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예상과 달리, 소년에게 언어의 개념을 가르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말을 ‘자두’라고만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
“자두.”
“말은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 하는 거야.”
“자두.”
“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헨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실망스러운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한참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그래, 그냥 바보가 맞아.’
비록 바보로 만든 건 현 황제겠으나,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바보는 바보였다.
그가 목숨을 걸고 가르칠 이유가 없는.
그가 등을 돌려 굴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소년의 또렷한 음성이 울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
헨드릭의 눈이 커졌다.
소년은 조금 전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헨드릭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부모의 말을 따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소년은 한참 늦어지긴 했으나 바로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희망이 있어!’
헨드릭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
한 달이 흘렀다.
헨드릭은 자신의 성과를 뿌듯하게 생각했다.
이제 소년은 곧잘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비록 헨드릭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헨드릭은 현재 이 상황에도 제법 만족했다.
그리고 헨드릭이 소년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소년은 정말로 말에 목말라 있었다.
비록 다른 멍청한 용병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소년은 용병들의 대화를 매일같이 엿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중얼중얼 따라 하는 모양이었다.
그다지 교육적이지 않은 대화들이었지만 헨드릭은 소년에게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라도 듣는 게, 아예 듣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헨드릭은 아이는 아이에 어울리는 말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꽃이야.”
헨드릭은 굴 바닥에 꽃을 한 아름 쏟아 내면서 설명했다.
“꽃이야.”
소년이 그의 말을 따라했다.
“그래, 꽃.”
헨드릭은 웃었다.
“각 꽃에는 뜻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어?”
소년은 긍정이나 부정의 뜻을 답하는 대신, 그의 말을 되풀이하기만 했다.
“알고 있어?”
사실, 헨드릭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단지 소년을 위해서라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 꽃은 데이지야.”
“이 꽃은 데이지야.”
“꽃마다 뜻이 있는데, 이 꽃의 뜻은 바로 희망이지.”
“이 꽃의 뜻은 바로 희망이지.”
헨드릭은 자신이 꺾어 온 수십 송이의 꽃에 대해 설명한 이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년도 오늘 수업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유난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 눈길에 마음이 쓰인 헨드릭은 괜시레 변명했다.
“미안. 근데 길게는 못 한다는 거 알잖아. 오래 자리를 비우면 다들 눈치채 버려서…….”
그렇지 않아도 최근 그에게 몰래 만나는 마을 처녀라도 있냐고 농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는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때마침 자신이 어울리는 꽃을 꺾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글라디올라스. 기억하지?”
소년은 그의 말을 되풀이하는 대신 글라디올라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소년이 글라디올라스를 기억한다는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 꽃의 뜻은… 조심하라는 거야.”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헨드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자신은 하나는 이해시킨 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글라디올라스를 언급한다면… 조심해야 해. 알겠지?”
“조심해야 해.”
헨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잊지 말고.”
그날 밤.
헨드릭은 근래 들어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동안 소년의 일이 제법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헨드릭은 침대에 눕자마자 그렁그렁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
그의 두 눈이, 반만 떠졌다.
수상한 인기척이 조금 전부터 창밖에서 느껴졌다.
헨드릭에게 매우 익숙한 기척이었다.
암살자들 특유의, 음산한 기운이 창틀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것들, 상대를 잘못 골랐군.’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는 사실에 저절로 피가 끓어올랐다. 그동안 헨드릭은 실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자신을 싫어하는 용병들을 대놓고 경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헨드릭이 원하는 임무는 결코 아니었다.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잠시 후.
예상대로 한 무리의 암살자들이 창문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문에서 쾅쾅,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문도 곧 뚫리기 일보직전인 듯했다.
헨드릭은 칼을 꽉 쥐었다.
그의 입가엔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헨드릭은 망설이지 않았다.
단 수 초 만에 암살자 한 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 더…….
순식간에 대여섯 명을 해치운 그는 창문을 타고 바닥에 뛰어내렸다.
“역시 그 명성을 괜히 얻은 건 아니었군요.”
“……!”
헨드릭의 눈이 경악에 질렸다.
암살자의 검은 옷을 입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톰.
