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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1화 (140/150)

외전 21화

“황제 폐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돌아가시라고 전하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레티시아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돌아가시다’의 두 가지 뜻을 좋아했는데, 이번만큼은 표면이 아닌 그 이면의 뜻에 힘을 주었다.

시종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움츠러들었다.

“이미 그렇게 전해드렸습니다만……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막아.”

레티시아는 건성으로 한 마디 툭 내뱉고는 요람 속의 리코리스를 다독거렸다.

리코리스는 이맘때 아기들답게 수시로 울었는데, 지금은 모처럼 평화롭게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나는 지금 바쁘니까.”

“……아.”

시종이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황후 폐하, 그것이…….”

“내가 한가하게 애나 보고 있다고 답했겠지.”

레티시아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시종은 부정하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시종은 미카엘의 사람. 그는 그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다그채보았자 효과가 없을 것이다.

“나가.”

“죄송합니다, 황후 폐하.”

레티시아는 유모를 불러 리코리스를 잘 보살피라고 일렀다.

미카엘과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지가 벌써 일주일.

평소라면 레티시아가 먼저 다가갔겠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마티아스를……!’

그날, 레티시아가 반 혼절해 있을 때.

마티아스가 신성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전 제국에 공표되었다.

리코리스를 낳고 겨우 몸을 추린 상태의 레티시아가 펄펄 날뛰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새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주일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마티아스의 위치가 더 공고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마티아스의 신성력이 어느 수준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강해.’

미카엘이 레티시아와 시선을 부딪쳐왔다.

‘우리 아들은 강해. 그 힘을 그대로 묵혀둘 순 없어. 어떻게든 밝혀지고 말 거야.’

‘그걸 나와 상의도 없이……!’

레티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눈치챈 자들이 더러 있어. 그들이 소문을 퍼뜨리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지.’

‘결국, 잘못한 건 없다는 거네요.’

‘……그렇게 생각해.’

미카엘은 뻣뻣했다. 마치 자신은 정말로 잘했다는 듯이.

레티시아는 그래서 그와 더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단지,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향해 엉겨 붙는 마티아스를 꼬옥 안아주고는 황후궁으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미카엘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고, 오겠다는 말도 매몰차게 거절하면서.

사실, 최근까진 만날 시간도 없긴 했다.

마티아스에게 신성력을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티시아는 그동안 본능에 가깝게 신성력을 움직이느라 무척 힘들었고, 마티아스도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마티아스는 적성이 제법 맞았는지 레티시아의 교육을 잘 따라왔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유래 없을 정도로 신권과 황권이 결부되어 있었다.

그런데, 황제 자신이 신성력까지 손에 넣었다면?

제국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혹자는 신전의 힘이 더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신전을 이끌어온 당사자로서 신전이 더더욱 부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연히 신성력을 지닌 아이들이 황가에 계속 태어나는 동안에는 괜찮겠지.

하지만 만약, 더는 태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마티아스의 자식들은 신성력을 지니지 못했을 땐?

그때는 신권이 황권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

그제야 레티시아는 깨달았다.

왜 미카엘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니,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에게 마티아스의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미카엘에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레티시아와, 그녀가 낳은 그들의 자식들이었으므로.

그래서 그런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나긴…… 만나야겠어.’

레티시아는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지금처럼 미카엘을 피하고만 있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마침 미카엘이 방으로 들어왔다.

정말 분통이 터지게도, 레티시아는 이런 순간마져 그가 정말로 잘생겼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 환상적인 눈이 자신을 응시할 때면 더더욱.

“레티시아.”

“……나가세요.”

“나갈게.”

레티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웬일로, 미카엘이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다니.

“너와 함께.”

……그럼 그렇지.

레티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은 정말로 이 방에서 나가야 하긴 했다.

리코리스가 벌써 칭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미카엘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더 심하게 울 것이고.

그래서 레티시아는 유모에게 모든 걸 다 맡긴 다음에, 조용히 방을 나섰다.

