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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3화 (142/150)

외전 23화

“전하, 일어나셔야 합니다.”

“…더 잘래.”

마티아스는 고개를 흔들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신성력은 많은 정신력을 소요했다.

온몸이 지쳐서 휴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레티시아도 마티아스가 많은 신성력을 쓴 다음 날이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곤 했다.

아마도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티아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마티아스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버지……!”

“마티아스.”

미카엘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티아스는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미카엘은 무언가 마티아스가 잘못한 게 있을 때마다 이렇게 아침부터 그를 깨우곤 했다.

실은 아침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이야기할 짬이 제대로 나지 않은 황제의 비애였지만, 아직 어린 마티아스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였다.

“그만하면 충분히 잔 것 같구나.”

“…네.”

마티아스는 풀 죽은 목소리로 침대에서 내려와 시종이 도와주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미카엘은 문간에 서서 느긋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마티아스를 엄습했다.

정말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게 틀림없었다.

‘근데, 이번에는 진짜로 아무것도 없는데……!’

짚이는 것이라면 단 하나.

어제 신전의 의식에서 실수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신전과 의식을 썩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문제로 마티아스를 질책할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레티시아가 왔으면 왔지.

“무슨… 일인가요?”

“내가 내 아들을 본다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죠.”

“그래.”

미카엘은 흡족한 표정으로 마티아스를 향해 다가왔다.

마티아스는 다소 안도했다.

잠에 취해 미카엘이 화가 나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잠은 다 깼어?”

“네.”

사실 아직까진 졸린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마티아스는 애써 하품을 참으면서 대답했다.

“잘했다.”

미카엘은 마티아스의 손을 잡았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마티아스는 배시시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마티아스는 눈을 깜박였다.

질책일까?

이내 그는 깨달았다.

‘경고야.’

마티아스는 레티시아를 닮은 금안으로 미카엘을 빤히 올려보았다.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비밀.”

미카엘이 간단히 대답했다.

마티아스의 입매가 굳어졌다.

이미 미카엘은 대답을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밀 통로.

마티아스는 머리를 싸매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심지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벌써부터 황궁의 비밀 통로들을 쫑쫑거리며 돌아다니는 리코리스와 달리,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통로들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그나마 황태자 궁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두 건물의 비밀 통로를 모두 외워야 했다면 마티아스는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카엘의 목소리가 더더욱 엄해졌다.

“이번에는 같이 가 줄 수 없어.”

“아버지……!”

“너 혼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마티아스는 반 정도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자신은 항상 레티시아나 미카엘과 함께 비밀 통로를 돌아다녔다.

그마저도 항상 긴장해서였고.

레티시아는 그녀 역시 비밀 통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마티아스를 애써 안심시켰는데, 마티아스가 보기엔 레티시아는 황궁에서 좋아하는 것이라곤 가족들뿐이었으므로 그다지 참고할 만한 조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카엘은…….

비밀 통로를 진짜 집으로 여기는 듯했고.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혼자 비밀 통로 안에 던져 놓겠다니.

“그… 못 나오면요?”

“못 나오는 거겠지.”

미카엘이 무심히 대답했다.

“아버지……!”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태까지 몇 번이나 들은 설교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통로들은 네 적이 아니야. 너를 살리기 위한 장치들이지.”

“…….”

“그것들을 제대로 몸에 익히지 않는다면 눈을 감은 채 황궁을 돌아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어. 남에게 너를 공격할 틈을 주는 거지.”

마티아스는 레티시아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달할 용기가 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외부 침입자도 얼마든지 통로 안에 있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건 맞는 말이야.”

미카엘은 레티시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항상 레티시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침입자들보다 통로들에 대해 훨씬 잘 알아 둬야겠지.”

마티아스의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미카엘의 시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넌 제국의 미래야. 그리고 나는 제국의 미래를… 지켜지기만 하는 바보로 키울 수 없다.”

미카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했다.

