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미치광이
나폴레옹 4세의 방한.
이는 프랑스와 한국에 주목하자면 전형적인 국가 간 주고받기였다. 한국은 러시아에서 철병하며 프랑스와 대적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프랑스는 이에 호응하여 황제가 몸소 한국을 방문하면서 다시금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의 우호 관계를 재건하며, 한편으로는 세계 패권을 향해 내달리고자 하는 미국을 향해 우회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 더욱 넓게 본다면 어떨까? 간단하다. 주변국들과 몇몇 선동적인 정치가들이 황백 최종전쟁이니 백인 십자군이니 같은 공격적인 어구를 들먹이며 인종주의를 선동한다고 한들 적어도 이들 양국의 국가지도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서로서로 이용하는 평범한 국가 관계일 뿐, 약육강식적 숙명에 근거하여 언젠가 반드시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피차 과도하게 살갑게 대할 필요도 없되, 필사적으로 멸할 필요도 없는. 그런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국가 간 관계라고 말이다.
"20세기의 유다다! 저 같잖은 개구리 놈들이 우리 기독교 문명을 배신했다. 또다시 주를 등지고 말았다!"
"부끄러운 줄 알도록! 당장 사사로운 이익에 반해 역사적 대의에 감히 거스르려 하다니! 반드시 천벌이 내릴 것이다!"
"한국의 황제가 파리에 오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의 황제가 한성을 찾아간다니. 도대체 항복문서에 서명하러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물론 이것이 적잖은 반발을 일으켰음은 물론이다. 특히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파시스트로 대표되는 사회진화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거리낌 없이 나폴레옹 4세를 기독교 문명의 유다라 지칭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아시아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국가적 자존심까지 집어던진 유대인 같은 족속이라고 말이다. 아예 핏줄에 유대인이 섞인 건 아니냐며 진지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거기에 꼭 인종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인 중에서는 한국의 황제가 파리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구도가 되어버린 것에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동안 위대한 프랑스를 표방하며 애국주의적 선전과 위대한 영도자로서 이미지를 구축해온 나폴레옹 4세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간 외치던 위대한 프랑스는 어디로 가고 한국에 항복문서를 작성하러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환호하는 목소리도 컸다.
"해냈다! 이제 겨우 다시 배를 띄울 수 있겠어!"
"휴우,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수치를 무릎 쓰고 용단을 내려주신 덕택에 어떻게든 파산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암. 다행이고말고!"
"젠장, 프랑스에서 너무 크게 나왔어. 이거 앞으로 한동안은 아시아 시장에 접근하려면 프랑스 배를 써야겠는데···."
가령 무역업자로 대표되는 유럽 각지의 자본가들이 그러했다. 애당초 이들에게 중요한 건 첫째로 돈이었고 그다음이 부차적인 나머지였던 것만큼, 한국의 황제가 파리에 찾아오는 구도가 아니라 그 반대가 되어버린 점에 유감을 표하기는 했어도 당장 아시아 시장으로 다시금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가 그러한 실망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나 프랑스 자본가들의 반응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이번 방한을 계기로 앞으로 유럽의 공산품들이 아시아에 수출되려면 반드시 프랑스 선박을 빌려야 할 것이라며 크나큰 기대를 품었다. 여전히 한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나라들과는 다르게 프랑스는 황제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면서 성의를 보이고 양국 간 우호 관계를 과시했으니 말이다. 그 특혜가 크건 작건, 특혜 그 자체가 없을 수는 없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비록 루이의 종용이 있기도 했으나 나폴레옹 4세가 직접 한국행을 결단한 이유이기도 했다. 시끄럽기만 한 선동가들보다는 직접 유럽의 돈을 움직이는 자본가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이다. 애당초 그가 준비해야 하는 건 당장 총선 같은 게 아닌 앞으로 적어도 10년, 어쩌면 30년 뒤에 찾아올 국민투표였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여론은 갈대와 같다. 그러나 계층 논리는 다르지. 이번 일을 계기로 돈줄을 쥔 부자들은 우리 황가가 사사로운 여론 보다 자본가들의 일희일비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샤를 그 아이가 국민투표를 치를 적에 샤를의 제위 계승을 위하여 아낌없이 선거자본을 투자해줄 것이다.
비록 선거에서 이기고 난 다음 그 아이는 그 끝없는 빚을 갚느라 부자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가 될 테지만···. 선거에서 지고서 제위를 빼앗기거나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어쨌건 제위만 건사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저 아이의 손자나 그 손자뻘이라도 언젠가는 황권을 되찾을 수 있을 터.'
