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13화 (513/530)

513화 【후일담】한국 공군 건군 비화

인류는 유사 이래로 하늘을 동경해왔다. 그것이 이해 못 할 재앙을 내리는 하늘을 향한 두려움의 반작용이었는지, 아니면 끝 모를 하늘을 향한 탐험욕이었는지, 아니면 답답한 대지에서 벗어나 훨훨 날고 싶다는 자유 정신의 발로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인류는 더욱 높은 곳을 갈망해왔다.

이는 전쟁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보다 멀리 볼 수 있고, 더욱 멀리 볼 수 있을수록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며, 더욱 많은 것을 알수록 취할 수 있는 패도 늘어나던 까닭이다. 그것이 실리를 위해서든 막연한 동경 탓이든 인류는 더욱 높은 곳- 하늘을 갈망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비행기의 발명과 문명의 발전은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일방적이고 공허한 관심은 서력이 열리고서도 이천여 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보답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날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을 태우고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기계 새를 창조했고, 그 기계 새는 제 창조주와 함께 그리 오래지 않아 창공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도, 이 위대한 기계 새가 아주에 널리 보급된 것 또한 역시나 19세기 영웅주의 사관의 결정체, 대한 고조의 손에 이루어졌다.

"공군을 만들려고 하네."

"···예?"

"그러니까, 내가 이번에 공군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일세. 내 말 못 알아듣겠나?"

"아, 아닙니다! 하지만···!"

서력 1910년 3월 5일.

고조는 그의 말뜻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눈을 깜빡거리는 젊은 무관- 육군항공대 제1항공여단 작전사령관 노백린 대령에게 어느 날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이는 고조가 양위를 공표하여 태상황에 오르기 이전 마지막으로 보인 대외적인 행보였으며, 또한 오롯이 고조의 공으로 돌릴 수 있는 마지막 위업이었다.

노백린 대령은 후일 회고하기를, "설마하니 고조께서 그런 연유로 이 모자란 놈을 직접 지목해오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도, 이는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이고 놀라운 결정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선보인 이래로 그 군사적 가치에 관해서는 끝없이 논쟁이 오가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나, 그건 육군이나 해군의 전력을 보조하는 의미에서였지 독립적인 군을 건군하려는 논의는아니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항공기의 존재가 육군이나 해군의 작전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조차 아직 확신이 없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초창기 항공기들의 형편없는 성능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기관총은커녕 아직 수류탄 폭격조차 제대로 선보여지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제국군은 이미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프랑스 제국과 더불어 항공기 공장을 자국 영내에 건설하여 실제 성황리에 운영 중인 단둘뿐인 열강이었으며 1910년 기준 육군항공대와 해군항공대를 창설하여 항공기의 전술, 전략적인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던 유일한 열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어, 이 무렵 대한제국은 1개의 항공여단으로 구성된 육군항공대와 1개의 항공대대로 구성된 해군항공대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항공전력을 확보한 공군 대국이었다. 곧, 제1항공여단의 작전사령관이었던 노백린 대령은 오늘날 한국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공군참모총장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역임하고 있던 셈이다. 항공기가 첫선을 보인지 고작 7년여만의 대성과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또한 모두 고조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한제국에도, 이 무렵 공군 건군은 단 한 차례도 논의된 적 없었고, 또 단 한 차례도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너무나 급진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고조는 보위를 포기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으로 그보다도 더 멀리 내다보고서 공군 건군을 명령했다.

"공군이라니요. 폐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릅니다! 우리 육군항공대에는 아직 고작 1개 항공여단과 1개 훈련대대밖에는 없습니다. 이마저도 아주 전역에서 모으고 모아서 간신히 충당한 전력입니다. 고작해야 1개 여단밖에 없는 군대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다시 한번만 재고해주십시오!"

"숫자가 부족하다면 부족한 만큼 이제부터 채우면 그만이 아닌가? 그 정도야 내 재량으로 해결해줄 수 있어. 자네는 내 신임을 얻은 거야. 그래도 못하겠다는 말인가?"

"폐하···!"

