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삐-삐-삐-.
철근을 매단 타워 크레인이 천천히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아래에 서있던 나는 신호봉을 흔들며 위치를 유도했다.
거대한 갈고리가 바로 앞에 멈춰 서더니 철근을 천천히 놓았다.
바닥이 살짝 흔들렸다.
그걸로 모든 자재를 옮겼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백인 운전수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한 대 피우자는 신호였다.
그가 바깥으로 나왔고, 우리는 캔 커피를 든 채 건설 중인 아파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천루가 내려다보였다.
캘리포니아 주州, 세크라멘토.
내년 2030년을 목표로 건설 중인 아파트의 분양을 이제 지금 시작했다는 광고판이 보였다.
밝게 웃고 있는 백인 가족이 미래를 꿈꾸며 활짝 웃고 있었다.
불현듯 웃음이 나왔다.
내게는 모두 꿈같은 내용이었다.
가족.
웃음.
돈.
‘빨리 끝났으면.’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블루 컬러. 그게 바로 나였다.
한국계 이민자 2세.
부모님은 옛적에 돌아가셨고, 벌어둔 돈도 병원비로 다 날렸다.
찔끔찔끔 모아가는 돈으로는 실버타운 입주나 생각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비참한 현실.
그조차 이제는 익숙해졌다.
얌전히 말바로 담배로 현실을 도피하고 있자니, 내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척이 입을 열었다.
“헤이, 킴.”
“왜, 척.”
“부기맨이라도 본 거냐? 뭘 그렇게 표정이 구려. 좀 웃으라고.”
“현실이 팍팍해서 그런다.”
“부기맨보다는 현실이 낫지.”
“……갑자기 웬 부기맨 타령이야.”
“아니, 그냥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잠깐 예고를 해두는 거지.”
“무슨 이야기?”
“너 ‘프로레슬러’였다면서?”
“…….”
입안이 바싹 타는 걸 느꼈다.
되도록 숨기려던 사실인데.
하지만 내 침통한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척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것도 WWF 출신.”
“옛날 일이야.”
“어땠냐? 내가 소싯적에는 ‘고르곤’ 같은 멋진 여자를 상상하면서 밤을 불태우고는 했는데.”
“80년대 레슬러잖아.”
“하하, 너무 오래됐나?”
“주로 대중들이 기억하는 건 90년대, ‘태도 불량 시대’지.”
나는 적당히 말을 맞춰주었다.
업계를 떠나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은 생생했다.
선수로서 15년.
프로듀서로서 10년.
총합 25년의 프로레슬링 외길.
하지만 그 끝은 비참했다.
사내에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나는 결국 도망치듯 퇴사했다.
그건 삶을 잃은 것이었다.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때문에 쾌락에 빠지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얼마 없던 돈까지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꿈을 좇던 삶이었다.
그러나 좇던 꿈이 사라진 사람은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것도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 그 아무것도.
내 꿈은 나에게 상처만 줬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 기억이었지만, 이처럼 말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현재의 프로레슬링 산업은 쇠락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 시절에는 프로레슬링을 보며 자라왔다.
그러니 장막 뒤에 감춰진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내가 어땠냐고?
‘엿 같았지.’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니 내 바로 옆에 앉은 척이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때! 락콜드와 더 팍이 유명했지. 팍은 옛날에 헐리우드 무비 스타로서도 잘 나갔고, 거기다 미국 대통령까지도 됐지.”
“그 사람은 내가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 사람이라서 잘 몰라.”
그의 은퇴 시기와 내가 데뷔한 시기가 정확하게 겹쳤다.
“내가 딱 그쯤해서 레슬링을 끊었지. 사실 그래서 네가 프로레슬러였다는 것도 몰랐지 뭐냐.”
“봤다고 해도 기억 못 할걸. 나는 TV쇼에 거의 못 나갔거든.”
“그래? 왜?”
“글쎄.”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스포츠와 궤를 달리했다. 그래서 이게 또 무척 애매한 문제였다.
물론 기준은 있다.
크게 봤을 때 네 가지 정도.
기믹에 적합한 외모.
마이크워크를 할 때의 연기력.
경기를 끌어가는 레슬링 실력.
그리고 마지막, 사내 정치력.
물론 내가 선수 시절, 그 네 가지를 모두 갖췄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갖췄다고 해도 ‘인종’의 벽은 넘을 수 없었겠지.’
