민들이 야만스러운 황인종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야 말았구나!"
"저 한국인들의 탐욕스러움을 보라! 나날이 부풀어가고만 있는 저들의 제국을 보라! 이래도 아직도 황인종들과의 최종전쟁을 믿지 않는다는 말인가!"
"가자, 오스트레일리아로! 대백색 함대여, 집결하라! 우리의 오세아니아를 해방하러 가자!"
이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다 왜곡하거나, 더욱 과장하여 선전했다. 기실, 어차피 이들은 한국에서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었더라도 어떻게든 한국을 경계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 선전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위협론에 앞장선 나라들은 스페인 왕국과 이탈리아 왕국, 독일 크게 세 나라였다. 이 중 스페인은 점차 범 아주 조약기구가 세력을 키우면서 필리핀 방위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기에 다른 유럽 나라들에 도움을 호소할 목적으로 한국 위협론을 주창했다.
이는 가장 절실한 호소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도 독일도 직접 한국과 전쟁이 벌어질 여지는 없었으나, 스페인은 필리핀 내부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또는 미국이나 한국 중 하나와 전쟁이 벌어질 것인가의 선택만이 남아 필리핀을 둘러싼 무력 충돌 자체는 이 무렵 이미 확실시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의 적은 튀르크인들과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아시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튀르크인들은 우리의 직접적인 위협이며, 발칸 국가들이 우리 이탈리아 왕국에 도움을 호소하게 하기 위한 귀중한 피뢰침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말하자면 침대 머리맡의 깃털 베개다. 깔고 누우면 편안하며, 두들겨 패면 속이 풀리고, 그렇게 해도 남들에게 손가락질당할 걱정 하나 없다.
국민이란 사춘기 소녀와 같다. 그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불평하고, 화를 내고, 때로는 정부를 엎으려 든다. 그럴 때, 정부에게 필요한 건 이러한 깃털 베개다. 국민이 화가 풀릴 때까지 마음껏 깔고 눕고, 흠씬 두들겨 팰 수 있는 배게 말이다. 그리고 이 국민을 위한 베개는, 가까운 장래에 유럽이 우리 이탈리아에 도움을 호소하게 하기 위한 귀중한 피뢰침이 되어주리라."
그에 반해 이탈리아는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어 유럽에서 그 누구보다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했던 까닭에 그러했다. 영국에서 우발적 혁명 이후 노조, 군부, 파시스트 3개 세력 중 누구 하나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주저앉으면서 이 무렵 이탈리아는 오스만 튀르크를 제외하면 가장 거대하고 강대한 파시즘 국가였고, 이탈리아는 자국과 같은 파시스트 국가들을 이끌어 거대한 파시스트 동맹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한국은 이를 위해 필요한 알기 쉬운 적이었으며, 동시에 직접 충돌할 걱정이 없는 안전한 적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이탈리아가 제아무리 한국과의 최종전쟁을 외치고 해봐야 이탈리아가 한국을 공격할 방법도 반대로 한국이 이탈리아를 공격할 방법도 없으니 뒷감당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딱히 한국과 활발하게 해상무역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흔히 물지 않는 개일수록 시끄러운 법이라고 했던가. 단눈치오의 이탈리아가 바로 그러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슬람 파시즘에 빠져들고 있는 오스만 튀르크가 직접적인 위협이었다면 한국은 국내 여론 단결과 유럽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정치적 도구였다. 그들이 이 정치적 도구를 악용할수록 아시아의 반유럽 감정은 악화하여 불매운동의 피해도 나날이 커졌지만, 이는 단눈치오 정권에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설령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가 피해를 본다고 해봐야 이탈리아에 피해가 올 즈음이면 한국과 활발하게 무역을 이어가던 유럽의 다른 열강들은 이탈리아보다 더욱 큰 손해를 입은 다음일 테니 말이다.
"모두 보았는가? 아시아의 힘은 나날이 부풀어가고만 있소. 독일은 저 눈 찢어진 타타르족들의 침략에 맞선 최전선 요새이며, 러시아인들은 유럽에 맞선 타타르족들의 최선봉이라오. 그러니 독일 국민이여, 러시아인들의 간교한 말에 속지 마시오. 저들은 타타르 황제의 지령에 따라 우리 유럽을 약화하고자 우리 유럽에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오.
단결하시오, 독일 국민이여. 모두 합스부르크의 제관 아래 단결하시오! 우리의 조상이 일찍이 그러했듯이,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저 간악한 타타르 족속들의 침략에 맞서 유럽을 지켜냅시다!"
한편 프란츠 1세가 다스리는 독일 제국에서 한국은 어디까지나 곁다리였다. 그들의 주적은 러시아였고,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적도 러시아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러시아의 배후에 있는 더욱 거대하고 사악한 흑막이었다. 이는 그만큼 한국을 주도로 한 아시아의 세력확장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도 있었지만, 러시아를 유럽이 아닌 아시아의 졸개로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더욱 컸다.
