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멸 예정 연하남주가 내게 빠졌다-133화 (133/134)

#17

차이엘드는 파티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음 주면 사랑스러운 이클릿 차이엘드가 태어난 지 꼭 1년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국은 어린아이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다. 귀족이라면 데뷔탕트를, 평민의 아이라면 성인식을 치러야 비로소 생일을 축하받을 하나의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와 아내에 관한 일에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카일리안 차이엘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황제 폐하의 탄신연보다 실내를 화려하게 장식해야 할 겁니다. 우리 이클릿이 태어난 건 차이엘드의 두 번째 영광이니까.”

첫 번째 영광이 무엇인지 묻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고용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멜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태연히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차이엘드가 저를 영웅 보듯 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살살 녹는 고기를 음미하던 아멜은 곧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저, 사실 이클릿의 첫 생일 때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마님, 무얼 하고 싶으세요?”

“무엇이든 명만 내리십시오.”

“차이엘드는 누나 님의 명령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큼.”

카일은 근엄하게 그들의 말을 틀어막곤 가장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그런 일은 남편인 제게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음…….”

아멜은 잠깐 말을 골랐다. 사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풍습이라 할 수 있는 ‘돌잡이’였다.

그녀는 아직도 사촌 동생의 돌잡이 때 서로 원하는 것을 집게 하려 다투던 삼촌들의 모습을 즐거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었다.

‘우리 딸이 뭘 잡을지 보고 싶은데.’

하지만 돌잡이를 돌잡이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난감해진 그녀는 적당히 둘러대었다.

“아직 이클릿은 아무것도 모를 때잖아요? 아이의 본능적인 성향을 알아낼 수 있는 건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본능적인 성향?”

“커다란 테이블에 이것저것을 올려두고 아이가 무엇을 고를지 지켜보는 거예요. 재미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이야깃거리도 될 테고…….”

카일은 잠시 이클릿이 커다란 테이블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는 그림을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고를지는 알 수 없으나 무척 귀여우리라.

“좋습니다. 그것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멜은 돌잡이의 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환하게 웃었다.

***

돌잔치 당일. 아멜과 카일은 이클릿을 보며 환희에 젖었다.

“카일…… 어쩜…….”

“누나, 이건 너무…….”

돌잔치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천사 날개가 달린 원피스를 입은 이클릿은 그야말로 요정이 따로 없었다.

아레테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 아이에게 전혀 부담이 가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을 가득 안겨주었다.

아멜과 카일은 이클릿이 요리조리 움직일 때마다 파닥거리는 날개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귀여움의 정도가 심했다.

“마마! 파파!”

딸기우유 색으로 물든 볼을 오물거리며 저를 찾을 때면 두 사람은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이클릿은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검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위로 가벼운 티아라까지 씌워주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

“누나를 닮은 우리 이클릿이 사랑스러워서 손님들에게 보이기 싫을 정도입니다.”

“아가 눈이 카일이랑 똑같아요. 너무 귀여워…… 카일. 우리 둘째 가질까요?”

“……!”

폭탄 발언을 흘린 아멜은 그가 숨 쉬는 것도 잊고 멍하니 망상을 시작하든 말든 태연하게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우리 이클릿, 이제 내려갈까? 손님들 아래층에 기다리신다.”

카일리안 차이엘드 조련은 이제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다. 둘째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슬슬 들기도 했고.

“우리 손녀는 오늘도 사랑스럽구나. 할애비 품으로 올까?”

“아멜. 아가의 첫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

“차이엘드 공작 부인. 황제의 이름으로 차이엘드 영애의 생일을 축하하네.”

“마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가족들, 친한 지인들은 물론 황제 부부와 아레티스트로 다시 떠난 바네사까지. 차이엘드의 파티 홀은 가득 찬 손님들로 북적였다.

아멜은 손님들을 향해 날개를 파닥이는 이클릿을 보여주었다. 구석구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클릿. 손님들한테 인사할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자 이클릿은 쑥스러운 듯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차이엘드의 붉은 눈동자는 눈웃음을 지을 때 특히 사랑스러웠다.

식사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클릿을 위해 마련된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나눠 먹는 일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클릿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지만 저를 보고 웃는 사람들이 좋아 계속 방싯거렸다.

모든 식사가 끝나고, 이제 아멜이 기대하던 대망의 돌잡이 시간이었다. 성인 여러 명이 드러누워도 될 만큼 커다란 평상이 여러 개 나오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아멜은 그 위에 날개를 파닥거리는 이클릿을 내려둔 다음, 생소한 이벤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 생일을 맞은 이클릿이 무얼 가장 원하는지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다면 소지품 중 하나를 평상 위에 놓아주시겠어요? 금방 사용하고 돌려드릴게요.”

아멜은 분명 가볍게 권유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카일의 눈빛은 한 사람당 하나씩 내려놓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 넌지시 암시하고 있었다.

“재미있겠군. 나는 책을 한 권 내려두지.”

