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2화 (22/634)

22.

경기장과 백스테이지 사이의 특수한 공간인 고릴라 포지션.

경기를 지켜보며 각종 직원들이 조율을 하는 공간에서 관객들 못지않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씨익 웃은 바쿠는 모니터를 통해 경기장의 상황을 확인했다.

러셀 하트가 나간 순간, 대부분의 직원들은 새로운 슈퍼스타가 탄생할 것임을 직감했다.

관객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장 위로 올라간 그는 신과 엄청난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러셀이 신을 때릴 때마다 환호가, 신이 러셀을 때릴 때마다 야유가 번갈아 나왔다.

프로레슬링은 관객들 역시 쇼의 일부가 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선수에게 박자에 맞춘 구호를 날리거나 야유와 환호로 방송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링 쇼에서는 그런 관중들마저 이용할 줄 아는 자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적어도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자들은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쿠는 러셀이 아닌 신에게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이군.’

오늘이 첫 TV쇼 데뷔.

긴장할 법도 한데, 적어도 겉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프로모는 완벽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모두가 ‘쓰레기’ 같은 경기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사람들이 보기에 답답했던,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경기.

바쿠는 보자마자 서로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셰무스는 주도권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신은 반대로 자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해결은 셰무스가 저지른 엄청난 ‘보차’로부터 나타났다.

신은 그것을 기회로 만들었다.

거기에서, 바쿠는 이 꼬마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천재다.’

그는 전율이 돋는 걸 느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오히려 환호보다 받기 힘든 것이 야유였다.

거기다 신은 자신을 향한 증오를 러셀에 대한 환호로 바꿨다.

‘저 새끼, 진짜 물건이야.’

20대 초반의 청년이 무대에 혼자 올라가 저걸 해낸다고?

이 모든 건 신의 작품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위험천만했던 오늘의 경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바쿠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고자 했다.

그러자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할리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바쿠, 어디 가나?”

“셰무스 상태가 좀 걱정돼서 한번 보고 오겠습니다.”

“그 자식이라면 이쪽으로 들어올 텐데 왜 나가려고 하나?”

“……크흠.”

“아, 꼬마 둘이라면 다른 방향으로 오겠군. 뭐, 가보게나.”

그 의도를 다 알아차린 할리는 낄낄거리며 바쿠를 놀려댔다.

‘성질 더러운 영감.’

할리는 지금 넌지시 바쿠의 ‘편애’에 대해 지적한 것이었다.

할리의 은근한 압박에 바쿠는 속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마지막에 관객석까지 들어가 난타전을 벌였다.

그리고 계속 싸우며 여운을 남기듯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3번 게이트 쪽인가.’

바쿠는 얼른 가서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이 자식들이……!!”

러셀과 내가 혈투를 벌이며 경기장을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바쿠가 등장해 호통을 쳤다.

“아, 바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를 맞이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말 멋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내 옆에 서있던 러셀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보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그래, 얼른 들어가자.”

고개를 끄덕인 바쿠를 따라 우리는 일단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바쿠는 껄껄 웃으며 날 칭찬했다.

“경기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초반에는 좀 헤매는 것 같더니 그것도 설마 다 정해둔 거였냐?”

“……뭐, 그렇다고 치죠.”

“역시 셰무스 그놈이 비협조적으로 굴었던 거군.”

“말한 김에 상태나 보러 가죠. 제가 잘못 찼는지 걱정이 되네요.”

문제가 남았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릴라 포지션 쪽으로 이동했다.

러셀의 난입이 완벽했던 것과는 달리 그전에 있었던 셰무스와의 경기는 좀 삐걱거렸다.

‘괜찮을까?’

나는 걱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바쿠, 러셀과 함께 고릴라 포지션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날 반겨주었다.

“아, 신!”

“멋졌어요!”

“진짜 반응 좋았습니다!”

“잘했다, 애송이!”

“아, 감사합니다.”

나는 직원들의 갖은 환대와 칭찬에 웃으며 대답하고는 셰무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심판의 부축을 받아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다가가 인사했다.

“고생했어요. 셰무스.”

“……그래, 너도.”

눈이 흐리멍덩하군.

“괜찮아요? 내가 너무 세게 찬 건 아닐까 모르겠네.”

“그러게 적당히 갈구고 일은 확실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바쿠가 나섰다.

“자, 잠깐만요. 바쿠.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뭐?”

“다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셰무스가 넘어진 건 제가 첫 번째 킥을 세게 차서 실수한 거고요.”

그래, 이렇게 하기로 했다.

여기서는 일단 셰무스를 감싸준다. 굳이 경기 무사히 마친 상황에서 죄인을 만들 필요는 없지.

어쨌든 녀석도 같은 프로로서 내 기술을 접수해준다는 최소한의 한도를 지킨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바쿠는 그런 내 변호에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냐?”

“예, 위험천만했지만요. 다음부터는 더 조심하겠습니다.”

“……끄응.”

더 할 말이 없어졌는지 바쿠는 짧게 신음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쓰게 웃은 나는 황당하다는 듯 서있는 셰무스를 돌아보았다.

“괜찮습니까?”

“너…….”

“내가 찬 건 이걸로 퉁 치죠.”

나는 가볍게 웃으며 셰무스의 가슴을 툭툭 때렸다.