“식량은 일주일 치를 주마. 그 전에 나올지, 그 후에 나올지는 네게 달려 있다.”

마티아스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비밀 통로를 헤매다 죽은 불쌍한 원혼들에 대한 이야기는 귀족 아이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져 왔다.

거짓이라기엔 너무 생생하고, 진실이라기엔 너무 끔찍한.

“…가기 전에, 어머니와 리코리스를 보고 싶어요.”

다행히 미카엘은 이번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저… 정말 가야 해요?”

마티아스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미카엘보다는 머리 하나가 작았지만, 아직 마티아스보다 한참 큰 레티시아는 오늘도 굳건해 보였다.

“괜찮을 거야, 마티아스.”

레티시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마티아스를 토닥였다.

“네 생각만큼 끔찍한 곳은 아니야.”

“…여태까지는 끔찍했어요.”

“뭐, 나도 좋아하진 않아.”

레티시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티아스, 이건 내가 대신해 줄 수 없어. 네 아버지 역시 대신해 줄 수 없고. 네 목숨은 네가 지켜야 하는 것이야.”

“하지만 신성력이 있잖아요! 신성력을 더 키우면…….”

마티아스는 발을 동동거렸다.

일주일이라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 기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오한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레티시아가 한숨을 내쉬고는, 마티아스의 귓가에 무언가 한마디를 속삭였다.

“……!”

마티아스의 눈이 커졌다.

아이는 더 이상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다.

***

마티아스는 어둠을 노려보았다.

등잔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어슴푸레한 빛을 밝힐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내일 진이 빠져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게 뻔했다.

‘…….’

마티아스는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간단한 길 하나 찾지 못하고 헤매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네가 좋아할 만한 걸 숨겨 놨어.’

어머니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지도려나.’

레티시아가 숨겨 놓았을 무언가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레티시아 역시 통로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즉, 미카엘처럼 찾기 어려운 곳에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티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온 길을 되짚어 볼 때였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모르겠어!’

마티아스는 눈을 감았다.

다행히 이제 통로는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막막할 뿐.

마티아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이 기대어 있는 벽면을 괜스레 밀어 보았다.

‘…어?’

마티아스는 눈을 깜박였다.

벽이 환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설마……!’

그렇게 찾았던 레티시아의 선물을 이렇게나 우연히 발견하다니.

마티아스는 벽면을 밀고, 또 밀었다.

순식간에 통로가 환하게 밝아졌다.

기묘한 힘이 느껴졌다.

마티아스는 깨달았다.

‘신성력이야.’

전 벽면에 신성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마티아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레티시아였다.

그녀가 신성력으로, 통로를 그에게 감응하게 만들었을 가능성.

하지만 마티아스는 이내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달라.’

레티시아의 신성력처럼, 따스하면서도 폭발적인 신성력이 아니었다.

‘이건…….’

고요했다.

마치, 황태자 궁에 있던 정소처럼.

마티아스는 입을 틀어막았다.

‘바로 그거야!’

대체 어떻게 된 조화인지 몰라도, 이젠 통로 전체가 성소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마티아스는 발치에 놓인 가방을 무시했다.

일주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미카엘은 단지 그가 각오를 다지게 했을 뿐이었다.

마티아스는 눈을 감은 채 걸었다.

통로 전체가,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걸 느끼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작은 문을 발견했다.

청동 문고리가 달려 있는.

문고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햇빛이 쏟아졌다.

“잘했어.”

마티아스가 작은 문 밖으로 몸을 빼내는 것보다 미카엘이 그를 반쯤 안아 올리는 게 더 빨랐다.

“정말 잘했다.”

미카엘은 어린 아들을 꽉 안아 주면서 속삭였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마티아스는 미카엘의 품에 폭 안긴 채 생각했다.

물어볼 게 정말 많다고.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버지의 흔치 않은 칭찬을 즐기고 싶었다.

“…진짜요?”

“그럼.”

미카엘이 부드럽게 웃었다.

“내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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