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음날부터 GCW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용 건물은 어디 비행기라도 주차해두는 창고처럼 넓고 컸다. 범프 링 바닥에 낙법을 칠 때마다 그 소리가 울릴 정도였다
각자 체육복을 입은 47명의 지망생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범프 링 앞에 서서 몸을 풀었다.
그 사이에서 나 역시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니, 나를 돕던 시나가 의아해 물었다.
“그런데 중, 오기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게 있는데.”
“뭔데?”
“왜 시험을 이렇게 훈련하는 것처럼 보는 걸까? 혹시 알아?”
“그만큼 위험하니까. 기술 시전 같은 건 제대로 WWF의 방식대로 가르쳐두고 싶은 거지.”
나는 잠을 잘 때 짓눌렸던 허리의 근육이 늘어나는 걸 느꼈다.
“거기에 프로파간다적인 측면도 있지. WWF는 어디까지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단체라는 걸 바깥에 알리고 싶은 거야.”
“호오…….”
시나는 감탄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엄청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레슬링에는 ‘생활 체육’으로써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일반적인 구기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격투기.
태권도, 복싱, 유도, 무에타이.
이런 것은 호신護身이나 놀이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 수행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아마추어 레슬링을 베이스로 한다고 해도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아예 어렸을 적부터 프로레슬러를 지망해 전문 도장에서 훈련하지 않는 이상에야 ‘프로레슬링’을 접하고 자랄 기회는 없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할 즈음, 트레이너들이 훈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기운도 좋구먼.”
중심에 선 바쿠는 어제 먹은 술이 덜 깬 모습이었다. 아직 6시 10분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좋아, 바로 시작하지. 다들 링 위로 다섯 명씩 올라가라.”
지망생 다섯에 트레이너 하나.
그렇게 훈련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링을 지탱하는 기둥인 링 포스트에서 반대쪽까지 ‘굴러서’ 가는 것이었다.
‘……추억이군.’
나는 쓰게 웃으며 긴장하고 있는 지망생들의 제일 뒤에 섰다.
그들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사실 방향을 잡고 일직선으로 연속해서 굴러간다는 건,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말처럼 앞서 굴러가던 지망생들은 다들 중심을 잃거나 어지러워 쓰러지거나를 반복했다.
보란 듯이 내가 있는 링 위로 올라온 바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내 차례가 찾아왔다.
모두가 주목했다.
다른 링에 있던 지망생들도, 첫 날 바쿠와 ‘프로레슬링’을 펼쳤던 나에게 큰 흥미를 가진 듯했다.
쓰게 웃은 나는 그대로 반대편 링 포스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바쿠가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잘할 수 있겠어?”
“기초잖아요.”
나는 그 말에 다소 오기가 생겨 곧장 구르기 시작했다.
바쿠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나처럼 백야드 출신의 인디 레슬러는 보통 기본기가 부족했다.
아니, 거의 없었다.
TV로 프로레슬링을 보고 따라하는 게 보통 나 같은 ‘백야드 키드’들의 시작이었으니까.
철저한 기본기보다는 화려한 기술에 더 신경을 썼고, 그로 인해 프로레슬링이 위험하다는 기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때문에 바쿠와 같은 ‘진짜’들은 우리에게 안 좋은 버릇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멋지게 다섯 번 굴러 반대편 링 포스트에 도달했다. 그것을 본 바쿠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크하하! 좀 하는군!”
그런 식이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훈련에 임했다.
체력 단련, 낙법, 로프 반동, 그 외에 수많은 기초 중의 기초들.
모두가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실수해 나가떨어졌지만,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후우.”
오전 훈련이 끝나고, 대부분의 지망생들이 지쳐 쓰러져 있는 와중,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물을 마시며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저 녀석…….’
러셀 하트.
프로레슬링의 명문가, ‘하트 패밀리’의 적통 후계자.
그 얼굴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꼈다.
* * *
업계에는 대대로 프로레슬링을 가업으로 삼아온 가문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사모아의 아너아이 패밀리, 멕시코의 비테레로 패밀리, 그리고 방금 만난 러셀이 소속된 캐나다의 하트 패밀리가 그러했다.
