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7화 (7/634)

7.

짜아악!!

손날과 손바닥의 중간쯤으로 살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시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러닝셔츠 아래의 새하얀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이게 ‘찹(Chop)’이다.”

바쿠는 얼굴까지 빨개져 고통을 참는 시나를 뒤로 하고 그 옆의 지망생에게 다가갔다.

다시금 손이 내리쳐졌다.

쫘아아아악!

“끄헙!”

“이 정도도 못 참냐?”

“아, 아닙니다!”

“좋아! 그럼 한 번 더!”

이 사람, 악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바쿠는 씨익 웃으며 우리들에게 한 대씩 찹을 먹였다.

쫘아아악!

“……!”

촤악!

“크헉!!”

쯔악!

“끄……!!”

모두가 괴로워했다.

러셀 하트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쿠는 내게 다가와 큰 주먹을 들었다.

“혀 안 깨물게 조심해라.”

……주마등이 보이는군.

쭈와아아아아아악!

전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났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한 통증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그 큰 경기장 끝에서도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겠냐? 크하하!”

“……저는 죽겠는데요.”

“억울하면 쳐보던가! 사나이로서의 근성을 보여봐라! 키드!”

그 말을 거절하진 않았다.

앞으로 나선 나는 바쿠의 가슴을 노리고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쫘아아아아악!!

‘해치웠나?!’

아니었다.

“자식, 고작 이런 걸 가지고 찹이라고……. 우습구먼.”

바쿠는 목을 뚜둑 꺾으며 가슴을 툭툭 털어냈다.

“가슴은 지방하고 근육이 많아서 때려도 거의 안 다쳐. 그러니까 찹 같은 기술이 있는 거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프로레슬링에는 ‘펀치’ 기술이 반칙이지. 왜 그런지 아나?”

“연기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바쿠는 그런 내 말을 듣고 크하하, 웃더니 시나를 가리켰다.

“너는 어떻게 생각 하냐?”

“어…… 레슬링이니까요?”

“너는?”

“WWF에서는 정확히는 안면에 꽂는 펀치만 반칙이 아닙니까?”

러셀의 물음에 바쿠는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지.”

“서로 힘을 겨루는 일반 레슬링에서 오락성을 더하기 위해 ‘해머링’ 같은 기술로 발전한 것이지 싶습니다. 실제로 진짜 펀치를 때리는데도 버티면 말이 안 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렇다고 펀치를 때릴 수 있는데 힘을 겨루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

“그, 그만. 됐다.”

바쿠는 말을 ‘투 머치’ 하게 하는 러셀을 제지했다. 그리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론을 냈다.

“정답은 없다.”

“……?”

“나도 몰라. 우리 모두 모르지. 뭐, 우리가 쫄쫄이 입는 올림픽 레슬링도 아니고. 우리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다.”

그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이대로 치면 반칙이 아니다. 이걸 ‘해머링’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꽉 쥐었다.

“이건 반칙이다. 이건 안면에 꽂히는 ‘펀치’니까. 심판이 각본 상 제재를 하도록 되어 있지.”

“무슨 차이입니까?”

시나가 물었다.

“뭐, 스포츠답게 보이는 연출인 셈이지. 사실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어. 자, 그럼 여기서 문제다.”

바쿠가 주먹을 휘둘렀다.

어설프게 쥔 채로.

그것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가만히 서서 그의 해머링을 기다렸다.

펀치는 내 이마를 ‘긁어내듯이’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충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간지러웠다.

“이거에 관중들이 속아주겠냐?”

“뭔가 좀 부족하네요.”

“그렇지. 여기서 우리가 힘을 빌려야 하는 게, 이 ‘바닥’이다.”

발을 들어 올린 바쿠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것을 본 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봐라.”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이어진 해머링은 조금 전과는 사뭇 달랐다.

콰앙!

