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로부터 약 30분 뒤.
일단 머리를 다시 검정색으로 염색한 나는 캐러밴의 음습한 화장실에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대략 30여 년 전.
내가 23세.
정확히 2002년 6월 4일.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 덕에 미국 전체가 비상 사태였던 여름.
‘……그때로 돌아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게 꿈이 아니라면 회귀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감이 생생했다.
나는, 돌아왔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런 사실을 확신한 나는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엿 같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오늘 있을 시험을 쳐서 다시 프로레슬러 생활을 하라는 건가?
이번 생에는 전생과 달리 죽어라 노력해서 삶을 바꿔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심장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일단, 나는 향후 내 삶에서 벌어질 모든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디에서 구르던 풋내기가 아니라, 25년간 업계에서 구르며 단련한 기술과 경험 역시도 충분히 갖춘 상태였다.
오직 몸만이 젊어져 있는,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변하지 않은 건 인종뿐.
쾅쾅쾅!
[야, 야! 준! 준 인마!]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 있어.”
[아니! 야! 급한 거 아니면……! 제발 이 자식아! 좀 나와 봐!]
“쿠바 샌드위치가 잘못 됐나?”
[아니, 윽…… 허으읍!]
괴로워하는 애덤.
뿌웅, 뿌우웅, 하는 불길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로서 당시에 애덤이 내 쿠바 샌드위치에 설사약을 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녀석이 한눈 판 사이에 샌드위치를 바꿔놓아서 다행이었다.
‘저 자식이…….’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아니,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애덤은 언제나 그런 놈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자기 안위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뒤통수를 치는 쓰레기.
신인시절 놈에게 속아 선배들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그럼에도 놈은 승승장구했다.
악역 레슬러로 거물이 되었고 나와 달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어쩐지 스스로가 처량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 저놈이 레슬러로서 성장하는 동안, 나는 줄곧 패배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자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역사는 바뀌었다.
애덤은 오늘 있을 선수 선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로서 변할지도 모르지.
무언가가.
“…….”
머릿속을 진정시킨 나는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과거의 페이지를 머릿속에 펼치고 현재의 상황과 비교해보았다.
‘한번 시도라도 해볼까?’
조금 전 떠올렸듯, 지금 나는 수많은 무기를 갖춘 상태였다.
그걸 가지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전과 같이 자버의 삶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자.
어차피 덤으로 주어진 삶이다.
“후우.”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애덤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어마어마한 악취가 느껴졌다.
“……이제 나왔어?”
“그래, 비었으니까 써.”
“그럴 필요가 없게 됐어. 바지라는 이름의 변기를 찾았거든.”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애덤을 놔두고 바깥으로 나오자 열기가 섞인 공기가 느껴졌다.
탁 트인 전경 너머로 거대한 건물이 하나 서있는 게 보였다.
저곳이 바로 ‘GCW’였다.
조지아 챔피언십 레슬링.
WWF의 산하에 있는 소규모 육성 단체였다. 대부분 선수들은 이곳을 거쳐 메인 쇼에 입성했다.
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스포츠와는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위한 특별한 교육이 필요했다.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GCW에서는 실제로 지역 방송에 TV쇼를 내보내며 선수들을 육성했다.
‘여기에서도 나는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무술 고수였지만.’
WWF 메인 쇼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도 돌아와 다시 보자 반가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무려 20년이 넘게 레슬링 짬밥을 먹었기 때문일까. 처음 봤을 때 같은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소를 지은 나는 20대의 젊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였다.
“주, 준……! 같이 가!”
바지를 갈아입고 달려 나온 애덤이 내 앞에 비틀거리며 섰다.
그 잘생긴 금발 백인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괜찮겠어?”
“무, 물론이지!”
애덤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 푸드득 하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애덤의 엉덩이로부터 들려왔다.
“…….”
슬프게도 나 역시 이랬지.
링 위에서였지만.
* * *
그렇게 시간이 되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수많은 캐러밴에서 수련생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왔다.
나는 가야 한다며 발버둥치는 애덤에게 기저귀를 하나 건네주고 혼자 시험장으로 향했다.
