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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0화 (139/150)

외전 20화

외전 7. 미래는 우리의 것

모든 건 상상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심지어 미카엘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가문들조차도 몇 년 만에 무릎을 꿇고 굴복했다.

하지만 레티시아의 모든 골칫덩어리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는…….

그녀가 골칫덩어리를 직접 생산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레티시아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마티아스였으므로.

그래, 레티시아는 결국 자신과 미카엘의 첫 아이의 이름을 마티아스라고 붙이는 데 동의했다.

딱히 그 이름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레티시아는 좀 더 간편하고 덜 귀족적인 느낌이 나는 이름을 가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무언가 반대 의견을 말하려고 하면, 꿈속에서 보았던 우울한 아이가 떠올라 목이 콱 메고 말았던 것이다.

뭐, 마티아스도 딱히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정말로 사랑스러웠고, 레티시아는 그 아이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마티아스를 사랑했다.

그 자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미카엘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따금 레티시아는 그들에게 따끔한 예방책이 되어 주었던 꿈을 생각하면서 미소 짓곤 했다.

만약 그 꿈이 아니었다면…….

‘아냐. 그래도 난 마티아스를 사랑했을 거야.’

마티아스를 처음 품속에 안아 본 순간 레티시아는 알았다.

자신이 이 조그만 아이를 결코 해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미카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마티아스를 본 순간부터 온갖 쓸데없는 걱정을 멈추었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아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던 미카엘이었다.

하지만 갓난아기에 불과한 마티아스는 그의 모든 헛소리를 순식간에 녹여 없애 버렸다.

이제 레티시아는 어떻게 해야 꿈속과 같은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실이었다.

현실의 그녀가 마티아스와, 그리고 미카엘과 행복하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레티시아에게 중요했다.

그래서 레티시아는 몇 년 만에 찾아온 익숙한 토기를 느꼈을 때 호들갑을 떨지도, 비탄에 빠지지도, 기뻐서 방방 뛰지도 않았다.

단지 잠시 생각에 잠겼을 뿐이었다.

‘미카엘에게는 말해야겠지.’

당연히 미카엘은 두 번째 아이만큼은 모든 첫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 날뛸 것이다.

그렇다고 첫 번째 아이가 그러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마티아스가 태어날 무렵에 미카엘은 무척 바빴다. 그 탓이라곤 할 수도 없는 게, 하필 그때 국경 분쟁이 일어나리라곤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레티시아도 자신이 예정일보다 2주는 더 빨리 마티아스를 낳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들어온 미카엘은 처음에는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화는, 아기 미카엘의 버둥거림 몇 번에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신기해.’

‘뭐가?’

‘너무 작고… 강하고… 약해.’

서로 모순되는 말에 레티시아는 미소 지었다.

실은, 그녀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미카엘은 자신이 모든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 걸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했다.

레티시아는 반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카엘은 황제였다.

물론 자신은 황후고, 신전을 대표하고 신성력을 지녔긴 하였으나 한 나라의 명운을 쥐고 있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

“…나는 어마마마를 보고 싶다! 왜 안 된다는 거지?”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티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티아스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다소 눈치가 없는 편이 있었다.

“하, 하지만 황태자 전하…….”

쩔쩔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시녀들은 이런 상황에 도움 하나 되지 못했다.

결국 레티시아는 신관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문을 열어 마티아스를 내려다보았다.

“마티아스.”

“엄마!”

마티아스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레티시아는 굳이 마티아스의 호칭을 고쳐 주지 않았는데, 정작 자신부터가 마티아스의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티아스는 영특한 아이였기 때문에 레티시아를 상대로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니?”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레티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마티아스는 그 나이대 아이들답게, 가족을 그린 그림이라거나 혹은 정원에서 찾은 매미 허물을 자신에게 자랑하고 싶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겨우 그까짓 일로 바쁜 사람을 불러내었냐고 윽박지르기엔 레티시아는 꿈으로부터 배운 교훈이 너무나 컸다.

“보여 주렴.”

“이거예요!”

마티아스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레티시아는 마티아스가 무언가 곡예라도 펼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신, 마티아스의 손끝에서는 무언가가 희게 빛났다.

“……!”

레티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이럴 수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었다…….

“엄마?”

마티아스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티시아는 평정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더군다나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면 빨리 아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라고 자위해 봤자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신성력을 쓰다니.’

머리가 아파 왔다.

“정말 멋지구나, 마티아스.”

레티시아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지금은 바빠서…….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겠어?”

“네!”

“그리고 이 힘은… 당분간은 숨겨 놓자꾸나.”

“숨기자고요?”

마티아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숨겨야 해. 대신…….”

레티시아는 머리를 굴렸다.

마티아스가 대체 뭘 좋아하더라…….

“비밀이야! 엄마와 마티아스만의, 비밀이 되는 거야. 알았지?”

“비밀…….”

마티아스는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꼭, 비밀 지킬게요!”

레티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티아스가 신성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제법 될 테니, 입단속을 하려면 품이 들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 뒤의 한 무리 신관들이 마티아스 역시 신성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녀는 회의실로 서둘러 돌아갔다.

신관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전에.

***

하지만 레티시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마티아스의 능력은 어이없이 발각되었다.

만류하는 유모와 시종들을 뿌리치고는 진통으로 괴로워하던 레티시아에게 뛰어온 것이다.

“…엄마!”

마티아스에게서 빛이 발하는 동시에 진통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레티시아는 멍하니 마티아스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방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망했다.’

미카엘의 노파심 때문에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의란 명의들은 모두 레티시아의 곁에 모여 있었다.

자존심이 센 작자들이니 입막음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마티아스가 신성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퍼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나가.”

레티시아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마티아스, 제발, 나가렴.”

“…네.”

마티아스는 그제야 자신이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풀 죽은 얼굴로 나갔다.

레티시아는 겨우 참았던 한숨을 토해 냈다.

적어도 지금은…….

둘째를 맞이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레티시아.”

미카엘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무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뭘 알아서 해요?”

레티시아가 툴툴거렸다.

“신전 일은 제 일이에요.”

“하지만 황태자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지녔다는 걸 공표하는 건 내 일이지.”

“…….”

레티시아는 물끄러미 미카엘을 올려다보았다.

미카엘은 멋쩍은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리코리스를 맞이하는 데만 신경을 쓰자고.”

“남자애면 어떻게 하려고요?”

레티시아는 숨을 헐떡거렸다.

진통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애일 거야.”

미카엘이 미소 지었다.

“나를 믿어.”

미카엘은 이번만큼은 옳았다.

정말로, 딸이었다.

레티시아는 쭈글쭈글하고 새빨간 아기를 품에 안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갓 태어난 아이에 대한 걱정, 마티아스에 대한 걱정, 미카엘에 대한 걱정…….

결국, 그 수많은 걱정들 속에서 레티시아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저 푹 쉬고, 빨리 회복하는 것뿐이라는 걸.

마티아스의 일은 미카엘에게 완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걸.

‘미카엘은 마티아스의 아버지니까… 충분히 잘 해내겠지.’

레티시아는 눈을 감았다.

피로가 엄습했다.

유모가 능숙하게 그녀에게서 리코리스를 데려가는 게 느껴졌다.

연이어 레티시아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자신이 눈을 떴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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