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후일담】역경과 승리의 역사
두말할 것도 없지만, 냉전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였다. 유럽 적화와 이에 따른 프랑크푸르트 금융시장과 파리 금융시장의 연쇄적인 붕괴로 뉴욕 증시와 미국 경제까지 큰 타격을 입어 미국 사회당이 일리노이주 주지사를 배출하는 등 미국 공산화 가능성이 잠시나마 점쳐지기도 했으며, 친러 친한 정권이라고 여겨졌던 유련이 북해에서 핵실험을 감행하며 자유 진영에 대한 군사도발을 벌이기도 했다.
대공황에 따르는 경제불황에 크게 침체한 미국이 주춤한 틈을 타 제3 국제당의 후원 속에 중앙아메리카 사회주의 합중국이 재건되어 파나마 운하가 봉쇄될 위기가 오기도 했고, 자국 내 빨치산 근절을 위하여 멕시코 합중국이 중앙아메리카 사회주의 합중국과 전쟁을 감행하며 대전 이후 최초로 국제연합군이 소집되어 양대진영 간의 대리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브람 피스허로와 넬슨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산당이 케이프타운에서 식민통치를 재건하려던 인도 제국과의 식민전쟁에서 승리하여 희망봉 항로가 공산 진영에 넘어가기도 했으며, 인도 제국의 패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 남아프리카 전쟁에 개입하였다가 우국이 고조가 제국을 세운 이래 처음으로 군사적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 군사적 실패를 말미암아 염세적 분위기가 성행하여 제국 건국 이래로 단 한 차례도 경험해보지 못하였던 끔찍한 사회적 침체에 시달리기도 하였고, 이를 틈 타 몽골에서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끝내 부결되기는 했으나 독립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끔찍한 사회적 침체는 세기말 탈권위주의 민란 뒤에야 간신히 해결되었으나, 또 한편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좌우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그뿐일까? 고조 생전부터 일본 본국과 갈등을 빚던 에조가 끝내 에조 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여 이를 막으려는 일본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이 에조 독립 전쟁 당시 우국이 에조의 손을 들어준 사실에 앙심을 품고서 일본이 범 아주 조약기구를 탈퇴하였다가 십수 년 후 다시 가맹하기도 했다.
일본의 핵 개발에 맞서 초국 또한 핵 개발에 나서기도 했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서구 식민열강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잃게 된 역사적 고토라 여긴 시암과 시암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월남 간의 분쟁이 연일 이어져 우국이 직접 캄보디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여 인도차이나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도 세계정세를 지배하는 중대한 시대였음에도 필자가 이를 풀어서 설명하지 못하고서 단순한 사건의 나열로 이를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오늘날까지도 이 시대를 기억하고, 아직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있는 까닭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아직도 이 시대를 가치 중립적으로 서술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진영을 향한 반제국주의 진영의 통쾌한 반란으로 정의되는 고조 생전의 선발한 초와 천하회맹에서의 암투, 열강 간 패권경쟁 끝에 글자 그대로 온 세상을 불태우며 초강대국 간의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3차대전기까지의 역사와 달리, 냉전기의 역사는 상당히 지저분하고 함부로 대중들 앞에서 이야기하기에 꺼려지는 주제들이 많다.
요인 감금, 요인세뇌, 요인암살, 군사 정변, 마약유통, 독재자 지원, 국제통화기금과 신제국주의, 무분별한 공산주의자 색출, 반전주의와 마약유행, 언론검열, 민간감찰, 기밀 인체실험, 핵실험 경쟁, 우발적 핵전쟁, 네오파시즘과 탈권위주의 운동, 신자유주의와 석유 파동, 이념 갈등과 상호 간 학살, 식민독립국들과 인종 청소 등등.
어느 것 하나 설명하는 데 있어서 화자의 정치적 성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주제들 뿐이기에, 당신이 이러한 주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서 전문적으로 이 분야를 파보려는 것이 아니라면 냉전 시대에 관하여서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로 기억하는 것이 훨씬 심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주변인들과 이를 두고서 괜히 피곤한 언쟁을 벌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시대에서 가장 논란을 낳는 주제는 황제와 의회의 정면충돌이다. 반공주의 문제를 둘러싸고 총선 승리 이후에도 우남이 선종의 총리대신 지명을 세 차례나 사양한 20세기판 삼고초려 사건이나 남아프리카 파병 확대 문제로 불거진 덕종의 1인 시위 사건,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파업을 벌이고는 했던 인종까지 냉전 시대라 정의된 지난 반세기 간 의회와 사이가 좋았던 황제는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그만큼 냉전이라는 시대가 각자의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판단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밖에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세습 권력과 선출 권력이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태양이 자웅을 가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기에, 둘 중 하나는 달이 되어야 했던 까닭이다.
