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50)

107화

‘괴물……?’

레티시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 하녀는 분명 자신을 보고 겁에 질렸다. 아마 석회석을 뒤집어쓴 몰골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하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앞섶에 보이는 돌가루들을 황급히 털어 냈다.

“전부 석회석 가루일 뿐이에요.”

레티시아의 귀에는 평소 자신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목소리였으나, 하녀는 더더욱 기겁할 뿐이었다.

“괴, 괴물이 말을…….”

하녀는 부들부들 떨더니 등을 돌려 복도를 허겁지겁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레티시아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혹여 하녀를 놀라게 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손과 앞자락에는 좀체 떨어지지 않는 석회석 가루만이 묻어 있을 뿐, 다른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괴물이라니, 섭섭한데…….’

레티시아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하녀에게 섭섭해할 때가 아니었다.

얼른 미카엘을 찾아 자신이 레토 바틀렛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다.

‘지하에 있을까.’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만약 미카엘이 저 아래 있을 경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괜히 그를 찾겠다고 미로를 헤매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선 집무실부터……. 아니, 미카엘이 집무실에 있기는 할까?’

레티시아는 이내 미카엘이 집무실에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궁을 뒤지고 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안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내가 미카엘을 찾아갈 수 없다면, 내 위치를 알리기라도 해야 해.’

레티시아는 호르헤 경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높아진 지위와 쏟아지는 격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카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는 심복이었다.

호르헤 경을 중심으로 정보망을 가동한다면 금세 미카엘의 위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

레티시아는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호르헤 경의 사무실에 도착해야…….

“잡아라!”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레티시아는 무시했다. 아마 좀도둑이라도 발생한 모양이었다.

황궁에서 범죄를 저지를 만큼 간 큰 도둑은 얼마 없었지만, 처음 보는 고가의 귀중품들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사용인들은 종종 있어 왔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괴물을 잡으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몇 번씩 중첩된 다음에야 자신을 향한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몸이 휘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레티시아는 겨우 석회 가루에 파묻혔을 뿐이었다.

더럽고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고, 아직 심약한 어린 하녀를 놀라게 할 순 있어도 저런 장정들에게 괴물이라고 불리며 쫓길 몰골은 아니었다.

레티시아는 이마를 찌푸렸다.

‘설마, 겨우 그사이에 반역이…….’

반역이 일어났다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말이 된다.

만약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미카엘이 그간 자신을 찾아다니느라 정사에 소홀했다면 못 일어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자신을 쫓는 추격자들을 제외하면 황궁은 너무 일상 속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괴물이라니.

미카엘이라면 모를까, 레티시아에게는 황궁 내는 물론 제국에서조차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멈춰 서서 그 연유를 생각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벗어나야 해. 벗어나고, 그다음 생각하자.’

이 석회 가루들을 벗겨 낸다면 적어도 사정을 모르는 사용인들을 소스라치게 만들지는 않을 테지만, 만약 이들이 레티시아 우즈 자신을 쫓는 것이라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레티시아는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동시에 호르헤 경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 기이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의 위치였다.

만약 반역이 일어났다면 사람들은 결코 그를 살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다행히 레티시아는 별다른 방해 없이 호르헤 경이 머무는 층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리 뛰어도 숨이 가빠지지가 않았다.

‘뭐, 잘된 일이지.’

비밀 통로야 자의로 익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황궁의 구조는 속속들이 꿰고 있다.

겨우 기사 몇 명을 따돌리지 못한다면 미카엘을 따라다녔던 지난 세월이 무색할 것이다.

체력만 따라 준다면, 레티시아는 호르헤 경의 사무실에 무사히 도착할 자신이 있었다.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한 무리의 기사들을 제친 채 호르헤 경의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호르헤 경은 소란을 들었는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모양새였다. 그의 수행원들 역시 그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르헤 경!”

레티시아의 목소리가 반가움에 높아졌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저건, 뭐지?”

경악에 질린 호르헤 경의 입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레티시아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 호르헤 경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 뒤의 기사들도,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아닌 레티시아를…….