하물며 이 당시 육군항공대를 이끌던 노백린 대령조차 처음 고조에게서 이러한 지시를 받게 되었을 때는 내심 끝 모를 환희에 전율하면서도 "고조께서 무언가 오해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에 대해 의심했다"라고 회고할 지경이었다. 이 당시 육군항공대 제1항공여단조차 대다수는 비행시간 300시간도 채우지 못한 햇병아리 조종사들과 1, 2년 사이에 가까스로 도면이나마 외운 정비공들로 간신히 걸음마를 떼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이는 육군항공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당초, 항공기라는 것이 처음 세계에 선을 보인 지가 7년 전이었고, 한국에 항공기 공장이 처음 들어온 게 5년 전, 육군항공대가 창건된 것이 2년하고도 10개월-좀 억지를 부리자면 3년 전인 상황에 이 정도 조직이나마 갖출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당대 최대 규모의 육군을 자랑하던 아주 합종군 공동방위체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말하여, 제1항공여단은 오직 한국만이 아닌 아주 전역에서 모인 조종사들과 정비공들로 이루어진 아주 합종군 항공전력의 전부였던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당장 노백린 대령이 육군항공대의 거두로서 주장해왔던 것도 우선 1개 항공사단이라도 완편할 수 있도록 항공기 보급과 훈련에 힘쓰자는 것이었지, 공군 건군 같은 주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조의 입에서는 이미 공군 건군 이야기가 나왔고, 그간 무수한 전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고조가 이를 스스로 없던 일로 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세세한 건 자네에게 위임할 테니,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해보게. 어차피 곧바로 군을 완편하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냥 내 입에서 공군 건군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중이떠중이들이 실제로 공군을 건군할 때 뭐라 불평할 일이 사라질 테니 이러는 걸세."

"그럼··· 지금 당장 공군 독립을 이룩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아니면, 해보겠나? 자네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볼 생각이라면, 그야 물론 자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후원해보지."

"아, 아닙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노백린 대령이 후일 회고하기를 이날 고조는 대령을 "그럼 애초에 왜 이야기를 꺼낸 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흘겨보았다고 한다. 다소 직설적이고, 격식이 부족한 표현이지만 고조가 생전 보여준 탈권위주의적 행보에 비추어 생각해보았을 때 이날 노백린 대령은 한순간이나마 고조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보다 더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결코 덜한 표현을 사용할 분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그만큼 터무니없는 임무와 끝 모를 신임을 동시에 베푼 고조를 향한 애증도 절대 없지는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노백린 대령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당장 그해 8월 고조는 태상황이 될 예정이었고, 이는 그때까지 공군 건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성과를 고조에게 보여주어야 함을 뜻했다.

곧, 노백린 대령은 반년조차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육군항공대를 이끌고서 고조가 보고서 흡족해할 만한 성과를 이룩해야만 했던 것이다. 고조를 향한 애증은 그를 젊은 날부터 섬겨온 고관들의 회고록에서 두루 관찰되는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노백린 대령이 고조를 곁에서 섬긴 건 고작해야 3년 남짓했음에도 그의 회고록에서 이러한 애증이 관찰되는 건 이때의 영향이 절대 가볍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때 노백린 대령이 선택할 수 있는 그나마 현실적인 목표치는 1개 항공사단을 완편하는 것이었다. 이 1개 항공사단이 실제로 당장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일 필요는 없었다. 훈련부대조차 대대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시 육군항공대에 반년 안에 1개 비행사단 왼편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치였다. 다만, 노백린 대령은 고조에 신임을 받게 된 이상 적어도 서류상으로나마 1개 항공사단을 확보했다는 정도의 성과는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럼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뭐 필요한 거라던가, 아니면 불편한 거라던가 말이네. 생각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해보게. 내 손이 닿는 대로 돕지."

"그렇다면 폐하,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흠, 부탁이라. 그래, 어디 말해보게. 부탁이라니, 무엇이 필요한가?"

"감히 입에 담기에도 낯부끄럽습니다만, 우리 조종사들은 다른 재주를 익혀두지 않는 한 군에 입대하는 것 이외에 비행기를 조종하는 재주로 생계를 꾸려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조종사들이 오로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비행숙련도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청컨대, 우리 군에서 일하는 조종사들의 녹봉을 인상하여 주십시오."

"군에 입대하는 것 외에 생계를 꾸려갈 방법이 없더라. 그렇다는 건 민간에서는 수요가 없다는 건가? 가령, 곡예 같은 것도 있지 않나?"

"분명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만, 현재까지도 우리 군 이상으로 조종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종사들도 나이를 먹기 마련이니 언젠가는 퇴역을 해야 할 것이고, 그들이 퇴역하여 사회에 나가게 된다면 그들을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조종사들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녹봉, 혹은 연금을 인상하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한평생 갈고 닦은 비행기 모는 재주만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이해하면 되나?"

"예.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그렇습니다."

