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화 (5/634)

5.

버닝콩을 시청한 뒤, 나와 시나는 곧바로 식당으로 내려갔다.

GCW는 인근에 변변찮은 편의점 하나도 없는 황량한 장소였다.

좋게 포장해 말하자면 식단을 관리하기에 좋다는 뜻이었다.

‘유혹은 없는 게 좋지.’

이번 생애에는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할 생각이었다. 근육질의 강인한 몸은 중요한 요소였다.

나와 시나는 일찍 도착한 자들의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저녁은 뷔페식이었다.

대기 인원이 줄어들어 식판을 들 때쯤 좋은 냄새를 맡았는지 시나가 입을 열었다.

“준, 여기 식사는 어때?”

“뭐?”

“작년에 와봤다면서? 어땠어?”

“……그럭저럭 괜찮았어. 사실, 맛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하하, 그렇지.”

우리 같은 인간들은 음식의 맛보다도 영양 성분을 우선해야 했다.

단백질, 섬유질, 기타 비타민을 얼마나 섭취할 수 있는지. 거기에 다양성만 더해지면 만족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뷔페에서 선택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삶은 달걀.

비프 스테이크.

브로콜리 샐러드.

고구마.

프로틴 주스.

식당 한 구석에서는 버터에 바게트를 기가 막히게 구워줬는데, 애써 무시하고 지나쳤다.

사실, 좀 괴롭기는 했다.

전생의 나는 식단 관리는커녕 운동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남들이 하는 만큼만 했다. 하지만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그걸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젊음을 되찾게 되자 용기가 샘솟았다. 식욕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먹자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사람들 앞에 자신의 복근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레슬러로서, 응당 갖춰야 할 멋진 몸을 만들어주마.

나는 적당히 덥혀진 냉동 닭 가슴살을 씹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나 역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의무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러던 시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렇지?”

“응, 확실히 GCW가 시설이 낡긴 했어도 최상급이라더니, 그 말이 맞네. 이 맛없는 걸 이렇게 살려내는 것도 쉽지는 않은데.”

“……그 정도인가.”

“왜? 맛없어?”

“아, 아니야. 괜찮지.”

황급히 고개를 내저은 나는 브로콜리를 으적으적 씹어댔다.

‘그래도, 미래에 스타가 될 시나와 함께 있어서 다행이군.’

녀석의 존재가 마음을 다잡는 걸 도와주었다.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음식을 깔끔히 해치웠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시나와 나는 곧바로 숙소 건물에 붙어 있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각종 덤벨과 머신들이 가득한 걸 본 시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아까 전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더 신나 보였다.

“굉장한데?”

“그래?”

“여기 봐봐! 프레스 머신이 아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잖아?”

“그렇긴 하네.”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뭐부터 할래?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마음껏 해보자고!”

“일단 몸부터 풀려고. 그다음에는 중량 확인부터 해둘까?”

“그래, 좋아.”

고개를 끄덕인 시나가 매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는 그사이 덤벨을 몇 가지 챙겨서 돌아왔다.

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뭐하는 거야?”

“몸을 풀어두려고.”

“덤벨을 써서?”

“응, 이게 또 기가 막히지.”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지금의 시대에는 아직 개발조차 되지 않은 방법이었다.

2010년, 혜성처럼 보디빌딩계에 나타난 ‘로버트 황’이라는 남자가 고안한 ‘로버트 체크’라는 운동.

덤벨을 지지대로 삼아 근육을 풀어주는 동시에 유연성을 기르는 아주 좋은 운동이었다.

“같이 해볼래?”

“응? 아, 알았어.”

조금 의심하며 날 따라하는 시나. 나는 매트 위에 누워 무거운 덤벨을 당기며 몸을 풀었다.

그 상태에서 심호흡하며 들고 놓으며 근육을 이리저리 당겼다.

내 옆에 누워 그걸 따라하던 시나가 이내 감탄사를 내뱉었다.

“굉장한데. 하나 배웠어.”

“별거 아니야.”

“아니, 정말로. 덤벨을 써서 준비 운동을 하다니. 정말 혁신적인 생각이야. 기분이 아주 좋아.”

확실히 쉬고 있던 근육이 깨어나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내 몸은 아직 단련이 덜 된 상태였다. 나는 객관적으로 확인하며 운동 루틴을 생각했다.

