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3화 (13/634)

13.

러셀과 나는 링 중앙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팔을 뻗은 나는 녀석의 뒷덜미에 손을 휘감았다. 그와 함께 반대쪽 손은 내 뒷덜미를 잡고 있는 러셀의 팔에 올렸다.

락 업.

본격적인 경기에 앞서 서로의 기량과 대립의 강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에피타이저였다.

그게 이제야 나왔다.

쿵, 쿠쿵!

바닥에 발을 세차게 구르며 우리는 뒤엉켜 상대와 힘을 겨뤘다.

그 과정에서 물론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는 뒷덜미를 짓누르고 있는 러셀의 팔이 강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키는 내가 더 컸지만 옆으로 넓은 건 러셀이었다. 거기다 공방의 기술 또한 그가 우위였다.

우리의 모습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설정을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설득력을 지녔다.

“큭……!”

나는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한쪽 코너로 몰아붙여져 러셀의 분노를 받아냈다.

그러자니 가까이 다가온 심판이 날 밀어붙이는 러셀을 떼어냈다.

“반칙이야. 조심해!”

그리고 경고가 이어졌다. 러셀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소리를 들은 심판이 놀라서 물러섰다. 양다리를 모아들어 올린 나는 러셀의 가슴에 킥을 먹였다.

드롭킥.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러셀이 나가떨어졌다. 안전하게 착지한 나는 그대로 다가가 러셀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다시 락 업을 걸었다.

러셀은 순진하게 그에 응했다. 나는 그대로 텅 빈 녀석의 복부를 팔꿈치로 후려쳤다.

“윽?!”

“순진하기는.”

그대로 해머링을 몇 대 갈겼다.

러셀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녀석을 코너까지 몰아붙인 나는 가슴을 노리고 준비된 손날을 날렸다.

짜아아악!

“크학?!”

괴로워하는 러셀.

나는 녀석에게 몇 번이고 찹을 먹이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러셀 역시도 저항하려고 했지만 전혀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나는 녀석을 철저하게 농락했다.

머리를 붙잡고 링포스트의 턴버클에 박아댔으며, 빠른 템포로 해머링을 갈기며 정신을 빼놓았다.

마무리로 버티컬 수플렉스까지.

투쾅!

벌떡 일어난 나는 거만한 얼굴로 관객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모두가 뒷골목에서 온 거만한 내 캐릭터를 딱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특히나 바쿠는 끝나면 한 대 때려줘야겠다는 얼굴을…….

‘바로 도망쳐야겠군.’

그래도 먹히고 있어 다행이었다.

업계인인 그들에게 우리의 표현이 닿고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더욱 악독하게 행동했다.

링 포스트까지 다시 러셀을 몰아붙여 복부를 걷어찼다. 녀석은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러셀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댔다. 그것을 보다 못한 심판이 다가와 날 말렸다.

“그만! 그만! 원! 투……!”

카운팅이 시작되자 뒤로 물러난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든 뒤 다시 러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링 아래로 빠져나간 녀석이 내 다리를 당겼다. 나는 미끄러져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다.

러셀은 그대로 링 아래에서 내 다리를 당겨 철제 링 포스트에 힘차게 부딪히도록 했다.

“크학!”

비명을 내지른 나는 무릎을 감싸 쥔 채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러셀은 봐주지 않고 몇 번 더 링 포스트에 무릎을 부딪치게 했다.

“끄윽……!”

이를 질끈 깨문 나는 러셀의 얼굴을 발로 차 겨우 떼어냈다.

빠져나왔다.

링 위로 올라온 나는 부딪힌 다리를 절뚝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사이, 링 위로 잽싸게 올라온 러셀은 집요하게 무릎을 노렸다.

다친 무릎 뒤쪽에 녀석의 팔꿈치가 닿았다. 몸을 날리며 동시에 팔꿈치로 후려치는 기술이었다.

거기에 당한 내 몸이 부웅 떠오른 직후 곧장 바닥에 떨어졌다.