* * *

쇼는 완벽하게 끝났다.

테마는 GCW 챔피언십 16강전.

여덟 개의 경기 모두가 각각의 방식으로 무승부로 끝났다.

더블 KO.

난입으로 인한 경기 무산.

더블 카운트아웃.

시간 초과.

선수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기량을 뽐냈으며 챔피언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불태웠다.

개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러셀 하트와 신이라는 두 사람의 특급 신인이었다.

GCW에 찾아온 무법자와 그 상대가 될 명문가의 적통.

쇼가 끝난 다음 날부터 GCW에서는 외부 보도 자료를 수집하며 반응들을 보고 즐겼다.

지역 뉴스에 나온 ‘모든 경기가 무승부’가 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있던 수뇌부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역 신문, 가십 잡지, 인터넷, 조지아 주州의 모든 사람들이 단숨에 주목하게 되었군요.”

“도박수가 먹혔어.”

“이 정도로 대박을 친 쇼가 근래에 있었던가 싶은데요.”

“쟈니 때도 이러진 않았지. 스니키도 위로 올라가서 쇼가 과연 어찌 되려는 건가 싶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네요. 스니키가 있었으면 위상이 너무 높아서 부킹이 힘들었겠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바뀐 후의 쇼가 이렇게 대박을 쳤다면 스니키가 올라간 게 정말로 좋은 일이 된 셈이었다.

각본 상으로 그는 오직 쟈니 에이스만이 상대할 수 있는 압도적인 위상을 가진 악역이었다.

위상이 낮은 선수는 높은 선수를 일대일로 이길 수가 없다.

그 위상을 보여주고 상하를 정하는 게 프로레슬링의 승패였다.

그것이 각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프로레슬링의 철칙이었다.

하지만 스니키가 계속해서 챔피언으로 군림했더라면…….

‘그에 맞는 위상을 가진 선수를 키우느라 쇼가 지루해졌겠지.’

관객들과 시청자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컸고 말이다. 할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좋게 될 줄은 몰랐군.”

지금은 확실한 강자가 없는, 누가 챔피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할리는 시가를 입에 문 채 간부들을 돌아보았다.

“이번 주 시청률이 어땠지?”

“0.7퍼센트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얼마나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나?”

“적어도 1.0퍼센트까지는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전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쇼를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남은 건 다음 주 쇼에서 그것을 폭발시키는 일뿐이었다.

“각본팀장, 다음 주 결과 같은 거 생각해서 결재 받으러 와.”

“알겠습니다.”

“바쿠는 선수들 좀 격려해주고. 이번 주말에 다들 모여서 바비큐 파티라도 한번 열자고.”

“애들이 좋아하겠군요.”

회의는 그런 식으로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결과가 좋았기에 남은 것은 다음 준비를 잘하는 것뿐이었다.

모두가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섬주섬 일어난 바쿠는 갑작스레 뭔가를 떠올리고는 상석의 할리를 돌아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할리.”

“응?”

“신하고 러셀은 이제 선수 계약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지난번처럼 또 헛소리하지 말고 재무팀도 데려가라.”

“예예, 알겠습니다.”

“저기, 바쿠.”

바로 그때, 곁으로 다가온 각본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예, 팀장님.”

“혹시 그 친구 볼 때 저도 데려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요?”

“신이요. 혹시 뭐 더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있나 싶어서요.”

“선수한테 각본 상담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닐 텐데요.”

“그래도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선수, 무슨 마술사처럼 내는 의견마다 대박을 치니까요.”

“…….”

“꼭 좀 부탁드립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그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바쿠는 곤란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도 신의 아이디어가 궁금하기는 했으므로 딱히 거절하기도 뭣한 것이었다.

‘근데 지금 그 자식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원래 쇼를 한 다음 날에는 편하게 몸을 쉬는 것이 관례였다.

‘일단 방으로 가볼까.’

그렇게 생각한 바쿠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 * *

경기가 끝난 다음 날.

스케줄은 없었으나 나는 평소와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시나와 따로 운동 스케줄을 잡아놓은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기 다음 날이었기에, 평소처럼 근력 운동 위주로 근육을 단련하지는 않았다.

오전 내내 가벼운 요가를 통해 긴장하고 있는 몸을 풀었다.

격렬한 운동 이후에는 반드시 릴렉스를 해줘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시나는 따라하면서도 계속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정말…… 효과가 있는 거야?”

매트 위에 누운 녀석은 내 말에 따라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물론, 이지.”

나 역시도 같은 자세를 취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요가는 프로레슬러들에게 상당히 좋았다.

유연성 없이는 제대로 된 동작을 할 수 없는 게 레슬링이니까.

‘이제 시작이야.’

어제 밤은 정말 멋졌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내 역할을 다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프로레슬러의 참 모습.

그런 밤을 계속해서 맛보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힘든 동작을 반복하면서도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전생에도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던 시나는 금방 뻗어버렸다.

무시하고 동작을 이어나간 나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시나, 씻고 밥 먹으러 가자.”

“허, 허리가…….”

“괜찮아. 안 죽어.”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셔츠를 벗으며 녀석을 툭툭 건드렸다.

바로 그때였다.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엉금엉금 일어나려는 시나를 두고 방문을 열었다.

뜻밖의 인물이 서있었다.

“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놀랍게도 셰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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