그리고 무게를 측정했다.

리프트 머신 앞.

철컹, 철컹 하는 쇠 소리와 함께 원반을 꽂은 시나가 일어섰다.

“스쿼트부터 해보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머신 앞에 서서 가볍게 무게를 확인했다.

사실, 전생에서는 이 시기에 근력 운동에 관해서 전혀 몰랐다.

하기는 했지만 그냥 적당히 무거운 걸 들고 내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프로레슬러로 생활해오며 중요성을 깨달았다.

3대 중량 운동인 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는 웨이트 트레이닝의 꽃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바벨을 바라보던 나는 궁금증이 생겨 시나를 돌아보았다.

“넌 몇 정도 드냐?”

“전체? 아니면 하나.”

“전체.”

“이번에 700kg을 넘었지.”

“…….”

입이 떡 벌어지는 무게였다.

거기다 여기서 더 늘어난다. 훗날 시나는 3대 중량을 900kg 가까이 들 정도의 괴물이 된다.

‘대체 어떻게 먹고 근육을 키우면 그렇게 되는 거야?’

아니, 그냥 타고난 거겠지.

시나는 프로레슬러를 여러 타입으로 분류했을 때 ‘파워 하우스’에 들어갈 정도로 힘이 좋았다.

‘파워 하우스’.

자신의 힘을 과시해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유형의 선수였다.

황금시대의 아이콘, 캡틴 로건도 파워 하우스인 걸 보면 힘을 과시하는 건 사람들의 환호를 얻기에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뒷받침되어야하기에 제대로 된 ‘파워 하우스’ 유형의 선수는 나오기 힘들었다.

게다가 보통 근육을 키우면 근력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맞는 말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격렬한 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근육만을 과도하게 발달시킬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체력이 다른 사람보다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힘에 더해 체력까지 합쳐진 시나와 같은 파워 하우스는 신이 점지해준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준, 너는 몇 정도 나와?”

“500이나 나오려나.”

“……일반인 수준 아니야?”

“일반인은 500도 못 치거든. ……운동 좀 해야 드는 정도지.”

나는 반박했다.

시나는 진짜로 당황한 얼굴을 하고는 내 중량을 체크해주었다.

“흐앗!”

벤치 프레스 130kg.

“차앗!”

데드리프트 220kg

“끄그극!”

스쿼드 150kg

총합, 정확히 500kg

봉 무게는 뺐다. 내가 이곳으로 돌아온 걸 보면 조상님께서 대신 들어주고 계시는 모양이니까.

그래도 몸을 잘 풀어두어서인지 생각보다는 잘 나왔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아……!”

“꽤 좋은데?”

“이제부터가 문제지.”

시나의 칭찬에 수분을 보충하고 있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무게가 쉽게 느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여기서 150kg 정도가 내가 가진 한계일 것 같은데.”

“호오, 꽤 자세히 아는데.”

전생의 내 기억이 그 숀 시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랬다.

시나처럼 파워 하우스가 되는 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프로레슬링 기술은 힘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상대를 들 때도 그냥 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뛰어오르는 반동과 함께 드니까.

그게 ‘합’을 맞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려드는 인간의 무게는 생각보다 녹록한 게 아니다.

‘100에서 최대 200kg 가까이 되는 괴물들을 체력이 빠진 상태에서도 들고 버티는 건 힘들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굳이 파워 하우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스타일을…….

바로 그때, 나와 시나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 자식들이, 허락도 안 받고 체육관을 쓰고 있어?”

돌아보자 버드사의 캔 맥주를 쥔 바쿠가 가까이 다가왔다.

“써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응? 푸하하! 이 자식, 무슨 제 집 앞마당마냥 행동하네.”

“제가 이 GCW의 수련생이 될 재목이라는 것 아닐까요?”

바쿠를 비롯해 WWF의 사람들은 건방지고 남자다운 자신감을 큰 미덕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일부러 좀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했다.

“넉살도 좋고. ……그래, 확실히 써도 되기야 하지.”

바쿠는 맥주를 캔까지 먹을 기세로 꿀꺽꿀꺽 마셨다.

“그런데 내일 힘들 거다.”

“그래도 해야죠. 붙고 싶으면.”

