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150)

117화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레티시아는 빛무리를 뒤집어쓴 미카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하얀 빛이 미카엘의 전신에 휘광처럼 반사되는 동시에, 머릿속에 선명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신.

신은 옛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아직 제국엔 신관이 존재하였으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고단한 삶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그리고 그 어떤 대가도 보장해 주지 않은 종교는 빈약한 신자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레티시아 역시 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신은 미카엘이었다.

레티시아는 비틀거렸다. 현실감이 조금 뒤늦게 찾아왔다.

‘미카엘이, 죽지 않았어!’

어쩌면 미카엘은 그저 죽은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

레티시아는 미카엘이 비밀리에 마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황제는 먼 옛날 잊히고 금지된 마법에 접근할 수 있었으니, 사망한 것처럼 가장할 방법을 미카엘이 알아내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오래 생각하지 못했다.

레토 바틀렛이 가만히 멈추어, 미카엘을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군.”

미카엘이 차갑게 대답했다.

“말하라. 어떻게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이지?”

“저 여자가 나를 불러냈다. 아마 죽고 싶었던 모양이지. 네 시체를 품에 안고.”

레토 바틀렛의 말에는 어딘가 냉소가 섞여 있었다.

레티시아의 눈이 흔들렸다.

레토 바틀렛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미카엘과 함께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레토 바틀렛을 죽이고 미카엘을 살려 낼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이번에도,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되레 미카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했다.

“레티시…….”

미카엘이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레티시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를 본 미카엘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 미카엘.”

레티시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눈빛에 어딘가 그녀가 괴물이었을 적이 떠올랐다.

‘설마…….’

레토 바틀렛은 그녀에게 아직까지는 손톱만 한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았다.

어쩌면 레토 바틀렛은 그녀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괴물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레티시아는 황급히 미카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레티시아예요. 그러니까…….”

“알아.”

미카엘의 얼굴이 아주 잠깐 누그러지더니,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레티시아를 향해 한 팔을 뻗더니, 레토 바틀렛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물러나라, 레토. 너도 네가 이미 졌다는 걸 알겠지.”

“미카엘!”

레티시아가 나지막하게 미카엘을 만류했다. 미카엘이 살아난 건 기뻤지만, 레토 바틀렛을 이곳까지 끌어들인 건 그를 인간의 몸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를 본 순간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명이 필요했던 것일까?

하지만 레티시아는 이내 미카엘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그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뿐이었다.

“설마…….”

레토 바틀렛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레티시아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왔는데, 미카엘이 칼날을 들이밀어도 멈추지 않았다.

레토 바틀렛은 레티시아를 노려보았으나, 던진 물음은 미카엘을 향해서였다.

“언제부터?”

“모른다.”

미카엘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방금 알았지.”

레토 바틀렛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어딘가 그 자신을 향하는 조소처럼 들리기도 했다.

“참 운이 좋기도 하군. 자신은 손 하나 대지 않으면서, 영생을 손에 넣다니!”

“…레토 바틀렛.”

레티시아는 용기를 냈다.

미카엘과 레토 바틀렛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확실했다.

레토 바틀렛을 설득하여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이미 상황은 완전히 돌변했다.

레토 바틀렛을 봉인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죽은 줄로만 알았던 미카엘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레토 바틀렛을 죽이려 했던 목표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 되돌리기만 하면 돼.’

레티시아는 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면서 레토 바틀렛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레토 바틀렛은 조금 전 미카엘과 다르지 않은 듯한 감정을 눈에 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경악.

레티시아는 단 한 마디로 그 감정을 정의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그리고… 공포?

레티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레토 바틀렛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공포를 느낀다는 건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암시했다.

레토 바틀렛은 레티시아에게서 그에게 위협이 될 무언가를 보았다.

레티시아는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미카엘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눈길을 던졌다.

‘……!’

레토 바틀렛은 그녀가 다가가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레티시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추측대로, 지금 그녀에게는 레토 바틀렛을 위협하고도 남을 무언가가 있었다.

‘뭐지?’

여태까지 자신은 그저 무력했을 뿐이었다. 고대 마법을 간직한 브로치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미카엘의 시신을 지키는 일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레토 바틀렛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

그 사실이 레티시아를 기묘한 흥분으로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질 때까지 뒤로 물러났다.

레티시아는 손을 뻗었다.

레토 바틀렛을 설득할 필요성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툭.

레토 바틀렛은 그녀의 손에 밀려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됐다……!’

레티시아는 얼른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호수 안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레토 바틀렛을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엔 경악에 찬 표정으로 몸부림치다가, 이내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주 서서히, 레토 바틀렛의 괴물과도 같던 모습은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레티시아는 호수 안으로 스스럼없이 들어갔다.

레토 바틀렛은 인간이 되었다.

이제 적대할 이유가 없는.

그녀는 자신이 인간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기억했기 때문에 이 불쌍한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레티시아는 정신을 잃은 레토 바틀렛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레토…….”

바로 그때.

서늘한 칼날이 그녀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미카엘!”

레티시아의 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레토 바틀렛의 오른쪽 가슴이 칼로 인해 휑하니 뚫려 있었다.

붉은 피가 호수 안으로 퍼져 나갔다가, 정화로 인해 순식간에 투명하게 변했다.

레티시아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토 바틀렛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목숨을 잃었다.

바로 미카엘의 손에 의해.

“죽어 마땅한 자였다.”

“…죽을 이유가 없는 자였어요.”

“그랬지. 하지만 이제는 생겼다.”

“미카엘,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

레티시아는 대답을 기다렸으나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갑자기, 미카엘이 칼을 떨어트리고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레티시아는 눈을 감았다.

방금 사람을 죽인 손으로 자신을 껴안는 미카엘이 이해가 된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녀는 이제 그의 피 묻은 손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아주 잠깐의 포옹 끝에, 미카엘은 그녀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한 이후 물러섰다.

“돌아가자.”

“저렇게 놔두고요?”

“끌어내야지.”

시체를 끌어내는 건 미카엘이 맡았다. 황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을 만큼 초라한 몰골의 시체였다.

미카엘은 참담한 심정으로 죽어 쓰러진 레토 바틀렛을 통로로 옮겼다.

그는 레티시아가 이 선택 탓에 자신을 평생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자신은 레티시아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숱하게 저질렀다. 결국에 레티시아는 그 어떤 일이건 그를 용서해 주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미카엘은 무력한 자를 죽였다.

이제는 힘을 완전히 잃고 그 뒷배가 되는 후원자도 죽어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는 자를…….

그는 조금 전, 긴 어둠 속에서 깨어났을 때를 기억했다.

레티시아는 그를 어둠 속에서 깨워 낸 빛이었으며,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생명이었고, 그리고 구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이제 미카엘은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죽여야만 했다.’

살려 둔다면, 레토 바틀렛의 가장 큰 증오는 레티시아를 향할 것이다.

그로 인해 현신한 제국의 성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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