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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화 (125/150)

외전 6화

헨드릭의 몸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무슨 소리지?”

“당신을 위해 하는 소리니, 잘 들어요.”

헨드릭은 팔짱을 끼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는 정말로, 이런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름조차 알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그는 이런 부류를 잘 알았다.

적진에서 동료가 쓰러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칠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안전한 본부로 돌아가면 자신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마저 걸었지만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고 거짓부렁을 치는.

“그 애한테 관심을 보인 사람이 당신이 처음일 것 같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자잖나. 그런데 저 모습은…….”

“황자? 풉……!”

사기꾼 용병은 대놓고 비웃음을 토해 냈다.

“왜 웃지?”

“그 유명한 헨드릭 누르가 이렇게 멍청할 줄이야.”

“……?”

“당신, 저 애에 대해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왔군요.”

헨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호위로 고용된 용병일 뿐이다.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황태자라는 건 들었다만.”

“하.”

사기꾼 용병이 눈알을 굴렸다.

“누구 아들인지는 압니까?”

“폐하의 아들… 아닌가?”

“하!”

대놓고 비웃는 상대에, 헨드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방계 황족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황태자 근처에도 못 갈.”

“……!”

헨드릭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는 정세에 그다지 밝지 못했다.

다만 현 황제에겐 황자, 황녀들이 많으니 저 아이도 그중 하나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황태자가……?”

사기꾼 용병은 어깨를 으쓱했다.

“황제 폐하의 생각을 미천한 저희가 어떻게 짐작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는 헨드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헨드릭은 그의 서슬 퍼런 기세에 놀라 흠칫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능글능글한 사기꾼으로만 보였던 눈앞의 용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것에게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사람 잡아먹는 요물이니까.”

“…….”

헨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겨우 아이일 뿐이다.

저렇게 방치해서는 안 될.

침묵이 길어지자 사기꾼 용병은 대놓고 짜증을 내었다.

“빌어먹을, 헨드릭!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까?”

“…자네, 이름이 뭐지?”

“그걸 이제야 묻습니까?”

사기꾼 용병이 투덜거렸다.

“톰이라고 부르세요.”

“그래, 톰.”

헨드릭은 톰을 응시했다.

“황태자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얘기면 납득하겠다. 어차피 신분이 다르니. 하지만 저렇게 방치만 해 두고 있으라는 건 납득하기 어려워. 나중에 혹시나 폐하께서 저 꼴을 보기라도 하면…….”

“헨드릭.”

톰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저 ‘방치’를 명한 게, 바로 폐하이십니다.”

“……!”

헨드릭은 눈을 깜박였다.

별별 일을 다 겪어 온 그로서도 충격이 큰 말이었다.

톰이 한숨을 내쉬었다.

“숨기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군요.”

“…왜? 왜 폐하께서는…….”

“그건 우리가 알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헨드릭은 톰을 노려보았다.

“폐하께서는 저 아이를 죽일 생각인가? 만만한 방계 황족 하나 데려와서, 황태자의 이름이 붙은 무덤 하나 만들려…….”

헨드릭은 말을 멈추었다.

만약 톰이 자신의 말을 그대로 보고할 경우, 반역죄로 목이 잘리고도 남는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톰이 한숨을 내쉬었다.

“못 들은 걸로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헨드릭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톰의 말이 맞았다.

황제의 의중이 무엇이든, 그는 저 소년에게 다가가지 말아야 했다.

방치된 상태로 비참하게 자라든 말든 관심을 두지 말아야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다면!

헨드릭은 이제 그 소년에게 관심을 전혀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문제는, 방치되는 게 뻔히 보이는 어린아이를 무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 아이가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면 더더욱.

“…가십시오.”

헨드릭은 자신을 향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어린아이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데 가시란 말입니다. 여기 오지 말고!”

하지만 소년은 계속해서 그를 향해 다가왔다.

물론 헨드릭은 특출한 용병이고, 상대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헨드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두려워서 도망친다는 게,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의 양심도.

“사가.”

“……?”

헨드릭은 조금 놀라 눈을 깜박였다. 처음으로, 소년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사가.”

소년은 다시 한번 그 자신의 말을 되풀이했다.

“사과… 말씀이십니까?”

소년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사과!”

헨드릭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말을 곧잘 한다.