나폴레옹 4세는 이렇게 선거자본만 확실하게 끌어들이고, 또 선전계획만 제대로 세워도 국민투표에서 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애당초, 승산이 없었다면 그가 제아무리 루이의 압력이 있었다지만 먼저 국민투표를 제안했을 리도 없었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아들 샤를은 비록 나라를 다스릴 통치자로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지만, 민심을 끌어모을 토템으로서는 충분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지식은 부족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는 무식과 지혜롭지 못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샤를이었지만, 단 하나 유일하게 겉모습만큼은 제법 수려했으며 목소리 또한 더없이 미려했다. 그의 형편 없는 학구열과 반대로 춤과 노래를 향한 열정은 언제나 불타올랐으며 때문에 황태자라는 이점을 등에 업었다고 하나 오페라 무대에 올라 주연을 맡기도 했다.
차라리 황자가 아니라 사교계의 탕아가 되거나 아예 오페라계에서 일했으면 좋았을 인간군상이었던 셈이다. 좋게 말해도 나쁘게 말해도 네로 같은 인간상이라는 게 샤를 황태자의 친부인 나폴레옹 4세의 솔직한 소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네로와는 다르게 예술계로 나갔어도 그 나름대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은 있다는 점이리라.
"내게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더라도, 아니 참한 딸이라도 있었더라도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폴레옹 4세였기에 그는 방한 일정이 결정된 이후에도 끝없이 한탄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친척들에게 제위를 넘길 것도 아닌 이상에야 그에게 주어진 대안은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샤를 한 사람뿐이었고, 그 샤를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물심양면으로 그의 치세를 준비해 나가야 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나폴레옹 4세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뱉으며 한마디 툭 하고 내뱉었다.
"정말이지 괜히 벌집을 들쑤셨어."
차라리 루이에게 손대지 않았더라면, 그를 끝까지 신뢰해주었더라면 여기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속내가 숨겨진 한마디였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늦은 후회였다. 이제 와 화해하려 한다고 한들 이미 고점을 점했다고 판단했을 루이가 나폴레옹 4세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받아들여 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단 하루라도 오래 살아 샤를의 치세가 반석에 오르도록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 * *
나폴레옹 4세의 방한 소식은 곧장 이형에게도 전해졌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그 누구보다 먼저 이형에게 먼저 전해졌다. 현 한국에서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을 지니고 있는 건 이형 한 사람뿐이었으며, 또 그만한 혜안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형 한 사람뿐이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 소식에 관한 이형의 첫 반응은 이러했다.
"이 양반, 어지간히도 돈이 급한 모양이구먼?"
물론 이형이라고 루이와 나폴레옹 4세 사이에 오간 밀담을 모두 눈치채거나 예측한 건 아니었다. 애당초 그게 가능했다면 이형은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으리라. 다만 한 가지, 한국을 향한 적극적인 화해의 몸짓이 자본가들을 향한 필사적인 어필이라는 것만은 눈치챘다. 당장 아시아 시장과의 접근이 끊어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봤을 이들도, 그리고 아시아와의 화해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을 이들도 바로 이들 자본가일 테니 말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동기나 궁극적인 목적도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알게 되었다면 그다음은 쉬웠다. 우선 상대가 누구의 눈치를 가장 살피고 있는지를 알아채면 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 것인가도 대강 견적이 나오는 법이었다. 이형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경제에서 양보해주는 대신 이번 기회에 호주까지는 확실하게 우리 세력권이라 인정을 받아야겠구먼. 가능하다면 필리핀의 평화로운 독립을 중재받을 수 있으면 좋고."
이형은 나폴레옹 4세와의 협상 난이도는 대단히 낮을 거라고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든 격을 맞춰주기 위해서라도 이형이 직접 마중을 나가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사실 협상 내용만 놓고 보면 그가 직접 나설 것도 없었다. 경제에서 양보해주는 거야 한국에서 결정할 문제고, 호주는 애당초 프랑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며, 필리핀은 쿠바보다 스페인에 그리 중요한 곳도 아니다.
거기에 비록 지난 수십 년간 다소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열강으로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스페인이 프랑스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미국이나 한국에서 필리핀을 지켜낼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전쟁을 통해 필리핀을 상실하게 된다면 스페인은 영영 필리핀에서 내쫓겨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럴 바에야, 좋게좋게 물러나라고 프랑스에서 중재를 서준다면 스페인도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으리라.
더불어 이는 미국과 정해둔 태평양 분계선을 확실히 마무리 짓는 작업이기도 했다. 필리핀 군도는 명백하게 미국과의 분계선보다 서쪽에 있는 지역이었고, 이는 필리핀 또한 한국의 영향권 아래에 놓을 수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필리핀마저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맹하고 나면 이제 말레이 제도의 모든 섬나라가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맹하게 된다.
