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돌아와서 조금 찾아봤었다.
마이크 로완다는 본명이었고, WWF에서 활동했던 시절의 링네임은 어니 K. 샥스터였다.
당시 만화적인 캐릭터가 주였던 WWF 내에서도 독특하던 기믹.
사람들에게 경기를 보려면 세금을 내라며 호통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GCW에는 분명 남아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그를 향해 손을 척 내밀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샥스터 씨.”
“호오,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젊은 친구가 있을 줄이야.”
프로레슬러의 인생은 대부분이 ‘링 네임’으로 점철 된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고 아예 자신의 이름을 링 네임으로 개명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링 위의 정체성은 중요한 것이었다.
그처럼 샥스터는 내가 자길 알아보자 기뻐하며 악수를 해주었다.
“지금은 친구 백으로 백스테이지 구경이나 오는 노인네지.”
“위대한 선배님이 경기를 보러와 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하하, 사실은 못난 아들놈이 어떤지나 보러온 것이지만.”
“자주 오십니까?”
“거의 매주.”
그는 눈을 빛내며 웃었다.
“그런데 저놈은 글렀어. 지금 경기하는 거 보면 각 나오지.”
그러더니 이내 TV 속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봐도 좀 심하기는 했다.
‘완전히 도서관이군.’
다른 선수들의 시합에 비하자면 반응이 거의 없었다.
그 상대가 허스키보다 더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그나마 오늘은 이기기로 예정이 되었지만.
저 두툼한 몸에 팬티 하나 달랑 입은 레슬러 복장은 확실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저게 말인가? 프로레슬러는 결과가 전부야. 실전에서 저래야 오히려 노력한 게 더 비참하지.”
“그렇습니까?”
“그래,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거든. 저래야 누구와 똑같이 자버로 남겠군.”
그게 누군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자식이 못 다한 자신의 꿈을 이뤄주길 원하는 아버지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샥스터처럼 자버로 커리어를 보내봤으니.
‘아들이 자신 대신 대성해줬으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게다가 허스키 역시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프로레슬링을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애초에 메인이벤터까지 올라 선수 생활을 수십 년 한다는 게 보통 근성으로는 불가능했다.
프로레슬러 활동은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사나이들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니까.
즉, 이 일 자체를 즐기거나 절박하게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이번 토너먼트에서 어떻게든 기믹을 바꿔줘야겠어.’
그래야만 나 역시도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단순히 챔피언이 된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챔피언에 걸맞은 위상을 가져야만 관객들에게 비로소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즉, 아직 내가 챔피언이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상대한테 져야만 내 가치도 손상되지 않는 거야.’
토너먼트 경기는 일주일에 네 개씩 열리기로 되었으므로 내가 4강에서 허스키와 맞붙는 것은 대략 한 달 정도 뒤의 쇼에서다.
‘러셀과 대립은 이미 떡밥을 깔아뒀으니 아무 문제도 없고…….’
좋아, 어디 한번 해볼까.
* * *
내가 새로운 기믹을 제안하자 허스키는 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도 훈련을 한 시간도 안 되서 마친 그는 구석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지난번에 말씀하신 거 듣고 나니 이거다 싶더라고요.”
나는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의 할당량은 끝냈기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말에 허스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뭐가……?”
“그, 산림 지역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같은 거 많이 있잖습니까? 아니면 조나단 타운이라던가.”
“조나단 타운이면…… 옛날에 그 집단 자살 사건이 일어난?”
“예, 선배는 말도 잘하고 관련 지식도 해박하니 재미있는 기믹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다.”
고민하는 허스키.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버지로 인해 시작한 프로레슬링과 자기가 좋아하는 크립트 지식을 융합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해보지 않은 것이겠지.
하지만 전생에도 그러했고, 나 역시 실제로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세련된 방식’으로 꾸밀 수만 있다면 확실히 멋진 기믹이었다.
사이비 종교를 이끄는 교주로서 관객들을 조련하려는 악당.
하지만 그런 어두운 카리스마에 감화되어 말 그대로 그를 ‘따르는’ 관객들도 많은 것이다.
허스키는 말했다.
미국에 여러 뒤틀린 형태의 종교가 있는 것은 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 때문이라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크립트 같은 믿음 역시도 생겨났다.
“선배가 지금 제일 좋아하는 크립트가 뭡니까?”
“……외눈 독수리.”
“스크린에 외눈 독수리의 문양이 딱 박히는 겁니다.”
“……그리고 랜턴을 드는 거지.”
“그, 그래요.”
“그래! 거대한 로브로 온몸을 가린 채로 나타나는 거야!”
“그건 좀…….”
“그래?”
“예, 현대에서 그런 이상한 종교는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럼 정장?”
“그것도 좀 별로네요. 종교 지도자 같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진지하게 고민하던 허스키는 이내 조용히 날 돌아보았다.
“영상팀 사무실로 좀 가있어라.”
“예?”
“내가 그동안 모은 공포영화 비디오가 몇 개 있어. 같이 보면서 생각해보자고.”
“재밌겠군요.”
나는 씨익 웃으며 일어났다.
‘역시 바로 흥미를 보이는군.’
허스키는 크립트에 대해 해박한 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터였다. 스스로 그 기믹을 연기할 때의 디테일도 올라가겠지.
선수들은 모두 몸을 씻고 저녁까지 좀 쉬러갔지만, 나와 허스키는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허스키가 제안했던 대로 영상팀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날 돌아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신 선수?”