‘좋아!’ 하고 관객들이 소리쳤다.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까 링 포스트에서 무릎을 당한 게 스팟이었다. 러셀은 집요하게 내 무릎을 노리고 공격해댔다.

“크학!”

니 드롭.

주먹으로 후려치고, 겨우 일어났다 싶으면 발로 걷어차였다. 나는 괴로워하며 그에게 끌려 다녔다.

서로 합이 필요한 기술 몇 개는 일부러 작게 말을 속삭여 기술을 시전할 것임을 알렸다.

- DDT.

그렇게 작게 말을 들으면 러셀의 겨드랑이 아래로 머리를 넣고 같이 누워주는 식이었다.

삼촌이 사용하는 기술에 더해, 자신만의 개성까지 갖췄다.

정정당당한 선역 그렉 하트와는 달리 러셀은 상대방의 약점을 노릴 줄도 아는 선역이었다.

그 의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 피니시 무브인 니 킥을 봉쇄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리와 허리에 충격을 주는 자신의 피니시 무브, 샤프 슈터를 사용하기 위한 ‘당위성’을 만들어두는 것.

- 샤프 슈터.

그리고 때가 찾아왔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나는 일부러 러셀의 눈을 긁어 반칙을 했다.

뒤로 물러선 녀석이 괴로워했다. 그 틈을 노려, 나는 니 킥을 먹이고자 힘차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동작이 늦었다.

무릎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막아낸 러셀이 그대로 나를 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눈 한 번 깜빡할 새에 다리가 엮어졌다. 한쪽 발을 엮인 다리 사이에 넣은 러셀은 내 양 발목을 쥐고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그와 함께 나도 몸을 돌렸다.

샤프 슈터.

하트 패밀리의 피니시 무브.

서브미션, 혹은 관절기로 상대방을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기술.

등과 무릎에 엄청난 압박이 전해져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크하악!!”

스쿼트 자세로 버티고 선 러셀은 날 항복하게 만들려고 했다.

바닥에 엎드린 나는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항복할까?

아니면 버틸까?

러셀이 몸에 반동을 주며 더 강하게 샤프 슈터를 걸수록 나는 더 괴로워했다. 바로 옆에서 심판이 항복의 의사를 물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바닥을 기어 로프를 향해서 전진했다.

로프를 붙잡으면 로프 브레이크로 간주되어 이 지옥 같은 서브미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러셀 역시도 버텨냈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시합.

언더독이 탑독을 누르고 승리를 쟁취하기 직전의 짜릿한 순간.

나는 뒤로 밀려난 러셀의 발을 잡고는 내 쪽으로 힘껏 당겼다.

“……?!”

녀석은 내 발을 놓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서로 뒤엉킨 상태에서 함께 몸을 돌린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쩌억!

러셀의 얼굴이 옆으로 세차게 돌아갔다.

깔끔하게 니 킥을 꽂아 넣은 나는 바닥에 몸이 떨어짐과 동시에 돌아가 커버를 올렸다.

“원! 투! 쓰리!”

쓰리 카운트.

땡땡땡!

다시금 링 벨이 울렸다.

깔끔한 승리였다.

* * *

나는 끝난 이후에도 셀링을 잊지 않았다.

말인즉슨 계속해서 다리를 절며 입장로 뒤의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이런 디테일이 일류와 이류를 나누는 선이었다. 나는 끝까지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몇 명 없는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나를 반겨주었다.

“고생했어!”

“아, 고맙습니다.”

“러셀도!”

뒤이어 러셀이 돌아왔다. 돌아선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녀석과 한 차례 포옹을 나눴다.

“고생했다.”

“너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

러셀이 씨익 웃어 보이자 뒤쪽에 서있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역시 케이페이브였지?”

“당연하죠. 준과 저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오히려 제 은인이죠.”

“다행이네. 바쿠가 많이 걱정했으니까 꼭 미안하다고 빌어.”

“당연한 걸 가지고 왜…….”