비록 지난 반세기 간의 권력다툼은 지난 세기말의 민란으로 황권이 의회권에 일단 숙이게 되면서 어느 정도 수습된 모양새이지만, 어느 정도 식견이 있다면 알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궁내부에서 가끔 나오는 소식들을 살피면 지금의 정치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의회에 민의가 있다면, 황제에게는 고조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권위가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본 필자는 냉전 시대에 관하여서는 서술하지 않기로 했다. 본 서적은 역사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이나 가벼운 지적 유희를 즐기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가벼운 입문 서적이지, 이 복잡하고 기묘한 시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학도들을 위한 전공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더욱 진득하니 탐구하고자 한다면, 직접 학계에 입문하여 진득하니 이 시대를 따로 연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말할 수 있다. 냉전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고, 또 그 어느 때보다 세계멸망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가까운 시대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진보와 쇄신을 이룩한 시대라고 말이다.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진영이건 쉴 새 없이 쇄신해야만 했던 덕택이다.
우주 경쟁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유련의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1957년 10월 4일 최초의 인공위성 슈트라서 1호를 그의 역작 V-3 로켓으로 쏘아 올린 이래로 공산 진영은 인류 최초의 우주 유영에 성공하는 등 우주 경쟁에서 앞서 나가며 공산주의의 체제 선진성을 아낌없이 과시했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우국의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우국은 끝내 인류 최초로 달에 인간을 보내야만 했고, 월묘 11호가 1969년 7월 16일 달에 내린 뒤에야 겨우 체면을 되살릴 수 있었다. 냉전 시대의 가장 큰 유산을 꼽자면 누구나 이 우주 경쟁을 꼽을 정도로, 이때의 우주 경쟁은 무한한 열정과 적절한 계기만 준비된다면 인류에게 불가능은 없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유련과 제3 국제당의 붕괴는 갑작스럽게, 그리고 너무나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잘츠부르크 원전사고는 오랜 체제경쟁으로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던 유련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국가사회주의당 보수파 쿠데타 실패는 허울이나마 남아있던 유련을 완전히 파괴했다. 결국, 1991년 12월 26일 모든 유련 구성국이 탈퇴에 서명하면서, 유련은 역사의 한 장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찾아온 21세기, 우리는 또 한차례 역사의 반복을 마주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제3 국제당이 해산된 이래로 러시아는 당장 눈앞의 위기 탓에 차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동시베리아에 다시금 미련을 보여주고 있고, 미국 또한 당장 우국과 직접 갈등을 빚고 있지는 않으나 라틴 아메리카의 반란을 무참히 진압하고 또 한 번 세계패권에 도전할 그 날을 위하여 복수의 칼을 벼르고 있는 기색이다.
독일 또한 심상치 않기에는 매한가지다. 유련 해체 이후에도 유럽의 전통적인 패권국을 자부하던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옛 제3 국제당 가맹국들에 추파를 던지면서 그들이 유련의 적법한 후계자이자 세계열강의 일각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국력 투사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단순 보유 수만으로는 우국마저 능가한다는 독일의 핵전력은 그들의 자신감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물며 아주는 어떠한가? 셰일가스 발명 이후 석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한 중화권에서 08년 부동산 위기 이후 우경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서 100여 년 만에 중화 통일운동이 부활하는 등 우리나라의 아주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고, 이 때문에 지난 60년대의 재가맹 이후 소원하던 한일관계가 지난 반세기 중 최고조를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 혈맹이었던 러시아가 야심을 드러내는 사이 되려 한때는 적대하기도 하였던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미국의 팽창주의를 우려해서, 독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위하여 재차 우국에 먼저 손을 뻗어오는 정세가 되어 고조가 막 보위에 올랐을 적에 정세와 꼭 비슷한 꼴이 되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또 도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때와 다른 점을 꼽자면 당대 우국은 세계패권을 논하기는커녕 당장의 생존조차 어려웠던 상황이었지만, 오늘날 우국은 당장의 생존이 아닌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암약하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만이 다르리라. 때문에, 필자는 우국의 미래가 장밋빛은 아닐지라도 잿빛은 아니리라 단언할 수 있다. 당대의 우국에 불세출의 영웅인 고조가 있었듯이, 오늘날 우국에는 고조의 유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까닭이다.
우국은 또 한 번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국은 승리할 것이고, 명예롭게 승리할 것이며, 또 한 장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말이다. 우리 대한은 고조께서 임하시어, 고조께서 보우하시는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 국민이 우국이 걸어온 이 찬란한 승리의 역사를 읽으며 자신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본 필자는 이만 붓을 놓으려 한다.