한국과의 정면충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러시아를 한국의 괴뢰국이라 깎아내리고 현 러시아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극좌 정당들을 한국에 나라를 팔아치운 매국노라 깎아내려 정통성을 빼앗고자 한국을 띄워 주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범 아주 조약기구의 남진에 한껏 고양되어서 각종 선동 문구를 쏟아냈지만, 독일은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한국과 러시아의 상호작용이었지 한국과 아시아의 남진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거기에 바로 이웃한 폴란드와 헝가리가 이탈리아에 손을 벌리면서 이탈리아 주도의 파시즘 동맹이 만들어지려고 있었던 것도 독일이 이탈리아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 것인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구먼. 황인종에 맞선 최종전쟁을 이야기하는 놈 중에서 진짜 아시아에 맞선 최전선인 필리핀에 함대를 파견하겠다고 나서는 놈은 누구 한 놈 없고, 다들 입으로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농민들을 동정할 뿐 누구 한 사람 무기를 들고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려고 하지도 않으니 원···."
이렇듯, 한국 위협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3개국조차 의견도 속셈도 제각각이었다. 이는 유럽 경제 공동체가 발족한 이후에도 선뜻 유럽이 하나 되지 못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들 셋 중 직접 한국과 충돌할 여지가 있는 나라는 스페인 하나뿐이었고, 독일은 한국보다는 러시아가 더 거슬렸으며 이탈리아는 아예 정치적 도구로서 한국을 비난하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다. 백인 십자군 논의가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물론 이는 응당 합리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인종주의니 뭐니 해봐야 결국 어떤 나라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국익이지 그들이 속한 대륙의 이익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이들의 이념적 순수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하다못해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필리핀 혹은 호주에 함대를 파견하고자 나서거나 한국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들 모두 입으로만 힐난할 뿐 이렇다 할 움직임 하나 없던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강요로 호주가 억지로 빅토리아를 여왕으로 추대한 것이 아니라, 호주의 요청으로 한국이 빅토리아를 여왕으로 추대한 점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인종주의자들을 경악시키는 데에 충분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백인종 내부에서 아시아의 세력확장을 돕는 배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반응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파시스트들의 배신에 분노한 경우 말이다.
"저런 배신자 놈들! 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유럽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다리거나 하다못해 동포들에게 손을 내밀기에 앞서 앞다투어 저 광활한 오스트레일리아 아대륙을 황인종 원숭이들에게 팔아치웠다! 저 배교자들은 머지않아 지옥 가장 깊숙한 곳에 추락해 영원토록 유황불에 불타리라!"
"유럽은 도대체 어째서 이러한 폭거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가? 그 영광스럽다는데 백색함대는 언제 출항하는 것이며, 그 이전에 언제쯤 결성되는 것인가? 유럽의 위정자들은 진정으로 백색 십자군을 결성할 생각이 있긴 한 건가!"
"봐라. 이처럼 말만 앞서는 꾼들이 넘쳐나기에 아직도 유럽이 단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언젠가 우리 기독교 문명이 쇠락하게 되거든, 그건 분명 우리에게 힘이 부족하여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배신자들 탓에 망하게 되리라!"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유럽의 인종주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멀리 있는 한국보다, 그들 사이의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건국으로 훼손된 이념적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이념의 말로는 동력을 잃고서 타락하거나, 아니면 추종자들의 외면으로 자멸하거나로 수렴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인종주의가 온전히 유럽 대륙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추종자들의 외면으로 자멸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차라리 동력을 잃고서 타락하면 모를까, 추종자들의 외면으로 자멸은 정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말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이러한 배신자 색출은 광적인 추종자들을 단결시킬지 몰라도 그러한 이념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던 가벼운 추종자들을 외면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가벼운 추종자들의 외면을 만회하기 위하여 광적인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작금의 황백 대결 구도와 한국 위협론은 지나치게 과장된 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겁먹기 바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사실만 나열해보자. 한국에서 주도하는 범아시아 조약기구가 인도차이나반도와 말레이 제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국제기구가 된 것은 사실이고, 곧 이로써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전 대륙이 한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그간의 식민제국들과 동치 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이 이번에 늘린 것은 어디까지나 동맹국과 무역상대국이지 식민지가 아니다. 이는 극명한 차이다. 만약 한국에서 식민지를 확장한 것이라면 투자비용은 대단하지 않다. 항구와 철도, 그리고 자국민이 주거할 도시를 완성하고 나면 이제 이익을 뽑아낼 일만 남았다. 하지만 한국은 이야기가 다르다.