“짜식이, 아무리 잘해도 네 친구까지는 같이 안 붙여줘.”

“저,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경험 삼아서…….”

“다 괜찮은데. 낙법을 못해서야 말이 안 되지. 낙법을 못하면 곧바로 그냥 시체가 된다는 건데.”

“……낙법을 사용할 줄 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겁니까?”

“그건 싫은데.”

바쿠는 잔혹하게 웃었다.

“이 친구, 힘도 아주 좋은데요. 키우면 쓸 만해질 겁니다.”

“몇 정도 드는데?”

“7, 700을 넘겼습니다.”

시나가 말을 더듬었다. 그 말을 들은 바쿠의 얼굴이 환해졌다.

“700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너 춤 좀 춰봐라. 그럼.”

“……?”

이 무슨 신종 똥 군기인가.

“너도 해봐. 꼬마.”

“아, 아니 왜…….”

“시키는 대로 해봐.”

그 말에 시나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몸을 이리저리 흐느적대는 동작에 가까웠지만.

그것을 본 바쿠는 무슨 이유에선지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안 되겠어.”

“예?”

“…….”

“유연성이 제로잖아.”

바쿠가 시나를 가리켰다.

정확한 지적을 들은 나는 쓰게 웃으며 바쿠 대신 이야기했다.

“확실히, 유연성이 없으면 정확한 기술 구사에 어려움이 있죠.”

“호오, 잘 아는구나.”

감탄하는 바쿠.

“그래, 맞다. 네가 ‘에디 비테레로’, ‘거트 엔젤’ 같은 놈들이 쓰는 기술을 따라서 쓸 수 있겠냐?”

바쿠는 기술 구사력이 뛰어난 ‘테크니션’으로 분류되는 현역 선수들의 이름을 말했다.

“시대는 변했어. 관객들은 더 이상 캡틴 로건 같은 유치한 파워 하우스를 원하지 않아.”

“……글쎄요.”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꼬마야. 너도 테크니션 레슬러가 아니었나?”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거죠.”

나는 쓰게 웃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바쿠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현시대의 사람들이 테크니션 레슬러에 열광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후에 최고가 되는 건 결국 이 뻣뻣한 시나였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맞는 말은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딱히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시나를 지켜보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너는?”

“전 잘하잖아요?”

“푸하하하! 건방진 자식!”

화끈하게 웃은 바쿠는 이내 몸을 빙글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시나의 도움을 받아서 계속 운동했다. 비는 시간에는 시나 역시도 함께 웨이트를 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확실히, 아직 좀 부족해.’

몸이 젊다는 건 큰 장점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그 장점을 활용할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확인을 끝내고 체육관 밖으로 나오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보람찬 ‘첫날’이었군.’

그렇게 생각하며 걷자니,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왔다.

“저기, 준.”

“엉.”

“파워 하우스가 뭐야?”

“……프로레슬러 분류야.”

나는 그에게 조금 전에 했던 대화에 대한 해설을 해주었다.

파워 하우스, 테크니션, 빅 맨, 하이 플라이어, 쇼맨, 올드 스쿨, 스턴트맨 등의 레슬러 분류까지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줬다.

그러자니 흥미롭게 내 설명을 듣던 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분류가 있었군.”

“뭐, 사실 너무 딱딱한 건 아니야. 그래도 어떤 ‘기믹’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경기 방식에 일관성이 있는 것이 중요하니까.”

예를 들자면 2미터가 넘는 거한이 링 포스트 위에서 날아다니면서 공중기를 구사한다고 치자.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놀랄지도 모르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그 선수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 여지가 크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WWF의 세계관을 잠식할 우려가 크다는 거지.”

“세계관?”

“WWF 안에서 ‘스포츠’가 이뤄지기 위해 만들어진 암묵의 룰이야. 아무리 그럴 능력이 있어도 빅 맨은 최대한 공중기를 사용하지 않는 게 느슨한 규칙이지.”

그랬다간 작고 재빠른 선수들의 입지가 좁아질 테니 말이다.

“그러면 준, 너는 그중에서 어떤 유형의 프로레슬러야?”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선택한 유형에 대해서 말을 안 했네.”

“뭔데?”

시나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거기에, 나는 주먹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브롤러.”

Brawler.

막싸움꾼이라는 뜻이었다.

일단 그걸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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