“기왕이면 제 진주목걸이를 골라 줬으면 좋겠어요.”

“차이엘드라면 역시 지갑이려나?”

고용인들은 마도구를 이용해 사람들이 내려놓는 물건들을 살균 소독한 뒤 평상에 내려두었다.

아멜이 준비한 명주실을 포함해 다양한 물건들이 평상 위의 이클릿을 둘러쌌다. 돌잡이에 흔히 쓰이는 펜, 책을 포함해 국자 같은 특이한 물건들도 놓이게 되었다.

한편, 무엇을 내려놓을지 결정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도 있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가져올 것을.’

황제 베르드는 마땅히 가지고 온 물건이 없었다. 수하들이 대신 들어주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입은 옷에서 떼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황가의 문장뿐이었다.

그는 카일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딸아이가 무엇을 집든 그것을 선물할 기세였다. 그런데 만일 이클릿 차이엘드가 황가의 문장을 고르면?

‘……황가의 운명이 지금 결정될지도 모르겠군.’

베르드는 반쯤 체념하곤 황가의 문장을 내려두었다. 이 돌잡이의 여파가 상당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실 베르드뿐만이 아니었다.

‘차이엘드 영애가 금붙이를 잡으면 공작 전하께서는 금광을 추가로 매입하실 게 뻔해.’

‘건물 모형을 고르시면 건설업계에 활기가 돌겠군.’

‘다이아몬드를 내려놓을걸 그랬나? 관련 주식을 사놨는데!’

이클릿은 제 선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을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멜은 이클릿을 간질이다 조곤조곤 말했다.

“이클릿. 이 중에서 뭐가 제일 좋은지 골라볼래?”

“우웅…….”

붉은 눈동자가 지척을 한 번 훑어봤다. 일순간 차분해지는 그 모습은 카일이나 클레어가 매입할 부동산을 점검하는 것과 비슷했다.

카일은 선택의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기 위해 평상 모서리에 꽃받침을 하고 들러붙었다.

곧 이클릿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꼬물꼬물 손발을 옮길 때마다 날개가 파닥거렸다.

‘어……?’

베르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클릿이 점점 황가의 문장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슬쩍 본 카일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 이클릿. 황제가 되고 싶습니까? 황실 밀어버리는 데 돈 얼마 안 듭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또르르 굴러떨어질 때쯤 이클릿은 방향을 틀었다. 아이가 선로를 바꿀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선택에 따라 하일 제국의 정치 및 경제 상황이 좌지우지되기 때문. 이클릿은 좌중들을 애태우듯 무언가를 척 고르지 않고 배회했다.

아멜은 수시로 변하는 손님들의 안색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러다 아이 생일에 사람 여럿이 피가 말려 쓰러지리라.

“이클릿. 상 위에 올라가 있는 것 중에 제일 가지고 싶은 것 하나만 골라줄래?”

“따따!”

알았다고 대답한 이클릿은 성큼성큼 한 지점을 향해 기어갔다. 황제는 황가의 문장 쪽으로 뻗어 나가는 자그마한 손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안 돼! 제발 황가의 문장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클릿은 거슬린다는 듯 황가의 문장을 휙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곤 꽃받침을 하고 있던 카일의 얼굴을 와락 끌어안았다.

“파파!”

“……!”

멀리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멜은 황홀한 얼굴로 둘에게 다가갔다. 귀여운 아이가 귀여운 남편을 선택하는 장면이라니.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사람들은 돌처럼 굳은 카일과 마냥 좋아하는 이클릿을 보며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었다.

“어머. 아가 님께서는 공작 전하가 제일 좋으신가 봅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차이엘드 공작, 자네의 얼굴은 역시…….”

“우리 손녀는 더 이상 딸랑이에 관심이 없나 보구나.”

“이제 하일의 정치 경제에 큰 바람이 불 일은 없겠군.”

좌중들의 의견이 안도 쪽으로 기울 무렵, 아멜은 카일의 속마음을 읽어보았다. 예상한 대로였다.

「우리 아가가 제일 좋아하는 게 나……?」

「저 많은 물건들 중에 나를, 카일리안 차이엘드를 골랐다고?」

「이클릿……!」

「사랑스러운 행동을 하는 게 꼭 누나를 닮았군.」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인데.」

카일은 이클릿을 번쩍 안아 들고 양 뺨에 입을 맞춰 준 다음,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카일리안 차이엘드의 이름으로 이클릿 차이엘드를 차기 차이엘드 가주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우리 이클릿은 조만간 차기 가주의 격에 어울리는 것들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 말인즉, 차이엘드라는 대부호 가문의 상속자가 정해졌다는 소리. 제국의 정치와 경제가 모두 요동칠 뉴스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방금 선언으로 이클릿 차이엘드가 얻게 된 자산이 제국의 몇 년 치 예산인지 계산해 보느라 분주했다.

“뭐, 뭐라고요? 차기 가주?”

남편과 딸아이의 포옹을 보며 말랑말랑한 기분에 젖어 있던 아멜은 아득히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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