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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0화 (149/150)

외전 30화

“사지 마세요!”

레티시아는 겁에 질린 얼굴로 미카엘 경의 팔을 붙들었다.

미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레티시아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점원을 향해 미소 지으면서 돈을 건넸다.

“포장해 주세요.”

레티시아는 울상을 지었다.

“그치만 이건 제가 예쁘다고 한 건데…….”

어딜 보아도 귀족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아닌, 평민들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담은 인형의 집이었다.

사실 레티시아는 자신도, 그리고 그 아가씨도 인형을 가지고 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레티시아는 단 한 번도 인형을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장난감 가게에서 레티시아의 눈길을 가장 오래 잡아끈 건 인형이었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다 가지고 있었지만, 레티시아는 가지지 못한.

“네가 보기에 예쁘면 내 여동생이 보기에도 예쁘겠지.”

미카엘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여동생이라서, 좋을 것 같은 건 다 해 주고 싶구나.”

레티시아는 무심코라도 예쁘다는 말을 중얼거리지 않기로 다짐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미카엘 경은 정말로 여동생을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자상한 오빠가 있는 귀족 아가씨.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점원은 미카엘이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네주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정리하고는 그들을 향해 깍듯이 작별 인사를 했다.

“피곤하지?”

“…네.”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여동생을 위해 스무 개는 될 듯한 선물을 샀다.

처음에는 뭐든지 기쁘고 즐거웠던 레티시아도, 지금은 다리가 납덩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미카엘 경이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들떠서…….”

“아니에요.”

레티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황후 폐하의 기사님이신데, 제가 도와야죠.”

미카엘 경의 입꼬리가 흐트러졌다.

“그래.”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고맙다.”

잠시 후, 미카엘은 레티시아를 데리고 웬 식당에 발을 들였다.

레티시아는 의아해했는데, 당연히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식사를 하고 가자는 미카엘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푹신한 의자가 너무나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어?’

레티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미카엘이 자신의 손을 잡아끈 식당은 무척 친숙한 모양새였다.

마치, 레티시아가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지나쳤던 마을의 식당 같았다.

레티시아는 항상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 식당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뭘 먹을래?”

레티시아는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동안 성에서 먹은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었지만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았는데, 메뉴판에 있는 요리들은 레티시아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미카엘은 고민에 빠진 어린 레티시아를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좋아할 줄 알았어.’

이 식당은 결코 황제나 황후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순박한 시골 요리를 파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이 식당을 좋아했고, 미카엘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어린 레티시아가 메뉴판을 바라보는 눈길은, 거의 첫사랑에 빠진 자의 것이었으니까.

‘…….’

미카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는 레티시아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서글플 뿐이었다.

그가 레티시아를 지켜 주지 못한 그 많은 세월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지금의 레티시아는 그녀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리고 미카엘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숨기는 게 맞는 것일까.’

미카엘은 레티시아가 원하는 요리들을 주문한 다음,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레티시아에게 모든 사실들을 알려 준다면 당연히 큰 충격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미카엘은 숨겨 왔고, 앞으로도 숨길 생각이었다.

기억이야 언젠가는 되찾게 될 테니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레티시아가 거짓말을 정말로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미카엘은 이미 레티시아에게 사실을 숨겨 온 대가를 치렀다.

또다시 치를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리고 분명, 지금의 레티시아 역시 거짓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미카엘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결정은 이미 끝났다.

“기사님은 안 드세요?”

레티시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생각할 게 많아서.”

“좀 드세요. 이거랑 이거랑 이거… 진짜 맛있어요.”

레티시아가 행복한 얼굴로 미카엘에게 음식을 권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자신의 음식부터 먼저 챙기던 레티시아 같아서, 미카엘의 입가에 미소가 더더욱 크게 번졌다.

“고마워.”

미카엘은 레티시아가 건넨 버터와 설탕을 발라 구운 감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짝지근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그 순간, 미카엘은 결심했다.

진실을 말하는 건 조금만 미루자.

아직 그가 레티시아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남아 있으니.

식사가 모두 끝난 후, 미카엘은 바로 마차를 준비시켰다.

레티시아는 피곤한 얼굴로 마차에 올라타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법 강행군이었던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브로치를 꼭 쥔 채 잠이 든 레티시아를 바라보았다.

잠에 푹 빠진 소녀의 얼굴을 보니 그가 첫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랐던 시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다행스럽게도 레티시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숨어서 일하는 중인 레티시아를 훔쳐보곤 했다.

‘…….’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어린 레티시아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을 경우 그녀가 받게 될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티시아는 알아야만 했다.

설령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미카엘의 옆자리이자 제국의 황후가 앉을 자리엔 오직 레티시아만이 있을 테니까.

***

“…일어나렴. 도착했어.”

“……!”

레티시아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뛰쳐 올랐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차 안에서 잠을 자다니.

그것도 황후의 기사 앞에서!

입가에 침이 묻어 있다는 걸 깨닫자 부끄러움은 극에 달했다.

‘얼굴이 완전 머리카락처럼 빨갛게 변했겠지. 아, 싫어…….’

레티시아는 열감이 느껴지는 뺨을 감싸며 생각했다.

다행히 미카엘 경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못 본 척을 해 주며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어……?”

레티시아의 입에서 놀라움에 찬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다 제 방에 쌓아 두셨네요?”

그녀가 고르고, 미카엘 경이 산 스무 개가 넘는 선물들이 곱게 포장되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네 거니까.”

레티시아는 눈을 깜박였다.

미카엘 경이 그녀를 성큼 지나치더니, 바로 코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얼굴이 또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미카엘 경이 여상한 말투로 물어 왔다.

마치 평생 레티시아와 대화를 나누어 왔던 사람의 말투라, 기묘한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 기사님의 여동생을 위한 선물이라고…….”

“그거야 핑계지.”

미카엘 경이 코웃음을 쳤다.

“…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네게 진실을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테니까.”

“절… 위해 샀다고요?”

“아니.”

미카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더 믿을 수 없는 말.”

그는 레티시아의 뺨이라도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올렸다가, 이내 누그러뜨렸다.

“그래서 알려 주지 못했어. 네가 정말로 누구인지, 기억을 얼마나 오랫동안 잃었는지…….”

미카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잦아들었다.

레티시아는 뒷걸음질을 쳤다.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이해가 되어서였다.

황후의 하녀라기엔 너무나 크고 호화로운 방.

그리고 자신에게 깍듯한 황후의 기사.

일개 황후의 하녀가 앓는 기억상실증에 기묘할 정도로 신경을 써 주는 사용인들.

이 모든 게 가리키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레티시아는, 아마도…….

“아니에요.”

레티시아는 내뱉었다.

“…알고 있구나, 그렇지?”

미카엘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레티시아는 도리질을 쳤다.

자신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황후가 되었을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나이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 모든 게 질 나쁜 장난일 것이라고 믿으면서, 레티시아는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겨우…….”

“네 몸도 어려졌어.”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이었는데도 미카엘이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알려 주었다.

“너는 내 황후야, 레티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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