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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0화 (129/150)

외전 10화

외전 5. 부부 싸움의 원인

제이나는 새로운 직장이 진심으로 마음이 들었다.

월급 빵빵하지, 복지 좋지, 신분도 보장되어 있지.

심지어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황후 폐하마저도 까다로운 주인이 아니었다.

제이나는 자신이 이렇게 좋은 직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후작 할아버지께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 좋은 직장에 단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제국의 지고하신 황제 폐하, 미카엘 소넷 데브란트였다.

“레티시아, 잘 잤어?”

“…….”

최근 들어, 황후궁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버리는 주범.

그가 다녀가고 나면 그 상냥하던 황후 폐하의 심기가 일그러져, 평소엔 부리지도 않던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분출하곤 했다.

그래 보았자, 손찌검하는 다른 고용주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제이나! 어디 있어? 제이나!”

하녀장의 목소리였다.

제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목소리를 듣자하니, 아무래도 또 황제 폐하가 황후궁에 다녀간 모양이었다.

제이나는 하녀장이 자신을 부른 장소로 비적비적 걸어갔다.

최근 들어 황제와 황후가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뒷정리를 도맡게 되었다.

“두 분, 어디 계세요?”

“저기.”

하녀장은 온실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제이나는 황후와 황제가 온실에 있다는 사실에 제법 놀랐다.

최근 두 명은 응접실에서 만날 정도로 상당히 냉랭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황후가 일방적으로 황제를 쳐내는 상황이었다.

“오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황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레티시아…….”

“대체 무슨 낯으로 저를 보러 온 거죠?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면서!”

제이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여태까지 황후는 황제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녀 자신이 화를 내는 이유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둘 모두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후와 황제의 부부싸움이 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에 대한 소문이 궁 전체에 자자했다.

황제 폐하께서 외도를 했다더라,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더라.

하다 못해 황제가 황후의 외출을 막았더라는 터무니없는 이유까지…….

이유의 원인은 모두 황제가 제공했다는 설이 대부분이었는데, 황제가 항상 황후에게 죄지은 사람처럼 저자세였다는 사실이 한몫 했다.

드디어 그 미스테리가 풀릴 때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제이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간 보람도 없이, 황제는 말을 뚝 멈추고 제이나가 있는 방향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녀를 기둥 뒤에서 잡아끌어 들어올렸다.

제이나는 공중에서 발버둥을 쳤다.

“폐, 폐하, 끄흡……!”

목이 막힌 소리가 나왔다.

몇 번을 해도, 익숙하지가 않는 역할이었다.

미카엘이 레티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티시아, 수상한 자가 있다.”

“……수상한 자가 아니라 황후궁 시녀입니다.”

레티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외우시겠어요? 제이나 알베힘. 신분도 확실하고 일머리도 좋아요.”

“……수상한데? 이렇게 가까이 와서야 내가 기척을 눈치챘다니, 말이 안되잖아.”

“몸이 가벼워서 그런가 보죠. 이렇게 말 돌릴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미안.”

미카엘이 제이나를 놓아주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제이나는 바닥에 털푸썩 주저앉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발목을 분질렀을지도 모르지만, 제이나는 낙법을 사용하여 바닥에 무사히 착지했다.

‘……빌어먹을.’

제이나는 평범하고 얌전한 시녀처럼 표정 관리를 하면서 생각했다.

저 의중을 알 수 없는 제국의 황제, 미카엘 소넷 데브란트는 그녀가 후작가에서 심어놓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게 틀림없었다……!

***

미카엘은 레티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노로 달아오른 얼굴마저도 귀여웠지만,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레티시아.”

“예전으로 돌아가시기라도 한 건가요? 제 이름만 부르시니.”

결혼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레티시아의 화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미카엘 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더욱 오랫동안 화가 풀리지 않을지도 몰랐기에 더욱 막막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미안해.”

“미안하다고 해결되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는 법이에요, 미카엘.”