그들은 업계인들에게서 큰 존경을 받았으며, 어렸을 적부터 가문의 양성소에서 제대로 된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업계에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와는 죽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전생에서는 WWF의 쇼에도 출전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문제는 그 뒤로 사내 정치싸움에 패배해 거물로 성장하지 못하고 쫓겨났다는 건데.’
어쨌든 지금은 나와 같은 시간대에 시험을 치루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훈련이 끝난 뒤.
저녁을 먹은 시나와 나는 훈련장에서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
브릿지 자세로 코어 근육을 단련하고 있자니, 내 앞에 서있던 시나가 돌연 말을 걸어왔다.
“중,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 대답해, 드려야죠……!”
거꾸로 뒤집혀서 목과 허리힘으로 버티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다. 이 시절 내 몸이 얼마나 단련이 덜 됐는가가 느껴졌다.
“왜 브롤러를 하겠다는 거야?”
“……마침,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던, 참이었는데!”
“왜?”
“러셀 하트가, 있으니까……!”
허리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러셀 하트? 그게 누군데?”
“하트, 패밀리의, 천재!”
그리고 희대의 테크니션.
지금 WWF에서 활동 중인 삼촌, 그렉 하트처럼 그 역시도 향후 엄청난 테크니션으로 성장했다.
여기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다.
현재, 내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브롤러 스타일의 아이콘, 락콜드 스티비 스틴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렉 하트와의 대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러셀 하트와는 좀 친해지는 편이 좋겠어.’
왜냐고?
“시험의, 최종 과정에서, 지망생들은, 실제로, 대립을 갖거든!”
“다른 지망생들하고?”
나는 브릿지 자세를 풀었다.
“후…… 그전에 각자 캐릭터도 만들고, 대충 그래. 일단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우선이지만.”
“어울린다니, 어떻게?”
“뭐, 일단은 외양이지.”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캐스켓-테이커라고 알지?”
“아, 알지. 이긴 상대방을 관짝에 넣는 장의사 캐릭터잖아.”
“그 사람이 키가 170cm이었다면 그 기믹을 할 수 있었을까?”
“설득력이 떨어졌겠지.”
“그래, 설득력. 그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모적인 설득력.
그리고 그 사람의 실제 인생 역정을 담아냈을 때의 설득력.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나와 러셀은 좋은 퓨드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걸어온 방향이 완전히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장 구석의 범프 링에 자리를 잡고 서있는 러셀 하트를 돌아보았다.
링포스트에 기대어 쉬고 있던 그 역시도 나를 보고 있었다.
‘흥미가 없진 않은 모양이군.’
예전의 나였으면 백야드에서 올라온 그저 그런 애송이들 중 하나로 취급을 받았을 텐데.
‘되돌아오고 볼 일이군.’
지금 나는 세계 최고의 단체인 WWF에서 20년 이상을 굴렀던 베테랑이었다.
……커리어 대부분을 당하는 역할로 보냈지만, 그래도 경험은 진짜다.
링에서 내려온 나는 시나를 데리고 러셀 하트가 있는 범프 링으로 가서 그 위로 올라갔다.
갈색 머리를 적당히 자른 백인.
거기에 상의까지 하나로 연결된 아마추어 레슬링 슈트 차림새.
그것이 러셀 하트였다.
“브릿지가 아주 제대로던데.”
“네 낙법도 아주 멋졌어.”
우리는 일단 서로를 칭찬했다.
우리 업계는 주로 마초적인 남자들이 그득그득 서식한다. 말하자면 ‘남자의 세계’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단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게 무척 중요했다.
남자는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투쟁하는 존재다. 지금 러셀과 나는 서로 협력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준호 킴, 이라고 해. 내 친구들은 편하게 날 준이라고 부르지.”
“준, 좋은 이름이군.”
와 씨, 완벽한 발음이다.
나는 잠시 러셀을 동경하듯 바라보고 있는 시나의 모습을 확인했다. 녀석은 아직까지도 나를 중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내 이름은 러셀 하트야. 부끄럽지만 하트 패밀리의…….”
“알고 있어. 명문가의 일원과 인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군.”
“……그래.”
응?