5층 높이의 거대한 중앙 건물 주변으로 기숙사, 식당, 경기장 등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스포츠백을 짊어진 나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을 즐기며 걸었다.
‘확실히 대기업다웠지.’
이렇게 좋은 시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업계든지 간에 롱런을 위해서는 미래를 설계해야만 한다.
‘실제로 여기를 거친 선수들이 스타가 되는 경우도 많았었지.’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였던 숀 시나 역시 이곳 GCW 출신이었다.
‘전생에서 그 양반은 나와 동기였지만, 내가 올해 시험에 합격한다면 1년 후배가 되겠군.’
그것을 떠올리자 순간 발이 멈췄다. 나는 수많은 지망생들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를 어쩐다.’
시나는 한 시대의 주인공, 다시 말해 ‘아이콘’ 급의 레슬러였다.
그는 대략 15년 정도를 정상에서 군림했다. 때문에 친분을 쌓아두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터.
‘시나의 선배가 되어 이끌어주는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려나.’
바로 그때, 누군가 고민에 빠진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뭔가 싶어 돌아본 나는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긴장했어?”
그렇게 묻는 건 각진 턱이 인상적인 스포츠컷의 백인 남자였다.
‘숀 시나!’
올해 시험을 치렀던 건가?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친구. 어디 안 좋아? 같이 의무실이라도 가줄까?”
“아, 아니……. 괜찮아.”
나는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는 피식 웃었고, 이내 자연스럽게 내 옆에 붙어서 걸었다.
그리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어?”
“아니, 친구랑 같이 왔는데 그 놈이 설사가 좀 심해서.”
“하하하! 긴장해서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당연하지. 여기는 WWF잖아?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
그런 순진해빠진 말을 들은 나는 시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숀 시나는 보디빌더 출신이었다.
따라서 프로레슬링이나 업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단순히 근육을 좋아하는 순진하고 선한 청년. 그게 시나였다.
‘지금은…… 말이야.’
그랬던 그가 4년? 아니, 메인 데뷔 이후 곧바로 기세를 탔다.
선하고 단정해 보였음에도 연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잘생긴 얼굴.
1년 내내 성실한 몸 관리로 언제나 단단하게 벌크 업 된 모습.
링 위에서 하는 마이크워크나 관객들과 소통 역시도 완벽했다.
경기력을 제외한 숀 시나는 그야말로 완전체 프로레슬러였다.
거기다 강철 같은 몸으로 15년 넘게 풀타임 스케줄을 소화했지.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선수는 80년대에 활동했던 ‘불멸자’ 캡틴 로건 정도일 터였다.
그걸 알고 있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시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야말로 혹시 긴장했어?”
“……사실 좀 그래.”
그가 쓰게 웃었다.
“레슬링 스킬을 좀 배우기는 했는데, 아직 부족하거든. 아무래도 로프 반동이 어려워서 말이야.”
“아,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되게 못해서 매일 넘어지고 그랬어.”
“……혹시 인디 출신?”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업계의 분류에 의하면 ‘인디 출신’ 유형의 지망생이었다.
집 뒷마당(백야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이른 들개 같은 존재.
그 외에도, 아마추어 레슬링 출신, 미식축구 지망생 출신 등.
프로레슬링 선수는 주로 몸을 쓰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나 같은 백야드 레슬러들은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기본기가 부족하고 나쁜 버릇이 있다며 윗선에서는 보통 안 좋게 봤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25년 간 WWF에서 근속하며 프로레슬링의 기본기를 철저하게 닦은 베테랑이었다.
프로듀서 시절에도 주로 선수들을 돌보면서 보냈으니 말이다.
“걱정 마. 시나. 네 그 몸이면 심사위원들이 다 환장할걸.”
나는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리켰다.
평생을 그렇게 단련한 시나에 비하자면 지금의 나는 좀 빈약한 편이었다.
그러자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던 시나가 의아해 물었다.
“내 이름, 말했던가?”
“뉴-버리의 보디빌더 숀 시나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여, 영광이군.”