WWF의 역사에서 단체를 이끄는 탑 스타는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들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시청자 층이 주로 중·하류층 블루 컬러 백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흑인 선수 중에서 탑에 올랐던 사람이 셋…… 아니, 넷인가?’
그 외에 멕시코 출신, 유럽 출신도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 같은 동양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본 척이 당황해 말을 돌리려고 들었다.
“레, 레슬러 생활은 어땠냐?”
“겁나게 아팠지. 정말로, 생각하면 아팠던 기억밖에는 없다.”
“아니 뭐, 대충 링 위에서 몸 던지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애들 장난으로 보이냐?”
“다 가짜 아니야?”
“각본이지. 하지만 그런 각본을 수행하는 우리는 전부 진짜야.”
“철학적인 말이군. 킴.”
척은 흥미로운 듯 웃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뭐였는데?”
“이름?”
“있을 거 아냐. 레슬러 이름.”
“……쿵-퓨리.”
“어? 너 중국계였던가?”
“한국계거든. 그냥 회사에서 시키니까 할 수밖에 없었지.”
프로레슬러는 거칠고 마초적인 이미지와 달리 회사의 노예였다.
때문에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회사의 지시를 따르면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직된 업계는 파벌 싸움으로 개판이었고, 나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유리 천장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위에서 빛나는 ‘스타’라는 이름은, 매순간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나씩 가지는 망상에 가까운 꿈. 내 경우는 그것이 프로레슬링이었다.
언젠가 월드 챔피언으로 우뚝 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꿈꾸고는 했다.
‘단지 꿈으로 끝났지만.’
선수 생활 내내 나는 언제나, 그런 스타들을 띄워주는 ‘패배자’의 역할밖에는 맡지 못했다.
동양에서 온 무술 고수……인 척을 하지만 실상은 그저 머저리.
그게 나, 다시 말해 ‘쿵-퓨리’였다. 나는 그런 역할이었다.
난 ‘그 이상’으로 가지 못했다.
프로레슬링에는 선수의 위상에 따른 계급 체계가 존재했다.
가장 먼저 아이콘.
업계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선수만이 도달했던 위상.
그 모두는 업계를 넘어 미국 전역을 울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캡틴 로건, 숀 시나, 락콜드 스티비 스틴 같은 위대한 선수들.
그 바로 아래에는 일명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아이콘이 만들어낸 시대의 주축이었던 이들을 뜻했다.
그리고 그 아래.
월드 챔피언 같은 1선급 벨트를 중심으로 싸우는 현역 선수들은 ‘메인 이벤터’라고 불리었다.
그 아래에는 각 위상별로 하이/미드/로우 카더라고 불리었다.
마지막으로 나.
좋은 말로는 ‘워커Worker’, 안 좋은 말로는 ‘자버Jobber’라고 불리는 패배 전문 프로레슬러.
관중들에게 환호 한 번 받지 못했다. 모두 내게 무관심했다.
화려한 기술을 배워놓고도 사람이 아닌 매트를 향해서만 썼다.
물론, 그런 식으로 업계에 도움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프로레슬러였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스타가 되고 싶었다. 띄우기 위한 존재가 아닌 띄워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꿈을 조금도 이루지 못했었던 선수 생활 말년에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하고는 했다.
만약 내가 미국인 백인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리고 선수 생활을 접고 프로듀서가 되었을 때 깨달았다.
애초부터 난 재목이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 노력하지 않았다.
프로레슬러로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운동도 소홀히 했고.
어차피 말도 안 시켜주는데 하면서 연기 연습도 하지 않았다.
선수 시절 지적 받았던 나쁜 버릇조차 고치지 못했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도 내게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뭘 어쩌란 말인가?
미국, 그것도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동양인이 탑에 오르는 건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편견이 언제나 날 사로잡았기에 노력하지 못했던 거다.
나쁜 건 나다.
그리고 세상이다.
어느 하나도 우선되지 않았다.
‘차라리, 나부터라도…….’
상념에 빠져있자니, 캔 커피를 비운 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킴, 슬슬 일하자.”
“그래, 그래.”
내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는지 녀석은 더 묻지 않았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나는 뒤뚱대며 크레인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삐-삐-삐-.
크레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문득 그 소리가 내 선수 시절의 입장 음악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중국풍의 그 지긋지긋한 놈과.
