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미국의 갱들은 총을 썼다.
우리도 총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분노한 바쿠는 총보다 믿음직한 자기 주먹을 선택했다.
진한 욕설을 내뱉은 그가 주먹을 움켜쥔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폭행에 집중했기 때문인지 갱들은 우리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와 러셀은 한순간 눈을 마주치고는 곧바로 지면을 기듯이 움직였다. 콘크리트 바닥이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녀석도 나도, 아마추어 레슬링은 충분할 정도로 배웠다. 그러므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한 놈을 매다 꽂는다.’
나와 같은 프로레슬러들과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다.
하지만 허세나 만용에 취할 정도로 멍청이도 아니었다.
우리는 프로였다.
두 명의 레슬러들이 지면에 낮게 깔아져 접근했다. 마치 사냥감을 덮치기 전의 늑대와 같았다.
하이에나들이 눈치챘을 때는 너무 늦었다. 돌아본 갱이 달려들었지만 나는 그 녀석의 머리를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받았다.
그와 함께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거시기를 쥐어짜내듯이 힘을 주며 억지로 들어올렸다.
“어, 어어……?!”
봐주진 않았다.
죽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었다. 문명 아래에 힘의 논리가 남아있었다.
콰직!
그대로 떨어진 녀석은 머리부터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그 상태를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뒤쪽으로 돌아섰다.
“그아아아아아악!!”
“…….”
바쿠가 나섰다.
한 손에 한 놈씩.
“눈알을 뽑아주랴?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 중산층 가족을 괴롭히는 것 말고는 인생에 낙이 없는 새개끼들이지.”
“……새개끼라뇨.”
나는 황당해 중얼거렸다.
바쿠는 놈들의 얼굴을 붙잡고 있었다. 우직, 우지직,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참혹했다.
와, 무슨 악력이 저래?
“그래도 이런 놈들이 한 가지 쓸모 있는 게 뭔지 아냐?”
“뭐죠.”
“기술을 아무리 세게 걸어도 원망할 데가 없다는 거지.”
씨익 웃은 바쿠는 자신의 현역 시절 피니시 무브인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피니시 무브. 경기를 위한 자신의 필살기와 같은 기술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목이나 얼굴을 쥐어뜯는 아이언 클로는 어디까지나 상대가 얌전히 맞아주는 접수를 해야만 성립되는…….
우지직! 빠지지직!!
“끼야아아아아악!!”
이야, 이거 사람 얼굴이 저렇게 깡통처럼 찌그러질 수도 있네.
나는 감탄하며 삽시간에 혼절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제, 그 뒤의 러셀 하트께서는 뭘 하고 있으시냐.
“…….”
“아, 아아아!! 그아아아악!! 탭! 탭! 그만해! 그만!! 살려줘!!”
바쿠의 말에 동의라도 했는지, 그는 콘크리트 위에서 하트 가문 전체를 대표하는 피니시 무브인 ‘샤프 슈터’를 시전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다리를 엮어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운 뒤 그대로 돌아 허리를 압박하는 기술이었다.
실제로 저 기술에 ‘진짜로’ 당하면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당하는 게 가짜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내가 내 의지로 맞아야 하는 기술이기에 좀 등골이 오싹해졌다.
“끄하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갱스터들이 비명을 내지를수록 그들은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실제 저런 놈들은 대부분 레슬링이 결국 가짜가 아니냐며 폄하하고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평소 받았던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발산하는 건가.’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나는 네 사람의 갱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남자를 챙기려 들었다.
나만 유일한 ‘정상인’이다.
“으윽…….”
“여보! 여보!!”
“아빠아아……!!”
“저, 괜찮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예, 예. 어이쿠. 이거 뼈가 부러지셨는데. 빨리 911이랑 경찰도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예, 예!”
“핸드폰 있어요?”
“예!”
“사모님은 그럼 연락 좀 해주시고……. 일단 윌마트 의무실에서 응급처치라도 좀 해야겠군. 아, 애들은 차에 두세요.”
그렇게 말한 나는 반쯤 기절한 남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품안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명함이었다.
‘기자?’
아틀란타 로컬 페이퍼.
지역 신문.
거기다 문화/예술 섹션 팀장.
“………….”
진짜로 이번 생애에는 뭔가 좀 잘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쟤들은 아닌 것 같지만.
* * *
신고를 받고 달려온 지역 경찰서의 순경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로레슬링이라는 게, 결국 모두 다 가짜인 거 아니야……?”
그런 말을 부정하듯 네 명의 갱들은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남자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본 전직 WWF 프로레슬러, 바쿠는 다음과 같은 감상을 입에 담았다.
“미친놈.”
거기에는 러셀도 동의를 했다.
그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훌륭한 ‘노던 라이츠 밤Northern Lights Bomb’이었다.
머리부터 내다꽂는 수직낙하기.
머잖아 WWF의 링 위에서조차 사용 금지가 되는 살인기였다.
그런 킬링 무브를 콘크리트 위에서 쓴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죽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심 러셀과 바쿠는 갱을 상대로 한 준호의 깔끔한 제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쨌든, 그밖에도 심각했다.