시나의 뺨이 붉어졌다.
그는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자신의 보디빌딩 경력을 인정받아 조금 감동한 얼굴이었다.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나는 미래에 시나가 하게 될 명대사를 말하며 그를 격려했다.
Never Give Up.
그가 이후 WWF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뒤 자신의 캐치 프레이즈로서 삼게 될 말이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시험 봤었어?”
“응?”
“아니, 익숙해 보여서.”
“한 번 봤지. 떨어졌고.”
나는 그 앞에서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다. 시나가 흥미를 가지고는 내 옆으로 바싹 붙었다.
“가, 같이 가도 될까? 피차 혼자 온 사람들끼리 의지하자고.”
“그래, 나야 좋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로서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정해진 셈이었다.
‘미래의 아이콘, 숀 시나와 함께 시험에 합격해 동기가 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눈앞에 프로레슬링에 쓰는 범프 링이 열 개쯤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앞에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백 명 가량의 지망생들이 서있었다. 나와 시나도 함께였다.
이곳에 도착한 연습생 지망생들은 한 달 간의 시험을 치른다.
그들은 프로레슬링 기술을 업계의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배운 뒤 테스트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 기간이 한 달인 것이다.
지망생 모두는 남자였다.
여자 지망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따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공간에는 없었다.
백인이 90명 정도.
나머지 10명이 흑인.
동양인은 나 혼자다.
‘……전생에서도 이랬었나?’
그렇기 때문에 다들 내심 나를 신기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나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구는 시나가 대단한 거지.
여기서 한 10년만 지나면 그조차 인종 차별로 여겨지는 시대가 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대우가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감상에 젖어 있자니 시나가 말했다.
“왜, 왜 아무도 안 오지?”
“……일부러 좀 기다리게 하는 거야.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지.”
“왜?
“프로레슬러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니까.”
“인내심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침착하게 기다려.”
지금 시대의 프로레슬링 업계란 온갖 바닥에서 실패를 맛보고 온 한량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야성적인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 업계는 야성적인 면모를 ‘연기’하는 인간을 원하지, 실제 성격 자체가 그런 인간은 무척 혐오한다는 점이 무척 아이러니한 특징이었다.
‘결국 기본적으로 합의 하에 서로를 때리는 것이기 때문이지.’
즉,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야성적인 인간은 프로레슬러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서서 기다렸다.
시나 역시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있던 지망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기다리다 지쳐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전엔 정말 이랬지.’
무슨 생각인지 범프 링 위로 올라가 놀고 장난을 쳐대는 백인 친구들. 그 대부분이 근육과 뇌를 등가 교환한 것 같았다.
“흐하하! 이거 죽이는데!”
“로프 반동 해봐!”
“락콜드 같지?”
가장 무리가 큰 인간들이었다.
얼추 스무 명 정도? 어디 보디빌더들이 모여서 온 듯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이 배드애스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망해가고 있는데.
그런 생각에 이어, 나는 범프 링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이 자식들, 그새를 못 참고 다 같이 헛짓거리하고 있지?”
바리톤 풍의 굵고 낮은 저음.
한순간 공기를 바꾸는 듯한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쇠로 된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남자가 가볍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프레스 머신에 끼인 것처럼 문고리가 부서졌다.
“…….”
“…….”
“…….”
경악하는 지망생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반응을 무시한 채 우리들을 향해 다가왔다.
“좋아, 어디 한 번 나대는 만큼의 실력이 있는지 확인해볼까?”
다들 주춤거리며 비켜섰고, 링 위로 올라간 바쿠는 장난을 치던 지망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뿌드득!!
“끄하악!!”
콰직!
“크억?!”
기선을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그게 아주 훌륭히 먹혀 지망생들은 죄다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등장 때부터 반가운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바쿠.’
통가 왕국 출신의 전직 프로레슬러. 현재는 GCW에서 선수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전생의 상관.
그가 건방진 애송이들을 손보는 걸 보며 나는 환하게 웃었다.
“끼야아아아악!!”
그래, 이게 프로레슬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