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유의 아프로 펌 헤어.
통가 왕국 출신의 사나이.
두툼한 체격에 순망한 눈망울, 옅은 갈색을 띄고 있는 피부.
링네임 바쿠. 본명은…… 뭐였더라?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바쿠는 WWF에서 그다지 좋은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방면으로 업계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여겨졌다.
바로 ‘실전 싸움 능력’이었다.
바쿠는 온화한 성격이었지만 결코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시비를 걸어오면 곧바로 곤죽을 만들어놓고는 했다.
거기다 맷집도 대단해서 경찰들이 둘러싸 곤봉으로 두들겨 패도 ‘이게 다야?’라며 우스워했다지.
아니면 손가락 두 개로 상대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다던가.
그런 수많은 전설을 낳았다.
뭐, 나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을…….
뿌드득!
“크하아악!!”
정정한다.
과장되지 않았다.
“뭐야, 고작 이거냐. 애송이들.”
“이, 이 썅!”
“하여간. 꼴에 프로레슬링 좀 하겠다는 놈들은 죄다 이렇게 터프한 척만 할 줄 알지.”
바쿠의 도발에 덤벼들었던 멍청이들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나와 시나, 그 외의 모든 지망생이 놀라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양반이 주먹으로 팰 때마다 망치로 부수는 소리가 나는군.’
그러고 보니 한 레슬러가 바쿠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지.
만약 바쿠와 내가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내 손에 로켓 런처가 있으면 나는 바닥에 쏠 거다.
‘왜냐면, 바쿠 그 개자식을 열 받게 하는 건 정말로 위험하니까.’
그 말이 맞았다.
바쿠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거대한 훈련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열 명 정도 되는 근육질의 지망생들을 단숨에 쓰러뜨린 바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늙어서 이제 이 짓도 힘들군.”
……그는 현재 54세였다.
“어쨌든 그래, 대충 분위기는 잡았고. 우리 모두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그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바쿠는 그렇게 본보기를 보임으로서 이곳에 있는 야성미 넘치는 말들을 길들인 것이었다.
“너희 모두는 실패자지. 그리고 도망자야. 근육 꾸미고, 이상한 옷을 입고 남자랑 떡치는 거 같은 ‘아마추어 짓’ 하고.”
바쿠의 말과 함께, 언제 왔는지 채점판을 든 감독관들이 모였다.
그들 대부분은 현역에서 은퇴한 레슬러들이거나 업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온 트레이너들이었다.
“또 잘나신 NFL 태클 지망도 있었겠지. 수백 개가 넘는 작전을 못 외우고 도망친 멍청이들.”
바쿠는 모여 있는 지망생들 모두를 싸잡아서 이야기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적당히 돈 좀 만져볼 요량으로 여기에 왔다면 당장 꺼져라.”
하지만 그 말에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제각기 이유가 있어 모인 사람들이었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고, 바쿠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테스트를 해보지.”
기초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 * *
기초 테스트.
……더 설명할 것도 없이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링 위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동작들 말이다.
일단 낙법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프로레슬링은 낙법으로 시작해 낙법으로 끝난다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낙법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 게 프로레슬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테스트는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자, 한 명씩 올라오세요.”
범프 링 위에 근육질의 사내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웠던 소리군.’
나는 링 바로 아래쪽에 붙어 생각했다. 충격 완화와 더불어 큰 소리를 내기 위해 특수 제작된 이 범프 링 역시도 그리웠다.
하지만 그 위의 사내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퍼엉!
펑!
낙법을 쳐댄다고 하긴 했지만 기본적인 충격 분산도 하지 못했다. 등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음에도 애써 터프한 척을 해보였다.
미래의 영웅 숀 시나도 그랬다.
“끄하압!”
머리를 부딪쳐 끙끙 앓았다.
“…….”
이러니 떨어졌군.
낙법은 프로레슬링에서 진짜 제일 중요한 기술이었다.
이걸 쓰지 못하는 건 숨을 쉬지 못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감독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참으로 어이없지만 우리가 속한 조를 돌보는 것은 바쿠였다.
시나의 차례가 끝나고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그가 바로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날 불렀다.
“주…… n……? 중?”
“준입니다.”
레슬링 부츠에 셔츠, 바지.
“호오.”
레슬링 부츠를 신었다는 것만으로도 바쿠는 좀 기대하는 눈치였다.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레슬링 부츠 역시도 무척 중요했다.
‘안 중요한 게 없지.’
사람의 목숨을 걸고 하는 쇼인 프로레슬링은 지극히 위험했다.
그렇게 나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본 바쿠는 이어 내가 제출한 이력서를 읽고는 피식 웃었다.
“백야드 출신이라고?”
“그렇습니다.”
“어디 단체에서 활동했지?”
“딱히 없습니다. 20살이 되자마자 나와서 전국을 떠돌아다녔죠.”
“부모가 잘도 허락했군.”
“…….”
“어쨌든, 해봐라. 백야드 출신 인디 레슬러라면 딱히 동작 따위는 지정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옙.”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충분히 풀어두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는데, 이 나이대의 내 몸은 정말로 완벽했다.
‘……50세 때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때의 실력을 가지고, 젊은 몸으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니.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과연 어떨까.’
링 중앙에 선 나는 일단 후방 낙법부터 시작했다.
퍼엉!
깔끔했다.
완벽했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준다.
재빠르게 일어나 전방.
측면.
나는 빠른 속도로 낙법을 쳐댔다. 그렇게 자신이 질리도록 이 짓거리를 해왔다는 걸 증명했다.