극적인 동작으로 발을 구름과 동시에 해머링이 날아왔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가만히 서있는 내 이마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동작이 워낙 빨라 ‘정말로 때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바쿠의 기술 시전이 워낙 능숙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는 쓰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여기에 접수까지 추가해야죠.”

“그래, 그렇지.”

프로레슬링의 ‘접수(selling)’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상대가 힘을 쓰는 기술을 시전하기 쉽도록 돕는 것.

두 번째는 기술의 타격감이 극대화되도록 돕는 것.

세 번째는 그런 기술을 안전하게 받아내는 것.

이 경우는 두 번째였다.

해머링이 다시 날아왔다. 나는 이마를 긁어내려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움츠리며 일부러 머리를 흔들어 ‘맞은 척’을 했다.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표정 연기는 덤이었다.

“허, 참.”

그리고 뜻밖에도, 그것을 본 바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내 접수가 워낙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옆에 서있는 러셀 하트도 놀란 듯 눈썹을 치켜떴다.

그리고 바쿠는 내 어깨에 손을 휙 두르더니 다른 녀석들이 듣지 못하도록 뒤로 돌아섰다.

“안 되겠다. 그냥 너 내일부터 쇼 나가라. 내가 할리랑 이야기해서 네 자리 마련할 테니까.”

“에, 에헤이. 왜 이러십니까. 바쿠 당신 백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데요?”

“그거야 어떤 놈이든 네 레슬링 실력을 보면 다들 잠잠해지겠지. 그냥 계약서에 도장 찍자. 응?”

“……바쿠, 나 이번 시험에서 한번 해보고 싶은 일도 있거든요?”

“뭔데? 저기 러셀 빼고 나머지한테 수준 차이 가르쳐주기?”

“GCW 역사상 최고로 멋진 스토리로 시험에 합격하는 거요.”

“……뭐야, 그게.”

바쿠는 김이 샌 얼굴이었다. 나는 황당한 제안의 끝을 맺기 위해서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바쿠. 그런 황금 같은 제안을 저 같은 백야드 출신한테 해주시다니 말이죠.”

“……여기서 붙어보고 싶은 놈이라도 있는 거냐?”

“그건 ‘쇼’를 기대해주시죠.”

“자식이 귀여운 맛이 없어.”

바쿠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 패기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사실,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반쯤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보다 간단했다.

‘어떻게든 숀 시나라는 인물을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지.’

거기에 지금의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 ‘메인 이벤터’로서 나설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다.

‘몸이 좀 부족해.’

그래도 그건 숀 시나가 도와주니 금방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 내가 쓸 ‘기믹’에 관해서도 좀 정리를 해야겠고.’

나는 다시금 훈련을 받기 위해 돌아섰다.

* * *

그렇게 다시 시간이 지났다.

매일 매일이 반복되는 하루였다.

나는 훈련, 식사, 기믹에 대한 고민, 상황 정리 등을 반복하며 시나, 러셀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지망생들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GCW에는 트레이너들의 판단 하에 ‘이런 실력으로는 계속 갈 수 없겠다’ 싶으면 떨어지는 시스템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숀 시나는 가장 많은 탈락자를 지목한 바쿠에게서 첫날 이후 단 한 번도 탈락감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나와 러셀이 거의 전문적인 트레이너 수준으로 달라붙어 그에게 기술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면 반대로 시나는 우리에게 올바른 식단과 웨이트에 대해 가르쳐준다.

서로 윈윈인 조합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시험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트로이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오늘도 그랬다.

오전 훈련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 세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전에 시나가 잘하지 못했던 기술들을 봐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킥’ 기술을 배웠다.

놀랍게도 프로레슬링에서 펀치와 달리 킥은 반칙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WWF에서만 반칙이 아닌 것이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단체에서 킥 기술은 반칙이 아닌 편이지.’

왜냐면 그게 멋있으니까.