“그 아저씨가 나름 섬세하거든. 아까 관중석 쪽 카메라 보니까 경기 끝난 시점에서 일어나던데.”

한숨을 내쉬는 날 보며 낄낄 웃은 직원은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제 오겠지.”

“이 자식들아……!”

그 말이 맞았다.

“이 미친 또라이 자식들이! 계약서도 안 썼는데 이런 사고를 치면 어쩌자는 거냐!”

안으로 쿵쿵 들어온 바쿠가 나와 러셀을 왈칵 끌어안았다.

“가르친 보람이 있어! 크하하!”

“……더워요. 바쿠.”

“아주 제대로 된 경기였어! 탑독, 언더독! 링 사이콜로지! 100점 만점에 100점 주마! 와하하하! 이렇게 다음날 쇼가 기대된 적은 정말 오랜만인데!”

“없거든요, 다음 쇼.”

나는 어떻게든 그 품 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좋은 경기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로 쪽의 커튼을 걷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어라, 바쿠?”

“오, 헨리. 무슨 일이냐.”

“아니, 할리가 경기한 두 사람 상태 괜찮으면 박수 받으러 나오라고 해서요.”

“하하! 할리가 늙었어도 아직 경기 보는 눈은 안 죽었군!”

바쿠는 우리 둘의 어깨를 감싸 쥔 채 입장로로 나갔다.

“자, 너희들이 이뤄낸 거다.”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다.

“야, 신참! 아주 잘하던데?”

“좋은 경기였어! 선수로 합류한 뒤에도 기대할게!”

“그래도 링 기어 좀 바꿔라! 네가 그렇게 튀면 우리는 어쩌냐!”

“…….”

아니, 정정한다.

‘어쨌든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째질 정도로 행복했다.

전생에서는 이런 풍경, 맛보지도, 꿈꿀 수도 없었다.

나는 과거 GCW, WWF, 그 어디에서도 루저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리했다.

그 어떤 의미로든 말이다.

러셀 역시도 이런 경기를 보였단 것에 만족한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든 채 링 쪽으로 향했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할리 레이시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준, 그리고 러셀 하트.”

“감사합니다. 할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악수를 마치자 할리 레이시는 러셀보다 오히려 날 돌아보며 이내 뺨을 툭툭 두드렸다.

“얄미운 개자식. 네가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말 거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만족한 내가 짓궂게 웃자, 뒤이어 이곳에서 이질적인 정장을 입은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이런 분위기와 달리 표정이 어두웠다.

“경기는 재밌게 보셨나요.”

“으, 으음. 네.”

코너는 러셀을 돌아보았다.

“턱은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저희는 평소에 꾸준히 훈련을 해서 괜찮습니다.”

“이런 건 캡틴과 기간트가 싸운 이후로 처음 보네요.”

그는 쓰게 웃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왠지 그가 이 경기를 그저 재미있게만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프로레슬링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두 가지 말.

폭력성. 위험성.

그는 우리의 시합을 통해 오히려 그 부분에 주목한 듯했다.

하지만 그날, 주차장에서 자신을 도운 건 ‘프로레슬러’들이었다.

고민하던 그가 물었다.

“만약 이 경기를 제가 아이들하고 보러오게 된다면…… 어떤 교훈을 배워갈 수 있을까요?”

러셀이 먼저 대답했다.

“긍지와 명예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쓰게 웃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죠.”

“예?”

“프로레슬링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는 선이 승리합니다.”

그 말을 들은 로빈 코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오늘은 제가 이겼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자식 분들은 아마 오늘이 아닌 내일을, 끝내 고전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러셀 하트가 악을 물리치는 걸 기대하겠죠.”

“……그렇군요.”

“물론, 걱정하시는 바는 이해합니다. 프로레슬링이 확실히 위험하기는 하죠.”

나는 찹으로 인해 멍이 든 러셀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래도 그게 남자의 세계죠.”

시대가 변하고, 패러다임이 뒤바뀌어도 그건 언제나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고전적인 가치에 대해 말하는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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