인도와 중동을 제외한, 일반적으로 아시아라고 정의되는 지역 전부가 범 아주 조약기구에 가맹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거 이대로 쭉 이어진다고 가정하고서, 21세기 즈음에 개화했을 잠재력만 놓고 보면 그즈음에는 세계정부를 세워도 되겠는데?"
이형은 지도상에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권역을 그려보고서는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단순하게 따져봐도 동시베리아 전역, 동아시아 전역, 동남아시아 전역, 오세아니아 전역이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권역이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동맹국이자 주요 무역상대국일 뿐 영토는커녕 식민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헛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일 인도까지 가입시킬 수만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종의 60~70%가량이 속한 초대형 단일 국제기구가 탄생하는 셈이었다. 그것도 공동시장과 공동방위, 국경 약화를 지향하는 단일 국제기구 말이다. 세계 인구의 과반수가 소속되고 지표면의 40% 가까이 점유한 단일 국제기구를 세계정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부른다는 말인가?
물론 아직은 잠재력일 뿐이었다. 잠재력을 개화시키지 못한다면 만년 유망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차하면 그저 그런 개도국 연합체로 끝나게 되리라. 지금도 그렇듯이 한국과 그 외 떨거지들로 끝나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형은 그렇게까지 미래를 비관하지는 않았다. 그의 아들, 이원철도 뭔가 특출난 업적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뭔가 일을 특출나게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덕택이다.
"뭐, 김칫국은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는 않겠지. 간만에 한성이나 다녀와야겠어.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예, 폐하. 찾으셨습니까?"
"기왕에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시는데, 환대가 섭섭해서야 되겠느냐? 모두 미리미리 준비해두라고 일러두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짧게 기지개를 켜고서, 이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뻐근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가 지금은 제일 뻐근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라기보다는 정신일 테지만 말이다. 이제야 무언가 하나 끝났다는 실감이 들어서일까? 긴장이 풀리면서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내고 있었다.
이만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이형은 선뜻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이대로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 때문이 아니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쉬고 싶군.'
이형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은 말이다. 달리고 또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 죽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는 불완전연소로 장수할 바에야 완전연소로 짧고 강렬하게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여줄 새도 없이 세상에서 그의 젊고 패기 넘치던 시절만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몸을 혹사하고 있는 것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 수 있도록 식단을 고치고, 대리청정하고, 혹시 위험할지 모르는 취미들도 끊었으면서 여전히 일을 찾아서 하고 또 찾아서 하면서 잊을만하면 황후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모순이었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인지, 이대로 죽고 싶은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에 죽고 싶어서 환장해서는."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온 한마디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본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이대로 죽고 싶다는 자기파멸 욕구와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해주고, 날 알아줬으면 한다는 명예욕. 그것이 뒤섞인 결과물이 그간 걸어온 길이라고 말이다. 쥐뿔도 없던 그의 지난 생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고찰이야말로 이형- 아니 이원철이라고 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21세기의 현대인이 조선의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이 전쟁을 일으켜 전쟁터에 나가서 몸소 싸우는 것일 수 있을까? 정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거나- 아니면 전쟁터에 나가 영웅이 되고 싶다는 명예욕에 눈이 돌아간 치기 어린 영웅주의자나 가능할 일이었다.
그렇다. 한 줄로 줄여서,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거리들이었다.
"···흐."
여기까지 떠올리고서, 이형은 웃었다. 우습게도, 자신이 미치광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이형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감정은 자신을 향한 자기혐오도 자기부정도 아닌 새로운 깨달음을 향한 끝 모를 환희였다. 가슴이 다 뻥 뚫리는 듯했다. 미치광이?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진정 중요한 건, 그가 미치광이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지 않은가.
설령 그보다 훨씬 미래에서 온 또 다른 미래인이 환생- 혹은 빙의하여 이 세상을 뒤흔들어보려고 한들, 그가 이형이 아닌 이상에야 지금 이형이 뒤바꾼 역사의 물줄기에 휩쓸려 나갈 게 뻔하다는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면, 다름 아닌 이형- 아니, 이원철이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뜻이다.
"흐하하! 그래, 이 어르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지. 암! 나 같은 놈이 세상에 둘씩이나 있기에는 이 세상천지는 너무 비좁고말고! 크하하핫-!"
이형은 그제야 마음 놓고 웃었다.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고 또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데도 이형은 웃었다.
그간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명쾌한 해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