늦되는 아이들이 있긴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미래의 황태자는 불쌍하게도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황자 황녀들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황제가 지능이 뒤떨어지는 방계 황족을 데려와 황태자로 삼을 이유가 어디 있…….

‘…아.’

그제야 헨드릭은 황제의 의중을 깨달았다.

이 불쌍한 바보 소년은…….

절대 황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 진짜 황태자가 무사히 성장할 때까지 화살받이가 되어 주겠지.

“…미안하다.”

그는 소년을 향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그리고 등을 돌려 최대한 빠르게 소년에게서 달아났다.

헨드릭이 생애 처음, 적에게서 달아난 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헨드릭은 별장을 거의 벗어나서야 멈춰 섰다.

이제야 그는 톰의 충고를 완전히 이해했다.

저 소년에게 말을 걸고, 잘 대해 준다는 것은 황제의 큰 그림을 대놓고 거역하는 짓이었다.

한마디로 반역.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사과!”

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헨드릭은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겨우 다섯 살배기 아이가, 자신을 뒤쫓아 왔다고?

어떻게?

그는 경악에 질린 시선을 소년을 향해 떨어트렸다.

“…….”

잠시, 헨드릭은 말을 잃었다.

소년은 온통 흙과 먼지투성이였다. 조금 전 보았던 모습보다 더더욱 더러운.

그를 얼마나 필사적으로 쫓아왔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얘야.”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헨드릭은 바닥에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사과, 먹어 본 적 있어?”

“사과!”

“맛있었겠구나.”

“사과!”

“과일, 좋아해?”

“사과!”

“여기 다른 과일도 있다.”

사실, 이건 대화라고 할 수가 없었다.

헨드릭은 아이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으니까.

어차피 이 불쌍한 바보 역시 헨드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헨드릭은 주머니에 자두를 몇 개 넣어 두었던 게 떠올랐다.

그는 자두를 꺼내 모조리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걸신들린 것처럼 자두를 깨물기 시작했다.

“사과……?”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과 자두를 우물거리는 것을 동시에 하는 아이 탓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 자두야, 자두.”

“자두……!”

아이는 조금 전 사과를 말했을 때처럼 행복해하면서 연신 자두, 자두를 중얼거렸다.

말은 곧잘 따라 하는 듯했다.

‘잠깐.’

별안간 소름이 엄습했다.

만약…….

이 아이에게 아무도 말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말이 늦된 것이라면?

본디는 평범한,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면?

헨드릭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자신의 목이 소중하다고 한들 아이 한 명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 듯한 장면을 목격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해도, 사람 말은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보아하니 사람 말을 엿듣고, 몰래 뒤쫓는 덴 일가견이 있는 소년이었다. 헨드릭은 자신의 추측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말을 가르쳐 주마. 오늘 밤 1시에…….”

그는 말을 우뚝 멈추었다.

밤 1시에, 뭘?

그야 이곳의 용병들은 나태했으니 들키지 않고 빠져나오는 것이야 쉬운 일이었으나, 별장 아무 데서나 말을 가르치는 건 자살행위였다.

“…됐다. 잊어버려라.”

그는 포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안됐긴 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한 평범한 남자였다.

“…….”

소년이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이내 작은 손이 그의 바지 자락을 꽉 쥐었다.

‘……?’

헨드릭은 의아해하면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바지 자락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론가 그를 끌고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안 돼.”

헨드릭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너를 따라갈 수는 없어.”

미쳤다고 그가 동료들 앞에서 소년과 어울려 주는 모습을 보이겠는가?

소년은 기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두…….”

그 모습을 보니 어딘가 마음이 약해져 헨드릭은 소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소년은 나름대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경로를 알고 있는 듯했다.

용병은 몰래 숨어들어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헨드릭은 소년의 기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우 다섯 살배기 소년이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웠다.

‘역시, 바보는 아니야.’

십여 분쯤 지났을까.

소년은 작은 굴 앞에 멈춰 섰다.

헨드릭이 존재 자체도 몰랐던 굴은, 그 입구를 모른다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진 곳에 숨겨져 있었다.

“자두.”

소년이 굴속으로 먼저 들어갔다.

헨드릭은 잠시 소년을 경탄에 찬 눈길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를 따라 들어갔다.

바로 그날부터, 둘의 기이한 언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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