약간이지만 그런 내 말을 들은 러셀의 표정이 굳어진 것 같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러셀이 옆의 시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쪽은 숀 시나.”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소개했다.
러셀은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쿨한 녀석이었다. 시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낙법을 보고 조언을 해주었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고, 그런데도 오만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배울 점이 있었다.
“낙법을 할 때는 아픈 걸 상쇄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 그러면?”
후방 낙법을 한 시나가 허리를 부여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부러질 정도의 충격을 아픈 정도로 줄이는 게 낙법이지.”
그 말이 맞았다.
시나는 아픔을 각오하지 않고 있다 보니 몸이 긴장해 어설프게 낙법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몸의 유연성은 둘째 치고, 마음가짐만 좀 다르게 먹어도 훨씬 낙법을 치기가 편할 거야.”
“그래, 시나. 마음 편하게 가지고 배운 대로 팔을 쭉 뻗어.”
“한 번 더 해볼게.”
범프 링의 바닥이 쿵! 울렸다.
어느덧 땀에 젖은 셔츠를 벗은 시나는 혼자 묵묵히 낙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디 가서 숀 시나한테 레슬링의 기초를 가르쳤다고 자랑해도 되겠군.’
러셀 하트의 옆에 선 나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시나의 모습을 잠시 동안 지켜보았다.
이후로 체육관에서는 내가 죽기 직전까지 운동으로 혹사당했지만 말이다.
* * *
그로부터 3일 뒤.
훈련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점이 생겼다. 바로 훈련을 받는 내 옆에 러셀 하트가 함께였다는 점이다.
거기다 시나도 함께였다.
모두가 바쿠 덕분이었다.
“야, 머슬 보이. TP라면서 거기서 멀뚱히 서있지 말고 너도 올라와서 같이 해.”
그는 남들과 떨어져 외로운 식빵 귀퉁이처럼 서있는 시나를 불러와 함께 훈련을 받게 했다.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다느니 뭐니 하던 시나도 바쿠가 주먹을 쥐자 얌전히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크하악!”
시나가 나가떨어졌다.
“다음!”
러셀 하트가 달려갔다. 바쿠는 그의 가랑이와 목 뒤를 잡아 회전시키며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자기 앞에 등이 먼저 오게 해 떨어뜨렸다.
바디 슬램.
‘잡고 던지는(Slam)’ 기술 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낙법을 치는 것도 쉬웠고 힘을 과시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바쿠가 씨익 웃었다.
‘또 뭘 시키려고.’
나는 불길한 감각을 느끼며 그를 향해 로프 반동을 했다. 탁탁 달려가자 바쿠는 크게 소리쳤다.
“백 바디 드롭!”
‘……꼭 아픈 걸 시켜.’
그는 나와 하트에게는 매번 다른 형태의 낙법을 주문했다. 특히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오자 바쿠는 허리를 숙여 마치 불소가 들이받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나는 그 사이에 다리를 끼우고, 바쿠가 올리는 시점에 맞춰 힘 있게 위로 점프했다.
마치 불소가 뿔로 들이받은 뒤 그대로 뒤로 넘겨버리는 듯한 자세였다.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된 나는 그대로 반 바퀴 돌았다. 그리고 등으로 낙법을 치며 착지했다.
콰앙! 하는 소리가 훈련장 전체에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그대로 굴러 일어났다.
등이 욱신거렸지만, 프로레슬러는 자신의 아픔을 연기로만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좋아, 꼬맹이들. 아주 좋아.”
바쿠는 들어 올리는데 썼던 어깨를 한 바퀴 돌리며 껄껄 웃었다.
“낙법도 많이 늘었고…….”
그 눈이 시나에게로 향했다. 얼굴이 빨개진 시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자.”
“……그래도 됩니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범프 링에서는 다들 트레이너들에게 기본적인 바디 슬램을 낙법 치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럼, 내가 여기 지휘자인데. 누구도 내 말에 토를 못 달아. 본사에서 누군가 나와도 꿀밤 한 대 쥐어주면 다들 조용해지지.”
“…….”
“…….”
그의 힘을 알고 있었던 우리는 절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거대한 돌주먹을 들어 올린 바쿠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을 툭 건드렸다.
“타격기로 가자.”
……오늘은 멍 좀 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