[출신, 차이나! 90kg! 쿵-퓨리!]
장내 아나운서가 날 소개했다.
나는 일부러 과장된 무술 동작을 선보이며 링 위로 올라갔다.
그게 워낙 웃겨서 사람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지.
만약 그때 그걸 알았다면 일부러 계속 다른 웃긴 동작을 연마하며 인기를 끌어보는 거였는데.
나는 내 기믹을 싫어해서 일부러 반응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지금이라면 안 그럴 거다.
꾸준히 노력해 내가 가진 매력을 세상에 알리며 싸웠을 거다.
하지만 뭐 어쩌랴.
지금 나는 50세의 중년이다.
업계로 돌아가기에는 늙었다.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망상을 하는 것이다.
내가 노력했다면 변했을 미래를.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선수와 맞붙는 순간을.
레슬 임페리움의 메인이벤트.
링 위에 서있는 건 나다.
월드 챔피언.
수십만 명의 성원을 받겠지.
바로 그때였다.
‘어?’
몸이 허공을 향해 붕 떠올랐다.
강풍이 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사용할 자재는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안전장치를 사서 쓰라고…….’
하지만 안전장치는 200달러가 넘었다. 오늘만 쓸 것이기에 200달러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날 죽였다.
몸이 추락했다.
250미터 아래로.
세찬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쿵-퓨리의 입장 음악으로 변했다.
슈슉, 슉슈슈슉~.
쿵~ 퓨리~.
‘나 한국계라고 말했는데.’
개자식들.
* * *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흐허어어억?!”
그와 함께 입술 사이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손에 집히는 것을 붙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침대.
블라인드 커튼.
술병.
“어, 으……?”
여기가 어디지?
의아해 주변을 살폈다. 쓰레기처럼 널린 옷들과 어질러진 좁은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 야?”
기시감이 찾아왔다.
희미한 시야가 분명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여긴 분명히…….’
내가 인디 선수 생활을 했던 시절에 살았던 캠핑카 안이었다.
틀릴 수가 없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선수, 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반 위에 대강 걸려있는 저 화려한 레슬링 복장은 분명히 내 것이었다.
머릿속이 황량해졌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기억은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타워 크레인의 위치를 유도하다 강풍에 휩쓸려 250미터 아래로 추락했을 텐데.
‘헛된 망상을 하다 실수로…….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꿈인가?
아니면 사후세계?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린 나는 감각이 멀쩡한 것을 깨닫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침대 반대편의 거울.
거기에 비친 나는 분명히…… 23세 시절의 젊은 나였다.
머리가 금발이라서 확신했다.
내 삶에서 유일하게 금발이었던 시기가 바로 23세 시절이었다.
그때는 멋져 보일 줄 알았지.
사람들의 눈에는 동양인이 금발 동양인이 된 것뿐이었지만.
‘뭐야, 대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황했던 나는 이내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누군가 노크와 함께 말을 걸어왔다.
[헤이, 준. 일어났냐?]
익숙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애덤 조나단 실버랜드……?”
[뭐야. 너 심각할 때의 우리 엄마냐? 왜 갑자기 사람을 풀네임으로 부르고 앉았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애덤은 프로레슬링이 하고 싶었던 내가 스무 살에 집을 뛰쳐나온 이후 함께 다니게 된 친구였다.
우리는 전국 각지의 인디 단체를 다니며 3년 간 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애덤은 나보다 한발 앞서 WWF의 산하 단체에 입성했으며, 이후 크게 성장했다.
커리어가 끝날 때쯤엔 최고의 악역이었다고 회자될 정도였다.
‘대체 뭐야?’
지금이 대체 언제지?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들어간다…….”
“애, 애덤, 오늘이 언제야?”
“뭔 헛소리야. 오늘 시험 보러 가잖아. 정신 차리고 아침 먹어.”
그 말에 몸이 굳어졌다.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분명히 당시 수련생을 모집하고 있던 WWF의 산하 단체에 함께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시험 당일, 아침에 먹은 쿠바 샌드위치가 잘못되어 링 위에서 설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나는…… 혹시 그때 애덤이 샌드위치에 약을 탄 것이 아닌지 몇 달 정도 의심했다.
“자, 네가 좋아하는 거.”
그리고 애덤은 지금 문제의 쿠바 샌드위치를 내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거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