“안녕하세요. 잠깐 비디오 플레이어 좀 써도 될까요?”
“그거야 괜찮은데…… 무슨 일인가요?”
“기믹 연구 좀 하려고요.”
나는 씨익 웃고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탑재된 텔레비전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운 물건이군.’
놀랍게도 GCW 전체를 통틀어 단 하나만 있는 물건이었다.
딱히 회사가 가난한 건 아니고, 그다지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스키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떤 것부터 볼까요?”
“이거.”
제목은 ‘악마의 교주’였다.
‘지리멸렬하군.’
내용도 그러했다.
전형적인 B급 비디오 영화로, 피에 미친 교주가 신도들을 학살해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흑인이 죽었고, 살아남은 건 여자 주인공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단 하나, 나의 흥미를 끄는 게 존재했다.
바로 교주의 복장이었다.
“이건 어떤가요.”
단추를 푼 하와이안 셔츠에 작은 페도라를 쓴 모습. 그건 딱 허스키가 메인에서 쓴 옷이었다.
“여기에 수염만 길게 길러보죠. 선배는 수염도 멋지게 나는데.”
“그, 그래볼까?”
나는 그런 식으로 당근을 주며 허스키를 살찌워(?) 나갔다.
다음 영화에서는 허스키의 새 기믹이 주창하는 ‘신적 존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스터 지브릴…….”
“멋진 이름인데요.”
“이미지는 벌레, 불, 외눈 독수리, 흔들의자…… 랜턴.”
허스키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척척 기믹을 완성시켜 나갔다.
“암전 후의 기습. 내 신앙의 강요. 나를 따르는 신도들…….”
“스테이블을 꾸려도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름이었다.
그것만큼은 허스키가 가져온 영화를 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름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며 허스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니 계속해서 고민에 빠져 있던 허스키가 입을 열었다.
“부서진 거야…….”
“브로큰?”
이것만큼은 직접 떠올린 걸까?
“이름은 와이엇.”
“멋진데요.”
그가 메인에 가서 쓰던 이름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쉽게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나는 이번만큼은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어디서 따온 겁니까?”
“…….”
“선배?”
“음, 그게.”
잠시 머뭇거리며 뺨을 긁적이던 허스키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현역 때 쓰고 싶다고…… 항상 말씀하셨던 이름이야. 기믹은 전혀 다르지만.”
“흐음.”
“근데 허락을 해주실까? 아니라면 다른 이름도 생각을…….”
“해주실 겁니다. 지금 이야기만 들어도 멋질 것 같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이 기믹이 정말로 환상적으로 먹힐 것임을 알고 있었다.
* * *
우리는 수뇌부에게 선보이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의상팀에 가서 허스키의 사이즈에 맞춰서 옷을 부탁했고, 그게 완성되자 프로필도 촬영했다.
그동안 허스키는 나가자는 말은커녕 훈련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기믹을 발전시키려고 들었다.
나는 주로 그걸 옆에서 들어주며 연기를 봐주었는데, 정말 환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잘했다.
오히려 영상팀장이 나서 프로모 하나 찍어보자고 할 정도였다.
“잘 들어. 이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야.”
흔들의자에 앉은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낮고 음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불을 붙인 큰 랜턴이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어. 아니, 감춰두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문제는, 이제 돌아왔다는 거야.”
삐걱거리며 의자가 흔들렸다.
“인간은 안식을 바라지. 하지만 모두가 그러지 못해. 인류는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런 가운데 언제나 안식을 잃어왔어.”
‘진짜 좋은데.’
정말 멋진 기믹이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신도, 관객들에게 자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광신교의 교주.
“위선을 떠는 인간들, 간음하는 인간들, 모두 이 광활한 자연과 같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지.”
일어선 허스키…… 아니, 브로큰 와이엇이 랜턴을 쥐었다.
큰 성냥을 써 거기에 불을 붙였다. 조명이 어두운 가운데 수염을 기른 그 얼굴이 드러났다.
기괴한, 하지만 분명히 현실에 있을 법한.
공포스러운 악당.
브로큰 와이엇.
“외눈수리 무리를 따르라.”
그렇게 말한 와이엇이 훅! 하고 크게 랜턴을 불어 불을 꺼뜨렸다.
‘이걸로 됐어.’
“컷!”
내가 미소를 짓는 것과 동시에 비번인 날 촬영에 협조해준 영상팀장이 소리쳤다.
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불이 켜지자 나는 와이엇을 향해 다가가 주먹을 내밀었다.
“진짜 멋진데요.”
“다 네 덕이다.”
“제가 뭘요. 이거 다 선배가 만든 작품인데.”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은 우리는 카메라를 향해 돌아섰다.
촬영을 마치고 영상을 확인하던 영상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진짜 멋지긴 한데……. 하나 좀 걸리는 게 있네요.”
“뭐죠?”
“이 기믹, 결국 어떻게 내보낼 거예요? 당장 다음 주에 내보내기에는 허스키 해릿이랑 괴리감이 너무 심할 것 같은데.”
“아, 그거라면야 뭐.”
나는 피식 웃었다.
이것은 진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사실, 관객들은 그냥 개 멋있기만 하면 그런 거 딱히 신경 안 쓰거든요.”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이 ‘브로큰 와이엇’ 기믹은 그 정도 힘을 지니고 있었다.
쇼에서 터져 나올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