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셰무스에게 말을 들은 허스키는 피식 웃더니 무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특유의 거칠게 꾸민 목소리로 말했다.
“신참, 내가 만만해 보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날 픽한 거지?”
“선배님에게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판단했으니까요.”
“……흐음.”
허스키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심리를 금세 파악하고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는군.’
허스키는 평소 기술 구사 쪽으로는 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때문에 특급 신인인 내가 인정을 해주자 기분이 좋은 거겠지.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군.’
아무래도 경기 중에 셰무스의 목숨을 구한 일로 선배 레슬러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듯했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마초의 끝판왕을 달리는 놈들이라 성격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거지만.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그는 근육과 살로 뒤덮인 두툼한 몸을 드러내며 뒤로 돌아섰다.
링 위로 올라가는 그를 따라가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떨까.’
며칠 전에 붙었을 때는 구사한 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기술을 쓴다는 느낌이었는데.
‘허스키가 메인에 올라가는 게 아마 내년쯤의 일이었지?’
그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쭉 그저 그런 경기력을 가졌다니.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없더라도 단련만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의문은 약 30분 후, 완벽하게 결론이 나왔다.
* * *
‘노력하지 않는 거였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에서 낄낄거리는 허스키를 바라보았다.
시내의 작고 낡은 펍.
“그래서 그 자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우으, 내 샷건에는 총알이 없다고. 제니퍼!’라는 거야!”
“오호호호호!! 그게 뭐람!”
“그러니까 제니퍼는 겁나 당황한 얼굴로 ‘총알이 없어도 사람이 맞을 수는 있잖아요!’라는 거야!”
“꺄하하하! 총알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맞는담! 그 와중에 샷건은 또 뭐야! 정말로 샷건이면 마누라가 정원사랑 놀아났겠어?!”
수염을 기른 허스키의 주변에는 여자들이 가득했다. 펍에 들어오고 5분 만에 꼬신 것이었다.
그 옆에서, 나는 진저에일을 홀짝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대체 왜…….’
거기다 몰래 GCW를 빠져나와 펍에 온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다트와 포켓볼을 즐기는 다른 선배들도 몇 명인가 보였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었다.
‘이중에서 메인에 올라가는 선수는 나와 허스키뿐이다.’
나는 그래도 노력한 편이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노력했다. 지금에서는 그게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근데 허스키는 대체 어떻게 메인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거지?’
메인에 올라가는 선수에게는 특징적인 재능이 하나씩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의 허스키에게는 딱히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이 떡상하는 건 분명히 메인에 올라간 다음이란 말이지.’
대체 왜일까.
무슨 재능이 있어서 허스키는 메인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배.”
“오냐, 신참.”
“여기 얼마나 계셨습니까?”
“흠, 한 5년 정도?”
‘……길다.’
“메인에 올라가실 때도 됐네요.”
“글쎄다.”
“산하 단체에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게 힘들진 않으십니까?”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레슬링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지겨운데.”
“레슬링을……?”
“그래, 그나마 피자배달부보다는 짭짤하니까 여기 있는 거지.”
낄낄거리며 웃은 그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연구하는 것도 이쪽이 시간이 남아서 훨씬 편하고 말이다.”
“연구요?”
“그래, 크립티드.”
“흐음…….”
“최근에 블루리지 산맥에서 사스콰치의 흔적이 나왔는데. 조만간 휴가 낸 다음에 다녀오려고.”
“정말로 그런 게 실존하나요?”
“모르지.”
“예?”
“그러니까 알아보고자 하는 거 아니야. 나름 근거는 있다고?”
“그, 그렇군요.”
“좋은 걸 보여주지.”
허스키는 품 안을 뒤적거려 사진을 한 장 꺼냈다.
큰 발자국이 찍힌 오솔길.
이어진 설명은 꽤나 재미있었다.
거기다 해박했다.
미국 산림을 배경으로 퍼진 극단적인 종교 집단.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형태의 믿음.
“하지만 그들의 믿음에는 뭔가 어떤 근거가 분명히 있겠지?”
“그게 크립트인가요?”
“그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고 숭배하지.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꽤나 해박하신데요.”
“조사를 많이 했지. 나중에는 관련된 책도 한번 써보고 싶어.”
이런 쪽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프로레슬링 업계에 투신한 이유가 설명이 되질 않는데.
“그런데 선배. 이쪽 업계에는 어쩌다 들어오시게 된 건가요?”
“뭐? 그건 왜?”
“말씀도 잘하시고 여러 지식도 해박하신데 스탠딩 코미디언이나 대학 교수 같은 게 어울릴 것 같아서요.”
“자식이, 사람 그만 띄워라. 공부는 내 적성이랑 안 맞아.”
“운동 쪽은요?”
“여기도 뭐 엿 같은 건 마찬가지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게…… 내가 ‘3대째’거든.”
“……예?”
“마이크 로완다. 몰라? 아니면 블랙잭 모리건은?”
“어, 음. 그…….”
“모를 만도 하지. 아버지는 세무조사원 기믹으로 잠깐 활동한 워커였고, 외할아버지는 70년대에나 활동했던 프로레슬러거든.”
“…….”
진짜로 몰랐다.
하지만 그 말로 확실해졌다.
‘3대째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메인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거군.’
아마 거기에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입김이 좀 있지 않나 싶었다.
비슷한 세대에 활동했던 바쿠나 할리가 선후배의 자손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던 거겠지.
‘대충 알겠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크립트에 관심이 있는 것도 모두 아버지의 영향이었나요?”