‘나에게 마법을 걸었어!’

등줄기에 소름이 끼쳐 왔다.

어떻게 하였는지는 몰라도, 레토 바틀렛은 그사이 마법을 익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녀가 괴물로 보이게끔 했다.

수행원이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왔다.

“처치할까요?”

“내가 하겠다.”

호르헤 경이 칼을 뽑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시에, 레티시아는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호르헤 경의 칼날을 볼 수 있었다.

“호르헤 경!”

레티시아는 울부짖었다.

호르헤 경이 얼굴을 찡그렸다. 전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레티시아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레티시아는 이미 죽음을 예상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의 실력은 잘 아는 바였다.

저 일격은 결코 그녀의 몸으로는 피할 수가 없으리라.

빨랐다!

레티시아는 자신의 움직임에 지레 놀라 가만히 멈추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호르헤 경의 칼이 밀고 들어왔다.

‘……!’

레티시아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칼에 베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칼이 살을 베었음에도, 그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무슨…….’

호르헤 경이 아닌 자신에 놀라 도망치려 돌아선 레티시아는 벽에 달린 거울과 마주쳤다.

‘……!’

절망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사람의 형체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기괴한 생물체가 거울에 비쳤다.

그제야 이 모든 게 어찌 된 일인지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레토 바틀렛이 자신에게 건 마법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녀가 괴물로 보이는 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잔인하며 비인간적인 마법이, 그녀를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레토 바틀렛은 그녀를 괴물로 만든 이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아…….”

절망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국은 남지 않아도, 고통은 느끼나 보군.”

호르헤 경의 차가운 목소리가 레티시아를 찔렀다.

“저, 레티시아예요. 레티시아 우즈라고요!”

레티시아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지만 돌아온 건 혐오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는 몇 쌍의 눈들이었다. 그때,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호르헤 경, 괜찮으십니까!”

레티시아는 절망스럽게 생각했다.

이제는 도망칠 수도 없다. 그저, 저들의 손에 잡혀 죽는 수밖에.

‘죽고 나면 마법이 풀리겠지.’

자신의 시체를 본 이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무엇보다도 미카엘이 받을 충격이 짐작이 가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걸 생각하니, 차라리 마법이 강력하여 죽은 뒤에도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래도 자신의 행방을 미카엘이 알기를 원하는 마음이 서로 교차했다.

“괜찮으니 지나친 소란을 일으킬 것 없네. 처치하려는 중이었어.”

“안 됩니다!”

놀랍게도 그동안 그녀를 가장 앞장서서 쫓아오던 기사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호르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지?”

“폐하께서 괴물이 나타난다면 생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네.”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에게는 하셨습니다.”

“자네들이 뭔가?”

레티시아는 그들의 대화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타 빠져나갈 구멍만을 노릴 뿐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이 이미 빠져나갈 입구란 입구는 모두 촘촘히 막아선 상태였기에 레티시아는 결국 포기한 채 바닥에 웅크렸다.

공격 의사를 전혀 내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얌전해졌군. 폐하께선 이걸 길들이려고 한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오직 폐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알겠네.”

이내 레티시아의 목엔 쇠사슬이 채워졌다. 묵직해야 할 쇠사슬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져, 그녀가 사람이 아닌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새겨졌다.

‘…꿈이야.’

불현듯, 레티시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사실 그녀는 아직도 차디찬 미로 속에 있고 레토 바틀렛이 원하는 대로 보여 주는 환상만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티시아는 눈을 감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설령 레토 바틀렛이 보여 주는 환상이 맞다고 한들 확신할 수가 없으므로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레티시아는 차가운 우리에 내동댕이쳐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으나 그녀에겐 물 한 그릇 주어지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그저 어둠 속에서 정해진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빛이라도 한 줄기 있다면 바닥을 긁어 이름이라도 남겨 놓았겠지만, 그녀가 갇힌 곳은 창문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우리였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문이 열렸다.

레티시아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신이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그걸 공격성을 띤 행동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티시아?”

레티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미카엘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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