“톰… 너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목이 잘리기 싫으면…….”
톰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곧바로 헨드릭이 그의 목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숨이 가빠 왔다.
‘이것들이 노리는 건 나였어!’
그 이유는 볼 것도 없다.
분명, 소년에게 말을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도망쳐야 해.’
헨드릭은 별장을 완전히 떠나기 직전에 글라디올라스를 한 움큼 뜯어 내,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머리가 좋은 소년이다.
분명, 자신의 뜻을 알아봐 줄 것이다.
헨드릭은 비록 소년이 황태자, 황제는 되지 못하더라도 건강한 성인으로 무사히 자라나기를 기원했다.
***
데브란트 제국의 황제가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은 헨드릭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이제 황실이라면 지긋지긋했으니까.
암살자들은 그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용병단까지 추격했기에, 헨드릭은 국경 지대까지 도망쳐야 했다.
아예 국경을 넘어 망명할 생각까지 해 보았지만, 헨드릭은 죽든 살든 제국에 남아 있고 싶었다.
이렇게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만 치는 건 그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다행스럽게도 암살자들은 그가 완전히 용병계에서 모습을 감추자 만족한 듯, 더는 헨드릭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아빠, 오늘은 뭐 만들어?”
“검집. 좋은 검이 들어왔거든.”
용병을 그만두고 난 이후, 헨드릭은 손재주를 살려 수공예 장인이 되었다.
용병처럼 피가 끓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건실하고 만족할 만한 직업이었다.
간혹 용병단이 그리울 때마다, 헨드릭은 자신의 마지막 임무에서 본 용병들을 떠올렸다.
영혼이 없이 도박에 심취한 그들을.
적어도 그들보다야 지금 하는 일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용병을 계속했더라면, 결혼은 꿈에도 못 꾸었을 것 아닌가.
“그럼, 많이 바빠?”
일곱 살 난 딸이 헨드릭의 눈치를 슬슬 보았다.
“…그렇게는 안 바쁜데.”
“진짜?”
“그럼. 우리 공주님이 뭘 하고 싶어서 이러실까?”
헨드릭은 미소를 머금었다.
딸의 속내를 눈치채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지금 맡은 의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었다.
“즉위 퍼레이드!”
“즉위… 퍼레이드?”
헨드릭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기껏해야 동물원에 놀러 가자는 것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즉위 퍼레이드라니.
즉위식은 신성한 의식이었기에 헨드릭 같은 평민들은 감히 접근을 못 했다.
하지만 즉위 퍼레이드는 달랐다.
새로운 황제가 전 제국민 앞에 나서는 첫 행사였기에, 신성함보다는 화려함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어린 딸이 보러 가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길고 재미없을 건데.”
“아니.”
딸이 고개를 내저었다.
“엄청 화려하대. 그리고 과자도 뿌려 준대. 가자, 으응?”
헨드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그때, 어린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자신을 죽이라 명했던 황제는 죽었다.
더군다나 자그마치 십수 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힘들게 얻은 외동딸이 이렇게나 바라는데 말이다.
“알겠다. 대신 멀리서만 볼 거야. 사람이 너무 많으면 위험하니까. 약속이다?”
“응!”
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헨드릭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 별일이야 있겠는가?
***
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엄 있게 앉아서 앞을 똑바로 바라보는 새로운 황제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신이 한때 말을 가르쳤던 소년과 닮아 있었기에.
‘단지 닮은 게 아니야.’
헨드릭은 오랜 용병 생활을 통해 사람의 특징을 알아보는 덴 이골이 나 있었다.
저 신비한 눈 색과 흔치 않게 햇살처럼 반짝이는 금발은 세월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의 나이는, 그때 그 소년이 지금쯤 성장하면 되었을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과연 이 모든 것이 그냥 우연일까?
“…….”
헨드릭은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소년의 이름조차 몰랐다.
아무도 소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카엘 소넷 데브란트 황제께서는…….”
그 이후 이어진 장엄한 축사는 헨드릭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미카엘.’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이름은 미카엘이었구나.’
그때,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울어?”
“…안 울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기쁜데, 왜 울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