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9화 (39/634)

39.

다행히 빠져나갈 길이 생겼다.

정육점을 하는 박 씨 아저씨 이야기가 오간 끝에 엄마는 부부와 그 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전화를 받은 박 씨 아저씨는 준호가 돌아왔냐며 아예 크게 바베큐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한 엄마가 일정을 조정한 끝에 근처 이웃들이 내 얼굴을 보러오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엄마는 돼지를 막 내려놓고 나오는 아버지를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 안 했어요?”

“뭘.”

“준호 돌아왔다고요.”

“딱히.”

“당신도 참.”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뭐, 우리 아버지다운 행동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와 정반대로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거기다 강인했다.

“준호야. 따라와라.”

“예, 아버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자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 프로레슬러로 대성하기에는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

아니, 마이크 워크 쪽에서 영 힘을 못 쓸 테니 그것도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버지를 따라간 나는 뒤뜰에서 도끼를 잡고 바베큐 때 쓸 장작을 만들었다.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아버지는 손도끼로 땔감용 나무를 툭 내리치더니 손으로 뜯어냈다.

어이가 없어졌다.

“…….”

“거기 애들은 좀 세냐?”

“저도 방금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의심이 드네요.”

“너는 얼마나 세냐.”

“저요? 제일 세죠.”

“그럼 어디 이겨봐.”

“……?”

“누가 더 장작을 많이 만드나 겨뤄보자는 이야기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양손으로 쥐고 있던 나무를 뜯어냈다.

우두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결을 따라 나무가 뜯겨졌다. 황당한 얼굴로 서있던 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반으로 쪼개졌다. 나는 옆에서 새 나무토막을 들어 올려놓았다.

“한번 해보죠.”

지고 싶지 않은 승부였다.

* * *

결과부터 말하자면, 졌다.

중간까지는 어떻게 리드를 지켰으나 불이 붙은 아버지는 날 간단히 제치고 먼저 분량을 끝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작은 숯과 결합되어 한국식 바베큐를 요리하는 일에 쓰이고 있었다.

그 일은 아버지가 맡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찾아온 이웃들을 환영하며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박 씨 아저씨네 부부와 그 딸이었다.

“이야~ 네가 이렇게 컸어?”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시내에서 정육점을 운영하시는 박 씨 아저씨는 아버지 못지않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다.

하긴, 1980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버텨낼 정도면 확실하게 물리적으로 힘이 있어야만 했다.

‘갱스터들이 쪽도 못 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군.’

“근데 준호야. 너 좀 많이 먹고 다녀야겠다. 뭐 이렇게 말랐냐?”

……이분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시나 정도가 와야 겨우 말랐다는 말씀을 안 하시려나?

어쨌든 이들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우리 가족과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의 아들인 나, 김준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와주었다.

한인들은 먼 이국땅에서 끈끈히 뭉쳐서 살았다. 오래 바깥으로 나다녔던 나는 새삼 그걸 느꼈다.

그 외에 마트 하는 최 씨 일가, 직장 다니는 조 씨 일가, 그 밖에도 수많은 가족들이 모였다.

모두들 마치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던 가족을 반기는 듯했다.

나는 걱정하시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어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내, 그 자식들에게서는 정반대의 반응을 얻게 되었다.

“형, 진짜 멋지더라!”

“신 선수!”

“신이다!”

“사인해주세요!”

“다, 다들 일단 천천히…….”

이게 금의환향인가?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다소 당혹스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아예 어렸던 애들은 ‘준호’를 모르니 완전 신神처럼 날 보았다.

마치 내가 유명한 셀럽이라도 된 듯했다. 어떻게 이 머나먼 땅에서 GCW를 보는 거지 싶어졌다.

“야, 준호 이거 출세했네!”

“호호, 애들이 요새 다 네 이야기만 하더라. 그, 너트인가? 걔랑 싸우는 게 멋지다고 말이야.”

“……러셀인데요.”

너트는 뭐야.

“아, 맞아. 러셀이랑 친구해요?”

“둘이 싸우지 말아요! 와이엇 패밀리 혼내줘야죠!”

“으, 으음…….”

“형, 근데 무릎으로 상대 얼굴 차는 건 좀 위험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그렇게 안하면 러셀을 쓰러뜨릴 수가 없다고! 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그래! 게다가 그쪽도 다리 꺾고 그러잖아! 신 선수, 많이 아프죠!”

“어, 음.”