* *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제 손으로 이런 문장을 써넣다니 낯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구먼그래."
잠시 집필을 멈추고서, 이형은 헛웃음을 흘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듯하였다. 고조께서 임하시어, 고조께서 보우하시는 나라라니.
"자화자찬도 정도껏 해야지. 이런 우라질 놈이."
그리 중얼거리며 이형은 가볍게 발끝으로 바닥을 찼다. 드르륵-하고 의자에 걸린 바퀴가 움직이며 이형의 몸도 절로 탁자에서 멀어져갔다.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구시렁구시렁 불평을 쏟아내며 이형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이 꼴을 보고 싶어서 한 번 더 살아보라고 기회를 주신 거요? 이 몸이 자화자찬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부처인가, 상제인가, 염라인가, 예수인가, 그도 아니면 이름도 모를 누군가인가. 그 자신도 모른 채로, 이형은 그에게 또다시 환생을 경험시켜준 이름 모를 초월자에게 불평을 퍼부었다. 그로서는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것도 없지만, 두 번째 죽음을 경험하기 이전 이형은 이미 그가 또 한차례 환생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딱히 뚜렷한 증거 같은 것은 없지만, 아무튼 감이 그러했다. 임종에 들기 전 달라이 라마에게서 증언이라고 한다면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마디를 들었으니 이러한 확신이 더욱 확고해지면 확고해졌을지언정 깨질 일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가 살아간 그 세계선에서 조금 더 미래에 눈을 뜨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모친의 뱃속에서부터 말이다. 첫 번째 환생이 그러했듯이 적당한 나이에, 그리고 과거에 태어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이형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 자신도 대강 깨닫고 있었지만, 칸의 기질을 타고난 그가 21세기에 태어나봐야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았던 까닭이다.
기껏해야 첫 생에서 그러했듯이 몸을 쓰는 일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것만큼은 이형으로서도 사양하고 싶었다. 이미 그게 얼마나 힘든 삶인지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형은 그의 또 다른 경력직(?)인 사학도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실제로 그 시대를, 다름 아닌 당사자로서 살아간 이형이 연구로 두각을 드러내기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라질.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한 공터에 금덩어리라도 하나 묻어두는 거였는데."
이형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지금의 이형이 지난 생에 묻어둔 금덩어리가 아쉬울 만큼 궁핍한 생활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일 똑같은 세계선에, 그것도 그가 태어났던 것보다 미래에 태어날 줄 알고서 미리미리 금은보화들을 숨겨두었더라면 지금쯤 대재벌이 되고도 남았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아쉬움이었다.
이런 불평이 반쯤 농담처럼 흘러나올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지금의 이형에게 그다지 그러한 금은보화가 절실한 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한 고황제 고조 이형 연구 최고권위자 성균관대 이형 교수라는 웃기지도 않는 직함 덕택이었다.
본인이 생전 걸어왔던 길을 본인이 직접 연구하여 이를 온갖 미사여구와 낯간지러운 칭찬들로 치장해가며 얻어낸 사학도로서의 윤택한 삶이었다.
"정말 세계 사학계를 통틀어도 나 같은 교수는 없을 테지."
이형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문득, 타임 패러독스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환생을 통한 시간여행도 시간여행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가 아는 한 세계에서 유일한 시간 여행자였으니 말이다. 그가 지난 생에 벌였던 일들 때문에 미래가 변한 결과가 지금 그의 삶인지, 아니면 그가 지난 생에 벌였던 일들 때문에 세계선이 분화되어 지금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선이 만들어진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잠시간 골똘히 생각하던 이형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여행이 내 전공도 아닌데 우라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박사이긴 해도 후박사도 아닌데.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그냥 적당적당히 넘어가지 뭘."
"또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또 하고 계세요?"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그의 조강지처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지금 그가 적어 내려가던 「대한제국사- 그 역경과 승리의 역사」를 위해 그가 얼마나 고생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관계자였으니, 또 글이 잘 안 써지나 하며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해주려고 하던 찰나, 이형은 문득 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가로되, 부부의 연이란 전생의 연으로부터 이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라는 낡은 어구도 이제는 닳고 닳아 조금도 새롭지 않을 만큼 되풀이됐다. 단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 부부의 연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떨까? 그들도 그러할까? 비록 다시 태어나도 또 한 번 맺어지겠노라 확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눈에 보고서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낭만적인 경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니.
아무렴,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던가.
"그야, 당신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실없는 소리나 하시기는."
이형은 히죽, 하고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