실전에서는 이와 같이 교과서적이고 안전한 상황에서 낙법을 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고, 떨어지는 방향에 맞춰 낙법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호오…….”
바쿠의 눈에 다시금 흥미가 깃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펜이 나의 점수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와중에 바쿠의 반응을 미세하게 살펴보았다.
‘한쪽 눈썹이 들렸군.’
나는 산하 단체 시절 그에게서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저런 표정이 기분이 무척 좋을 때 짓는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로 올라가도 될까요?”
“응?”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더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어디 한번 해봐라.”
바쿠는 부드럽게 웃었다.
다른 ‘초짜’들을 보며 불편해하던 그가 처음으로 테스트하는 선수에게 흥미를 가진 순간이었다.
단숨에 내달린 나는 링의 네 귀퉁이를 지지하고 있는 기둥, 다시 말해 ‘링 포스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떨어졌다.
무려 ‘문설트’를 써서 말이다.
콰앙!
“이야……. 이 새끼 이거.”
그것을 본 바쿠의 입이 대번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머쓱해하는 척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설트 프레스.
프로레슬링의 기술 구분 중 하나인 ‘공중기’의 꽃이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멋진 기술이었다.
상대에게 등을 돌린 상태에서 거꾸로 270도를 회전하고는 덮쳐 충격을 주는 고난도의 기술.
젊은 시절 내 우상이었던 선수, 존 마이클스가 자주 사용해 나도 무던히도 연습을 했다.
그렇기에 내 문설트는 더없이 아름답고 깔끔했다. 체공 시간도 길어 확실히 개성도 있었다.
“이거 오랜만에 눈이 호강하는군. 건방진 개자식이 왔어.”
바쿠는 들고 있던 채점지를 내려놓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더 확인해보자. 꼬마야, 너라면 내 기술을 받을 자격이 있어.”
“…….”
사실 좀 겁을 먹었다.
바쿠는 188cm인 나보다 키가 10cm 정도 작았지만 옆으로는 훨씬 넓은 레슬러 체형이었다.
링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망생들의 표정은 썩어갔다.
왜 하필 이런 놈과……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개중에 유일하게 숀 시나만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자, 꼬마. 로프 반동이다.”
시험 내용이 넘어간 듯했다.
바쿠는 내 팔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범프 링에는 상하 간격을 두고 가로로 세 개의 로프가 설치되어 링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바쿠의 힘에 당한 것처럼 연기하며 달려간 나는 그 앞에서 몸을 틀며 상단 로프를 붙잡았다.
그리고 몸을 뒤로 돌려 안전하게 중단 로프에 ‘앉는’ 요령으로 그 위에 몸을 맡겼다.
주욱 늘어난 와이어로프가 내 몸을 다시금 밀어냈고, 나는 기다리고 있던 바쿠를 향해 달려갔다.
그가 외쳤다.
“클로스라인!”
바쿠는 자신의 오른팔을 빨랫줄(Clothesline)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로로 죽 들어 올린 상태였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연기였다.
바쿠의 팔뚝이 내 가슴 위쪽을 힘차게 후려쳤다. 충격을 덜기 위해 나는 뒤로 넘어갔다.
퍼엉!
후방 낙법.
“바디 슬램!”
누운 채 괴로워하던 중 바쿠가 그 말과 함께 내 목 뒤쪽과 가랑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
그리고 몸이 번쩍 들렸다.
내가 딱히 ‘들리기 위해’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무슨 어마어마한 힘인가.
그리고 직후, 바쿠는 내 몸을 회전력을 이용해 내동댕이쳤다.
나는 떨어지는 각도를 느끼면서 한순간에 낙법 방식을 택했다.
측면 낙법.
팔로 바닥을 때리며 머리를 들어 몸에 오는 충격을 완화했다.
동시에 바쿠와 눈을 마주쳐 내 상태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본 바쿠는 낄낄 웃어대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첫 번째 합격자가 나왔군.”
손을 뻗은 그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잘했어, 아시안 꼬마.”
“……좀 인종적인데요.”
“아, 그래? 미안. 미안. 앞으로는 조심하지.”
바쿠는 그런 내 불만에 솔직하게 사과하고는 껄껄 웃었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감독관과 지망생에 관계없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일단 눈에는 들었고.’
가장 먼저 샤워장을 쓰고 나온 나는 뽀송뽀송한 기분이 여름 날씨로 금방 사라지는 걸 느꼈다.
베테랑인 바쿠의 인정을 받은 나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이지.’
기초에서 걸러낸 이후에는 본격적인 훈련이 이어질 터였다.
해머링, 찹, 드롭 킥 등등. 수많은 프로레슬링의 기초 기술들.
‘이따가 짐 좀 챙겨와야겠군.’
기초 테스트를 통과한 지망생들은 GCW 내부 숙소를 사용했다.
나는 부디 내 짐에 애덤의 설사가 들어있지 않기를 기도하며 깔끔하게 정리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장 바깥으로 짐을 챙겨서 나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이들은 대부분이 보디빌더 출신이었다.
그들은 잘 다듬고 부풀어진 근육을 통해 외모에서는 큰 장점을 지녔지만, 유연성과 체력이 떨어져 기술 구사에서 약점을 보였다.
‘안타깝구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낙법을 못하거나 위험하게 한다면 이 업계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터덜터덜 돌아가는 근육질의 사내들을 바라보던 나는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시나가 그 대열에 있었다.
시무룩해져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를 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여기서 떨어졌다고?
고작 기초에서?
미래의 아이콘 숀 시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