뭔가 각본과 현실의 경계를 미묘하게 계속 오가는 느낌인데.

어린애들은 다 프로레슬링이 ‘진짜’라고 여기며 질문을 해왔고.

반대로 머리가 좀 큰 애들은 그 각본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그게 프로레슬링의 재미지.’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두 개가 마구잡이로 섞이니 좀 곤란해졌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어머, 준호 인기가 많나 봐!”

“어렸을 때 교회가기 싫다고 성상聖像에 매직으로 고추 그리던 애가 매직으로 사인을 해주네!”

……죄송합니다. 하나님.

회귀시켜준 뒤로 신앙심이 생겼으니 버리지 말아주세요.

“얘, 준호야! 이리 좀 와봐!”

“자, 잠깐만요! 엄마!”

“저도 신 선수처럼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하라고 써주세요.”

“아, 그래.”

마침 또 애들이 마커까지 가져와 나는 티셔츠며 색지에 모두 다 힘내라고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수로서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네, 네! 강해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려고?”

“신 선수가 쓰는 기술들 다 따라서 연습하고 있어요!”

“안 돼. 그러면 안 되지.”

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예?”

“잘 들어. 레슬링을 하려면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면 쉽게 망가져. 나도 어렸을 적부터 기초 연습은 게을리 하지 않았거든.”

“그, 그렇다면…….”

“학교에 레슬링부 같은 거 없어? 거기 들어가면 좋을 텐데.”

“하지만 레슬링부는 마이클 패거리가 꽉 쥐고 있는걸요!”

“그래요! 그 자식들 몰려다니면서 저희 막 괴롭히고 때려요! 지난번에 전 맞아서 안경이 부러졌어요!”

“그럼 레슬링부에 들어가서 정정당당하게 이겨. 그놈들 팔 정도는 부러뜨려 주란 말이야.”

“파, 팔을요?”

“그래, 남을 괴롭히면 자기도 혼쭐날 각오는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씨익 웃었다.

악역으로서의 케이페이브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봐도 되려나.

어쨌든 꼬맹이들에게 덕담 몇 마디 건네준 뒤, 나는 파티를 즐기고 있는 엄마의 옆으로 갔다.

“무슨 일이에요?”

“호호,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약간 의아해하고 있자니 엄마 주변에 계시던 다른 어른들이 나를 대견한 눈으로 보았다.

“야 준호야, 이렇게 인기 좋으면 너 돈도 잘 벌겠다?”

“결혼해도 되겠는데! 아줌마가 참한 처자 하나 소개해줄까?”

“준호 엄마가 그래도 애는 잘 키웠지~. 우리 애는 입만 열면 귀찮아, 꼴불견이야, 이러고 자기 목표도 없이 사는데, 준호는 참 잘됐어~.”

“나중에 우리 애들 좀 혼 좀 내줘라! 이 아저씨가 허락할게!”

“……예에.”

이런 거였군.

엄마의 어깨가 으쓱한 이유를 알게 된 본 나는 쓰게 웃었다.

뒤쪽에 있던 아버지도 기분이 좋은지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역시 돌아오길 잘했어.’

확실히 힘이 생겼다.

전생에 아버지가 금의환향이라는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고향에 돌아와?’

차라리 그 자리에서 그 시간에 더 비싼 옷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비단옷을 입고 돌아오는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자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날 키워주신 분들께서 그러시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나는 더 성공해서 집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즐거운 휴가였다.

집에서 실컷 쉬고 근처를 돌면서 풍경을 즐기기도 하고.

그럼에 매일매일 하는 운동은 절대 빼먹지 않고.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이 나를 다시 GCW 본사로 인도했다.

2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올 때는 비행기를 탔기에 바쿠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돌아오니 좋냐?”

“아주 좋네요.”

“자식, 좀 더 쉬어도 되는데.”

“그랬다가는 몸이 굳어지잖아요. 이틀 뒤에 있을 쇼에 출연하기 전까지 감은 되찾아놔야죠.”

“좀 봐주랴?”

“……러셀하고 하겠습니다.”

요새 바쿠는 날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자꾸 자기 힘을 끝까지 발휘하려고 해서 문제였다.

덕분에 찹을 때릴 때도 무슨 철판으로 후려치는 듯했다.

짐이 든 트렁크를 들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몇몇 동료들과 만나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동네에서 아주머니들이 취미 삼아 만드시는 건강 팔찌를 사와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었다.