프로레슬링 기술의 가장 큰 조건은 멋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내 새 기믹에 장착할 기술들을 생각하며 시나와 러셀을 바라보았다.

러셀은 오전 내내 바쿠가 해줬던 설명을 그대로 시나에게 해주고 있었다.

“킥을 찰 때는 반대발로 확실하게 발을 디뎌야 하잖아.”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킥은 ‘발을 구르며 동시에 차는 건’ 못하지. 그러면 어떻게 타격음을 낼까?”

“‘짜악’ 하는 소리가 나던데.”

“그렇지. 허벅지야.”

러셀이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다시 한 번 해볼까? 준!”

“엉.”

“슈퍼킥 한 번만 부탁해.”

고개를 끄덕인 나는 러셀과 거리를 두고 옆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한 발자국 내딛음과 동시에, 러셀의 목을 노리고 옆차기를 날렸다. 그리고 확실히 발이 녀석의 목에 닿는 순간 차고 있는 쪽의 허벅지를 냅다 후려쳤다.

짜악!

이것이 슈퍼킥.

포인트는 턱이 아닌 목을 밀어내듯이 찬다는 점이다.

동시에 상대도 몸을 반대편으로 튕겨내 충격을 최소화한다.

러셀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뒤로 고꾸라지며 기술을 접수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며 시나를 돌아보았다.

“어떤 건지 알겠어?”

“으, 으음. 일단 나는 그렇게 타점이 높은 킥은…….”

“뭐, 굳이 네가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렇기에 바쿠도 시나가 어설픈 움직임을 보였을 때 별달리 말하지 않았다. 시나는 훈련을 거치며 자신이 ‘파워 하우스’ 계열의 선수임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훈련 도중 나와 러셀을 동시에 들어 뒤로 메치고는 했다.

‘합치면 200kg이 넘을 텐데.’

정말이지 어마 무시한 괴력이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거겠지.

다가온 러셀도 내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나. 너는 슬램류 기술만 제대로 써도 뜰 거라고. ……그보다, 준. 슈퍼킥이 아주 제대로던데. 완벽한 위치에 명중했어.”

“내 상징 기술이었거든.”

나는 쓰게 웃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전생에 사용했던 기믹인 쿵-퓨리는 동방의 무술 고수로 실제 무술에서 따온 기술들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대부분은 우스꽝스럽게 흉내나 내는 정도였고, 제대로 쓸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러셀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인디에서 어떤 기믹의 프로레슬러였어?”

“……어, 그냥 사이코?”

그것도 사실이었다.

WWF에 입사하기 전까지, 나는 백야드 출신들이 으레 그렇듯 과격하게 사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부단히도 노력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기믹은 이제 안 쓸 거야. 그처럼 ‘나쁜 버릇’은 WWF에서는 버리는 게 좋겠지.”

“그래, 그게 향후 선수 생명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일일 거야.”

내 말에 동의한 러셀은 뭔가를 떠올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좀 됐는데도 아직 트레이너들이 오지 않았다. 범프 링 주변에는 탈락에서 살아남은 지망생들만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후부터는 기믹 훈련을 시작한다고 했지?”

“아, 그러게.”

“가져올 게 있으니까 좀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나는 약간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누가 프로레슬링 아니랄까봐.’

그 시험은 연출도 화려했다.

이윽고, 쿵! 하고 문이 열렸다.

지망생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잦아들었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돌아보았다.

그리고 굳어졌다.

러셀, 시나까지도.

‘그래, 이거였어.’

나는 흥미를 느꼈지만 말이다.

“자식들아! 그딴 때 탄 옷 버리고 좀 ‘레슬러’처럼 입어보자!”

각종 레슬링 슈트들이 가득 걸려 있는 옷걸이가 수십 개.

페이스페인팅용 화장대, 각종 가면, 화려한 가운까지.

‘생각은 해뒀지.’

나는 무슨 패션쇼장처럼 안으로 들어오는 그것을 보며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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