“오랜만이네.”

미카엘이 옅게 미소지었다.

그는 화가 난 것 같지도, 긴장한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화가 나고 긴장한 건 어딜 봐도 레티시아 쪽이었다.

‘그럴 법하지.’

레티시아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생각했다.

미카엘은 모든 걸 원하는대로 진행했다. 레티시아의 의사와 완전히 반대되게.

“……사과는 됐어요.”

“사과하려고 온 건 아니야.”

“그럼 왜 왔는데요?”

“……리코리스를 보러?”

“아.”

레티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러니까……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는 말이죠?”

미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레티시아가 너무 말을 쏘아붙여서 대답할 시간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잘 됐네요. 들어가서 보세요. 저는 마티아스를 보러 갈 테니까.”

“농담이었는데.”

레티시아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미카엘이 머쓱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널 보러 왔지, 레티시아.”

정말로 어이없게도, 미카엘의 목소리는 이럴 때마저도 듣기 좋은 저음으로 레티시아의 귓가를 간질였다.

동시에,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미쳤구나, 레티시아. 이런 순간마저……!’

미카엘이 싱긋 웃었다.

“그대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어?”

“……전혀.”

“전혀?”

미카엘은 레티시아를 감싸안더니, 그녀가 조금 전 나온 문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함께 보자. 우리 딸을.”

그러고 보니, 미카엘은 레티시아가 그의 출입을 금한 탓에 일주일 동안 리코리스를 보지 못했다.

레티시아는 이마를 짚었다.

사실 이건 안될 일이다.

자신이 미카엘에게는 제법 가혹했다. 그 자체는 보기 싫어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리코리스는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어쩔 텐가.

어차피 이렇게 마음이 풀려, 보여주고 말 것을.

유모가 리코리스를 들어 살살 달래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황제 폐하, 평안을…….”

“이리 다오.”

미카엘은 능숙하게 리코리스를 안았다.

레티시아는 살포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처음에 마티아스를 안았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건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미카엘은 리코리스를 마치 평생 안아왔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안고 있었다.

“우리 딸.”

“……미안해요.”

“왜 네가 미안하지?”

미카엘이 얼굴을 찡그렸다.

“사과하지 마, 레티시아. 짐승만큼도 못하게 군 건 바로 나니까.”

“그럼 전 짐승의 아내처럼 굴었다곧 할 수 있겠네요.”

레티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회피하기만 한 건, 할 게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그건 그렇지.”

미카엘이 수긍했다.

“나는…… 네가 화를 내도 괜찮아. 나를 물어뜯어도 괜찮고. 하지만, 지금처럼 피하지만 않아줬으면 좋겠어. 뭐든 받아줄 테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가봐요.”

“왜 바꿀 수 없어?”

미카엘이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모든 게 다 거짓이었다고, 사실 마티아스는 신성력을 가지지 않았으며 단순한 착각이었다고 공표할 수도 있어. 아니면 마법사였다고 할 수도 있지. 말만 해, 레티시아.”

레티시아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미카엘은 정말로 그런 일들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판단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레티시아가 원한다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바로 그 점이 레티시아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카엘의 생각이 옳았을지도 몰라요.”

“……!”

“그렇게 좋아하진 마세요.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니까.”

레티시아는 차분해진 머리로 미카엘에게 설명했다.

“미카엘이…… 마티아스를 위해서 움직였다고 저는 믿어요. 하지만 그만큼 더 불확실한 미래가 되었고…… 전 그게 두려웠고요.”

레티시아는 안정을 원했다.

그녀 자신이라면 모를까, 모험은 어린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길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미카엘은 달랐다.

그가 걸어온 최선의 길이 모험이었듯, 그는 자식들에게도 모험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리지는 말아요.”

미카엘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레티시아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기뻐하는지 깨달았다.

비로소, 레티시아는 미카엘을 인정한 것이다.

그녀와 가장 반대되는 부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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