이를 두고 너무 사욕만 추구하는 요청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당시 공군이 마주하고 있던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중대한 문제점이었다. 이 무렵에는 오늘날처럼 여객기 사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항공화물이 성행하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비행기를 바라보는 가장 보편적인 시각은 눈을 호강시켜 주는 놀라운 구경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당시의 형편없는 항속거리로는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시절 비행기 조종사가 구할 수 있는 직장은 단 두 곳뿐이었다. 하나는 군에 입대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곡예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한국을 시작으로 여러 열강국이 비행기의 군사적 이용에 관심을 기울이며 항공전력 확충에 국력을 쏟는 와중이었기에 활로가 늘어난 것이지, 어느 쪽도 오늘날 기준으로는 수요가 형편없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이 시기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행기 조종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히 이 무렵 비행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생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거나 가난조차 무릎 쓸 각오가 끝난 젊은 혈기와 모험심을 주체 못 하는 모험가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후일 노백린 대령의 회고로는, 이 시절 한국 육군항공대 소속 조종사들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낙천적인 가난뱅이들과 어떻게든 한자리 차지해보려 어슬렁거리는 문외한들"이었다.

이는 아주 대륙의 항공산업이 성장하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육군항공대가 급하게 불어나고 있던 부작용이었다. 쉽게 말해, 가려 뽑을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 후일에라도 해결하려면 우선 조종사들의 생계를 해결해주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다음 세대에 조종사를 지망할 생도들이라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노백린 대령의 당시 요청은 이러한 맥락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다시피 고조는 그런 손쉽고 보편적인 해결책을 선호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흠,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종만 하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어렵지 않군.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이 늙은 몸도 높은 공기라는 걸 마셔보고 싶은데, 어떻게 가능하겠나?"

"황은이 망극하옵나··· 예?"

"그러니까 노 대령이 날 태우고서 비행기를 몰아보라, 이 말이네."

노백린 대령은 후일 이 순간을 "저잣거리를 걷다가 웬 놈이 내 뒤통수를 부지깽이로 후려치고 간 듯한 충격이 내 뇌리를 강타했다"라고 회고했다. 다소 표현은 과격하지만,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의외의 일격이 날아왔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더하여, 노백린 대령은 고조의 이 돌발 행동을 "우리 조종사들을 위하여 민간 사업가들에게 민간여객기 사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신 게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공군 건군 이후 태상황으로 물러난 고조가 아주 최초의 민간 항공사였던 대한항공 창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주도하였던 걸 고려하면 고조의 이러한 행동은 다소 갑작스러울지언정 나름의 확고한 미래계획에 근간한 행동이었던 듯 보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더하여 뜻하지 않게 고조를 부조종사석에 모셔야 했던 노백린 대령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필자의 사견을 빼놓고서 철저하게 사료에 기반을 두어 설명하자면, 그의 회고록에서는 "저 푸른 하늘이 이날 처음으로 노랗게 보였다"라고 표현했다.

창천이 황천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절대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할 수 있겠다.

"뭐, 당장은 아니고 내가 태상황으로 물러난 다음에 말이야. 원철이 놈에게 제위도 물려주지 않고서 멋대로 죽어버리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어디 있겠나? 내가 이래 봬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는 사람이야."

"하, 하하···."

"이거야 원 괜히 긴장하게 한 모양이구먼. 뭘, 그냥 잊어두게. 당분간은 공군 건군만으로도 바쁠 테니 말이야. 이 늙은 놈의 헛소리에 홀려 괜히 무리하지 말고 온 힘만 다해주게. 껄껄껄!"

물론 늙은 놈의 헛소리 따위였을 리가 없다. 공군 건군 이후 고조는 끝내 신료들과 당대 황제의 만류를 뿌리치고서 노백린 당시 중장이 모는 전투기 위에서 10시간 37분간의 천하 유람을 즐겼다. 이날 고조는 "이 늙은 몸이 이보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오늘에서야 찾았다"라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비행기 조종술을 배워 끝내는 만 64세라는 노구를 이끌고서 비행 자격증을 따내며 천붕 당시 137시간 42분의 비행시간을 기록한 당대 최고령 비행기 조종사로 역사에 남았으니 제아무리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도 단 한 차례도 가볍게 입에 담은 적 없다는 참으로 고조다운 일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고조의 어찌 보면 변덕스러운 관심과 신임이 초창기 공군과 한국 항공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고조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은 공군 건군에도 변함없이 그대로 적용되었고, 이는 노백린 장군이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아주 전역에서 원하는 시기, 원하는 만큼 취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조의 신임과 노백린 장군의 헌신이 더해진 결과 대한제국 공군은 육군항공대가 창설된 지가 고작 10년, 비행기가 발명된 지는 고작 15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만에 작전권 독립을 달성해 전 세계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군의 조속한 독립은 항공산업의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까지도 대한항공이 전 세계 220여 개국에 지사를 둔 부동의 세계 1위 민간항공기업으로 우뚝 설 물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노백린 장군 또한 퇴역 이후에는 대한항공의 명예이사 이자 기술고문으로 활동하며 창사 초기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고조의 놀라운 통찰력이 또다시 빛을 발한 흥미로운 미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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