“아니, 그 영감은 프로레슬링 외곬수라서 말이야. 어렸을 때 내가 그런 책 가져오면 다 불에 태워서 갖다버리는 성격이었지.”
쓰게 웃은 허스키는 이내 표정이 우울해졌다.
“으레 있는 일이지. 자식의 꿈을 비웃고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는 아버지. 우리 집도 그런 거고.”
“선배가 말하는 걸 들으면 비웃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던데요.”
“그, 그렇지? 응? 크립트는 역시 실존한다니까!”
“확실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나는 허스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와 대화를 즐겼다.
쓸모가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 * *
쩌억!
날카로운 니 킥을 맞은 셰무스의 몸이 한순간 뒤로 고꾸라졌다.
천여 명의 관객들이 순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곧바로 바닥에 드러누운 셰무스의 다리를 들고 커버했다.
셰무스의 어깨 쪽으로 돌아들어온 심판이 바닥을 내리쳤다.
“원, 투……! 쓰리!”
땡땡땡!
신의 승리.
“으랏차아!!”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을 들며 환호하자 내 테마곡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Booooooooooo!!]
그 위로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나는 그걸 무시하고 코너 쪽으로 다가가서 턴버클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심판이 건네주는 재킷을 받아 펼치자 역십자 문양이 드러났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관객들은 힘차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완전히 날 싫어하는 관객만 있진 않았다.
바로 아래의 가장 가까운 관객석에는…… 놀랍게도 같은 동양인 청년들이 몇 명 앉아있었다.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략 다섯 명 정도?
“신!! 와! 이겼다!!”
“와아아아아아!!”
신나서 환호를 보내는 그들은 각본을 다 떠나서 오롯이 내 편이었다.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
전생에 내가 패배했을 때에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던 이들.
하지만 내가 승리하자 그들은 나를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이들의 존재가 나를 복잡한 악역으로 만든다.
논란거리가 될수록 나의 스타성은 늘어난다.
그렇게 한동안 승리를 자축한 후, 나는 씨익 웃으며 퇴장했다.
안에 서있던 직원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신! 멋졌어요!”
“최고였습니다!”
바쿠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했다. 애송이.”
“다들 도와줘서 살았죠.”
나는 다가온 사람들에게 공을 돌린 후, 뒤로 돌아서 기다렸다.
멋진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각본대로 16강에서 승리했고,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 재수 없지만 강한 놈으로 부킹되었다.
물론 모두가 잘해주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가장 공을 세운 것은 물론 셰무스였다.
“선배.”
“아, 신.”
안으로 들어온 녀석은 금세 멀쩡해져 날 보며 웃었다.
입장로를 통해 퇴장할 때만 해도 타격이 가시지 않아 비틀거리는 접수를 취하더니 말이다.
‘확실히 프로답군.’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까지 확실히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태도.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멋진 경기였으면 됐어.”
나로 인해 자신의 위상이 다소 깎였음에 그는 쿨하게 웃었다.
이처럼 자신에게 ‘잡’을 해준 선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건 프로레슬링의 기본적인 예의였다.
쇼는 그야말로 초대박이었다.
‘생각한 대로군.’
현장의 반응을 통해 승패를 정한다는 방식이 선수들의 의욕을 자극한 것 같았다.
WWF처럼 큰 단체에서는 정치 싸움 같은 것 때문에 쓸 수가 없는 방법이지만, 확실히 여기에서는 효과가 좋았다.
산하 단체라 그나마 끈끈한 동료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밖으로 나온 나는 복도에 설치된 TV로 경기를 계속 모니터링 했다.
셰무스는 힘들다면서 먼저 씻으러 갔지만, 나는 쇼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었다.
선수의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이 열광하고, 야유를 보내는지.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공부할 생각이었다.
‘이 시대의 흐름은 내가 프로듀서로 일하던 때와는 분명 다르지.’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야 했다.
참으로 어려운 업계였다. 그렇기에 아이콘 급의 선수들은 항상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나조차도 자기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쇼를 확인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살폈지.’
그렇게 생각하며 내 다음으로 치러지는 허스키의 경기를 보던 내 등을 누가 툭툭 두드렸다.
돌아보자 방금까지 생각했던 미래의 아이콘께서 계셨다.
무척 감동한 얼굴로.
“최고였어.”
“……그래?”
나는 녀석이 내미는 이온 음료 병을 받아 꿀꺽 마셨다.
“그래, 신. 너 진짜 연기 잘하던데? 어디서 배웠던 거야?”
“뭐, 그냥 하다 보니 되던데.”
“정말 새개끼 같은 연기였어. 주먹이 불끈 쥐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쌍욕이 터져 나오던데!”
“……너, 내 친구잖냐.”
“그래도!”
나를 칭찬하려는 건 알겠지만 어딘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뭐, 그래도 영 공감이 안 된다는 소리보다는 낫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일까.
“확실히 그랬죠.”
“그렇죠? 와, 역시 제 스승다운 솜씨였어요!”
“호오, 아직 젊어 보이는데 제자를 둘 정도로?”
“신은 프로레슬링의 신神이라니까요!”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이온 음료를 마시던 중 뒤를 돌아본 나는 안경을 쓴 한 중년의 사내를 발견했다.
시나의 옆에 선 그는 무척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런 반면, 저 친구는 5년이나 했는데도 실력이 그대로군요.”
그는 차가운 눈으로 TV에 나오는 허스키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버님?’
벌써 만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