딱히 한국을 옹호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은 그간 한국을 주도로 한 아시아 전 대륙의 단계적인 근대화를 주장해왔으며 또한 실천해왔다. 이를 비추어 생각할 때, 이번에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가맹한 나라들은 한국에 그와 같은 도움과 대우를 기대했기에 한국과 함께하려 하는 것임이 의심할 여지 없다. 문제는 과연 이 과정에서 얼마나 되는 시간과 물자가 소요될 것이며, 한국에서 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범 아시아 조약기구가 수립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면에서 유럽과 겨룰 수 있는 나라는 한국 하나뿐이다. 기존 회원국들조차 아직 한국의 도움을 기대해야 하는 판국이라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이들을 위해 신규 가맹국들을 소홀히 한다면 그들은 한국에 실망하여 곧장 다시 탈퇴하려 할 것이고, 신규 가맹국들을 위해 기존 가맹국들을 소홀히 한다면 범 아시아 조약기구는 점차 내부적으로 붕괴하여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한국이 이들 모두를 돕고자 한다면, 한국은 그 터무니없는 지출을 유지하는데에도 바빠서 감히 아시아 바깥에 한눈을 팔 수 없다. 거기에 한국에는 신규 가맹국들의 개발 외에도 새로이 얻은 영토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과제까지 남아있다. 설령 지금 황제가 30년을 더하다가 병사하여도 한국은 짧아도 50년에서 60년 간은 황제가 남겨두고 떠난 과제들을 수습하는 것에만도 급급할 것이 분명하다.
단언해도 좋다. 저 유럽의 인종주의자들이 뭐라고 지껄이건 간에, 한국의 가장 큰 적은 이미 우리 백인들이 아니다. 저들의 가장 큰 적은 저들의 터무니 없는 덩치 그 자체이고, 저 비대한 살덩어리를 잘 단련된 근육으로 바꾸기 전까지 한국은 세계패권은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 무렵 미국 국무부에서 작성되었던 문건으로, 영국 혁명 이후 인도로 피난도 공화국에 충성도 아닌 미국으로 이주를 택한 구 영국 외교 실무진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그들의 의견을 규합한 결론이었다. 이 무렵 미국은 학생혁명 이후 대영제국의 분열로 생긴 대아시아 정보 공백을 해결하기 위하여 구 영국 외교 실무진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현 범 아시아 체제의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미국 그 자신들이 직접 중남미 국가들을 워싱턴 조약기구로 끌어안으면서 얻게 된 고충도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쉽게 말하여, 「우리도 이렇게 귀찮은데 우리보다 약한 주제에 저 라틴 놈들보다 더 가난하고 더 넓은 땅덩어리를 관리해야 하는 한국이 과연 멀쩡하겠냐?」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이 판단은 옳았다. 실제로, 이 무렵 한국은 과식 때문인 만성 소화불량 상태였으니 말이다.
이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틈에 한국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꾹 눌러서 그동안 삼킨 걸 모두 토해내게 하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소화를 방해하면서 세계패권을 공고히 하는 방법이었다.
"태평양은 당분간 우리의 한국인 친구들이 계속 맡아두도록 내버려 두자. 언젠가는 한국과도 결판을 내야 할 테지만, 지금은 대서양이 더욱 급하니까. 주인이 관리하는 황관과 언제 누가 주워갈지 알 수 없는 주인 없는 황관 중에서 우선순위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주인 없는 황관이지 않겠는가?"
이 중 국무부에서 제안한 건 후자였다. 이는 한국이 곧 세계패권에 도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야 겉으로는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아시아 방면에서 한국에 대적할 협력국을 물색하는 한편 우선 쿠바를 빠르게 정리하고 건함경쟁으로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는 유럽을 휘어잡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게 정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물론 검계로 대표되는 아시아계 자본의 로비활동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말이다. 이러한 국무부의 건의는 대영제국의 몰락 이후 그 지위를 미국에서 대체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던 정계에도 쉬이 받아들여졌다. 트러스트로 대표되는 미국 재계 또한 이에 공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들은 대영제국의 몰락 이후 혼란스러워진 대서양 무역의 길정리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대서양 패권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변화는 미국의 건함경쟁 참전으로 이어졌다. 태평양 함대는 구형함 교체를 위주로, 대서양 함대는 신규함 건조를 위주로 계획된 의욕 넘치는 건함계획이었다.
"저 양키 놈들이 기어이 우리 유럽을 아주 먹어치우려고 작정을 했군···!"
그리고 미국의 참전과 동시에 유럽의 건함경쟁 열기는 한껏 사그라졌다. 절대적인 1위가 나타나 버린 것이다. 이미 우승자가 정해져 버린 경주에 온 힘을 다할 선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이 앞으로 유럽에 점점 깊숙이 개입할 거라 미리 짐작하고서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위협이 될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가 전혀 없는 나라들도 있었다. 가령 그간 유럽 패권을 노리고 있던 프랑스가 그러했다. 장차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럽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던 까닭이다. 그들이 유럽에서 영향력을 사수하려면 미국이 유럽에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만들어야만 했다.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생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