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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2화 (141/150)

외전 22화

외전 8. 제국의 미래

마티아스는 열 살짜리치고는 매우 복잡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제국의 황태자.

그리고 성녀의 후계자.

이 정도면 역대 그 어느 열 살보다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명, 그의 아버지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미카엘 소넷 데브란트는 목숨이 위험한 황태자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마티아스는 의무가 많지만 제법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마티!”

여동생, 리코리스가 그의 바지 자락을 잡아당기며 방긋방긋 웃었다.

“리코리스.”

마티아스는 리코리스를 안아 올리다가 생각보다 무거운 몸무게에 놀라고 말았다.

‘…….’

그는 잠시 정신을 집중한 다음 성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불어넣었다.

“꺄!”

리코리스가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르며 마티아스의 목을 붙들었다.

마티아스는 빙긋 웃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 좋았다.

말이 조금 느리긴 했으나, 분명 리코리스는 영특하고 착한 아이였다.

“마티가 최고야.”

최근엔 말도 제법 늘어서, 이렇게 귀여운 말도 속삭일 줄 알았고.

그때였다.

마티아스는 뒤에서 훅 끼쳐 오는 범상치 않은 존재감에 몸을 절로 돌렸다.

그와 리코리스의 어머니이자 제국의 황후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티아스.”

레티시아가 짐짓 엄한 말투로 그를 불렀다.

“신성력을 그렇게 낭비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겠어?”

“훈련이에요.”

마티아스는 서둘러 리코리스를 땅에 내려 주고는 평정을 가장했다.

“이리 오렴, 리코리스. 네 오빠는 할 일이 많단다.”

마티아스는 순진한 척을 해 보았다.

“오늘은 휴일인 줄 알았는데요.”

“휴일이기는.”

레티시아가 눈을 깜박였다.

“네 시종을 따끔하게 야단쳐야 하겠구나. 주인에게 오늘의 스케줄도 제대로 알려 주지 못하다니.”

“…….”

마티아스는 딴청을 부렸다.

백작가의 아들인 시종은 그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종종 그의 편의를 봐주곤 했다.

레티시아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뭐, 마티아스에게 그다지 효과적인 질책 방법은 아니었지만.

“…갈게요. 리코리스와 조금만 더 놀아 주다가요.”

“리코리스와는 내가 놀아 주마.”

“어머니!”

레티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티아스가 왜 이렇게까지 오늘의 일정으로부터 도피하려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원인은 미카엘에게 있었기에 레티시아로선 딱히 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위로 정도야 해 줄 수 있지.

레티시아는 리코리스를 안아 들고는, 마티아스를 부드럽게 내려다보았다.

“마티아스,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 줄까?”

“…….”

“나도 싫어.”

“……!”

마티아스의 눈이 커졌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하니 벌리고 레티시아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전, 어머니는 신전을 좋아하시는 줄…….”

“좋아할 리가.”

레티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태까지 마티아스가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가 찼다.

“나도 끔찍한걸.”

“그 정도예요?”

“그럼.”

레티시아는 마티아스의 코를 톡, 두드렸다.

“끔찍하다마다. 하지만 참는 거야.”

“…저도, 참을 수 있어요.”

리코리스가 레티시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리리도 참을 수 있어.”

“어머, 그러니?”

레티시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도 애초에 참을 상황이 안 오는 게 최고지.”

마티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말이 정확했다.

정말, 오늘의 일정은…….

마티아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성력을 이용해 ‘기적’을 행하고, 길고 지루한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그 의식에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점이라고는 신성력을 행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마티아스가 가장 참을 수 없는 점은 모든 사람들이 그가 대체 뭔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러러본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만 가셔도 되잖아요.”

“네가 내 후계자잖니.”

“저는 아버지의 후계자예요!”

“그래. 동시에 내 후계자이기도 하고.”

“…….”

마티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 신전에서의 중책을 강요하는 레티시아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신성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마티아스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내가, 왜 그랬지…….’

마티아스는 멋모르고 신성력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던 어린 자신을 질책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아버지가 그의 신성력을 공포했다 한들 갑작스레 없어진 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어머니는 넌지시 그런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던 마티아스는 그저 어머니와 같은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기쁠 뿐이었다.

천방지축으로 힘을 아무렇게나 쓰고 다닐 만큼.

“마티, 기분 나빠?”

리코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아니.”

마티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리리도 괜찮아.”

“나는 안 괜찮은데…….”

레티시아가 엄한 목소리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티아스, 빨리 가서 옷 갈아입고 준비해. 내가 시종들을 불러서 너를 끌어내기 전에 말이다.”

“알겠어요.”

마티아스는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레티시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다보았다.

물론 마티아스는 행복할 때가 더 많았지만, 어머니로서 씁쓸해질 때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티아스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다.

그의 다른 소망들은 뒤로 제쳐두고서.

그나마 미카엘처럼 후계 싸움에 휘말릴 여지는 없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었다.

아직 미카엘의 친인척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제법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겨우 어린아이 두 명만 제거하면 그다음 황위 계승권이 자신에게로 넘어오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성력이 발현한 게 다행이긴 해.’

그 자신과, 리코리스를 지켜 줄 수 있을 테니까.

레티시아는 인정했다.

마티아스는 황제가 될 것이다.

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레티시아와 미카엘이 할 수 있는 건,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춰 주는 것뿐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레티시아는 뒤를 돌아섰다.

제국의 황후인 자신에게 존대를 쓰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 미카엘뿐이었다.

“…미카엘이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미카엘은 얼핏 들으면 섬뜩해 보이는 말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죠?”

레티시아의 눈이 가늘졌다.

무언가 또 엉뚱한 말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네가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에 대해서.”

“…내 수명이야, 미카엘보다 길지 않겠어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미카엘의 목소리는 조금은 어두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성녀가 불사의 존재는 아니니까. 오히려 일찍 죽은 성녀들도 없진 않았고.”

“오래 살도록 노력해 볼게요.”

“정말 믿음직스러운 말인데.”

레티시아는 미카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따지면, 미카엘이야말로 나보다 먼저 죽을 것 같은데요?”

“왜?”

미카엘이 순진한 척하며 물었다.

“꼭 죽고 싶은 사람처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잖아요, 요즘.”

미카엘은 조금 허를 찔린 얼굴이었다.

“들켰나.”

“모를 수가 없죠.”

레티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티아스가 태어난 이후, 미카엘은 한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주변 나라에서 국경 분쟁을 일으켜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최근엔 달랐다.

미카엘은 예전의 그가 생각날 정도로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국정을 펼쳤다. 갑자기 달라진 그에게 당황한 귀족들이 레티시아에게 달려올 정도였다.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카엘은 주기적으로 귀족들을 풀어 주었다가, 숙청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레티시아의 신경을 건드린 건 바로 미카엘의 확인되지 않는 행적이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

미카엘은 황궁에서 완전히 사라지곤 했다.

레티시아가 대체 그가 무엇을 꾸미려는지 알아내려고 해도 미카엘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단서들을 찾아내었다.

미카엘은 그다음 날이면 유난히 피곤해했다.

때로 레티시아가 그날 황궁을 떠나면, 미카엘의 심복들이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는 양.

그것들을 조합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단서. 돌아온 미카엘에선 피 냄새가 났다.

레티시아는 미카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항상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잖아요.”

“…죽이진 않았어.”

“지하 감옥에라도 감금해 놓나 보죠?”

“정답.”

미카엘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레티시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이지, 미카엘은 지옥에 갈 거예요.”

“같이 가 줄 거야?”

레티시아는 숨을 들이마셨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의 대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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