두 명은 얼굴뼈가 작살나고 한 명은 허리가 박살이 났다.
하지만 네 사람은 마약 소지에 불법 총기 휴대까지 해서, 세 사람은 사정 청취만 하고 금방 풀려났다.
그때쯤 윌마트는 문을 닫아, 열이 받은 바쿠는 존다니엘 위스키를 사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전을 했다.
* * *
“……죽는 줄 알았네.”
차에서 내린 나는 도로에 가득 새겨졌던 스키드마크를 떠올리며 오줌을 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껏 회귀한 삶이 이대로 끝날 뻔했다. 나는 바지 안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며 주차장을 걸었다.
그러자니 존다니엘 병을 아쉬운 듯 확인한(그래, 다 마셨다.) 바쿠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 뒤의 러셀은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제대로 걷지 못했다.
“에이, 그 새개끼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브레인 버스터 한 방 먹이는 건데 그랬다.”
“그런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브레인 버스터 먹이면 사람 죽어요.”
“크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야말로 브레인 버스터보다 더한 걸 먹였으면서!”
“더하다뇨……?”
“노던 라이츠 밤. 재팬의 위대한 전설 아키나 호쿠토가 쓴, 역사에 남을 위대한 피니시 무브지.”
“그랬, 던가?”
“피가 철철 나더라. 그래도 속이 시원했어. 그런 마약쟁이 히피 갱스터 쉐리들은 싹 다 죽어야 하는데.”
“멋진 아이언 클로였습니다.”
뒤에 서있던 러셀이 경의를 표했다. 머쓱한 듯 코를 만진 바쿠가 나와 그를 가리켰다.
“어쨌든, 이걸로 풀렸지? 너희 둘. 우리들은 ‘동료’니까 서로 일 마음에 담아두는 거 아니야.”
“……저기, 바쿠.”
“생각해보겠습니다.”
러셀이 새침하게 말했다.
‘아직도……?’
케이페이브도 정도가 있지. 적어도 바쿠에게는 확실히 이야기를 해두는 게 낫지 않나.
……싶다가도 또 나 역시 그럴 마음이 들었다. 바쿠는 어찌 보자면 우리 둘의 대립에서 가장 특별한 관객인 셈이었으니까.
그보다 할 말이 있다.
“그나저나 파랑새가 날아올 것 같은데요, 바쿠. 우리 마음에 있는 새가 아니라 진짜로 멋진 새가.”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구한 사람, 지역 신문 문화부 기자더라고요. 거기다 문화/예술 계통 팀장이던데.”
“…….”
“……저, 정말로?”
러셀과 바쿠는 모두 얼음처럼 굳어졌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을 그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인터뷰였다.
지역 신문 노출.
어, 거기다 러셀과 나의 대립이 좀 더 본격적으로 되는 것?
어쨌든 좋은 거.
‘일이 재미있어지겠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평소처럼 훈련하던 나와 러셀은 갑작스레 본부로 불려가게 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묵묵히 낙법을 치던 시나는 우리를 선생님에게 불려가는 문제아들을 보는 것처럼 보았지만.
‘물론 그건 아니지.’
나는 오히려 당당했다.
러셀 역시도 그랬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케이페이브 때문에 녀석과 나는 거리를 좀 벌린 채 본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4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커다란 철제 테이블이었다. 그 앞에 각 부서의 팀장들이 모여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 끝에 있는 건 나이를 꽤 먹은 백인 남성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할리 레이시.
이 GCW의 우두머리였다.
“저 두 사람이 맞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다니까요.”
돌아보고 있던 바쿠가 웃었다.
나는 할리 레이시의 옆에 서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
“너희들의 작은 친절이 큰 돌풍이 되어서 돌아오게 되었군.”
할리가 껄껄 웃었다.
나와 러셀은 기자 양반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얼굴을 붉힌 채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는 각자 악수를 하며 가볍게 통성명을 했다.
“로빈 코너입니다.”
“준입니다.”
“러셀 하트입니다.”
“지난밤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희 두 아들이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면서 난리를 떨더군요.”
“별말씀은요. 그 순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우리는 서로에게 파우더를 뿌려주듯이 예의 차리는 말을 건넸다.
백인 중산층의 가장은 죽지 않고 계속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감동한 눈치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여러분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지역 신문에 세 분에 대한 영웅적인 기사를 실어도 될까요?”
“아니, 그것으로는 부족하지.”
대답한 것은 할리였다.
기자 양반이 의아해 돌아보자 그는 담배를 문 채 씨익 웃었다.
“기자 양반.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개자식들이거든.”
“말씀이신즉슨……?”
“너희도 동의하지?”
할리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예 프로레슬링에 관한 전문 기사를 써줘요. 당신을 구해준 이 두 사람이 특히 요새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고 있거든.”
“뭐, 나쁘진 않군요.”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일부러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야기가 진행되다니. 이보다 더 편한 상황이 있을까.
“마, 말씀이신즉슨……?”
“일단 우리 꼬마 친구들이 레슬링 하는 거나 좀 보고 가지.”
할리는 입을 다물고 서있던 나와 러셀을 가리켰다.
“……?”
이건 좀 너무 빠르다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