레티시아가 미카엘을 쏘아보았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고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미카엘은 말실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만약 변명 하나 하지 않는다면, 레티시아와 자신의 관계는 영영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레티시아가 평소의 하해와 같은 이해심으로 결국 자신을 이해해준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건강한 관계는 쌍방의 소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제 미카엘은 알 수 있었다.

화가 나서 자신을 보지도 않으려 할 때보다, 지금의 레티시아는 한결 화가 풀린 모습이 아닌가.

그녀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려면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그럴 만한 이유요?”

레티시아가 코웃음을 쳤다.

“대체 무슨 이유인데요? 들어나 봅시다. 여태까지 미카엘이 피임약을 먹어왔던 이유가 있긴 한지, 정말 궁금하네요!”

“…….”

미카엘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 사실을 들켰던 자신이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

일주일 전, 아침.

“……가지 말아요.”

레티시아가 이불 속에서 웅얼거렸다. 전날 밤, 그들은 평소보다 더욱 뜨거운 밤을 보냈기 때문에 레티시아는 극도로 지친 상태였다.

미카엘은 그런 그녀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겨 주었다.

“아침 회의가 있어서…… 미안.”

“알겠어요. 보내드릴 수밖에 없죠.”

미카엘은 레티시아가 조금 염려되었다. 그녀가 아침 회의에 함께 참여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건, 평소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의사를 부를까?”

“괜찮아요. 조금 피곤할 뿐이니까요.”

레티시아가 하품했다.

“그래도 보양식이라도 먹어둬. 나중에 주치의에게 얘기해서 알맞은 영양제를 지으라고 할 테니까.”

“미카엘, 제가 성녀라는 사실은 잊으셨어요?”

“……본인의 상처는 종이에 베인 상처 하나 치유하지도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기는.”

“그래도 남을 계속 치유해주면, 치유해진 남이 저를 지키잖아요.”

“아무리 지킬 사람이 많아도 병에 걸리면 소용이 없어.”

미카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이 문제만큼은 내 말을 듣도록 해.”

“알았어요.”

레티시아가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미카엘은 그녀의 이마에다가 입을 맞추었다.

“미카엘이 시키는 대로 하죠, 뭐. 게다가 아이를 가지려면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하니까…….”

“…….”

미카엘은 그 말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달을 줄 알았다면, 그는 분명 그때 무어라 말을 했을 것이다.

분명.

아침 회의를 마치고 레티시아에게로 돌아간 미카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푸른 유리병이었다.

“……미카엘, 이게 뭐죠?”

미카엘의 눈이 커졌다.

대체 레티시아가 어떻게 저 약을 손에 넣었는지 아무런 예상을 할 수 없었다.

“대답, 안 해요?”

싸늘한 목소리.

소름이 쭈뼛 돋았다.

레티시아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자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미카엘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설명해봐요, 미카엘. 대체 이게 뭔지……!”

미카엘은 직감했다.

이건, 딴청을 피우거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한다면 화만 더 돋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있는 그대로를 설명해주었다.

“……남성용 피임약.”

“…….”

레티시아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 레티시아.”

“왜, 말을 안 했어요?”

레티시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미카엘은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요, 아이를 가지겠다고 매달 기대하는 꼴이라니……!”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레티시아의 말은 하나도 틀린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티시아는 진심으로 임신을 고대해왔다.

그녀 자신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던, 행복한 가정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겠다면서.

하지만 미카엘은 지금 아이가 생기기를 원치 않았다.

임산부는 암살의 좋은 표적이 된다.

아무리 레티시아가 성녀라 할지라도 몸이 무거워지면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건 당연할 것이고.

그렇다고 레티시아에게 대놓고 임신은 시기상조이며 임신하는 그 순간 암살자들의 타겟이 될 것 같다고 말을 하자니, 낙담한 레티시아의 모습이 선해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를 못했다.

그래서 미카엘은 남성용 피임약을 줄곧 먹고 있었다.

항상 외투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어떻게 레티시아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아.’

미카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젯밤, 레티시아가 평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안겨왔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약병을 흘린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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