대부분 신비한 오리엔트의 물건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와이엇은 내가 쉬는 동안 뭔 동방의 주술사 영화를 봤다는데, 반응이 무척 가관이었다.

“이 팔찌를 끼면 맥주 마시고 운동 안 해도 근육이 늘어나지?”

“아니, 그건 아닌데요.”

“오리엔트 컨셉을 좀 넣어볼까. 오 마이 갓 대신에 오 마이 부다 같은 대사를 치는 거야.”

“……그건 피하는 게.”

“이 팔찌 정말 멋진데.”

안 듣고 있군.

‘어쨌든 좋아해주니 다행인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셰무스나 바비, 할리에게도 팔찌를 나눠줬다. 특히 요새 들어 허리가 안 좋다는 할리가 많이 좋아했다.

“호오, 이거 좋은데? 좋아! 너 다음 주에 GCW 챔피언해라!”

“뇌물 아니에요.”

“이 팔찌를 쥐고 꾹 누르면 Jiap(지압)이 된다는 거지?”

“예, 근데 뇌물 아니에요.”

확언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모두 내가 없는 동안 큰 문제없이 잘 지낸 모양이었다.

시청률은 계속 상승했고, 관객수는 점점 불어났으며, 각종 판매 수익은 초마다 계속 늘어났다.

그래도 부모님을 뵙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옷을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링 위의 두 사람이 보였다.

시나와 러셀이었다.

‘요령을 안 피우는구먼.’

피식 웃은 나는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알아본 시나가 꽃처럼 활짝 웃었다.

“신!”

“왔어?”

“그래, 자식들아. 너희 주려고 선물도 가지고 왔지.”

“이거 뭐야? 팔찌?”

“그래, 차고 있으면 무슨 음이온이 흘러서 건강에 좋은 거라는데? 잘 때 끼고 자면 아주 좋대.”

“고마워. 잘 쓸게.”

고개를 끄덕인 러셀이 팔찌를 찼다. 나는 녀석의 표정이 전보다 훨씬 좋은 걸 확인했다.

“쇼는 어땠어?”

“괜찮았지. 전국에서 집계된 투표수가 오만이 넘었다던데.”

“오, 오만?”

“그래, 좋은 성적이지.”

“…….”

진짜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3만이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통장에 얼마가 꽂힐지 벌써부터 두근거렸다.

아니, 어쨌거나.

“그런데, 지금 둘이 뭐해?”

“아, 이틀 뒤의 쇼에서 시나와 붙게 되어서 연습 중이었어.”

“그래? 나는?”

“너는 에디와 그다음 주에 붙을 거야. 이번 주에는 와이엇 패밀리가 난입할 때 날 도와주는 역할로 나온다고 하던데…….”

“에디와 일을 하는 거군.”

“그래, 어쨌든 잘 돌아왔어. 우리 둘이 합을 맞춰본 게 있는데 괜찮다면 의견을 내줄래?”

“물론이지.”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이 다시 링 위로 올라갔다.

몇 번의 동작이 오갔고 나는 이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시나의 스타일과 실력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인지 러셀이 그에 맞는 동작을 잘 생각해왔다.

자신이 리드를 하면서도 시나가 힘으로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을 전혀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아주 멋진……?”

내가 그에 대해서 말하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살짝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폴더폰이다)을 꺼내 확인하자, 엄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

뭐지?

“예, 엄마.”

[그, 잘 들어갔니?]

“지금 도착해서 막 훈련 시작한 참이에요. 무슨 일이세요?”

[솔직히 대답해줄 수 있지? 엄마 아들.]

“물론이죠. 뭔데요?”

[혹시 너 파티 때 애들한테 팔 부러뜨리라고 말한 적 있니?]

“……?”

[아니, 그 마이클이라는 애가 오늘 팔이 부러졌대. 양쪽 다. 애들은 네 말을 따라서 정정당당한 싸움에서 승리했을 뿐이라고 하고.]

“어, 음.”

[정말로 그랬니?]

“뭐, 잘했다고 전해주세요. 인과응보니까.”

씨익 웃은 나는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얘, 그게 무슨 소리니?!’ 하는 게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쨌든 먼저 시작한 것은 마이클인지 뭔지 하는 그 자식이다.

날 동경하는 꼬마들은 신을 보고 싸울 자신감을 얻었을 뿐.

그렇다면 응당 마이클은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그 녀석이 해왔던 일이 있으니 큰 문제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링 위에 서있는 동료들을 향해 돌아갔다.

자, 이제 다시 전국의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쳐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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