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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9화 (148/150)

외전 29화

찾았다.

미카엘은 포효하는 사자 모양의 브로치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한때 그의 것이었던 것.

그리고 그의 것이었던 시절보다 레티시아의 것이었던 시절이 훨씬 긴 브로치는, 상당한 시간 동안 버려져 있어도 빛이 전혀 바라지 않은 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고대 마법이 걸려 있는 데다가, 그 귀중함이라면 황실 그 어떤 보물에도 뒤지지 않는 귀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카엘은 문득 어렸던 자신이 이 브로치의 진가를 알고 있긴 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몰랐겠지.’

당시의 레티시아는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했던 듯하지만, 미카엘 역시 살아남기에 필사적인 어린애에 불과했다.

산속에서 만난, 유일하게 자신의 마을 이해해주는 소녀에게 매달릴 만큼.

그래서 미카엘은, 당시 자신의 구원자나 다름없는 어린 소녀를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지하를 뒤지고 다닌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티시아가 브로치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지 설렌 마음만 들었다.

***

“……!”

미카엘은 슬쩍 미소 지었다.

어린 레티시아의 발그레한 볼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어제 브로치를 찾느라 쌓인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길래…….

“숨겨놨더군. 기억이 없이는 찾기 어려웠을 거야.”

“기사님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나? 그냥 있을 것 같은 곳을 다 뒤져 봤지. 황후궁의 구조라면 잘 아니까.”

레티시아가 소리내어 웃었다.

“정말 기사님은 좋은 분이세요.”

“고맙다, 레티시아.”

레티시아는 미카엘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져 껴안으려다가, 화들짝 놀라고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친절해도 그렇지, 그런 채신머리없는 행동을 할 정도로 레티시아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만약 다시 미카엘을 만나게 된다면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미카엘이 정말 귀족이라면 도련님으로도 부족했다.

그의 작위를 따서 부르고, 깍듯하게 인사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겐 정말 소중한 브로치거든요…….”

“미카엘이 기뻐하겠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미카엘 경이 웃었다.

웃는 모습마저도 미카엘을 닮아, 레티시아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나 고맙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는데.”

“뭐든… 뭔가요?”

레티시아는 뭐든지 하겠다고 말하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만약 브로치를 찾아준 대가로 그 브로치를 달라고 하면 큰일이었다.

미카엘 경이 그렇게 파렴치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별거 아니야.”

미카엘 경이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 휴가를 냈는데… 같이 다닐 사람이 없어서. 레티시아가 괜찮다면 함께 다녀줬으면 하는데.”

“저요?”

레티시아는 어안이 벙벙해서 되물었다.

대체 왜 자신 같은 일개 하녀를 미카엘 경이 대동하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나 잘생겼고 황후의 기사라는 신분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지위 높은 귀부인들과 어디든지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이미 미카엘 경에게 빚이 있었고, 불확실한 이유로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래, 너.”

미카엘 경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하필 나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허를 찔린 듯한 기분에 레티시아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듯했다.

“맞구나.”

다행스럽게도 미카엘 경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뭐, 이해는 한다. 경계하는 건 좋은 습관이야.”

“좋은 습관이라고요?”

레티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일하려면… 경계는 좋은 습관이지.”

어딘가 으스스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레티시아는 그에 대해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카엘 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네가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 그러니… 같이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우즈 양?”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정중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였기에, 레티시아는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 시간여 후.

그들은 마차를 타고 수도의 중심부를 달리고 있었다.

레티시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미카엘 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카엘 경은 그런 모습마저도 미카엘을 닮아 있었는데, 레티시아는 둘이 사촌이라는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은 미카엘 경 역시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촌 동생의 은인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을 테니까.

마차는 어느 번화가에 멈춰 섰다.

미카엘 경은 먼저 내려서, 마차에 익숙하지 않은 레티시아가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와…….”

레티시아는 자동적으로 감탄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웠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지나다녔던 길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하고 반듯한 길과 양옆에 줄지어 세워진 화려한 가게들이 레티시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여기로 와 봤어.”

“그… 기사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요?”

알쏭달쏭한 미카엘 경의 말에 레티시아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분명 자신이 미카엘에게 동행한다고 들었는데, 이건 미카엘이 자신에게 동행하는 꼴이 아닌가.

물론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좋았지만 레티시아에겐 양심과 자제력이라는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

“네가 원하는 곳이, 내가 원하는 곳…….”

사정없이 일그러진 레티시아의 얼굴을 보며 미카엘 경이 말을 문득 멈추었다.

“…제게서 뭘 원하시는 거죠?”

레티시아는 놀림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패딩턴의 오랜 조롱과 장난은 아무리 이겨내려고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 주었다.

‘나를 위해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어.’

이 생각이 레티시아의 가슴에 콕콕 박혀, 미카엘 경에 대한 적대감을 발산하도록 만들었다.

미카엘 경은 무척 당황한 듯했다.

“뭔가… 문제라도?”

“저 때문에 여기로 왔을 리가 없잖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미카엘 경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레티시아는 천천히 말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냥, 제게 잘 대해 주려고 마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셨을 리가 없다고요.”

“…들켰네.”

“네?”

미카엘의 싱거운 대답에 레티시아는 화들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장난이라면 좀 더 잡아떼다가 밝혀야 할 것이다.

조롱이라면 훨씬 비열한 말투여야 할 것이고.

하지만 지금, 미카엘 경은 양쪽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미카엘 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내 여동생이 너와 같은 나이야.”

“……!”

“그래서 그 아이의 생일엔 걔가 원하는 대로 일정을 짜고 싶은데, 어린 여자애들에 대해 내가 알긴 알아야지……. 마침 네가 있었고. 그래서 데리고 온 거야.”

“…전 어리지 않은데요.”

“어려.”

미카엘이 조금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대답했다.

“정말 어리단다. 그러니 알려 주렴. 어디로 가고 싶은데?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양편이 일렬로 세워진 가게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유혹하는데도 불구하고 레티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 주제를 알았다.

미카엘 경의 여동생이 자신과 정확히 같은 나이라 할지라도 레티시아와 취향이 비슷할 리가 없었다.

귀족 아가씨와, 평생을 일만 하며 자라난 농부의 딸이 어떻게 같겠는가.

미카엘 경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레티시아가 미카엘 경보다 아는 게 조금 많다고, 그보다 더 잘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레티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아가씨와, 저는 많이 다를 거예요.”

“아냐, 같아.”

미카엘인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걔도… 너처럼 자랐거든.”

“진짜인가요?”

레티시아가 눈을 깜박였다.

여태까지 들은 말 중 가장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자신처럼 자란 귀족 아가씨가 있다니!

“이복 여동생이야. 하녀로 자라다가, 얼마 전에 우리 가문에 들어왔어.”

레티시아는 더는 미카엘 경의 복잡한 가정사에 대해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나아가, 미카엘 경의 여동생이 정말로 좋아할 만한 일정을 짜 주어야겠다고 열정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레티시아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 아가씨에 대한 미카엘 경의 애정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래, 하녀로 자랐으면 나와 취향이 정말로 비슷할 거야. 나도 곧 하녀가 될 테니까.’

레티시아는 손가락으로 그들 앞에 놓인 길 전체를 가리켰다.

“전부 다 가보고 싶어요.”

한 군데만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레티시아는 이 거리 전체를 원했다.

분명 그 아가씨 역시 그럴 것이다.

미카엘이 미소 지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황후 폐하.”

레티시아는 황후의 기사가 하는 묵직한 농담에 쿡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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